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4)
“내가 필요해서 데리고 오겠다는 사람 방을 화장실 앞으로 준비해 놨더라.”
“뭐?”
“모르는 내용이야?”
이건 내가 진짜로 궁금한 부분이다.
정태 놈이 일부러 그렇게 텃세를 부리라고 시킨 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너 지금 그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야? 모르는 내용이냐니?”
조금 전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님 됐어.”
“너만 됐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묻잖아.”
“설마 편 사장이 날 상대로 싸우자고 들었을까 싶었거든.”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시킨 거다?”
“다른 빈 방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 다른 빈 방이 두 개나 더 있었어. 이걸 편 사장이 모르고 한 내용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 내 방, 그리고 조 전무 방은 딱 자기 사장실을 중심으로 양옆에 있게 만들어 놓고, 내가 데리고 오는 사람 방만 따로 신경을 안 썼다? 내 상식에선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
그리고 미소가 있었던 자리엔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에 채워 놓은 가구는 가관이었어. 칠이 다 올라와 있는 책상, 가죽이 헐어 있는 소파. 누가 하는 말이 원래 그 방에 있던 가구들이 아니었대. 내가 확인했어. 편 사장한테 직접. 결국 인정을 하더라.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준 거야. 이 정도면 젠틀하게 참은 거 아냐? 편 사장이 형 사람이듯, 그 방은 내 사람이 쓸 건데 내 사람을 그렇게 대하겠다는 걸 다 보고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줬어야 했나?”
바로 그 순간.
정태는 손을 뒤로 뻗어 닫혀 있던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러자 옆방에 홀로 앉아 있던 편 사장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색이 되어 있었다.
올라오는 화를 참아 내며, 자기 등 뒤로 불안하게 앉아 있는 편 사장은 쳐다도 보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며 정태가 말했다.
“방금 손정훈 본부장이 한 말이 사실이에요?”
“저기, 사장님 그게….”
편 사장이 앉아 있는 테이블엔 찻주전자와 컵 하나가 전부였다.
“맞다, 아니다. 그렇게만 대답하면 됩니다. 금방 손정훈 본부장이 한 말이 모두 사실입니까?”
“죄송합니다.”
직접 자기 잔을 채워 놓고 피식하고 웃으며 그 잔을 비워 버린 정태였다.
이놈 봐라?
저 문을 열었다고?
재밌어지네?
그래, 한번 보자.
이걸 어떻게 교통정리를 하는지, 이 할애비가 보고 평가를 해 주마.
차갑게 식어 버린 얼굴로 잔을 입술에 붙여 놓고 정태가 말했다.
“전혀 그렇게 안 봤는데, 편 사장님이 이상한 구석이 있으신 분이었네? 왜 시키는 일은 똑바로 못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지?”
“…….”
“그리고 아까 낮에 전화로 편 사장님한테 들었던 내용이랑 지금 손 본부장 통해 확인한 내용은 왜 이렇게 다른 거예요?”
“…….”
“대답을 좀, X발… 대답을 좀 빨리빨리 하세요. 사람이 뭘 물어보면.”
“죄송합니다.”
“거기 그렇게 있지 말고, 문까지 열었는데 그냥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내가 당신 얼굴 보겠다고 고개까지 돌려야 돼?”
그동안 난 요리 몇 점을 집어 먹었다.
이런 건 뭘 좀 먹으면서 봐야지.
편 사장이 내 옆으로 앉을 수 있도록 벽 쪽으로 살짝 당겨 앉아 주기까지 했다.
“편 사장님.”
“네.”
“나를 아주 그냥 홍어 X으로 보셨네.”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닌데, 왜 X발 네가 X신 짓 하다가 털려 놓고 억울하다는 듯이 전화를 주셨어요? 이래 버리면 조 전무님하고 골프 치면서 나눴다는 이야기도 내가 다 다시 걸러서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니지. 걸러 듣지도 못하겠는데?”
이놈 이게 다 좋은데,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구나.
“그리고, 내가 설마 내 동생 일인데, 네 말만 듣고 이 새끼가 왜 그랬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사장님.”
“내가 지금 네 의도를 물었어요? 내가 네 의도를 알아야 하나? 궁금해해야 하는 거예요?”
“…….”
“X발 진짜 X나 어이없네? 그동안 내가 너 같은 인간한테 왜 잘해 줬을까요? 내가 바보네. 상X신이었어. 내가 요즘 손정훈 본부장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요. 왜? 나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위에서 계속 나랑 내 동생을 경쟁을 붙이려고 해. 재밌나 봐. 그런데 나는!”
갑작스러운 녀석의 고함에 편 사장은 크게 움찔했다.
“X발, 나는 그게 X나 짜증이 난다고. 내 동생이라고,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 내가 손정훈 본부장 식품에 넘어가서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보라고 했지,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붙이라고 했어요? 왜 그런 X신 같은 스토리텔링을 붙여서, 사람을 쪽팔리게 만들지? 화장실 앞에 있는 방을 줬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뭘 한 거예요?”
“그게….”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었나.”
“…….”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너무 수준 떨어지는 짓이라 상상도 하기 싫네. 사장님.”
“…네.”
“일어나세요. 지금 이 순간부로 내 눈에 안 보이는 데로 좀 사라져 주세요.”
* * *
실력으로 붙어
정태 이놈 이거 성깔이 보통이 아니구나.
보통 성깔이 아니야.
차분하게 모아 놓았다가, 한 번에 크게 욱하는 게 영락없이 지 애비 젊었을 때다.
편 사장이 쫓겨나듯 방을 나간 뒤, 정태는 테이블 위로 두 팔을 넓게 펼쳐 손을 올려놓고 화를 삭히는 모습을 내게 보였다.
녀석의 흥분이 진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난 요리들을 하나씩, 앞접시 위로 올려서 차례대로 맛을 봤다.
“너 혹시 알고 있었어?”
아마 옆방에 편 사장이 있다는 걸 미리부터 알고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거겠지?
일부러 이해를 못 한 척 대답했다.
“뭘?”
“옆방에 편 사장 있는 거. 안 놀라더라?”
“어, 알고 있었어.”
돌멍게도 장을 이렇게 만들어 올려놓으니까 전혀 색다른 맛이 나네.
그 맛을 음미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정태 놈이 피식거렸다.
“어떻게?”
“구두. 옆방에도 문 앞에 구두가 한 켤레밖에 없더라고. 자세히 봤더니 눈에 익은 거야.”
“편 사장이 오늘 신은 구두를 기억해?”
“구두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을 알 수가 있거든. 성격이 급하지? 성급할 순 있겠지만, 대신 추진력은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조용했잖아.”
난 내 등 뒤로 난 미닫이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옆방에선 약하게나마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데, 그쪽 뒷방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났어. 마치 일부러 인기척을 숨기는 거처럼.”
“내가 저 문 안 열었음 어쩔 뻔했어?”
“난 내심 그 문을 안 열기를 바랐어.”
“뭐? 왜?”
“그럼 난 저 방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척, 지금부터는 편 사장 칭찬을 좀 해 볼 생각이었거든.”
“…뭐?”
“너무 편 사장이 듣기에 민망할 말들만 했잖아.”
사케 한 잔을 입에 머금고 그 사케로 잠시 입 안을 헹궜다.
그러는 동안 정태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날 쳐다봤다.
“편 사장. 방향 감각이 없다뿐이지,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는 걸 보고 누가 방향만 제대로 잡아 주면 자기 밥값은 해내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안 좋게 보면 미련한 거지만, 좋게 보면 의리가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 내가 낮에 회사에서 그렇게까지 경고를 했는데, 내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강심장은 아닌 거 같고…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의리가 있어 보여.”
“…….”
“지적하고, 문제를 삼을 건 문제를 삼더리도 그거랑은 별개로 인정하고 이해를 해 줄 내용은 해 줘야 맞는 거지. 누가 봐도 편 사장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함께 사케 잔을 비워 놓고 정태가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데?”
“우린 별게 아닐 수 있지만, 편 사장 입장에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안 해도 될 계산이 복잡해져서 엉뚱한 장면을 만들어 내 버린 상황?”
“정훈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용기고 실력 아닐까?”
“…….”
“그리고 만약 그게 필요하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 보기에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상황을 연출해 볼 필요도 있다고 보고. 지금 이거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뭐가 보이는데?”
“재경 전체에 흐르기 시작한 긴장감.”
뭔가가 자기 마음대로 안 풀린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크게 쓸어 올린 뒤 머리카락까지 뒤로 다 넘기는 정태였다.
난 그런 정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긴장감이 있어야 경쟁에 의미가 붙는 거고, 의미 있는 경쟁이 있어야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 최소한 그동안 너무 평화롭기만 했던 우리 재경에게는 지금쯤 이정도 긴장감은 독이 아니라 영양제가 될 거 같아서 말이야.”
정태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은 빈 잔을 들어 정태에게 잔을 채워 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동생 잔을 성의 있게 채워 준 뒤 갑갑한 한숨을 길게 뽑고 있는 정태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손정태 사장님.”
“…….”
“그게 뭐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믿어. 오늘 이 자리도 현재 하고 있는 최선에 필요한 자리라 생각하고 마련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재경의 장남인 너의 역할이고, 어디까지가 장남이기 때문에 네가 내볼 수 있는 욕심인지고 헷갈리기 시작할 것이고.
하지만 정태야,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결국은 지금 네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 너의 노력과 실력은 크게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걸 최대한 빨리 인정해 내야만, 앞으로 이 할애비가 다해 볼 최선과 진심을 견뎌 낼 수 있지 않겠냐.
네놈 실력만 충분하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냐.
고작 동생 놈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뭔가가 거슬리고 신경이 쓰인다는 건 결국 불안하다는 거다.
그 불안을 계속 안고 갈지, 아님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 낼 수 있을지… 이 할애비는 그게 참으로 궁금하구나.
미안하다, 정태야.
하지만 난 지금부터 널 내 손주로만 봐 줄 수가 없구나.
이 손중길이가 널 내 손주라고 봐 주고, 꽃길만 걷도록 도와줄 순 없는 노릇 아니냐.
네가 기대하는 그 자리, 당연히 네가 앉을 거라 믿고 있는 그 자리는 꽃길을 걷는 자리가 아니란다.
재경의 직원들이 꽃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맨발로 가시밭길을 밟아 가며 길을 닦아 내는 자리란다.
이 손중길이가 재경의 미래, 직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너에게 고작 형제애 따위를 존중해 줄 성싶으냐.
네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걸 원하는 거라면 지금 네가 가진 걸 다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냐.
결국 정태는 묵직한 한숨을 토해 놓고 말했다.
“아… 뭐가 이렇게 사는 게 복잡하냐? 좀 심플하게들 살 순 없는 건가?”
속에도 없는 말.
“복잡한 게 싫으면 그냥 다 내려놓고 산으로 들어가야지. 그럴 자신이 없다면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없는 거고.”
“네가 해 보겠다는 최선을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자기가 해야 할 최선만 정해 놓고 나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
“그 최선에 어쩔 수 없는 마찰이 생기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해결을 해 보려고 다시 최선을 다해 보면 되는 거고. 나는 그렇게 하는 게 더 심플하게 사는 거 같은데?”
* * *
다음 날 아침.
조동희 전무는 출근과 동시에 가방만 풀어 놓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전날 저녁 손정훈 상무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는 통화로 다 전해 들은 조동희 전무였다.
통화를 하는 내내 과연 손정태 사장스럽다는 생각을 떨쳐 내지 못했다.
바로 옆방을 따로 잡아 줘 놓고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다 듣게 만들었다?
조동희 전무는 항공에서 정태의 경영 수업을 맡았을 때부터 그런 기질을 항상 염려해 오고 있었다.
분명 사람을 끄는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질려 버리게 만드는 기질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기질이 재경이라는 큰 기업을 맡아 나가야 할 자리에선 어느 정도 필요한 역량일 수도.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할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아직 손정태 사장 체제의 후계 구도는 확정이 난 게 아니다.
어쩌면 재경의 후계 경합은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어느 순간부터 손정훈 상무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조동희 전무였지만, 그럼에도 손정태 사장과 함께했던 좋은 시간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았기에 못내 그의 부족한 부분들이 안타깝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