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56
56화 거미의 속삭임 (2)
제도의 모든 곳에는 햇빛이 닿아야 한다.
선대 황제는 그 말과 함께 슬럼가를 대상으로 재개발 사업을 벌였다.
허나 말년에 벌인 사업이었고, 황제가 곧 세상을 뜨면서 재개발은 곧 중지되었다.
그 탓에 제도의 슬럼가는 이전보다 더 발을 들이기 꺼려지는, 흉흉한 곳으로 변했다.
“흐응….”
그리고 ‘아흐론테’라는 가명을 쓰는 은빛 거미는, 그 슬럼가에 공방을 차렸다.
마탑 출신의 마법사라고는 해도 악마술과 저주 따위를 다루기에 대놓고 장사를 하기 어려운 것이 그 까닭이었다.
또, 쫓겨나기도 했고.
“상품이 부서졌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네.”
상품 하나가 망가졌다는 건 3일 전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수리를 해 달라고 하든, 새 상품을 놔 달라고 하든 돈을 버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설마….”
거미는 책을 덮고 찻잔을 입가로 가져왔다. 팔짱을 낀 그녀는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상품이 자연스레 망가진 게 아니라, 제대로 작동했는데.
하필이면 상품에 걸린 사람이 고객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이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게 가장 그럴듯했다. 또, 탄신일 축제가 겹쳐져 있으니 소란이 일어났음에도 그녀의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티켓’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야 하는데….
벌써 3일째다. 티켓을 찾을 만한 사람이라면 벌써 찾아왔어야 한다.
마지막에 티켓을 찾은 사람이 셰르핀이었으니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끼이익.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낡고 허물어져 가는 나무 문이 열렸다.
젊은 남자였다. 다른 것보다도 먼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거미는 태연하게 차를 마시면서 그를 훑어보았다. 얼굴보다도 더 놀라운 건, 그 육신에 깃들어 있는 마력이었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남자를 지켜보았다.
자신의 고객은 아니다. 그렇다면 겉치레에 불과할 접객도 필요 없다.
새로운 고객일까, 아니면 그냥 마법 공방이라는 썩어 가는 간판을 보고 온 걸까.
가게를 한 번 쭉 둘러본 남자가 말했다.
“아흐론테 공방, 맞나?”
거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거미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그녀가 앉아 있는 카운터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이용권을 쓰고 싶은데.”
티켓이었다.
그녀는 기뻐하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꽤 잘난 마법사라도, 티켓은 우연히 얻은 것일 수도 있다.
“가게 안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져가. 나한테 의뢰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고. 아, 너무 비싼 건 안 돼.”
“…의뢰 쪽으로 부탁하지.”
“의뢰는 종류에 따라서 값을 받을 수도 있다? 그건 고려해……… 어라?”
거미는 말을 하던 것도 잊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붉게 빛나는 수정. 정체 모를 광석. 거미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수백, 수천의 비명이 그 수정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혼을 담은 물건이었다.
“어, 어, 어, 이, 이건?”
놀란 탓에 숨겨 놓았던 팔이 드러났다.
팔짱을 끼고 있었던 팔이 풀어졌다.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책이 그 위로 떨어져 젖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미는 그런 것은 하등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눈앞의 수정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건 대체 뭐야…?”
그녀는 수정을 향해 팔을 뻗었다.
휙, 남자는 손이 닿기 직전 수정을 뒤로 뺐다.
거미의 눈이 확 커졌다. 그것을 본 남자가 짧게 말했다.
“의뢰.”
“쓰읍… 어, 어떤 의뢰?”
거미는 입가에서 흐르던 침을 닦았다.
저 영혼석이 의뢰라는 건, 저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어떻게 만들어 줄까? 함정? 무기? 갑옷? 부적? 아니면 영약?”
모든 게 그녀의 특기였다.
특히, 함정은 마탑주라고 떠받들어지는 셰르핀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자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물었고, 남자는 그저 수정을 다시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무기 쪽으로.”
“무기라면 어떤 무기? 칼? 창? 활? 쇠뇌? 그것도 아니면 방패?”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팔을 뻗었다.
만약 눈앞에 있는 저 마법사가, 영혼석에 대한 지식이 조금 모자라서 용도를 따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최대한 적게 써서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남겨서 다른 데 쓸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형태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쓰려고?”
“영혼을 육안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나?”
……영혼?
거미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 남자는 마법사다. 그리고 티켓을 손에 쥐고 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의 상품을 어떤 방식으로든 망가뜨렸다는 게 된다.
그 정도 마법사라면 육안으로 영혼을 보는 것 따위는 쉽다. 그런데 이런 극상품의 영혼석을 주면서, 영혼을 보이게 하는 무기로 가공해 달라는 건 조금 이상했다.
마법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을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이 남자의 수준은 더더욱 올라간다.
“물론 가능하지. 가능은 한데….”
거미는 수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울였던 상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어려운 의뢰라서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네?”
그녀는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발동했다. 좁고 어두컴컴한 공방의 유일한 출입문이 닫혔다.
그것과 함께 거미의 마법이 공방을 둘렀다.
소리 한 점, 빛 한 움큼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이 되었다.
“그 전에 일단 당신, 나를 보고도 안 놀라는 것 같은데.”
은빛 거미는 한 손으로 촛불을 켰다. 또 한 손으로는 깨진 찻잔을 주워 들었고 반대편 손으로는 책을 주웠다.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가 내민 ‘티켓’을 집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손으로는 턱을 괴었다.
“누구 소개를 받고 왔어?”
거미가 어둠 속에서 카를을 바라보았다.
* * *
“나는 고객들 얼굴을 기억해 두는 편이야. 100년쯤 지난 고객은 잊지만, 그 사람들도 나를 잊지. 보통은 죽어서.”
거미는 썰렁한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내 고객들은 대부분 내로라하는 거물들이야. 거대한 가문의 당주, 암흑가의 큰손, 황족 등등….”
“그런가?”
“그래. 근데 그 인간들도 내 팔을 보면 화들짝 놀라진 않아도 의외라고 생각해. 또는 다완족이냐고 물어보지. 근데 다완족은 300년 전에 멸족했어. 내가 다완족일 리가 없지.”
은빛 거미가 게임 내에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여섯 팔을 본 누군가가, 거미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이 굳혀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전혀 안 놀라네? 그럼, 내가 원래 이렇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
“티켓을 손에 쥐고 있고, 나를 아는 거면 누구 소개를 받았다는 건데… 그게 누구야?”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사안이지. 이 마법 공방의 주인 아흐론테는 멀쩡한 인간이거든. 팔이 두 개인.”
악마술과 주술을 다루는 마법 공방.
부호와 권력자들을 상대로만 하는 장사라지만, 자신의 정체가 여기저기서 알려져서 좋을 건 없다.
그렇기에 거미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비밀을 함구할 것을 요한다.
“팔이 여섯 개인 진짜 주인을 보고도 놀란 척 안 한다는 건, 네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고… 그럼 내 고객 중 한 명이 너한테 비밀을 누설했다는 게 되거든.”
거미는 카운터 아래의 고객 명단을 꺼냈다.
“그러면 나는 너랑 그 고객을 둘 다 멀쩡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말이야. 최소한 말 못 하는 병신으로 만들어야 하거든. 혹시나 당신이 나를 잡으러 온 황실 마법사 정도 되는 사람이면… 그보다 더한 짓을 해야 하고.”
도리어 카를이 아한 수정에 정신이 팔려 제 모습을 감출 생각도 안 하던 것이 누구였는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거미의 팔들에 마법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두 합쳐 네 개. 대마법사로 인정받지는 못했더라도, 그에 준하는 마법사라는 설정은 여전했다.
“해보자는 거야?”
그 대응으로 카를이 마력을 끌어 올리자, 거미는 이를 꽉 깨물었다.
만만한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공방을 가득 채우자 그녀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지.”
하지만 카를은 도중에 끌어 올린 마력을 다시 잠재웠다.
아한 수정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간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녀에게는 수정을 가공해 무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대 사도용 결전 병기, 별빛광채. 카를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 거미가 만드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그 질을 높일 수 있을 테니.
지금은 그녀에게 어울려 주는 판단이 옳다.
“그러면, 말해. 누구한테 들었어?”
“대마법사 셰르핀.”
“……그 영감탱이가.”
카를이 동부 마탑주의 이름을 대자 거미는 짜증스럽게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게임의 설명에서부터 은빛 거미는 셰르핀을 두려워한다고 나온다.
그것을 떠올린 대답이었다.
“당신, 그 뒷방 늙은이의 제자구나? 그래서 나를 보고도 안 놀라는 거고. 그 실력도 그렇고… 알았어. 이제야 이해가 되네.”
거미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공간이 봉쇄되며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다시 환기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살벌한 분위기는 없었던 일이라는 것처럼 거미는 편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의뢰 얘기를 다시 해 볼까? 그 영혼석, 다시 보여 줄래?”
카를은 그녀에게 아한 수정을 내밀었다. 이젠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거미는 조심스럽게 팔들을 뻗었다.
“씁….”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거미는 입맛을 다시며 수정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아한 수정은 고밀도의 영혼석. 악마술이 영혼을 다루는 것임을 생각하면, 거미가 이런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무기로 가공하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어떻게 할래? 하나는 이 영혼석을 직접 쓰는 거야. 칼이라면 칼날로, 창이라면 창끝을 만드는 거지.”
“다른 하나는?”
“소모품으로 쓰는 거지. 화살촉으로 만들어서 쏘면 간단하거든.”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별빛광채’는 칼이나 창, 화살의 형태가 아니었다.
형태 자체는 총에 가까웠다. 하지만 거미가 말하는 것처럼 수정을 소모하는 무기는 아니었다.
“쇠뇌의 형태로 만들되… 이걸 소모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
“음… 없을 것 같은데?”
“가능하지 않나?”
“가능은 하지.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 잘 정제해도 영혼을 육안으로 드러내는 건 가능할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거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섯 개의 팔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건 무기가 아니야. 그냥 눈에 보이게 드러낼 뿐이면… 무기가 아니라 횃불이겠지.”
“무기로 쓰기 위해서는 소모가 필수적이라는 거군.”
“물론, 당신이 말한 방식으로 만들어도 돼. 그래도 웬만한 귀신이나 악마는 잡아 죽일 수 있거든.”
거미는 카를을 바라보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마치 그가 어떤 영혼을 상대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안다는 것처럼.
“그런데 당신은 이미 그게 가능하잖아? 딱히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말이야. 내 상품을 망가뜨린 걸 보면 알 수 있어.”
“…….”
“어떤 영혼을 눈으로 보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몰라도… 나는 무기로 만드는 걸 추천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무기 쪽으로 부탁하지.”
“어떤 무기? 나는 개인적으로 검이나 방패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어떤 무기든 카를이 지닌 특성은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습득시켜 준다.
어떤 것보다도 효율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카를은, 그 효율을 더더욱 높일 방법도 알고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자.”
절그럭,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소리를 내며 주머니가 카운터 위로 올라오자 거미는 눈을 크게 뜨고 카를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추가금.”
“추가금?”
“종류에 따라서 값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렇게 답한 거미는 주머니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보았다.
금화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가 어지간한 의뢰를 받는 값과 비슷했다.
“오… 티켓만 받고 해 줄 수 있는데?”
“그러면 만드는 데 그 돈을 써라.”
“그래? 음… 티켓에 돈까지 잔뜩 받았으니까 이쪽도 답례를 해 줘야겠는걸…?”
거미는 혀로 제 입술을 핥았다.
돈을 얹어서 받았다고 답례를 해 주진 않지만, 극상품의 영혼석이 그녀의 한 줌 남은 상도덕을 일깨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답례는 두 가지야. 상품과 정보, 어떤 걸 원해?”
“……정보 쪽으로.”
“흐응, 역시. 당신 마법사지? 그리고 돈도 꽤 있는 걸 보니까 귀족이나 상인일 테고….”
“그래.”
“그러면 내가 주는 정보를 잘 쓰면, 당신 인생을 바꿀 수도 있어. 자, 잘 들어.”
거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카를로스 크로우라고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