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최준호가 리야드로 직접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메드 국왕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친우가 직접 온다고 하더군.”
“기뻐 보이십니다.”
그에 비해 나시르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기쁠 수밖에.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잖나.”
“친우를 위해 한 일이라고 하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시르, 세상의 모든 일은 득실로 결정하는 게 아니다.”
아메드 국왕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지만 나시르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에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만약 최준호 초인의 복귀가 늦으셨다면 목숨을 걸고 간했을 것입니다.”
“난 최대한 버티자고 얘기했겠지.”
“최준호 초인의 복귀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준호 실종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도 한 차례 격랑에 휩싸였다.
아메드 국왕은 최준호와 친우 관계였고, 그와 교류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이득을 보는 자가 있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 마련이고, 그들은 최준호가 없는 틈을 타 사우디아라비아를 맹렬히 공략했다.
나시르는 최준호의 복귀가 늦어짐에 따라 노선 변경을 건의했지만 아메드 국왕은 버텼다.
그로 인해 입은 피해는 실로 컸다.
이러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결국 최준호는 복귀했고, 아메드 국왕은 그걸 계기 삼아 반대파를 완전히 숙청하는데 성공했다.
“친우가 오는 건 프란츠의 일 때문이다.”
“유럽에서 벌어진 파도가 그마저 휩쓸 줄 몰랐습니다.”
유럽 연합 내에서 프란츠의 실각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 영향은 중동 전역에 미칠 정도였는데, 현재 신의 영향 앞에 가장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곳이 이곳이어서 그렇다.
“신을 거역하면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겠지.”
“이로써 유럽은 완전히 신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신이라,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현실에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로 인한 동요가 상당합니다.”
종교가 다르기에 대립을 유도해왔지만 신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 일으키는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바티칸을 거점으로 하기에 유럽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있어 청천벽력과 같았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좋지 않지.”
“예.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
“전하?”
“아쉽지만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지. 그걸 해결할 수 없다면 더 큰 힘을 빌릴 수밖에.”
아메드 국왕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최준호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신을 제거하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인간입니다.”
“그 인간이 신에게 대적하고 있다.”
“하지만…….”
“친우라면 해낼 거라 믿고 있다. 그러니 믿어라, 나시르여.”
“…알겠습니다.”
확신이 담긴 국왕의 말에 수긍했지만 나시르의 걱정은 커져갔다.
최준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일개 인간이 신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인간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부정적이었다.
만약 그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의 존재에 정면으로 도전한 자신들이 여파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부디 그가 우리를 구원하길.”
*
* *
리야드 왕궁에 도착하니 아메드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은 그가 다가오더니 그대로 날 끌어안았다.
“오랜만이다, 친우여. 무사해서 다행이군.”
“잘 지냈습니까?”
“빈말로도 잘 지냈다고 할 수 없군. 나날이 강해지는 압박에 근심이 많아지고 있어.”
“번거로운 상대긴 합니다.”
“많이 번거롭지. 실체가 존재하는 신의 존재는 그것만으로 경배 대상이 되니까. 애써 버텨내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많은 국민들이 실존하는 신을 모시려 들겠지.”
지리적으로 유럽에서 멀지 않으니 그 영향력도 강하게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에즈를 닫은 겁니까?”
“이 이상 받아들였다가는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먼저 조치하고 알린 건 유감스럽군.”
“괜찮습니다. 저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다행스러운 말이야.”
아메드 국왕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근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왕궁 안으로 들어선 나는 응접실에서 아메드 국왕과 대화를 나눴다.
자칭 신이 등장하고 현재 중동에 끼치는 영향력에 관한 것이었다.
솔직한 내 생각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자칭 신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동 지역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버텨내고 있었다.
“우리의 굳건한 신앙이 버틸 수 있게 했지만 신의 기적은 흔들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네.”
“제 생각보다 훨씬 잘 버텼습니다.”
“인정해줘서 고맙군.”
[광신적인 믿음이 이런 방향으로 도움이 되는구나.]용용이도 인정하는 굳건한 신앙이었다.
여기에는 호루스의 역할도 있었는데, 내가 실종되었을 당시 주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호루스가 건재함으로써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칭 신이 호루스를 가만히 둔 건 의외긴 했다.
“더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움직일 겁니다. 그때까지 잘 버텨주길 바랍니다.”
“당연한 말이지. 우리의 신앙은 그 정도로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아. 내가 단단히 일러두겠네.”
“믿겠습니다.”
최전방에서 잘 버텨준다면 그 영향력은 전체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프란츠와 만날 겸 인사를 하러 왔는데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은 기분이다.
“그래서 프란츠 영감은 어떻게 된 겁니까?”
처음에는 내가 직접 독일로 가서 프란츠 영감을 데려올까 생각했지만 직접 독일을 벗어나 사우디아라비아로 오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이탈리아를 거쳐 튀르키예에 도착했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우리 측 인원과 접선했다고 하더군.”
“이탈리아에 튀르키예로?”
“적의 허를 찌른 탈주인 셈이지. 그의 전략은 언제나 놀라움을 동반하더군. 왜 그러나?”
“…….”
난 아메드 국왕의 말을 흘려들을 만큼 프란츠 영감의 상황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유럽 연합에서 실각했다는 건 자칭 신의 눈 밖에 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유럽을 수호해온 그라면 충분히 예우 받으며 머무를 수 있을 터.
불타는 정의감을 가졌다고 하나 평생을 바쳐 이뤄놓은 유럽 연합을 쉽게 버려두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프란츠는 왜 모든 걸 버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려는 걸까. 그때 힘들면 오라고 했던 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서?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친우여?”
“…프란츠 영감이 오면 만나고 싶습니다. 그에게서 유럽의 상황을 듣고 전략을 세웠으면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현실을 잊지 않지. 나도 바라는 바라네.”
그리고 며칠 뒤, 튀르키예에서 출발한 프란츠가 리야드에 도착했다.
*
* *
유럽 연합에서 실각하고 필사의 탈주를 감행했다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프란츠 영감의 모습은 멀끔했다.
그야 도착해서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감각을 타고 전해지는 건강 상태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미묘한 위화감이 전해졌다.
“잘 지냈습니까.”
“잘해본다고 해놓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오게 돼서 부끄럽구나.”
“이렇게 될 걸 영감님이나 저나 알고 있었는데 뭔 말입니까.”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는 게 있을 줄 알았지. 그러면 그분을 난감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결국에는 실패했어. 장담한 게 부끄럽군.”
“그동안 겪은 것들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려나, 허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 프란츠 영감이었지만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에 걸쳐 쌓아온 걸 잃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도 평생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쌓아온 모든 걸 혈종에게 빼앗겼을 때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럼 앞으로 유럽은 신의 영역인 겁니까?”
“그래, 피할 수 없게 됐지.”
“결국 성녀가 앞장서니 영감님도 막을 수 없던 거 아닙니까.”
“그 아이가 그분의 의지라면서 공격해오니 재간이 없더군. 각국의 초인들도 더 이상 어정쩡한 포지션에 있기보단 확실하게 신의 은총을 받길 원하고. 어렵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내 주장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아.”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심장을 뽑아 피를 섭취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고 다른 녀석들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 이득을 안겨주는 존재에게 입장이 기울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해서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 저도 해볼 걸 그랬습니다.”
“네가? 허허, 그거 아주 재밌는 생각이다.”
“늦었습니다. 몇 번 제대로 부딪쳤거든요.”
“그분에게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하는 너도 대단하다. 진짜 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젠 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거늘.”
프란츠 영감은 감탄한 척 하면서 날 띄웠지만 그를 향한 위화감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니, 이 위화감은 대한민국을 떠날 때부터 있던 것이다.
프란츠는 한때 십대초인이지만 지금 수준은 준수한 초인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강하다 할 수 있지만 자칭 신의 손을 유유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말은 자칭 신이 의도적으로 보내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녀석이 왜?
난 프란츠 영감을 보고 대놓고 물었다.
“그래서 사주 받은 내용은 뭡니까?”
“…….”
“얄팍한 말 몇 마디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조금 전까지 진중하던 프란츠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가벼운 미소가 걸린 채 고개를 저었다.
“눈치도 빨랐던가? 널 속이는 걸 불가능하다는 내 말을 그분도 아셨을 거다.”
“친근하게 그분이라고 칭하는데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하죠.”
“그렇군.”
“이렇게 넘어갈 줄 몰랐습니다.”
“그래, 나도 그분을 의심했던 적이 있지. 하지만 그분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내게 기적을 베푸셨다. 그 기적을 경험하고 더 이상 그분을 의심하는 불경을 범하지 않기로 했다.”
오랫동안 대립해왔기에 돌아서는 순간 누구보다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프란츠 영감마저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말이다.
“너도 무의미한 저항을 그만하고 그분에게 귀의하거라. 그분은 자비로우셔서 한 때 자신에게 이를 드러냈다고 해도 기꺼이 품어주신다.”
“신의 발바닥을 핥는 대가로 뭘 받기로 했습니까.”
“허허.”
프란츠는 웃음으로 대답을 흘려버리려고 했지만 난 조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강맹한 힘의 흐름을 포착했다.
“…그게 젊음이었던 겁니까.”
“놀랍지 않느냐. 누구도 피할 수 없던 세월의 흐름을 나는 그분에게 귀의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너를 비롯한 새로운 초인들이 내 존재를 지워나갈 때 난 다시 한 번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거다!”
“신의 개로 이름을 떨쳐서 뭐합니까.”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껏 해온 경험과 내게 주어진 힘을 활용하면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절대적인 힘을… 컥!”
말을 하던 프란츠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화등짝만하게 커진 그의 눈은 날 향하고 있었다.
내 오른손은 프란츠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신에게 굴종한 걸 확인 순간, 프란츠 영감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이미 한 번 죽여 봤기에 두 번은 더 쉬웠다.
그를 향해 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