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64화
정주호가 청와대에 도착했다. 머리는 좀 더 풍성해지고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걸로 보아 잘 지내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 승진도 하게 되면 완전 정주호의 세상이겠군.
어쩌면 머리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축하할 일의 연속이로군.
“다현이한테 다 들었다. 저번에 데려온 녀석이 배신 때렸다며? 너무 상처받지 마라. 이 바닥이 원래 배신이 흔해.”
“별 생각 없습니다.”
“하긴, 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 같긴 해. 이런 건 나랑 비슷하단 말이야.”
자기도 배신은 열 번도 더 넘게 당해봤다며 무용담을 늘어놨다. 그런 것 치고 사소한 거에도 부들부들 몸을 떨던데.
한참 떠들던 정주호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근데 갑자기 무슨 일로 청와대까지 오라고 한 거냐? 평소에 전화로 다 해결했잖아.”
“선물 드릴 게 있어서요.”
“선물? 네가 주는 선물이면 당연히 거절하면 안 되지. 나야 대환영이지. 근데 뭐냐?”
“빅뱅 시리즈 아시죠? 신성 길드에서 받은 게 있는데 국가수호국에 기부하려고요.”
“진짜? 나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진짜 고맙다. 큰 선물이라서 직접 주고 싶었나보구나? 흐흐,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건 너밖에 없어. 응? 근데 네가 원래 이런 애였나? 오히려 무심하게 툭 던져주고 말 텐데.”
“아, 그거요.”
나는 천명국이 그러라 해서 불렀다고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시 나 부르자고 한 거, 천 실장님이냐?”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한편의 드라마였다.
생기가 넘치던 정주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까맣게 죽었다.
“젠장! 당했다! 청와대로 오라고 할 때부터 배 아프다고 거절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몰라. 난 간다. 천 실장이 찾으면 지병이 도져서 병원 갔다고 알려······.”
하지만 정주호의 그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나뿐인 문으로 천명국이 들어왔던 것이다.
밖에서 듣고 있다가 들어온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이로군.
천명국은 마치 절친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잘 오셨습니다, 국장님.”
“하하,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근데 실장님, 제가 갑자기 오래 앓던 지병이 도져서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저런, 심각하신 겁니까?”
천명국의 얼굴에 걱정이 실렸다. 그러자 정주호가 찔렸는지 멈칫했다.
“그,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아프면 바로 진료를 받으셔야지요. 제가 주치의 선생님에게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지 없습니다. 그냥 동네병원 가면 금방 낫습니다. 그분이 진짜 명의거든요? 안부 인사 나누고 진단에 처방까지 30초면 다 끝내는 분입니다. 그분이 계신 지금 병원에 가고 싶습니다만.”
정주호는 어떻게든 자리에 벗어나려고 발버둥이었다.
회복제를 하나 줘야 되나 고민이 들었다.
설마 승진하는 걸 거부하려고?
에이, 설마. 새로운 청이 설치되고 청장이 되면 본인도 영광된 자리일 텐데.
청장이 되면 나와 자주 볼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
하지만 날 홀가분히 보내주려는 정주호의 태도를 생각하면 권력욕이 적은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국가수호국을 사랑하는 건 알고 있지만 욕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
필사적인 정주호를 보며 천명국이 미소 지어보였다.
“대통령님의 호의를 거절하지 마시지요. 가시기 전에 주치의 선생님에게 한 번 진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잘 됐군요.”
“예?”
내가 볼 때 정주호는 천명국의 낚시에 걸려들었다.
“안 그래도 대통령님이 국장님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 찾는다는 의미가?”
“같이 식사하자고 하십니다.”
“······.”
대통령이 밥 먹자고 하는데 일개 국장이 그걸 뿌리치는 건 어려운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정주호의 얼굴에 체념이 서렸다.
“가시지요.”
“아, 알겠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마냥 어깨를 늘어뜨린 정주호가 천명국의 뒤를 따랐다.
난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천천히 따라갔다.
*
대통령과 식사자리의 주인공은 정주호였다. 나는 조용히 식사만 했고 천명국은 듣다가 호응하거나 정주호를 띄워주는 말을 했다.
그럴수록 정주호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민국에 정주호 국장 같은 인재가 있는 건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 대한민국에 저보다 뛰어난 인재가 정말 많습니다. 특히 대외협력관리국장 염기철 국장님은 뛰어난 인품에 탁월한 실행력까지······.”
“여기 천 실장에게 들었습니다. 빌런 소탕 작전에서 새 개의 국이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했다고. 그만한 조직 장악력과 유연함은 정주호 국장만 겸비하여 비교할 대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과장된 공적입니다.”
“아닙니다. 실제로 정주호 국장님은 국가수호국을 이끌면서 거둔 굵직한 성과가 다른 두 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참 기이한 풍경이다. 당사자는 칭찬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고 하고 옆에서는 띄워주기 바쁘고.
근데 승진하는 게 그렇게 싫은가? 내가 본 정주호는 욕심이 없긴 해도 바로 앞에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찰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째서인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으나 대통령과 천명국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여기에 천명국이 쐐기를 박았다.
“최준호 초인님을 국가수호국으로 발탁한 것도 정주호 국장님입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정다현입니다.”
정주호는 1초도 걸리지 않고 정다현에게 공을 넘기려 했지만.
“진짜입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난 앞뒤 상황을 따져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하의 조언을 수용하는 것도 리더의 덕목일 터. 모든 걸 다 갖췄군요.”
마침내 대통령이 탁 터놓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운 청이 설립됩니다. 나는 정 국장이 이 자리를 맡았으면 합니다.”
“···왜 저입니까.”
이미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그런 생각도 안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이 자리는 갈수록 커져가는 대형길드의 힘에 맞서야 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때로는 견제를 해야 하고 때로는 힘을 합쳐야 하는데 경쟁관계에 있던 삼국을 잡음 없이 이끌던 정주호 국장만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받아주시겠습니까?”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이제 정주호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받아들인다.]와 [받아들인다.]였다.매일 허허 웃는 대통령이지만 정주호 정도의 능구렁이를 이렇게 드리블링 하는 걸 보면 괜히 정치 9단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때 정주호의 마지막 발악이 펼쳐졌다.
“저는 최준호! 최준호! 초인의 의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갑자기 나는 왜?
“새로운 청이 설립되면 최준호 초인과 협력해서 움직여야 할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최준호 초인이 불편하면 저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니 최준호 초인의 대답도 긍정적이면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새로운 청이 생기면 만날 일이 많아지겠다 싶었다.
난 정주호의 간절한 눈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좋은 말 해달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군.
요즘 내가 없으니 적적했나 싶었다. 굳이 칭찬을 부탁하는 걸 보면.
“저야 당연히 정주호 국장님이 오신다면 대환영입니다. 대통령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잘 이끌 거라고 확신합니다.”
“······.”
원하는 대로 말해줬는데 왜 나라 잃은 표정이지?
대통령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최준호 초인도 좋다고 하니 이견이 없어졌군.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이제 정 국장이 아니라 정 청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주호 청장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명국의 인사에 정주호는 이를 꽉 물었다.
나도 정주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그게 제일 문제야······.”
좋아 죽으면서 튕기기는.
*
분위기가 일단락되고, 나는 하트워커를 쫓다가 리그가 손을 뻗은 걸 알게 되고 블랙하운드와 충돌한 이야기에 대해 설명했다.
“······.”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살짝 반성했다. 역시 잡았어야 했나. 하지만 블랙하운드 녀석도 만만하지 않아서 쉽지 않았다.
만독불침만 있어도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텐데. 버서커 녀석이 빨리 개방했으면 좋겠다.
“블랙하운드라니, 허허. 이 작은 나라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그만큼 빅뱅 시리즈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빅뱅 시리즈 기세가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
“리그에서 그 기술이 굉장히 탐이 나나 봅니다.”
“블랙하운드가 올 정도로 말이지.”
분위기가 꽤 심각해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리그가 심각하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 블랙하운드가 대단한 빌런인 걸 느꼈다.
“일본하고 연관도 있겠어.”
지금 일본에서 리그 세력이 한창 날뛰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아르고스 녀석이 거슬리는데 일본 리그 세력을 궤멸시키면 어떨까?
녀석들을 엿 먹일 수 있다면 기꺼이 일본을 가는 귀찮음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일본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리그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사절단이 온 내내 분위기가 좋았는데?
“일종의 엄살이지. 힘들다고 해도 버틸 여력이 존재하고. 양국이 사이가 좋다고 해도 그 이유는 직접 힘을 투사할 수 없어서야. 리그에 대한 정보는 감사히 받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반대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단다.
일본의 초인이 도와주러 오는 게 문젠가?
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렇군요.”
“하지만 일본 측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문의를 넣어보지.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안심이야. 그 블랙하운드도 우리 최준호 초인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가지 않았나.”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히죽 웃어보였다.
“다시 보면 죽이겠습니다.”
“좋네. 그럼 리그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대통령이 화제를 바꿔 정주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정 국장, 아니 이제 정 청장도 한 식구가 되었으니 진실을 알아야겠지.”
“예?”
“천 실장.”
천명국이 정주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대통령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부산시장에 대한 자료네.”
나는 서류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그 사이 천명국에게 사실을 전달받은 정주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
서류를 살펴보던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유성수에 대한 죄가 나열되어 있지만 군데군데 비어있었다. 이 서류는 완벽한 게 아니다. 직감이 반응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서류, 최종본이 아니군요.”
“정확하게 봤네. 그건 뼈대라고 할 수 있고, 아직 추려내는 중이지. 부산이란 도시 전체가 유성수의 지지기반이라 할 수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릴 거야.”
그러면서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기색인데 꺼내기 쉽지 않은 사안인가 보다.
옆을 보니 천명국이 필사적으로 대통령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걸 외면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편히 하셔도 됩니다.”
“그래, 편하게 얘기해야지. 정치를 하다 보면 워딩을 정제하는 버릇이 들어서 말이야.”
대통령이 장난스럽게 히죽 웃었다.
“만약 유성수를 비롯한 주변인이 죄를 저지른 게 확실히 드러나면··· 그 자들을 전부 죽여줄 수 있나?”
“대통령님!”
드물게 천명국이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상황에 끼게 된 정주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천명국의 제지에도 대통령은 자기 생각을 밝혔다.
“이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빌런들을 의도적으로 키웠네. 그걸로 자기 정치 자금을 삼았을 뿐만 아니라 타국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지. 체포해서 사법처리 한다고 해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어. 결국 솜방망이 형량이 떨어질 테고, 우리 처리 방식을 본 많은 이들이 우리에 대한 신뢰를 잃겠지.”
대통령은 천명국에게 못 박듯 말하자 그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다시 내게 시선을 옮긴다.
“해줄 수 있나?”
“아주 쉬운 일입니다.”
“믿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