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88
제88화
‘효과 좋네.’
섬광탄을 흉내 낸 섬광 마법과 폭음 마법의 연계는 처음 당하는 이들에겐 충격적일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기사들 같은 경우에도 미리 알지 못한다면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파워아머 착용 중이라 해도 직접적인 마법이 아닌 이런 간접 마법에 대한 방호력은 완벽하지 못했다.
「어때, 내 솜씨가?」
「훌륭해. 정말 믿음직한데?」
라벨의 마법은 군더더기 없이 훌륭했다.
실제로 서클 마법 중에 섬광 마법이나 폭음 마법이란 마법은 없었다. 라벨은 1서클 마법 ‘라이트(조명)’와 4서클 ‘익스플로젼(폭발)’ 마법을 변형시켜 저런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혼란을 틈타 발동한 블링크(단거리 순간 이동)를 통해 왕족을 빼오는 데 성공했으니, 라벨이 합류가 라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왕족들을 좀 치료해 줄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겠지만, 괜히 뒷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맡겨 줘~.」
라벨이 날개를 팔랑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왕족들의 앞에 다가가 손짓을 하며 주문을 외웠다.
“리커버리 운즈, 아픔아 멀리 사라져라~.”
녹색 빛이 그들을 감싸고 4왕자의 허벅지가 아무는 것은 물론 눈과 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엇, 그대는?”
눈을 뜬 4왕자가 라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정신이 드십니까?”
“라울 경, 그대가 어찌 여기에?”
“6왕자님을 안전한 곳에 모셔 두고 혹시 몰라 뒤쫓아 왔습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아아, 내가 어리석었다. 제라드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라울 경.”
4왕자 조나스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닙니다. 더 일찍 눈치채지 못한 제 실수가 큽니다.”
‘싹수가 없는 녀석은 아니었네.’
스스럼없이 사과하는 모습에 빙긋 웃은 라울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다.
“일단 잠시 뒤쪽에 피해 계시지요. 놈들에게 죄를 물어야겠습니다. 호머, 책임지고 왕족분들을 보호해라!”
“네, 마스터. 맡겨 주십시오.”
퍼스트 기사단에서 간부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취가 빠른 이가 바로 호머였다. 엑스퍼트 중급 기사이고 D등급 파워아머 유저였으니 저들을 지키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루벤 왕국 최고의 기사단이라는 근위 기사단 기사들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라울은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이런 제길….’
쾅!
흉폭한 검기가 눈앞에서 충돌하자 마나 파편이 흩날린다.
근래에 별로 느껴 본 적 없는 강한 반탄력에 손아귀가 욱신거렸다.
본 실력을 발휘하면 근위 기사단장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애쉬튼 백작가. 역시 먼저 처리해 뒀어야 했나?’
“호오. 역시 근위 기사단 상급 기사 정도면 다르단 말인가? 전투 중에 잡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단 말이지?”
드드드득.
갑자기 톱니처럼 변해 버린 검기가 1호의 검기를 거칠게 물어뜯었다.
“끄윽.”
톱날 같은 검기에 붙들린 검이 조금씩 뒤로 밀려 바로 눈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런 X발. 오우거라도 되는 거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이야?’
펑~.
1호는 억지로 검에 주입된 마나를 폭발시켜 상대와의 거리를 벌렸다.
“너 같은 실력자가 어째서 그런 신생 기사단에 있는 거지? 귀족가 도련님의 똥이나 닦아 줄 실력이 아닐 텐데…?”
1호의 말에 퍼스트 기사단 단장 필립이 호쾌하게 웃으며 검을 내리쳤다.
“하하하. 너야말로 어째서 그 좋은 실력으로 제국의 미친 황제 놈을 섬기는 건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그 미친놈을 위해 검을 휘두르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콰과광!
“닥쳐라, 네가 감히 입에 올릴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고귀하고 고결한 뜻을 너 같은 범인(凡人)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순식간에 수십 합의 충돌이 흘러갔다.
둘 다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자부하는 만큼 대결은 치열했다.
힘에선 필립이 우세했고, 움직임은 1호 쪽이 약간 더 빨랐다.
다만 1호의 파워아머는 상급 근위 기사에게 지급되는 B등급의 고급품이었고, 필립은 골든베어 기사단에서 받은 C등급 일반형 파워아머였기에 장기전으로 간다면 1호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었다.
‘제길. 이쯤에서 몸을 빼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왕족 놈들을 빨리 처리할 것을.’
괜히 욕심을 부리다 똥 밟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부하들과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밀릴 전력이 아님에도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전황이 기울고 있었다.
‘저 애송이 놈!’
역시나 문제는 라울이라는 녀석이었다.
겨우 엑스퍼트에 턱걸이했을 거라는 정보와는 달리, 이미 완숙한 중급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찌나 난전에 능숙한지, 수십 년은 전장에서 구른 용병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전장을 헤집고 있었다.
놈이 날려대는 비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빈틈을 찾아가 부하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고, 검술은 또 얼마나 노련한지 상대방의 검술을 예측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측 아머 유저 숫자의 차이가 뼈아팠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이 긁어모은 거지?’
아무리 싸구려라 해도 20명이란 머릿수는 무시할 수 없었다. 거기에 왕자들의 호위 기사 다섯까지 포함하면 스물다섯.
하지만 이쪽은 매복해 있던 제국 기사들을 포함해도 열넷이었다.
이미 마병과 일반 요원들은 모두 쓰러졌고, 아머 유저들도 마나가 고갈되는 순간 쓸려 나갈 게 분명했다.
1호는 필립의 과격한 공세를 막아 내며 도주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빠져나가는 건 무리였다.
‘어쩔 수 없나. 한소리 듣긴 하겠지만….’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노리던 1호가 방패로 필립의 검을 받아내는 동시에 품속에서 꺼낸 작은 병을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푸화학!
병이 깨진 곳에서 검은 연기가 미친 듯이 솟아오르며 라운지를 덮쳐 갔다.
‘독인가? 쓸데없는 짓을….’
파워아머를 입고 있는 아머 유저에게 독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립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틈에 1호는 달아나고 있었다.
「쫓아가!」
휘우웅~.
라울이 염동력을 이용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순식간에 압축시키며 달려 나갔고, 필립 또한 1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제이크가 책임지고 전장을 마무리하도록. 피어스는 따라오면서 퇴로를 확보하고.」
「네, 마스터!」
호세는 임페리얼 하운드의 다른 요원들과 달리 흑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밀리는 와중에도 문신을 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황제의 각인도 받지 않은 듯했다.
그 말은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적의 정보를 충분히 얻어 낼 수 있단 뜻이었다.
‘놓치지 않겠어.’
라울이 1호의 흔적을 따라 궁전 지하로 성큼성큼 달려 내려갔다.
* * *
‘뭐가 이렇게 깊어?’
벌써 지하로 10층 이상 내려온 것 같은데 아직도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구르릉.
그리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진동은 내려갈수록 강렬해져서 이제는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기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왕궁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이건 마치 신전 같은데요?”
통로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벽에는 일정 간격으로 조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깎여 나간 탓인지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다.
라울은 일단 걸음을 늦췄다.
호세가 어찌나 빠르게 도망쳤는지 직선 통로임에도 놈의 뒷모습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면서 가자.’
그사이 피어스까지 합류한 셋은 조심스럽게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후.
통로가 끝나고 나타난 공간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신전 같은 건물이 그들을 맞이했다.
“뭐 하는 곳일까요?”
“글쎄. 분명한 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겠지.”
건물 밖인데도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스터, 추적은 여기까지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너무 위험할 것 같습니다.”
필립의 말이 아니더라도 위험하다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우웅.
그때, 신전 입구 쪽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뭔가가 튀어나왔다.
“악마종!”
나타난 것은 내성에서 봤던 헬하운드와 임프 20여 개체였다.
화르륵, 컹컹!
놈들도 라울 일행을 눈치챘는지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하지만 C등급 몬스터에 당황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치워 버린 라울이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일단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아. 들어가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그때는 퇴각해야겠지.”
그렇게 말하고 신전 입구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 라울의 눈앞에 또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경고] 현재 강제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플레이어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경고] 이곳은 극도로 위험한 지역입니다. 안전한 데이터 보존을 위하여 해당 지역을 벗어날 것을 권고합니다.
‘진입할 수 없다고?’
라울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보이지 않는 막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피어스. 먼저 들어가 보겠어?”
“네, 마스터.”
피어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잠깐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던 라울이 라벨에게 물었다.
「혹시 커넥트 시스템을 잠시 멈출 수 없을까?」
「음… 전체를 멈출 순 없고, 보조 시스템은 가능해.」
「그럼 잠시만 부탁해.」
「알았어~.」
그러자 라울의 시야에 표시되던 모든 증강 현실 인터페이스가 사라져 버렸다.
라울이 심호흡을 하고 다시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아무런 막힘없이 스윽 지나갈 수 있었다.
‘역시 생각대로야.’
라울은 플레이어인 동시에 커넥트 세상의 주민이기도 했다. 그래서 플레이어에게 걸린 제약이 다르게 작용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예측이 맞았다.
사실은 조금 전 라운지에서 있었던 전투에서도 의심 가는 점이 있었다.
강제 시나리오 지역에 들어온 이후로 일부 캐릭터의 머리 위에 [무적]표시가 마크되어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퀘스트에서 구출하라고 명시했던 왕족들이었다.
‘그런데 섬광과 폭음에 영향을 받았단 말이지. 무적이라면 효과가 없어야 했는데 말이야.’
아직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라울은 일반적인 플레이어와 NPC에 걸린 제약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어. 어쩌면….’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강제 시나리오를 비틀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오긴 했지만, 보조 시스템을 켤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인벤토리, 상태창, 인터페이스 등 시스템 메뉴도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선 커넥트 시스템도 제약을 받는 것 같아. 다행히 스킬 도감은 문제가 없어.”
라벨과도 머릿속이 아닌 육성으로 대화를 나눠야 하지만, 이 정도 페널티는 감수할 수 있었다.
어차피 라울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스킬을 체화해서 사용했기에 시스템의 보조가 없다고 해서 전투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럼 들어가 볼까?’
라울이 두 기사와 함께 조심스레 신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