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최준호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올 때도 갑작스러웠지만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며칠 머문 것도 제임스 리드가 선물해줬던 코트를 수선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신수의 파편을 일부 얻기 위한 투자였으나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최준호는 신세 진 걸 잊지 않고 다른 신수의 발톱 파편을 주었다. 그걸로 제임스 리드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코트가 수선을 마치자 최준호는 망설이지 않고 LA를 떠났다.
마주앉은 허버트와 팬텀의 감상은 ‘홀가분함’과 ‘착잡함’이 공존했다.
“갔군.”
“갔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미련을 둘 텐데 말이지. 자신이 거둔 성과로 최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기인한 것일 뿐입니다.”
“동시에 사라져줘서 좋고.”
“언제 어느 순간 사고칠지 모르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긴 합니다.”
그건 홀가분함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최준호의 존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수가 틀리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손을 쓴다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허버트는 최준호와 마주하면서 실제로 몇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최준호에게 죽는 것은 개죽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앞으로 헤드 브레이커라는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었군.”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입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긴 하지.”
최준호는 천둥새보다 훨씬 활동적이고 원하는 바가 분명했다.
그 투명함은 상대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거래 관계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활동력이 좋은 신수같은 존재라고 봐야겠지.
성격은 그보다 훨씬 더 안 좋고.
아군일 땐 믿음직하지만 적일 때는 재앙 그 자체일 것이다.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암중에서 지배해오던 파티의 리더로서 최준호의 존재는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래를 통해 관계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같은 생각인 걸로 보입니다.”
“정부에서도 선물을 잔뜩 안겨줬더군.”
허버트의 한숨이 깊어졌다.
세계 패권을 움직일 미국 대통령이 그 모습을 보인다면 혀를 찼겠지만 최준호에게 지독하게 당해본 팬텀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잘 알았다.
“…하나만 고르게 하려고 했지만 전부 다 뜯어갔습니다. 그걸 보면 욕심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법이지. 당연한 과정이고 우리에게 기회기도 하지. 녀석의 비위를 잘 맞춰봐.”
허버트의 눈이 스산해졌다.
다른 경우라면 파티에서 손을 내미는 것처럼 보이지만 허버트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이거 죽으라고 떠미는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그런 거 같은데.”
“그런 궂은일을 하라고 대통령을 뽑는 거니까.”
“저한테 투표도 안하지 않았습니까.”
허버트는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자유의 나라에서 누구에게 투표한 걸 갖고 운운하다니.
팬텀이 코웃음 치자 허버트는 더 채근하지 못했다.
“목숨 걸 일을 맡길 거면 저한테 후원 좀 하십쇼. 이번에도 상대후보한테 후원한 거 다 압니다.”
“정기적으로 하는 걸 가지고 우는 소리를 하기는.”
“그래서 안하겠다는 겁니까? 당장 한국으로 가서 최준호한테 우는 소리 해요?”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협박이지만 최준호와 연관되니 위협적으로 들리는 기적이 발동했다.
입매를 일그러뜨린 팬텀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적당히 할 테니 받아먹고 떨어져.”
“…하하! 정부와 파티의 관계 개선은 많은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주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자네를 제거해도 승계 받을 사람이 다니엘이라는 점에서 참 다행이군.”
“오늘부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바로 태세 전환하는 허버트를 보면서 팬텀은 코웃음을 쳤다.
*
* *
고속비행은 신수의 권능이라는 표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기프트였다.
공간 이동에 가까운 비행 기프트. 유일한 단점이라면 거리가 늘어날수록 신체에 가해지는 부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현재 나는 그 부하를 견뎌내면서 초재생으로 회복하는 걸로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고속비행 이후 전투에 임하는데 하자가 발생한다.
전력을 발휘하지 않을 상대라면 상관없겠지만 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에 심각한 하자였다.
그렇다면 신체 기능이 저하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육체강화였고, 깊게 들어가면 기존 것보다 월등한 성능의 기프트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이걸 충족하게 되면? 그 다음은 고속비행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쉽지 않군.”
LA에서 서울까지 고속비행을 사용해보려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느끼고는 고속비행을 멈추게 되었다.
그 결과 끝이 보이지 않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이는 신세가 되었다.
주변의 방해가 없다면 이렇게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이동하면 되었다.
문제는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점이지만.
초재생으로 신체를 회복하는 와중에 냄새를 맡고 다가온 마물을 사냥, 그 위에서 조용히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보다 마물 사체 위가 훨씬 편했다.
심장도 꺼내면서 기프트 탐색을 했는데 쓸모없는 거다. 그 전까지 가치가 높아 보였던 심장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고.
신수의 정수를 얻으면서 갖게 된 부작용이다.
“몇 번 더 사용하면서 부하를 골고루 나눠봐야겠어.”
고속비행을 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신체 부위마다 가해지는 부하가 저마다 다르며, 이걸 골고루 퍼뜨릴수록 이동거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이고, 본질은 육체강화를 통해 버텨내는 거겠지.
다만 이 ‘월등한’이라는 기준이 애매했다.
최소 전설급 기프트여야 할 텐데 그걸 보유한 녀석이 있기나 하던가.
“너무 조급한가?”
물론 그 기프트가 없어도 고속비행은 사용할 수 있다. 내가 고통을 감수하고 신체 과부하를 골고루 퍼뜨리는 방법을 이용한다면.
그래도 기왕이면 극명한 단점을 지워버리고 장점만 발휘하게 만들고 싶었다.
쉽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아무래도 이건 각성자가 아닌 마물로 찾아다녀봐야겠다.
음, 이거 또 생태계를 어지럽힌다면서 하소연을 듣게 되려나.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신입이 낯을 가리네.”
난 새로 등장한 신입인 고속비행의 기프트 자아가 문을 걸어 잠근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만득이들은 새로운 신입의 등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당분간 시간을 주라고 얘기해놓은 상태였다.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짧은 휴가를 준 것이다.
그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강제로 끌어내야겠지.
난 너그러운 오너였지만 그렇다고 호구는 아니었으니까. 할 땐 해야 진정한 대학원생인 것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망망대해에서 혼자 표류하며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고속비행을 연습하면서 종종 사용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주변에 마물들이 떼죽음 당해있는 상태였지만.
“이거 때문인가?”
난 천둥새의 신수의 정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피 냄새를 맡고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에서 온 거 같아 이 녀석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하긴, 이걸 먹으면 몇 단계가 더 강해질 테니 마물들로서는 눈이 뒤집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다.
다만 이것의 사용 방법은 나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용용이한테 넘겨주자니 아까웠고. 이건 내 전리품이기도 하니까. 서울로 갖고 가서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봐야겠다.
“그럼 다시 가볼까.”
난 다시 한 번 서울을 향해 고속비행을 사용했다.
*
* *
그리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서울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LA와 전혀 다른 날씨와 풍경이 맞아주었는데 그것이 좀 더 삭막하더라도 내게 와 닿는 기분은 친근했다.
“이래서 고향하는 거겠지.”
정작 내 고향은 서울이 아니었지만.
하지만 청주를 고향이라 하기에도 혈종의 기억이 워낙 길어서 그마저도 희미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제정신이 되어 정착하게 된 서울이 좀 더 고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LA에서도 푹 쉬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쉬는 것과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윤희가 있을까 싶었는데 출근을 했는지 아무도 없었고,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기운은 한 번 죽여 놔야 할 거 같은데.”
나는 신수의 정수를 보면서 말했다. 천둥새 특유의 기운을 간직한 신수의 정수는 겉으로 볼 때 잔잔했지만 그 속은 폭풍과 벼락이 연이어 휘몰아치는 격렬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나는 신수의 정수에 손을 얹고 포스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더니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내 영혼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건 영혼의 자극이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천둥새의 사념은 격렬하게, 나를 적대하면서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적의이기도 하고 신수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어떤 수작에도 무너지지 않겠다는 고고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녀석의 기운을 완전히 통제 아래에 놓아야 마물이 불필요하게 어그로 끌리는 일이 사라지고 천둥새의 기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고작 사념 주제에 내 통제를 거절한다고?
발칙한 녀석의 반항에 나는 포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치솟으려던 녀석의 저항 의지가 폭포수같은 내 포스에 짓눌렸다.
우웅! 우웅! 우웅!
기선을 제압하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이 내 통제에 들어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수의 잡념답게 녀석의 고고한 자존심은 꺾이지 않았다.
그래봤자 내 전문이 반항하는 녀석을 짓밟는 것이다. 이럴 땐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다각도로 자존심을 무너뜨려야 한다. 결국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게 될 때, 균열은 일어나고 그 틈을 사정없이 후벼 파야 무너진다.
신수의 사념이라고 해도 큰 틀은 다르지 않았다.
내 무지막지한 통제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신수의 정수는 마침내 틈을 드러냈다. 숙주도 없는데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이다.
결국 무너지기 시작한 신수의 정수 자존심 사이로 내 통제력이 파고들었고, 그 결과 신수의 정수는 차근차근 내게 장악되어 내 형태, 내 방식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길로 물들여 놨다. 뭔가 엉망진창 만들어버리는 기분이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겠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길들이는 작업을 했으니 한나절이 걸린 셈이다.
“…고작 신수의 정수 주제에 엄청 까다롭게 구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은 확실했다. 내 손안에서 찰떡처럼 구는 신수의 정수에 서려있는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애초에 투뿔 마물하고 비교할 바가 아닌데? 오히려 투뿔 마물보다 신수가 자기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천둥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마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달리 생각하면 마물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신수는 오랫동안 축적해온 힘을 사용하는 거니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신수가 자기 힘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월등히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재밌는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날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 왔어!]용용이 등장이었다.
신수의 정수를 길들이자마자 바로 등장이로군. 역시 이 녀석 때문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건가.
“왜 이제 왔냐?”
[네가 갖고 있는 정수 때문에. 내가 등장하면 서로 충돌한단 말이야.]“그런 것치고 현아랑 잘 다니던데?”
천둥새가 죽자마자 등장했던 걸 꼬집은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왜 사라졌어?]“그냥.”
내가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순간에 신수 둘을 마주할 이유가 없지.
[우리 둘이 있으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 천둥새는 소멸하면서 조절이 안 되는 상태고. 갑자기 잠잠해져서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한 거야?]“비밀이다.”
[아, 왜. 알려줘.]“싫은데.”
등장하자마자 귀찮게 달라붙기는.
난 주변을 맴도는 용용이를 조용히 살폈다.
[왜?]하는 행동은 한없이 하찮지만 그래도 녀석은 신수였다. 아직까지 천둥새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녀석이 마물에 위협을 느꼈던 만큼 용용이나 현아도 위협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그 말은 녀석도 음흉한 녀석이란 거지.
“하나 묻자.”
[뭔데?]“넌 내가 질 거라 생각했냐?”
[응? 그럴 리가.]말은 그러면서 눈알이 굴러가는 게 보였다.
내가 질 거라 생각했군.
[그래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했어!]“대충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것 같네.”
[그건… 미안!]역시 용용이는 호구가 맞다.
나였다면 그냥 뭉개버렸을 걸 가지고 사과하다니.
“그럼 궁금한 게 몇 개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라.”
[뭔데?]난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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