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I became a dragon RAW novel - Chapter 37
다만 녀석이 가진 비늘 색깔이 나와는 달랐다.
나뭇가지로 스며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녀석의 비늘은 흑요석처럼 새까맣게 반짝였다.
“쮸! 쮸쮸!”
– 어디서 온 놈이냐!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나는 이런 자리에서 동족(?)을 만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당당하게 나의 가슴팍을 짓누르며 올라탄 녀석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뀨···. 뀨뀨?”
어···. 그러니까, 미안해?
녀석은 말없이 나를 내려 보다가 이내 발을 치우며 말했다.
“쮸, 쮸쮸.”
– 쳇, 미안하다면 어쩔 수 없군.
나는 녀석이 또 순순히 비켜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옆으로 비켜선 녀석을 유심히 관찰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녀석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약간의 호기심과 경계심이 칵테일처럼 뒤섞여 있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쮸쮸.”
– 원래 남의 영역에서는 함부로 사냥하면 안 되는 거다. 어린 녀석이라서 그것도 모르냐.
어딘가 거들먹거리는 기세가 느껴지는 녀석의 말마따나.
검둥이의 덩치는 나보다 조금 큰듯했다.
몸길이 1m인 나와는 다르게 1m 50cm 정도 되려나?
나는 다른 무엇보다 녀석의 존재 자체가 신기했다.
“쮸쮸.”
–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뀨뀨.”
그냥 신기해서 쳐다본다. 너 비늘이 검은색이구나.
“쮸쮸.”
– 그러는 너는 노란색이구나.
녀석은 별 시답잖은 말을 다 듣는다는 듯 대꾸했다.
왠지 비꼬는 기색이 담긴 말투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뀨뀨!”
노란색이 아니라, 금색이다. 멍청아!
“쮸쮸!”
– 뭐? 내가 멍청이라고? 아직 어린 베리영급의 유룡인 것 같아서 봐주려고 했더니!
“뀨뀨!”
드루와, 드루와 봐! 내가 쫄 줄 알고?
“쮸쮸!”
– 너! 가만두지 않겠어!
어떻게 잘 넘어간다 싶었던 상황이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다시 의외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삐삐!”
– 어이, 블랙! 사냥감 잡았어? 근데 누구랑 이야기 하고 있는 거야.
덤불을 헤치며 또 다른 해츨링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
덤불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해츨링은 브론즈(청동) 드래곤이었다.
난 처음에는 녀석도 나와 같은 골드 드래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브론즈라고 말했다.
녀석의 외모도 나와 달랐다.
얼굴이 공룡 중에 트리케라톱스를 닮았다.
얼굴 주변을 감싸는 골격으로 이루어진 목깃이 꼭 그랬다.
입 모양도 나와는 달리 새의 부리 모양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트리케라톱스처럼 코와 관자놀이 부분에 뿔이 달리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독수리를 닮아 보이기도 했다.
이제 보니 비늘도 조금 차이가 있다.
마치 호랑이의 줄무늬처럼 금색 비늘 사이사이에 청색 줄무늬가 자리 잡고 있다.
온통 금빛으로 번쩍이는 나와는 달랐다.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도 청색을 띠고 있었다.
“삐삐!”
– 오! 뭐야! 새로운 동료를 발견한 거야?
“쮸쮸!”
– 누가 이딴 녀석이랑 동료가 된다는 거냐!
“삐, 삐삐.”
– 왜 이렇게 까칠해? 누가 블랙 아니랄까봐. 지금 비늘색깔 알아달라고 떼쓰는 거야?
“쮸쮸!”
– 그놈의 비늘색은 그만 좀 언급해라! 비늘색은 비늘색이고 나는 나니까!
버럭! 성질을 낸 그 검둥이 녀석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저 혼자 덤불속으로 모습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삐삐.”
– 하하하, 형제여. 저 까칠한 녀석은 신경 쓰지 마. 원래 블랙 놈들 성격은 더럽기로 유명하니까. 아, 아직 그런 건 잘 모르려나? 아직 선조의 목소리를 들을 단계가 아니지?
“뀨뀨?”
– 선조의 목소리?
“삐삐삐삐삐.”
– 우리 드래곤들은 3번째 성장 단계인 영급 영유룡의 단계에 들어서면 마법으로 영혼에 각인 된 선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거든. 형제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직 2단계인 베리영급 유룡인 것 같군.
난···.
“삐, 삐삐!”
아, 아아! 그만둬! 말하지 마! 지퍼 찍! 내가 맞춰 볼 테니까.
그···.
“삐삐삐삐삐.”
– 흠, 어디보자. 크기나 비늘 상태를 보았을 때 태어난 지는···. 한 13년? 그쯤 되었을까?
하하, 그렇게 놀랄 것 없어. 나정도 식견이 있는 브론즈라면 그 정도 추측은 당연한 거니까 말이야.
아···.
“삐삐삐삐삐.”
– 보통 두 번째 시련이 15년차에 찾아오니까 형제도 얼마 멀지 않았군.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얼마 전에 두 번째 시련을 이겨냈지. 내가 17년, 저 녀석이 16년이야.
···아니다. 난 태어난 지 이제 2달이 조금 넘었다.
그나마도 1달 동안은 성장하느라 잠으로 다 보내서 사실 내가 드래곤 된지 2달이나 됐다는 게 체감 되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드래곤들은 나 정도 성장하려면 13년쯤 지나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야, 시스템의 보조와 버프를 받고 있으니.
그나저나 이 녀석 엄청 수다스러운 녀석이다.
그런데 선조의 목소리라니?
드래곤들도 초즌들처럼 어떤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거나 한 것일까?
물어보고 싶지만 좀처럼 녀석이 입을 다물지 않는다.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정말 지치지도 않고 쫑알거린다.
네가 무슨 비트 위의 나그네냐.
숨은 쉬고 말하니?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면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을 거다.
녀석의 수다는 그 정도로 듣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삐삐삐삐.”
–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내 제안?
“뀨뀨?”
– 응? 뭐가?
딴 생각을 하느라 잠시 녀석의 말을 듣지 못했던 나는 반문했다.
“삐삐삐삐.”
– 우리랑 같이 동료가 되어 행동하자는 거야,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나을 테니까. 어린 형제.
“뀨뀨?”
너희랑 같이 다니자고?
의외의 제안에 녀석한테 다시 반문하는데, 덤불속에서 검둥이 녀석이 불쑥, 튀어나와 까칠하게 쏘아 붙였다.
“쮸쮸!”
– 뭘 멋대로 정하고 있는 거야! 누가 저런 건방진 녀석이랑 함께 다니겠데?
“삐삐삐삐.”
– 뭘 또 그렇게 까칠하게 나오는 거야? 잊었어? 우리는 아직 어린 드래곤이라고. 힘을 합치면 합칠수록 좋다는 이야기야.
“삐삐삐삐.”
– 그리고 이 형제가 건방지긴 어디가 건방지다는 이야기야? 귀엽기만 하구만. 네가 먼저 까칠하게 나갔잖아. 그렇지? 안 봐도 뻔해. 안 그랬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상대가 누구든 물불 안 가리고 먼저 쏘아붙이는 성격 버리지 않으면 사회생활 엄청 힘들어질 거라고 내가 이야기 했어, 안 했어?
“삐삐삐삐.”
–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너 평소에도···.
검둥이 녀석이 한 마디 쏘아붙이자.
얼룩이 녀석이 수다 폭탄을 쏟아냈다.
숨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폭격에 입만 뻐끔 거리던 검둥이 녀석이 질린 기색으로 다시 덤불로 도망쳐 버린다.
“삐삐삐.”
– 하하, 봤지? 녀석도 흔쾌히 허락해 줬잖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랑 같이 다니는 거다?
···이 녀석은 뭘 멋대로 진행시키고 있는 거야.
이쪽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사실 녀석의 제안은 나로서도 나쁠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내가 녀석들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
게다가 나는 할 일이 있다.
바로, 실비아 여왕을 찾는 일이다.
“뀨뀨···.”
제안은 고맙지만···.
“삐삐.”
– 하하, 뭘 또 성급하게 그러시나 형제님. 보아하니 배가 고픈 모양인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디 가서 음식이나 먹으면서 차분히 이야기 하자고.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가 잡아 놓은 구렌을 끌며 앞서간다.
야, 그거 내거거든?
말하는 거나 능글맞은 게 아주 사이비 전도사급이다.
꼬르르륵.
“···.”
어쨌든 나도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얼룩이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아직 녀석들한테 듣고 싶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인벤토리 폭탄도 있고 영지민 소환도 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면서.
*
나는 얼룩이와 검둥이가 머물고 있다는 임시 거처에 도착했다.
깊지 않은 자연 동굴이었는데, 본래 다른 짐승들이 머물고 있었던 듯 누린내가 짙게 배어 있다.
찌이익!
검둥이 녀석은 성질이 급한 듯, 둥지에 도착하자마자 구렌의 뒷다리를 쭈욱 찢어서 가죽도 벗기지 않고 으적으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쯧쯧, 야만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삐삐.”
– 너도 얼른 먹으라고, 네가 잡은 거라며?
“쮸쮸.”
– 흥! 여기는 우리 영역이야. 우리 사냥터에서 잡은 사냥감이니 본래는 우리 거라고.
“삐삐.”
– 그만해 블랙, 골드도 이제 우리 동료니까 상관없잖아?
“쮸쮸.”
– 흥, 누구 마음대로? 난 인정 못해.
그러게, 누구 마음대로 내가 네 동료냐.
이 녀석 하는 짓이 누굴 닮았다 했더니 와피스 주인공인 짱피 녀석을 닮았다.
그 녀석도 다짜고짜 자기 동료가 되라며 떼를 쓰는 녀석이었다.
“뀨뀨.”
나는 불에 구워 먹을 거야.
“삐삐.”
– 오, 너도 불에 구워 먹는 거 좋아해? 역시 골드구나. 우리 브론즈들도 전통적으로 불에 구운 음식을 좋아하지. 날 것 좋아하는 블랙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쮸쮸.”
– 원래 음식은 생으로 먹는 게 제일 좋은 거야. 본연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거지.
검둥이 녀석은 얼룩이의 말에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자기 음식에 집중한다.
물론 나는 검둥이 녀석을 비웃었다.
어디 내가 만든 음식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스윽. 스윽.
“삐삐?”
– 지금 뭐 하는 거야?
“뀨뀨.”
보면 몰라? 가죽을 벗기는 거야.
“쮸쮸.”
– 쯔쯧, 브론즈보다 더한 녀석이 들어왔군.
“삐삐.”
– 가죽은 왜 벗기는데?
“뀨뀨.”
질기고 맛이 없으니까 벗기지. 잠자코 보기나 해.
“삐삐.”
– 오호, 나름대로의 요리 철학이 느껴지는데? 좋아. 한 번 기대해 보겠어.
나는 얼룩이 녀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렌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발라낸 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굽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굽지는 않았다.
허브와 고춧가루, 소금, 개미꿀 설탕을 겉에 바르고 구웠다.
지글지글지글.
구렌 고기가 모닥불 위에서 기름을 뚝뚝 흘리며 익기 시작하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킁킁.
“삐삐! 삐삐!”
– 오, 이거 냄새부터 벌써 기가 막히는데? 도대체 뭘 바른 거야? 아니, 그것도 그런데 너 벌써 공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과연 골드의 혈통이라는 건가?
“뀨뀨.”
골드의 혈통이 뭐가 어쨌는데?
얼룩이 녀석은 모닥불 가까이에 붙어서 고양이처럼 팔을 괴고 늘어졌다.
일렁이는 모닥불에 비친 녀석의 커다란 그림자가 동굴 뒤에서 격렬한 춤사위를 벌인다.
“삐삐.”
– 우리 드래곤들 모두가 마법의 종주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마법적 역량을 타고 나지만 그 중 최고로 손꼽히는 건 금빛 비늘을 지닌 너희 일족이거든.
오호, 그런 사실이 있었나?
“삐삐.”
– 확실히 이제 베리영급 유룡에 접어든 골드, 네가 공간 마법을 부리는 걸 보면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네.
“삐삐.”
– 근데 이거 언제부터 먹을 수 있는 거야? 슬슬 참기가 힘들어지는데.
츄릅.
얼룩이 녀석은 모닥불위에서 기름을 뚝뚝 떨어트리며 익어가는 구렌 고기를 보고 침을 꿀떡 삼켰다.
물론 참기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다.
속이 익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겉은 이미 먹을 만하게 익었으니 먹어도 상관없겠지.
속은 먹으면서 익히면 될 테니까 말이야.
“뀨뀨.”
슬슬 먹어도 될 것 같아.
불에 잘 익은 부위부터 먹어봐.
“삐삐.”
– 그럼, 잘 먹을 게 골드.
저 녀석 은근슬쩍 묘한 호칭을 나한테 붙여버렸군.
얼룩이 녀석은 손을 뻗어 모닥불 위에 얹어진 구렌의 살점을 크게 뜯어갔다.
주욱, 결대로 찢어지는 잘 익은 살점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꿀꺽.
군침이 넘어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언젠가부터 다리를 뜯어먹던 것도 멈추고 얼룩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검둥이가 있었다.
녀석은 내가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얼룩이가 고기를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얼룩이 녀석이 고기를 뜯어가는 모습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얼룩이 녀석이 나와 비슷하게 화염의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화염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암, 우적, 우적. 쩝쩝쩝쩝···.
한입 커다랗게 고기를 베어 먹은 얼룩이는 그대로 잠깐 굳어 있다 싶더니, 갑자기 발광하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삐요오오오오오!”
– 뭐야! 뭐야! 너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쮸! 쮸쮸!”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런 수상한 녀석을 도대체 뭘 믿고!
수상하긴 누가 수상해 멍청아.
“삐! 삐삐삐삐!”
– 그런 게, 그런 게 아니야 블랙! 이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한 말이라고!
“쮸··· 쮸쮸?”
– 음식이··· 맛있다고?
“삐! 삐삐삐!
– 그래! 태어나서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봐!
“쮸! 쮸쮸!
– 쳇!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호들갑은. 구운 음식이 맛있으면 뭐 얼마나 맛있다고 그래? 음식은 생식이 최고야.
“삐! 삐삐삐삐!”
– 너도 이 음식 맛을 보면 절대로 그런 말은 못 할 걸? 블랙?
얼룩이 녀석은 자기가 먹다 남은 고기를 검둥이 녀석의 입안에 냅다 쑤셔 박아 버렸다.
난데없는 행동에 버럭! 화를 내려 했던 검둥이 녀석도 한 1초 정도 굳어 있더니 얼룩이 녀석이 터트렸던 것과 비슷한 포효를 터트리며 발광했다.
“쮸오오오오!”
– 뭐야, 뭐야!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이야?!
쳇, 생각보다 솔직한 녀석들이었군.
나는 녀석들의 반응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코 밑을 스윽, 문질렀다.
*
“꺼-억!”
“꺼억-!”
“끄억~.”
끝
ⓒ 미래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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