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최준호의 육체와 정신을 파고드는 저주는 강력했다.
여느 초인이라면 저주에 휘말려 영향력 아래 놓일 정도.
그러나 최준호 상황은 달랐다.
그가 갖춰 놓은 정신방벽, 웅혼한 포스 벽은 두터워서 저주가 파고들 틈이 없었다.
츠요시의 부동심조차 깨 버린 디스거스트가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네거티브가 발동하는 순간, 저주 일부가 벽을 허무는데 성공했다.
수성을 책임지는 것은 만독불침이었다.
만독불침은 고민했다.
저주의 종류는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주인의 정신에 심각한 손상을 끼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정신에 문제가 생길지도.
인격이 바뀔 수 있는 강력한 저주였다.
그런데.
만독불침의 고민이 깊어 가는 지점은 이거였다.
[정신에 더 문제가 생길 게 있나······?]만독불침이 진단한 주인의 정신 상태는 심각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저주로 인격이 바뀌면, 좋은 거 아닌가······?]더 나빠질 게 있나 싶었다.
주인의 몸에 자리 잡은 이후, 뒤틀린 정신을 되돌리려다가 강제로 진압을 당했지만 만독불침의 의문은 여전했다.
주인의 정신은 이상하다. 근원부터 뒤틀려 있다.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주인의 힘이 너무나 강하다. 혼자서 역부족이다.
그런데 저주와 힘을 합치면 상황은 달라진다. 앞장 서는 저주를 도와 주인의 정신이 되돌아오게 하면 주인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그래서 저주의 힘과 연합하여 주인의 정신을 되찾게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이 정상이 되면 좋겠다.
만독불침의 바람은 오직 그거 하나였다.
저주와 힘을 합쳐 잠깐이지만 주인의 정신 방벽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뒤틀린 구조만 바로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 수면 아래에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던 인격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놓고 뒤틀려 있는 정신.
주인이되 주인이 아니다.
분명 주인의 향기가 느껴지는데 왜 다른 느낌이 드는 걸까.
피처럼 붉게 물든 이것도 미쳐 있었다.
이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
[안 돼. 주인의 몸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어.]반격에 나서려던 만독불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상해.]어느 게 제정신인지 판별이 불가능했다.
주인의 본래 정신도 뒤틀려 있고, 이건 대놓고 뒤틀려 있다.
···누가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
전부 이상하다면 전부 이상했고, 용납할 수 있다면 둘 다 용납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뒤틀린 정신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것도 미쳐 버린 게 아니라 그냥 성향만 달라진 게 아닐까?
그럼 꼭 바꿔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둬야 하는 걸까?
혼란에 빠진 만독불침이 이도저도 못 할 때였다.
-야.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이건 주인의 목소리다.
만독불침은 자기도 모르게 거센 떨림을 일으켰다.
주인이 어떻게 말을 거는 거지?
어떡하지? 무시하고 조용히 있어야 하나?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대답 안 하냐?
만독불침은 결국 떨림으로 대답했다.
바로 앞에 주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느낌이었다.
-일하자?
[······!]주인의 경고는 그것이 끝.
만독불침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둘 다 뒤틀려 있는 거니까. 본래 주인으로 되돌리고 기회를 엿보자.
그때부터 만독불침은 주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저주 여파를 소멸시키고 주인 대신 육체를 차지한 인격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옆에서 도왔다는 말이 옳았다.
자신이 없어도 주인은 이미 저주를 해소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주인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만독불침은 자신의 존재가 없었어도 주인이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옆에서 열심히 했으니까.
자신의 충성심이 증명됐겠지?
-만득아.
주인은 육체 통제권을 되찾기 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자기 이름은 만득이가 아닌데.
하지만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잘하자, 알았지?
만독불침은 알겠다며 필사적으로 수긍했다.
-지켜본다.
그렇게 주인이 통제권을 되찾으러 떠났다.
만독불침은 안도했다.
* * *
콘스탄티나는 자신의 저주가 먹혔다는 걸 확인했다.
초인의 피와 심장으로 구축한 저주 네거티브(Negative)는 십대초인급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망라하여 일시적으로 폭주시키는 이 기프트는 자아를 붕괴시키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아, 아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콘스탄티나의 눈에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리그의 지부가 모조리 불타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이었다.
그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왜냐하면 콘스탄티나는 사지가 잘려 바닥에 쓰러져 있기 때문.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전부였다.
자기 앞에는 함께 일본으로 넘어왔던 초인은 진즉에 최준호에게 사지가 잘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상태였다.
“벌레처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모습은 보기 좋아. 발버둥 칠수록 바닥은 피로 붉게 적셔지거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경이야. 약자는 이렇게 대우해 줘야 자기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거든. 물론 다음 기회는 없어.”
최준호, 아니 혈종은 자신이 펼친 풍경을 감상하며 웃었다.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폭발적으로 발산되던 안광이 그윽한 빛을 띠었다.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런 미친 빌런이 모습을 드러낸 걸까.
다른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 미친 빌런을 불러온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흡족하게 참상을 감상하던 혈종이 콘스탄티나에게 시선을 옮긴다.
“어때, 너도 좋지? 좋은 구경 시켜 주려고 호의를 베푸는 거야.”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키득거리며 웃는다.
“······.”
이건 조롱이었다. 약자를 향한 능멸이다.
아르고스가 옳았다. 이자는 빌런이다.
아르고스나 블랙하운드, 헬 마스터는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존 질서와 충돌하며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빌런이란 오욕을 감수했다.
그 본질이 빌런이지만 각성자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란 대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자는 다르다.
모든 걸 짓밟고 파괴하기 위해 나타난 빌런이다. 그 파괴는 오직 본인의 쾌감을 위해 자행되었다.
순수한 거대한 악의 앞에 짓밟힌 콘스탄티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잃은 채 리그 지부가 소멸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혈종의 칼날폭풍 앞에 리그의 빌런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그러곤 만족스럽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린다.
“이 기프트는 효율은 좋은데 손맛이 떨어지잖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이자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
콘스탄티나가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리고 숨소리를 작게 조절했다.
상대에게 완전히 굴종했다는 표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야.”
“네.”
“내 예술 작품이 어떠냐.”
“···너무나 압도적인 힘이에요. 이런 분에게 제가 저항하려고 했던 게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어요.”
“그래? 눈치가 제법 빠르네.”
“네, 그렇죠. 한없이 어리석은 절 꾸짖어 주세요.”
콘스탄티나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위를 맞췄다. 발을 핥으라면 핥을 수 있고 짖으라면 짖을 기세였다.
히죽 웃던 혈종은 방금 전에 죽인 빌런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가 악랄한 이유는 칼날폭풍의 위력을 조절해서 상대에게 최대한 많은 고통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갈가리 찢겨 나간 빌런들은 죽지도 못한 채 걸레짝이 되어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그리고 과다출혈 쇼크가 발생해서 생을 마감.
그렇게 살아 있는 것보다 죽은 게 더 많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혈종이 혀를 찼다.
“오랜만에 나왔는데 고작 이 정도라니, 여흥거리도 안 되잖아. 차라리 리그 본부 앞이면 좋았을 텐데.”
힘 조절 없이 칼날폭풍을 시전하자, 포스에 휘말린 시체가 갈가리 찢겨 나갔다.
“아, 아아······!”
콘스탄티나는 전율했다. 그녀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 왔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죽이는 것 그 자체를 행함에 있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얼굴에 튄 피를 혀로 할짝거리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라.
혈종의 시선이 콘스탄티나에게로 옮겼다.
“살고 싶다고?”
“사, 살려 주세요.”
“내게 저항하던 녀석이 이 꼴이 된 걸 보여 주고 싶긴 해. 그래야 날 더 두려워하고 범접하지 않으려 할 거 아니야.”
“그럼······.”
“살려 줄게.”
콘스탄티나의 두 눈에 희망이 서렸다.
살 수 있다. 살아서 돌아가 알려야 한다. 그 후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시선이 마주치자 혈종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뻥이야.”
“무슨······.”
그대로 콘스탄티나의 목이 몸과 분리되었다. 두 눈이 부릅뜨인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 좋다.”
혈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만에 보는 피 맛은 황홀할 정도로 달콤했다. 비릿한 혈향이 가져다주는 붉은 풍경은 삶을 의미했고, 검붉게 변해 가는 것은 끝을 의미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즐겼다.
“보채기는. 다음에 또 보자고.”
혈종의 눈에 발산되던 붉은 안광이 점차 옅어졌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잠깐의 외출.
즐기기에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만으로 최준호에게 깊은 자상을 남겼으니까.
“그리고.”
혈종은 소리 죽여 웃으며 말했다.
“나보다 네가 더 미친놈이야.”
그 말을 끝으로 붉은 안광이 자취를 감추었다.
* * *
제정신으로 돌아온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참혹한 시산혈해였다.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이지만 난 두 눈으로 현장을 담아냈다.
아무리 거부해도 내 손으로 만들어 낸 참사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익숙한 느낌이다. 저번 생에 내가 숱하게 봐 왔던 풍경이다.
혈종이다.
“안 사라졌던 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혈종은 과거의 잔재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눈을 부릅뜬 채 죽은 콘스탄티나의 얼굴이 보였다.
끝까지 농락당하다가 최후를 맞이했을 거다. 혈종은 그런 녀석이다.
빌런이 되기 위해 탄생한 뒤틀린 자아. 나는 그걸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미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아니다, 이번은 다르다. 저번 생에는 저항할 틈도 없이 녀석에게 모든 걸 다 내어 줬지만 이번 생에서 주도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
콘스탄티나가 필생의 역작으로 발동한 저주와 만독불침의 태업이 있고 나서야 혈종이 잠깐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내가 다시 주도권을 되찾은 것 자체가 달라진 상황을 의미했다.
“만득이 녀석을 확실하게 교육시키면 되겠어.”
만독불침이 자아를 갖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차근차근 진도를 밟아 나가면 된다.
녀석이 오락가락해서 혈종에게 잠깐 통제권을 내어 줬지만 얼마나 대단한 기프트인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만독불침을 앞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내 뒤로 은밀히 접근하는 인기척이 있었다.
쐐액!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날을 가볍게 피해 내고 달려드는 녀석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콰드득!
“컥!”
어깨가 우그러지면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녀석을 보며 나는 가차 없이 누리를 휘둘렀다.
섬광처럼 뻗어 나간 칼날 폭풍에 녀석이 버텨 냈지만 거듭 중첩되어 파고드는 포스 블레이드에 휘말려 팔다리가 잘려 나갔다.
“크아악!”
굳이 팔다리를 날려 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혈종의 처리 방식이다.
나도 모르게 혈종의 손속이 잔향처럼 남았나 보다.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녀석을 처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직접 마주친 적 없는데 친숙하다? 크게 의미가 있나 싶다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내각에서 행여나 보게 되면 생포해 달라고 부탁하던 얼굴이다.
일본 소속 초인이다가 리그로 옮겨 간 초인. 이명이 환월이라고 했던가. 어쩐지 접근하는 게 은밀하다 싶었다.
원래 죽이고 살려 두고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혈종이 튀어나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으니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여기서 죽여 버리면 나와 혈종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 같고.
팔다리가 없긴 한데 목숨 붙여서 데려가면 일본 내각에서 좋게 값을 치러 주겠지?
이세희에게 의뢰했던 팔다리 붙여주는 포션이 완성되지 않은 게 아쉽군.
“상처야 나아라.”
난 회복제를 꺼내 부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