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버서커는 저 멀리 사라지는 최준호를 보며 침음을 집어삼켰다.
녀석이 새로 얻었다는 공간을 초월하는 기프트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렬했다.
전신이 나노 단위로 분해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끈질기게 생명의 끈을 붙잡던 그는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이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으면서 동시에 사라졌던 것이다.
완전회복.
최준호에 의해 사라졌던 기프트였다.
그런데 왜인지 완전회복의 존재감이 내부에서 점점 더 커져갔다.
이런 상황은 꽤 오래 전부터 벌어졌다.
버서커는 자신에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일회성으로 소멸되는 기프트가 다시 재생되는 경우가 있다?
긴가민가하던 것이 최준호의 기프트 사용으로 확실해졌다.
형편없이 망가졌던 육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재미있군.”
더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기까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경이로우면서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빌런들을 향해 벼락처럼 대검을 뽑아 휘둘렀다.
촤아아악!
대검에 서린 무지막지한 포스가 적들을 단숨에 짓이겼다. 처참하게 뭉개져서 산산이 흩어지는 빌런들에게 시선조차 두지 않은 버서커는 멀쩡한 빌런들이 모인 곳을 향해 뛰어들며 대검을 휘둘렀다.
“크하하하하!”
전신에 알 수 없는 힘이 끝없이 솟아났다. 버서커는 앞을 가로막는 적을 말살하기 위해 대검으로 적을 베고 부수고 짓이겨버리며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는 빌런이 대검 앞에 산산이 부서졌다.
“크크크크!”
오로지 본능에 몸을 맡겨 초토화 시키던 버서커는 별안간 소란이 커진 것을 감지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어느새 최준호가 요새 문을 열었고, 그곳으로 연합 전력이 우르르 밀려들고 있었다.
최준호 하니까 버서커는 자기도 모르게 멈칫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현상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최준호가 알게 된다면?
“…….”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 사이 안으로 진입한 연합군은 자신이 만들어낸 현장을 보고 멈칫하더니 분분이 흩어졌다.
그리고 버서커 옆에 한 인영이 멈춰 섰다.
사자 갈기를 연상케 하는 머리에 존재감을 조금도 감추지 않은 흉폭한 기세.
십대초인이자 파티의 강자인 사자왕 막심 게데스였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세를 견줬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블랙하운드를 맡겠다고?”
“불만이라도 있나?”
순수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기세가 전해졌다. 버서커 또한 밀리지 않고 이를 드러냈다.
“블랙하운드는 오래 전부터 내가 점 찍은 먹이다.”
“지금은 내 먹이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데, 그 상대로 처참하게 당하면 못볼 꼴이지.”
어떤 현상에 의해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집요하게 버서커를 훑던 막심 게데스가 말했다.
“양보해라.”
“싫다.”
“내가 이렇게 좋게 말하는데도?”
“네 녀석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군.”
막심 게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난 지금 상당히 좋은 형태로 말하는 거다.”
“나도 좋게 말하는 거다. 만약 내 주인의 당부가 없었다면 네놈의 목부터 비틀었겠지.”
“나와 비슷한데.”
“…….”
사나운 기세가 버서커와 막심 게데스 사이에 감돌았다. 연합군은 둘을 피해갈 정도로 둘 사이를 감싼 기세는 거칠기 그지없었다.
“블랙하운드보다 먼저 목을 비틀어야 하나.”
“놈을 상대하기 전에 괜찮은 준비운동이 되겠어.”
리그의 빌런들을 두고 둘은 당장이라도 붙을 것처럼 기세를 키워나갔다.
기세와 기세가 얽히면서 서로의 역량을 가늠한다. 둘의 몸이 들썩이면서 서로가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기선을 잡기 위한 신경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 사람이 중단한 게 아닌 둘보다 더 강한 기세가 억지로 밀어버린 것이다.
“잘들 하는 짓이다.”
버서커와 막심 게데스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돌아갔다.
그곳에는 최준호가 양손을 늘어뜨린 채 한심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당장 저 손이 득달같이 목을 낚아채러 올 것 같다.
가슴을 들끓게 만들던 열기가 식어버리는 기분이다.
“왜? 계속 붙어보시지. 그렇게 강자를 상대하고 싶다면 내가 상대해줄 수도 있는데?”
“…….”
버서커와 막심 게데스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오해다. 블랙하운드를 상대한다고 해서 얼마나 강한지 살펴본 거다.”
“가벼운 준비 운동이었다.”
하지만 최준호에게 조금도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준비 운동으로 죽여줄까?”
“사양하지.”
“전투 중이다. 적을 처리하러 가겠다.”
더 있다가는 최준호가 먼저 손을 쓸 판이라서 막심 게데스는 자리를 벗어났다.
분란거리가 사라지자 최준호도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지나치듯 한 마디 툭 던졌다.
“생각보다 상태가 더 좋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뜨끔했다. 버서커는 최준호의 기프트에 의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서 자신의 내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감지했다.
이걸 최준호에게 말한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뜯어보려고 할 사람이다.
절대 드러나서도, 들켜서도 안 된다.
“네가 준 회복제 성능이 좋더군.”
“성능이 괜찮긴 해도 이런 드라마틱한 효과라고? 잠깐 시간만 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에는 회복제를 때려 부으면 어떻게든 호전될 거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에 버서커는 욕을 퍼부을 뻔했다.
녀석의 사람을 괴롭히는 패턴은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난 이제 헬 마스터를 잡으러 간다.”
“가라.”
“네 상대는… 저기 오는군.”
요새 문이 뚫리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던 연합군이 주춤하게 된 것은 블랙하운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얼마 전 충돌을 떠올린 버서커는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잘해봐라.”
“크크, 지금 내 걱정하는 거냐?”
“앞으로 시험해보고 싶은 게 수백 가지는 넘는데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곤란하거든.”
“…….”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기분 나빠할 틈도 없이 최준호는 버서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 일어난 변화는 전투가 끝난 다음에 천천히 분석해보자고.”
“…….”
아닌 척 했지만 눈치 채고 있었다. 소름이 번져가는 걸 느끼는 가운데, 최준호는 스쳐 지나가 멀어지고 있었다.
“…놈을 상대하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하겠어.”
고작 몇 마디로 공포 영화 분위기를 만들어 내다니.
당장 마주한 블랙하운드에게 죽을 것 같다는 생각보다 최준호에게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더 강하게 들었다.
“크크크, 리그 삼악의 악명도 나한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군.”
폭소를 터뜨린 버서커의 신형이 블랙하운드를 향해 쇄도했다.
미리 약속되어 있었기에 연합군이 분분이 비켜섰고, 블랙하운드를 상대하던 막심 게데스는 버서커가 달려들자 입맛을 다시더니 뒤로 물러났다.
콰아아아앙!
무지막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양손을 교차하여 충격을 해소한 블랙하운드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린 버서커를 보며 미간을 모았다.
“또 네놈인가.”
“크크, 오랜만이군. 그때 내지 못한 승부를 내자.”
“운 좋게 살아남은 녀석이 제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군.”
“과연 누가 운 좋게 살아남은 걸까?”
“빨리 처리하지.”
블랙하운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버서커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블랙하운드는 존재 자체만으로 살육병기인 초인이다. 전신이 모두 치명적인 무기이며, 살인무술 뿐만 아니라 도검류와 총까지 완벽하게 다룰 줄 안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버서커의 대검은 강하고 직선적이다. 하지만 그 끝에 미묘하게 깃든 지저분함이 상대의 페이스를 흩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변화가 상대로 하여금 우위를 점하게 만들고 버서커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미쳐있다는 편견 아래 깔린 이 주도권 선점이 버서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지금, 버서커의 변화는 블랙하운드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검은 너클을 낀 그는 대검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면서 대검의 경로를 강제했다. 대검보다 두 손의 움직임이 더 빠르며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콰드득!
검을 붙잡고 억지로 비틀려는 움직임에 버서커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블랙하운드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만만치 않은 적수의 존재는 그들을 끝없이 분발하게 만들었다.
그 적을 꺾고 무너뜨린다. 그리고 경쟁에 우위에 선다. 그것이 그들이 더 강해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과연, 전직 특수요원 전설이라는 건가.”
“…….”
“코드네임 블랙하운드, 그 위명은 예전부터 듣고 있었지.”
“옛날 이야기로군.”
“누구나 과거는 있는 법이지.”
“갑자기 과거를 들먹이는 이유는?”
“난 내키지 않는데 말이지. 저 높은 곳에 있는 녀석들은 네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
버서커의 권유를 들은 블랙하운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놈들은 아직도 날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
“뻔하지 않나, 정치인들이란 족속은.”
버서커가 꺼낸 이야기는 블랙하운드의 기억 저 너머에 미뤄두고 있을 만큼 옛 과거였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미뤄놓은 것.
과거 블랙하운드는 미국 특수부대 요원으로, 그 안에서 전설이라 불린 임무 수행률 100%의 절대강자였다.
한 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그의 존재로 미국은 공작에 있어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특히 부대원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인품까지 겸비하여 차세대 미국을 이끌어갈 인물로 꼽혔다.
그가 리그로 향하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빌런이 된 건 각성자들이 위정자들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아서다.”
블랙하운드는 일반인과 각성자가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가치 아래 미국이 추구하는 패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따랐다.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말을 잘 듣는 각성자는 유용한 수단에 불과할 뿐.”
처음부터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옆자리에 각성자들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목적이라고는 각성자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목줄을 걸어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전부였다.
실컷 이용하다가 자신들에게 위험이 된다고 생각하면 버린다.
“그 민낯을 보고 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블랙하운드는 특유의 인망과 지나칠 정도의 강함, 그리고 이상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수행이 불가능한 ‘나이트매어’ 난이도 작전에서 제대로 된 지원 없이 버려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측정한 것보다 블랙하운드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군이라 생각하던 이들의 배신에 블랙하운드는 분노했다.
멀쩡히 살아 돌아 온 그는 작전과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합류를 설득해온 아르고스에 합류하여 리그의 삼악 일원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과 각성자가 어우러지는 세계를 원하던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바로 세상이다.
“널 죽이고 이 자리에 온 놈들을 모조리 죽여 세상에 경고하겠다.”
“그러던가.”
“뭐?”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자기가 겪은 일이 가장 와 닿고 괴로운 법이지. 근데.”
블랙하운드에게 시선을 고정한 버서커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게 뭐 어쩌라고?”
“…….”
“방금 내가 했던 권유는 잊어라. 입금 받아서 어쩔 수 없이 한 PPL 같은 거거든.”
이제 지불 받은 값어치는 모두 해냈다.
저 위쪽 양반들은 꽤 절실한 거 같았지만 애초에 적임자에게 맡겼어야지.
버서커는 처음부터 블랙하운드를 설득할 생각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도 없었다.
“난 지금 네놈을 죽이는 것만 집중하고 싶거든.”
“같은 생각이군.”
둘의 신영이 다시 한 번 얽혀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