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27)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27화
그날 저녁, 남해 수군은 연회를 열었다.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수도 없이 계속되는 전투 중 한 번이었을 뿐인데 매번 승전을 축하한다고 연회를 연다면 정신 나간 짓이니까.
이 연회는 모르드 일행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귀찮기는 해도 예의상 모르드 일행도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드 공.”
남해 수군과 흑룡포의 유력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한울왕자가 다가왔다.
“잠시.”
그는 모르드와 함께 사람이 없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바깥으로 나와서 말했다.
“서해 수군은 날 따르기로 했어.”
현시점에서는 남해 수군에게 비밀로 해두기로 한 이야기였다.
한울왕자는 남해 수군의 눈을 피해 서해 수군의 생존자들과 접선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한울왕자를 따르겠노라고 충성을 맹세했다.
모르드가 말했다.
“이야기가 잘 되어서 다행이군.”
“당신들이 상황을 만들어준 덕분이지. 검은 포식자 호를 빌려준 것도.”
서해 수군 생존자들이 전장에 당도하기 전에 파르웰이 그들과 접촉해서 물러나도록 했다. 남해 수군에게 합류하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고 설득한 것이다.
서해 수군 생존자들을 이끄는 푸른 비늘의 드라칸 임 장군은 로텐다르의 어마어마한 활약, 파르웰의 실력 과시 때문에 마음이 많이 흔들린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한울왕자가 서해용왕궁에서 건조한 검은 포식자 호를 기함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선원이 되어줄 것을 청하자 그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르드가 씩 웃었다.
“훌륭한 뱃사람들을 구한 것을 축하한다.”
“백룡군에서 선원을 선발한 건 헛수고가 되긴 했지만.”
서해 수군 생존자들은 총 200여 명.
어려운 상황에서 끝까지 투쟁하던 그들은 하나같이 수병으로서는 최고 숙련자들이었다.
누구보다도 검은 포식자 호의 성능을 최고로 활용해 줄 적임자들을 놔두고 육지의 병사들을 수병으로 부리는 것은 낭비였다.
“그들도 전원이 검은 포식자 호에 탈 수는 없을 텐데? 그들의 전투함을 개보수해서 쓸 건가?”
“그러고 싶어 하고 있어. 3척의 전투함 중에 임 장군의 기함은 잠수 기능이 있어서 검은 포식자 호와 함께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고.”
“그렇군. 하긴 그들을 배가 없다고 육지에서 놀리는 것도 낭비겠지.”
“문제는 개보수할 시설이 없다는 거야. 당장은 그들이 날 따르기로 했다는 걸 비밀로 하는 이상 남해 수군에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건 바다의 백성들과 교섭해 보면 어떻겠나? 애당초 그들과 서해 수군은 협력관계이기도 했으니까.”
“음. 그 방법밖에 없겠어. 그들은 전투원으로서도 뛰어나지만 향후 서해로 진출할 때의 명분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지.”
“명분인가.”
“단죄자를 격파하고 서해를 되찾을 때, 그들의 존재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쉽게 만들어줄 거야.”
한울왕자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음?”
모르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한울왕자가 자연스럽게 주변을 덮었던 차음 술법을 풀었다.
“모르드 공, 여기 계셨군요.”
하언 장군의 부관이었다.
“용왕궁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내일, 여러분의 방문을 고대하고 계시겠답니다.”
* * *
새벽반도 남쪽 끝에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한볕섬과 둘볕섬이 있었다.
신화에 따르면 여섯 진룡이 이 세계에 강림했을 때, 그 충격으로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내린 신성의 조각들이 바다 위에 커다란 두 개의 섬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남해용왕궁은 새벽 반도와 이 두 섬 사이의 바다에 자리하고 있었다.
케엘이 감탄했다.
“서해용왕궁하고는 다른 구조네. 규모는 뒤지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군. 거꾸로 뒤집힌 탑이라…….”
모르드가 흥미로 눈을 반짝였다.
남해용왕궁 또한 심해에 감춰진 해구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다.
해구 안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크게 돌출된 지형에 의해 9할 가까운 면적이 막혀 있다.
그 밑으로 내려다보면, 그곳이 거꾸로 뒤집힌 지면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의 1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두꺼운 지반에 매달린 형태로, 거꾸로 뒤집힌 동양풍의 탑이 거의 6킬로미터 길이로 해저를 향해 뻗어 나가 있었다.
또한 이 탑의 구조는 직선적이지 않았다.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부터가 뱀처럼 구불구불했고 마치 나뭇가지처럼 군데군데 옆으로도 뻗어 나가서 해구의 벽과 연결되면서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를 술법의 불빛, 그리고 그 빛을 나눠 받은 해파리들이 떠다니며 밝히는 광경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서해용왕궁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경이로운 심해 건축물이었다.
‘이건… 시신이로군.’
아무리 해저라고는 해도 대체 왜 이런 구조로 만들었을까 생각하던 모르드는 불현듯 그런 생각을 떠올랐다.
스스로 생각해도 엉뚱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곧 칠감이 저 거대한 건축물의 본질을 알아차린 것임을 깨달았다.
‘정말로 시신이라고?’
너무나 거대한 신화적인 생물의 시신이 저 건물의 골조를 이루었을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로 저렇게 지은 게 아니라 그 생물의 시신을 골조로 활용하기 위해서 저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였을까?”
문득 에리우가 중얼거렸다.
“아주 큰 뭔가가… 죽어서 남긴 흔적 같아.”
모르드만이 아니라 다들 비슷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에리우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이, 그 근본에 새겨진 기억이.
“나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입이 없어.”
쿠궁…….
에리우가 자신의 느낌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사이, 로텐다르가 남해용왕궁의 접안시설에 멈춰 섰다.
* * *
남해 용왕의 알현실은 거꾸로 뒤집힌 탑의 꼭대기, 그러니까 가장 깊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술법의 힘에 이끌려 아래로 내려가자 서해용왕궁이 그렇듯 정면에서 열리는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높이가 100미터에 달하는 그 거대한 문을 지키는 해룡족 근위병이 말했다.
[모르드 공 일행분들만 먼저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한울왕자 일행분들은 따로 알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한울왕자는 조금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궁…….
곧 거대한 문이 열리며 알현실 안쪽에 자리한 남해용왕의 모습이 드러났다.
‘흑룡이었군.’
남해용왕은 검은 비늘을 가진 이스트람의 혈손이었다.
진룡 란팔로제의 아들인 서해용왕과 달리 기다란 뱀 같은 몸에 하나의 머리, 그리고 여섯 개의 뿔을 가진 동양적인 풍모의 용이다. 열린 조개를 본떠 만들어진 거대한 옥좌에 똬리 튼 그 몸의 길이는 총 300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몸길이로만 보면 서해용왕보다 더 크다. 하지만 서해용왕은 삼두룡이라 전체 면적은 비슷할 것 같군.’
모르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해용왕과 눈을 맞추었다.
이 거대한 흑룡은 서해용왕과 동격의, 마치 천상의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한 신처럼 거대한 신성의 소유자였다.
“새벽 반도 남해의 지배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영한다, 모르드 공. 페세이타의 성자, 또한 세레스의 성자이며 베르나스의 성자인 자여.]위엄 있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모르드의 옆에 서 있는 에리우를 보며 물었다.
[여(余)가 그대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겠는가? 에리우 란팔로제이길 거부한 그대를.]그녀는 이미 에리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리우야. 그거면 돼.”
[알겠다. 에리우여, 여는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다.]“나한테? 왜?”
에리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남해용왕은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용의 얼굴이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남해용왕의 이름은 어둠비 이스트람.
그녀는 진룡 이스트람의 딸이었으며 또한 에리우가 그 피를 흡수한 이스트람 유리의 할머니이기도 했다.
* * *
서해용왕과 남해용왕 같은 1세대 용들은 현세에서 그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천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천상에 오른 신들과 대등하게 이 세상의 패권을 두고 다투며 강대한 권능으로 세계를 조각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종전 협상에 따라서 여섯 용왕의 영향력은 오직 새벽 반도와 그 주변 바다에만 영향을 끼치는, 그것도 그 강대함에 비해서는 좁디좁은 용왕궁에 갇혀 이곳에서만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지켜온 세상이 파멸해 가는 와중에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천상의 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보다도 훨씬 더.
[…….]남해용왕은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음미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모르드 일행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회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흑룡의 머리 앞에는 에리우가 서 있었다.
용성주를 마시고 만난 이스트람이 그러했듯이, 남해용왕 또한 에리우를 통해 이스트람 유리의 사념과 만난 것이다.
그것은 이스트람 유리 본인은 아니다. 이 시대까지 보존된 피에 남은 사념일 뿐.
그럼에도 이 만남에는 의미가 있었다.
수천 년 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손녀와의 해후는 남해용왕의 마음에 크나큰 파문을 그려내었다.
이윽고 남해용왕이 눈을 뜨고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은혜를 입었군. 보답을 하고 싶다. 에리우여, 여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가?]에리우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모르드가 바라는 걸 들어줘.”
[으음? 그대 자신이 바라는 건 없는가?]“있어. 하지만 괜찮아.”
[어째서인가? 여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여만 한 존재가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분명 살면서 다시 만나기 힘든 귀중한 기회일 것이다.]“모르드가 원하는 걸 이루는 게 내가 바라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다 모르드가 줬어. 이 힘도, 이 마음도. 그러니까 남해용왕, 당신은 모르드가 바라는 걸 들어줘. 그러면 우리가 이 땅을 구해줄 거야.”
남해용왕은 오랜만에 어떤 감정을 떠올렸다.
경이감이었다.
눈앞의 존재는 어리고 보잘것없었다.
감히 누가 에리우를 보며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싶다마는, 남해용왕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녀는 에리우 란팔로제가 어떤 존재인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보았기 때문이다.
만신전의 신명을 다투던 위대한 신들, 세상의 원소 법칙을 무기로 휘두르던 강대한 근본 엘프들을 상대로 용족의 세계를 수호하던 자.
그런 존재에 비하면 에리우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그럼에도 남해용왕은 그녀에게서 에리우 란팔로제의 흔적을 본다.
신성이나 신통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이 땅을 구해줄 거야.’
현실을 모르는 어리고 미숙한 이의 허세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다.
모르드 일행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 땅에 드리운 절망의 그림자는 너무 짙었다.
이 땅을 수호하는 위대한 존재들조차 절망과 무력감 속으로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오늘의 종말을 내일로 유예하는 것뿐, 누구도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에리우의 말은 남해용왕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저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로, 그녀가 아는 위대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기에.
그리고 그 안에 그녀가 사랑했던 손녀의 흔적이 존재하기에…….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남해용왕은 에리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그대의 말대로라면, 이는 여를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감사 인사는 필요 없다.]“궁금한 게 있어.”
“이 용왕궁은… 누구야?”
[…….]남해용왕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에리우가 남해용왕궁의 실체를 알아차려서는 아니다. 그것은 모르드 일행 정도의 신성을 지닌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에리우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입이 없어서 말을 못 해.”
[…그러할 것이다.]남해용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대는 그 사실을 애석해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이미 그분과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으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에리우에게, 남해용왕은 그녀가 바라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 남해용왕궁은 위대한 아버지의 주검 일부를 골조로 삼아 지어졌느니라.]남해용왕궁의 골조가 바로 신화에 죽어 이 심해에 가라앉은 진룡 이스트람의 주검이라는 것을.
‘이렇게 거대함에도 일부에 불과하단 말인가.’
모르드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물론 진룡은 진정으로 우주적인 존재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질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세계로 넘어와 신화에 참전할 때는 스스로를 그 본질에 비해 훨씬 작게 만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보다 컸다니…….
[위대한 아버지의 의지는 여전히 이곳과 통해 있으니… 입이 없어 말씀하실 수는 없으나 그대를 보고 계시리라.]“이스트람이 보고 있어?”
[그렇다.]에리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허공에다 대고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안 해도 보고 계실 것이다. 지금쯤 분명 지금 그대의 모습을 술안주 삼아 한잔 걸치고 계시겠구나.]남해용왕은 왠지 한숨을 참는 기색이었다. 죽은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 치고는 진지함이 결여된, 그렇기에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그럼 서해용왕궁도 누군가의 주검이야?”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유골이나 피와 살이 들어가 있기는 하겠지만, 이곳처럼 통째로 누군가의 주검을 골조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이스트람은 자신이 죽고 나서 세상에 남겨질 후손들을 위해 무엇이든 남겨주고 싶어 했다. 이 남해용왕궁이 그의 시신 일부를 골조 삼아 지어진 것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남해용왕궁은 세 바다의 용왕궁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힘이 비장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해줄 것이라 믿겠다. 밖에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은 알 자격이 없는 이야기다.]“응.”
에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드는 차분하게 요구사항을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날, 모르드 일행은 남해용왕궁에게 있어서 남해 수군 이상으로 중요한 협력 대상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