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20)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0화
“아, 진짜 끝났구나.”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고 컨퍼런스 룸에 모였다.
나름대로 해단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해단식이라고 뭐 별 거 없다.
다 같이 모여서 총평하고 자축하고 헤어지는 거다.
회식?
그런 건 없었다.
중학생들 데리고 무슨 회식이냐.
게다가 후쿠오카가 가까워서 그런지 부모님도 생각보다 많이 와서 회식 같은 거 할 상황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은 어딘가 몽롱했다.
그래, 어린 나이에 국대 유니폼을 입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싸워서 우승까지 거머쥐었으니 꿈만 같을 거다.
“아, 근데 아무리 교류전이라고 해도 그렇지 우승 트로피도 없냐.”
“듣기론 다음부터는 트로피도 만든다더라. 교류전이 아니라 동아시아컵 주니어 된다는 소문도 있던데?”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그렇게 되긴 하더라.
내가 이 대표팀에 없던 지난 삶에서는 우리는 이 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우승을 못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초대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아니, 무조건 나 덕분에.
“뭔 생각하냐?”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겼었는데 배상현이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
“그러니까 뭔 생각, 인마.”
“아, 그냥 이런저런 생각.”
“이 새끼 어느 순간부터 형한테 말도 짧아지고, 어?”
배상현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고작 두 살 차이인데 유세는.
“앞으로 나보다 축구 잘하는 사람한테만 형 대접 하기로 했어.”
“이 씨… 할 말이 없네.”
잠시 어이없는 듯 멍하니 날 보던 배상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고작 두 살 차이인데 형, 동생이 무슨 소용이냐. 잘하는 놈이 대장이지.”
“오우, 역시 유럽 마인드.”
“그래, 근데 넌 유럽 갈 생각 없냐?”
“유럽? 가야지.”
꼭 가야지.
처음에 나는 가정형편까지 생각해서 나는 유럽은 나중에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때 가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유럽으로 가야 한다.
일본과 경기가 끝나고 나서 절실히 느꼈다. 이 바닥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한국이 아니라 아시아라는 무대 자체가 말이다.
유럽파를 8명이나 내세우며 날고 긴다는 일본도 너무 손쉬웠다.
차라리 월반이 자유로우면 모르겠는데, 아쉽게도 한국의 축구 제도는 상위 연령대 팀으로 월반하는 게 불가능하다.
나이도 문제고, 학교랑 시스템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다르지.
오로지 실력만으로 월반이 가능하다.
마음이 급한 나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그래, 유럽 가라. 유럽이 최고야. 여기서는 뭘 못해. 감독은 안 된다고만 하고 선배들은 찍어 누르고.”
“그래서 간 거야?”
“그것도 없지 않아 있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특히 심했거든.”
초딩 때부터 그랬다니, 나 같아도 정 떨어지겠다.
“뭐야, 왜 둘이서만 이야기해.”
나와 배상현 앞에 공세환이 앉으면서 물었다.
“유럽 이야기.”
“아, 진짜요? 유럽은 왜요? 태양이 너 유럽 가게?”
“가고는 싶지. 불러주면 가지.”
“와, 그럼 우리 서울은 어째?”
“내 알 바냐?”
“그건 그래. 나도 유럽 가고 싶다.”
그 말에 배상현이 말했다.
“너어는… 안 될 걸?”
“네? 왜요, 형. 저 잘했는데.”
잘하긴 했지.
하지만, 당장 유스로 유럽에서 데려가기엔 매리트가 없다.
기술도 패스도 떨어지고, 가진 건 왕성한 활동량과 경기를 읽고 패스의 흐름을 끊는 능력인데, 아직 유럽에 비빌 수준은 아니니까.
“넌 좀 흔해.”
배상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요? 저 레어템인데요.”
공세환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놈은 정말 재능충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무수히 많은 건물과 땅을 가진 부자 중에 부자인데다가 독자여서 간절함이 없는 아이가 자기 능력으로 국대 붙박이에 유럽에서도 소소하게나마 롱런한 걸 보면 말이다.
아니면 그만큼 축구를 사랑한 걸지도 모르고.
“태양.”
뒤에서 이성호가 나를 불렀다.
이성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뭐야 저 부담스러운 눈빛은.
“득점왕… 축하한다.”
득점왕 때문에 그러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뭐, 그래, 고맙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이 축구 빼고는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외골수 사내에게 찍히면 피곤할 것 같거든.
“자, 자, 얘들아 주목 좀 해주라.”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가운데 이정후 감독이 들어와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그는 한가운데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잘했다. 너희가 아시아 최고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동아시아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운동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뭘 알겠나.
감독님이 아시아 최고라니 다들 그런 줄 알고 좋아 환호한다.
뭐, 사실 나도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중국을 짓밟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던 일본의 콧대를 꺾어줬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자. 너희 이제 겨우 U-15 대표팀인 거 알지?”
“……네!”
“그 위에 순차적으로 올라가 A매치 대표팀이 되려면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해. 나는 너희들까지 모두 데리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그리고 싶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감독의 말에 하나같이 결연한 표정이 된다.
이 아이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성인 대표팀, 아니, 하다못해 프로선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소년 대표팀을 뛰었다고 해서 무조건 프로 축구의 길로 들어서는 건 아니니까.
이 커리어에 만족하면 더 이상 볼 일 없겠지.
이 바닥이 그렇다.
A매치 대표팀은커녕 K리그 뚫는 것도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가능한 그런 세상이거든.
“자, 같이 돌아갈 아이들은 여기 김 코치 인솔 따르고. 부모님이 여기까지 온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면 보내주도록 하마. 이만, 해산!”
U-15 대표팀은 그 말을 끝으로 해산했다.
각자 삼삼오오 모여 곧 바로 갈 아이들은 코치님을 따라 짐을 챙기고 일어난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세환이가 나에게 물었다.
“태양이 넌 다음 주에나 오겠네?”
공세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이랑 일본 여행을 하려고 학교에 체험학습까지 신청한 상황이거든.
“세환이 너는?”
“부모님이 못 오셔서 뭐, 대표팀이랑 같이 바로 한국 가야지.”
“부모님 찾아와서 초호화 여행을 할 것 같은데, 웬일이냐.”
“엄마가 일본 지겹대. 사실 나도 좀 그래.”
나는 일본 여행은 처음인데.
부러운 자식.
“그래, 가서 학교에서 보자.”
“어어! 먼저 갈게!”
세환이를 보내주고 몸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최지우가 내 앞을 막는다.
“왜, 인마.”
“재미있었다, 태양.”
“…그래, 뭐, 재미있게 하긴 했지.”
“큭큭, 이제 다시 적으로 만나겠군. 그때는…….”
헛소리를 끊고 말했다.
“실력 좀 키우고 와라. 개똥 패스도 개선 좀 하고.”
“…큭큭…….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서울로 돌아가면 내 패스가 그리워질 거다. 크크크크.”
미친놈.
근데 마냥 틀린 말은 아니어서 뭐라 할 말이 없네.
“어쨌든 이기는 건 서울일 거다. 내가 있으니까.”
“큭큭큭…….”
…내가 진짜 저 중2병 언제 고쳐지는지 두고본다.
* * *
야심한 밤.
늦게까지 스카우트 보고서를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먹을거리와 맥주를 사놓고 늦은 저녁을 먹던 프리델 마이어는 걸려온 전화를 냉큼 받았다.
“영상 보셨습니까?”
전화를 받기 무섭게 본론을 꺼내는 그의 말에 스마트폰 너머 사람이 대뜸 물었다.
-아시아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 겁니까? 아니면 영상에 그 소년이 지나치게 잘하는 겁니까?
그 말에 프리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관심을 끄는 건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설득하는 일.
프리델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상대팀인 일본은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여덟 명이나 됐습니다. 그 중 세 명은 빅클럽 유스 출신입니다.”
-우습게 볼 수준은 아니라는 거군요?
“적어도 유럽파 선수가 단 한 명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는요.”
-저 아이가 단 한 명뿐인 유럽 클럽의 유스입니까?
“아니요. 그는 한국 리그 유스팀 소속입니다. 축구 경력은…….”
소년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프리델 마이어도 놀란 사실, 그 사실을 스마트폰 너머 사내에게 전했다.
“이제 겨우 1년을 넘었습니다.”
-허…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럴 리가 없죠.
그 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스마트폰 건너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와 접근해 보세요. 우리 구단의 이상에 적합한 아이 중 하나라고 판단되네요.
“알겠습니다.”
프리델은 전화를 끊기 무섭게 그와 접촉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뒤지다 멈칫했다.
늦은 밤인지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흐음.”
그는 먹던 것들도 잊은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초조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난다.
조금만 늦으면 누군가가 그 소년을 채갈 것만 같아서였다.
“아무리 돈이 많은 구단이라도 이건 좀 아쉽군.”
예전이라면 불법 계약을 해서라도 데려왔을 텐데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한 판, 결국, 지금의 유소년 판도는 그 구단이 얼마나 유명하고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찍이 분데스리가의 공룡, 바이에른 뮌헨에서 있을 때는 해본 적 없던 고민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돈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돈이 웬수지.”
프리델은 씁쓸하게 웃으며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 * *
꿈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짧은 해외여행은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다자이후나 모모치 해변, 후쿠오카 타워같은 후쿠오카 관광지를 구경하고, 캐널시티 같은 곳에서 쇼핑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서울 UTD의 숙소.
“하아.”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서울은 나와 공세환, 진유준이 없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다섯 번 싸워서 세 번을 지고 한 번은 비기며 단 한 번 승리했다.
그것도 최약체인 강원을 상대로 간신히 말이다.
순위가 순식간에 3위로 밀려났고, 우리가 차지하고 있던 1위 자리는 수원이 차지하게 되었다.
“아, 최지우 처웃는 소리가 여기도 들리는 거 같네.”
우리가 1등이군, 큭큭.
이러고 있겠지.
그래도 눈앞에서 안 보는 게 어디냐.
“태양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들어가니 진유준이 날 맞이했다.
“며칠 안 본 거 같은데 디게 오랜만인 거 같냐. 세환이는?”
“어, 세환이는 씻으러.”
“그렇구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캐비넷에 짐을 풀었다.
그때였다.
“어, 태양이 왔니?”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조봉수 감독이 1학년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 안으로는 어지간하면 절대 안 들어오는 양반인데 웬일이지?
국가대표에서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려고 온 건가?
그러기에는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뭐랄까, 똥을 한 번 씹은 것 같다고 할까?
“저기 태양아.”
“네, 감독님.”
“그… 너를 보러온 손님이 있는데 말이다.”
나를?
굳이 구단까지 와서 나를?
의아한 얼굴로 조봉수를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유럽에서 온 스카우터라더라.”
아.
혹시나 했는데, 동아시아 교류전에서 누군가 날 눈여겨본 모양이다.
“감독실에 있으니 가봐라. 아니, 같이 가자꾸나.”
나는 조봉수 감독의 말에 서둘러 짐을 풀고 감독의 뒤를 따랐다.
감독실.
어디서 왔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여는 감독님 뒤에서 빼곰히 고개를 내밀어 안을 여는 순간.
‘에이.’
나도 모르게 기대감이 사라졌다.
‘프리델 마이어.’
한국사람,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람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박민균을 시골 깡촌에서 발굴한 사람으로 말이다.
‘바이에른 뮌헨이라니.’
“오, Die Sonne!”
나를 본 프리델 마이어가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아, 예전에 스페인에서 챔피언스 리그 나갔을 때 라이프치히와 붙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챔스 MOM을 땄을 때 들어본 말이다.
디 조너.
독일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안녕, 태양 군? 나는 여기 이 분 통역사로 온 사람이란다. 여기 이 분은 너도 알지? 박민균을 바이에른 뮌헨으로 데려가 스타로 만드신 분이란다.”
“아, 네… 바이에른 뮌헨이요.”
바이에른 뮌헨.
분명 클럽의 네임벨류나 유스의 수준만 생각하면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주급이 짠 곳인데.’
내가 독일을 선호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커리어를 생각하면 독일만큼 좋은 곳도 없을지 모르지만, 독일은 잉글랜드나 스페인만큼 주급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한 번 잡히면 빠져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은 곳이 또 뮌헨이기도 하고.
“뮌헨이요…….”
내가 말을 흐리는데 프리델 마이어가 통역사에게 뭐라 말한다.
영어다.
독일어 통역사가 아니라 영어 통역사를 데려온 거구나.
영어는 할 줄 안다.
[이보게, 지금 바이에른 뮌헨이라 하지 않았나? 난 지금 바이에른 뮌헨의 스카우터가 아니야.]아니라고?
하긴, 생각해 보면 박민규를 뮌헨에 데려갔다는 것 빼고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긴 하다.
그럼 어디인데?
“바이에른 뮌헨이 아니면 어떤 클럽에서 오셨는데요?”
내가 영어로 묻자 감독이 놀라고 두 사람도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왜, 뭐.
영어하는 사람 처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