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상대가 수십 명이든 수백 명이든, 설령 그 숫자가 수천수만이라고 해도 감흥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을 먹는 즉시 모조리 다 죽일 수 있으니까. 시간이 걸리고 귀찮음을 동반하지만 상대의 숫자는 내게서 큰 의미가 사라진 건 사실이다.
아마 모여든 각성자들도 고르고 고른 최정예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마저도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개미가 조금 더 크고 빨라봤자 결국 개미일 뿐이니까.
하나로 똘똘 뭉쳐서 날 물어뜯는다는 그것도 꽤 흥미로운 광경일 테지만 결국 하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일 뿐이다.
주저 없이 각성자들을 쓸어버리면서 간간이 도망치려는 자들의 머리에 구멍을 내줬다.
대충 300명을 넘게 죽이고 세는 걸 멈췄을 때,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었다.
어떻게든 내 체력을 고갈시키려던 녀석들은 질린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
자기들 멋대로 날 재단하다가 예상과 달라지자 당황하는 얼굴.
난 루쥔을 바라봤다.
“처음하고 얼굴이 다르네.”
“…이,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나?”
“무사한데? 아직도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에는 짙은 낭패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나오는 중이다.
결국 사람의 본질은 같다.
높은 곳이건 낮은 곳이건 말이다.
“하지도 못할 걸 할 수 있을 줄 알고 으스대면 이런 꼴을 겪는 거야. 자기 주제를 파악할 줄 알아야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주제 파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신이 어느 수준인지,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니 자기가 죽을 짓을 하는 건지 모르고 선을 넘는 것이다.
목숨이 여러 개라면 상관없지만 그것도 아니고.
“더 준비한 건 없지?”
“협상하자.”
“그런 건 됐고.”
이 정도로 쉽게 꺾일 거면서 대체 뭘 믿고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꽃밭으로 되어 있나?
[그건 모르겠지만 곧 피바다가 될 건 분명하네.]용용이 말에 동감이다.
난 나를 기만하는 녀석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으니까.
상대가 누구더라도 말이다.
“없으면 끝내자.”
“자, 잠까…….”
퍽!
난 망설이지 않고 루쥔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경악하는 좌우 부하들도 모조리 같은 신세로 만들어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회당 안에 있는 인원을 쓸어버렸다. 살려달라며 비명이 가득 뒤덮었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다 죽여 버렸다.
[피 좀 봤네.]“날 갖고 잔머리 굴리려고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그것도 가장 확실한 대가를.
[저기 방송되고 있던 것도 알고 있었어?]“어.”
예전 생각이 난다. 부산시장 유성수를 처리할 때도 방송이 되는 상태에서 백치로 만들어버렸는데 말이지. 그때보다 더 과감하게 행동했으니 장난질을 치려던 녀석에게 확실한 경고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현아한테 가자.”
[어? 갑자기 거기는 왜?]“여기까지 온 김에 찾아가는 게 낫지.”
마음먹고 고속비행을 시전하는 건 나도 꽤 부담이 되는 일이다.
“시끄러워질 텐데 피해있는 것도 필요하고.”
이대로 돌아가면 매우, 아주 매우 귀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론이 먼저 달궈지고 열기가 살짝 식을 때 돌아갈 생각이다.
게다가 현아한테 확인할 것도 있다.
[머리 잘 굴리네?]“이 정도는 기본이지.”
난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 현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난징에서 벌어진 학살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다.
말 그대로 세계 전역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불과 몇 시간이다. 몇 시간만에 한 국가의 지도층 전체가 몰살당했다.
심지어 최준호는 최정예 각성자 수백 명이 달려들었음에도 어떠한 타격을 입지 않았다. TV로 생생하게 모든 장면이 방영되면서 전율했다.
누가 최준호가 바뀌었다고 하던가. 그는 여전히 무자비했고 손을 쓰는데 자비가 없었다.
분열되었다고 해도 세계 최강의 대국 중 하나의 중심지에 난입해서 지도층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행동은 정상적인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발상조차 하지 않았겠지.
“…….”
특히 이번 일로 경악하던 건 최준호와 얽힌 게 있는 각국 지도층이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보인 온화한 행보로 인해 최준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되는 건지 소위 말하는 ‘시험’을 해볼 생각이었다.
첫 번째 주자가 중국이었고.
만약 자신들이 첫 번째 주자였다면?
생각만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사건이었다.
특히 중국에 이어 오리발 행보를 보이려던 미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확히는 안도하는 자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자로 나뉜 거지만.
“반응은?”
“전부 겁에 질렸어. 만약 잡아떼기를 강행했다면 목이 날아가는 건 자신들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얘기를 해도 듣지 않더니.”
“사람이란 동물은 그런 거니까.”
“쯧.”
허버트는 혀를 찼다.
최준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최준호가 일본에게 보인 행동조차도 일본 내 대립을 심화시킨다는 고도의 계산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백악관과 대립하고 있는 의회에서는 최준호가 한결 누그러진 행보로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 일의 해결에 있어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논지로 허버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럴 듯한 명분을 갖고 주장하는 터라 난감한 상황에 처했었는데 남중국에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것도 세계 정세를 뒤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고가.
전 세계가 경악했고, 그 중에서도 미국이 느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녀석도 대단해. 아무리 빈정이 상해도 그렇지 한 국가 지도부 전체를 날려버리다니.”
“허튼 생각을 못하게 경고를 한 거다. 우리 모두에게.”
“이걸로 미몽에서 깨어났으니 다행이었지. 역시 최대한 늦추고 지켜보는 게 좋은 방법이었어.”
“의회 멍청이들은 네가 얼마나 큰 호의를 베푼 건지 모를 거다.”
“몇몇은 알 걸. 그러니 이쪽과 힘을 합치자고 얘기를 해왔지.”
“벌써 돌아선다고?”
1년 넘게 의회와 백악관은 서로 사이를 좁힐 수 없을 만큼 치고받았다.
원수도 이런 원수가 또 없는데 그 사이 돌아섰단 말인가.
정치의 세계가 더럽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환멸을 느끼는 다니엘의 표정을 보면서 허버트가 히죽 웃었다.
“적어도 세계 질서에 최준호가 빠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리고 삐끗하는 순간 머리가 날아가니 자기 머리는 보호하고 싶겠지.”
“변절하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힘이 되겠어.”
“세상 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우리도 우리 욕심을 챙기는 거고 저쪽도 자기 욕심이 있는 법이니까.”
단지 최준호를 거스르지 않는 게 이익이 된다는 걸 모르는 머저리들이 좀 많을 뿐이었다.
그걸 굳이 겪어봐야 아는 자들이 많다는 게 한심할 뿐.
최준호 퍼주기라는 것의 실체는 세계최강 초인과 친해지기 위한 아주 저렴한 친구비일 뿐이었다.
그로 인해 온갖 오해를 받고 음해도 당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정치적 이익도 상당했다.
오늘로서 확실해진 것도 있고.
“다음 대통령은 네가 될 거야, 다니엘.”
“그 전에 최준호를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고민이나 해.”
“그냥 마음에 안 드는 의원 녀석 몇 명 던져놓을까?”
“좋은 생각이군.”
“다니엘, 갑자기 농담이 늘었어?”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어?”
순간 허버특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니엘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든지 최준호를 자극할 수 있는 녀석들이야. 이 기회에 다 처리해버렸으면 좋겠는데.”
“…하하.”
이런 일면이 있을 줄은.
다니엘이 대통령이 되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던 녀석들은 죽어날게 뻔했다.
살벌한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허버트는 즐겁게 웃었다.
*
* *
“사고 크게 쳤네.”
내가 현아를 찾아갔을 때 처음 들은 말이다. 근래 들어 아예 외딴 섬에 집을 짓고 사는 그녀는 최근에 인터넷까지 들여놓은 상태였다.
이 섬 이름을 지상낙원이라고 지었던데 취향 한 번 이상했다.
“여기서 그런 것도 알 수 있냐?”
“이 정도는 기본이지.”
[소식이 얘보다 더 빠르네!]“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거든. 이번 일도 흥미로웠어.”
“신수 입장에서 그랬겠지.”
“응.”
현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긍했다.
“아마 인간이란 종족의 특징인 거 같아. 자기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자기 유리할 대로 착각을 자주해.”
[얘도 마찬가지던데? 아직도 자기가 정상인 줄 알아.]“넌 입 좀 다물고.”
[읍읍!]궁시렁거리는 용용이 입을 막아버리고 나는 현아에게 저번에 했던 나머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실종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래서 내가 얘기했던 건?”
[뭘 얘기했어? 내가 모르는 얘기가 있는 거야?]난 용용이 대답은 못 들은 척하고 현아를 바라보았다.
“…….”
현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음을 알기에 난 조용히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내가 녀석에게 문의 넣은 내용은 헬 마스터가 부여받은 기프트를 토대로 한 추측이었다.
이를 흥미롭게 받아들인 현아는 조사에 착수했고.
“난 놀랐어.”
결과가 나왔다.
현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몸을 회복하고 돌아오기 전, 현아를 만난 나는 신수가 기프트를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이야기했고, 신수가 어떤 원리로 움직일 수 있는가를 설명하여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다.
이미 머릿속으로 결론은 나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확실한 대답이다.
“가능해.”
“역시.”
“나도 놀랐어.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권능을 비틀어서 인간의 기프트처럼 꾸며내는 게 가능할 줄은. 이건 순수한 악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그럼 내 기프트는?”
내가 알고자 했던 건 바로 혈중섭식이다.
난 이 기프트를 얻고 지금의 힘을 얻게 되었지만 폭주하여 혈종에게 몸을 빼앗긴 적이 있다.
분명 절제하지 못한 내 실수도 존재한다.
하지만 혈중섭식이란 기프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희귀? 전설? 그런 등급으로 분류하기에는 이 기프트가 너무나 이질적이다.
헬 마스터를 보고 난 뒤 나는 혈중섭식 또한 신수의 손을 거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인간이 보유하는 기프트보다 신수의 권능 형태에 가까워.”
혹시나 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널 일부러 노렸다는 건 어폐가 있어.”
“왜지?”
“이렇게 변형을 가해서 특정 누군가에게 주입하는 건 불가능해.”
오직 한 명의 인간을 위해 변경을 가하는 것도, 그걸로 얻어낼 것도 없다는 것이 현아의 설명이었다.
“무엇보다 고작 인간 하나를 위해 이런 노력을 해야 해?”
그렇다면 난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그게 전부?
하지만 당시 나라는 인간에게 신수가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은 동감했다.
“그렇다면 난 재수없게 걸려든 것뿐이로군.”
“응, 아마도.”
“…….”
허탈한 결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정도로 기프트를 변형시킨 신수가 존재하고 그 녀석이 내 운명을 비틀어버렸다.
한 번쯤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너 왜 그래?]“내가 뭘?”
[누, 눈이 엄청 무서워. 난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네가 아닌 건 안다.”
다만 다른 신수의 소행인 건 분명했다.
난 현아를 보며 물었다.
“협력해줄 수 있지?”
“응, 나도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궁금해.”
권능을 비틀어서 기프트를 만들어낸 것, 이것은 인위적으로 신수 혹은 그에 근접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중이란다.
“그 의도가 순수하진 않을 거야.”
“순수한 호기심은 넘어섰다는 건가.”
“신수가 인간에게 힘을 줄 이유가 없으니까.”
차라리 육체를 차지하려던 헬 마스터의 경우가 의도는 투명해서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럼 일이 해결될 때까지 동맹이군.”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야.”
현아라면 믿을 수 있다.
[나는? 왜 나한테는 아무 권유도 안 해? 너희들이 나 따돌리는 거야?]“너도 껴줄 테니 그만해라.”
[와! 매달리니까 선심 쓰듯 해주네.]“싫으면 빠지던가.”
[아냐, 할래!]대체 어쩌라는 건지.
나는 희희낙락하는 용용이를 보며 혀를 차다가 그래도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미쳐버렸던 것도 혈중섭식의 부작용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미쳤던 것도 내 잘못이 아니란 이야기가 된다.
난 원래 정상이었던 게 되고.
“이제야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