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52)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52화
단죄자들을 발칵 뒤집어지게 만들어준 모르드 일행은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황금사과 조각까지 먹어가면서 몸을 회복하긴 했지만, 워낙 많은 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면서 연이어 격전을 치르다 보니 피로도가 상당했던 것이다.
단죄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람이 없는 작고 외딴 섬에 간 그들은, 광범위한 결계를 쳐서 단죄자들에게 관측당할 위험을 막고 마음 편하게 쉬었다.
그런데 휴식이 이틀째에 접어들었을 때, 긴급한 통신이 날아들었다.
“전쟁?”
한울왕자가 있는 서남도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다.
* * *
한울왕자의 세력권인 용하, 강문, 오흥 세 도시 중에 가장 공격하기 만만한 곳을 꼽으라면 오흥이었다.
용하는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도시였고, 강문은 오랫동안 군문에 의해 지배되었던 만큼 강을 끼고 있음에도 방어가 철저한 구조였다.
그에 비해 오흥은 사방이 탁 트인 지형 한복판에, 일종의 관문도시로서 위치해 있다 보니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기 용이하다.
그런데 이번에 공격받은 곳은 세 도시 중 어디도 아니었다.
용하와 강문을 연결하는 역할로 건설되어 차근차근 규모를 확장해가고 있던 관문도시였다.
“이런 무도한 것들이…….”
본래 강문의 지배자 박 장군의 지위를 승계할 예정이었던 남자, 박성규는 적들의 공격에 의해 개척마을 일부가 불타오르는 걸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적들은 소수의 정예병력으로 산악지형을 넘어오는 수고를 해가면서 개척마을을 기습했다. 아마 후발대가 따라오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적들은 단죄자도, 요괴도 아니었다.
서남도의 다른 지방 세력들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온누리를 재건해야 할 이때에… 그 보잘것없는 권력을 잃기 싫어서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지원군을 꾸려서 질풍처럼 달려온 박성규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을의 방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을 퍼붓는 적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마음속 한구석이 아파온다.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군.’
사실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버지인 박 장군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울왕자에게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했으니 분위기상 따를 수밖에 없었을 뿐, 마음으로 승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백룡군을 내부로부터 잡아먹고 반역할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의 야심이 스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르드 일행과 생존자 부대의 힘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그 신화적인 힘 앞에서 그의 야망 따윈 태풍 앞의 촛불처럼 부질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느낀 바가 있었다.
‘온누리를 재건하려면 저런 힘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반역을 성공시켜서 한울왕자의 목을 베고 그의 세력을 흡수했다고 치자.
과연 그 세력에게 미래가 있는가?
없었다.
단죄자의 대군과 직접 맞부딪쳐보니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작은 지방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어 권력을 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는 다가오는 종말에 삼켜질 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그리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온누리 재건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박성규는 새로운 야심을 품었다.
백룡군으로서 공을 세우고, 또 세울 것이다.
그리하여 한울왕자의 총애를 받는 요인이 되어, 온누리를 재건하고 세상을 구한 공신이자 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그 또한 사나이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는 야망이었다.
“백룡군! 마을로 진입한다!”
와아아아아아!
그 함성을 들은 마을의 수비병력이 반색했다.
“지원군이 왔군!”
반면 의외로 강력한 수비병력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고 있던 적들은 경악했다.
“벌써? 대체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꼬였다.
개척마을의 수비병력은 적었다. 하지만 마침 이 마을에는 용하와 이곳을 자주 오가는 생존자 부대 몇 명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단숨에 개척마을을 점령하고자 했던 적의 의도는 좌초되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 통신기 때문에 적이 습격해 오자마자 바로 용하와 강문에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지원을 청할 수 있었다.
한울왕자 세력은 개척마을의 수비병력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단죄자나 요괴가 쳐들어오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기에 신속하게 지원군을 보낸 것이다.
“젠장!”
적 지휘관은 완전히 꼬여 버린 상황 앞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 * *
지원군이 합류하여 전투를 벌이는 사이 적의 후발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속도를 높인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개척마을은 선발대를 격파하고, 박성규가 이끄는 1차 지원군에 이어 달려온 2차 지원군까지 합류한 참이었다.
“아…….”
그리고 이 2차 지원군에는 생존자 부대 몇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프록스 일파와 달리 온누리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김운산 일파가.
“주석운, 이 친구야…….”
김운산의 눈시울이 붉게 젖었다.
이곳에 와 있던 세 명의 생존자 부대원 중 한 명, 용족 주석운이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개척마을의 수비병력은 절대적인 열세에 처해 있었다.
방책을 두르고 방비를 다져놓았다지만 그래 봤자 건설된 지 얼마 안 된 마을일 뿐.
이런 상황에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적들을 방책 바깥에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이 막강한 전투능력을 가진 생존자 부대원들이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인연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생존자 부대원들은 오랫동안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던 이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용하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정을 주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전에 단죄자들에게 자식을 잃은 용족 주석운은 용하의 부모 잃은 아이들을 안쓰럽게 여겨 틈틈이 먹을 것을 사주거나 이것저것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재주를 가르쳐주곤 했다.
그러던 중 몇몇 아이들이 자신들과 연이 있는 어른들을 따라 개척마을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떠난 아이들이 걱정되었던 주석운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개척마을로 와서 그들이 잘 사는지 살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척마을 아이들 모두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자신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술법이 걸린 화살에 심장이 꿰뚫려 숨이 끊어진 그의 손을, 개척마을의 아이들이 붙잡고 울고 있었다.
김운산은 탄식했다.
“단죄자도, 요괴도 아니라… 사람과 싸우다 죽다니.”
생존자 부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단죄자들에 의해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만 하는, 피로 물든 길의 시작 지점일 뿐이었다.
* * *
연락을 받은 모르드 일행은 최고속도로 용하로 귀환했다.
한울왕자와 수뇌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드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북쪽의 주하왕자가 인접한 두 도시와 연합해서 공격해 왔소.”
공석이었기에 한울왕자는 공적인 말투를 썼다.
서남도에는 세 명의 황손이 있었다.
본래 황실의 핏줄을 이은 자들은 한두 명이 아니지만 황통의 제를 지내 천명의 불꽃을 품은 자만이 황손으로 인정받는 법.
황손의 존재가 지방세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지방세력들은 어떻게든 황통의 제를 지낸 황손을 우두머리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실권은 없는 얼굴마담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주하왕자는… 꼭두각시지.”
그리고 주하왕자는 군벌세력의 얼굴마담으로 세워진 자.
따라서 전쟁을 결의한 것은 그를 내세워 권력을 행사하던 자들이다.
한울왕자의 명성이 빠르게 퍼져가며 통합과 재건을 갈망하는 민심을 자극하는 지금, 그들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참에 주하왕자를 명분 삼아 주변 세력을 끌어들인 뒤 한울왕자의 세력을 격파하여 서남도를 집어삼키자고.
한울왕자가 말했다.
“저들이 먼저 공격해 온 이상 전쟁은 피할 수 없지. 동맹으로서 협력을 구해도 되겠소?”
“그러도록 하지. 어느 선까지의 협력을 바라지?”
모르드 일행은 이미 시작되어 버린 서남도 통일 전쟁에 직접 참가해서 적들을 베어 넘길 마음은 없었다.
그럴 시간에 단죄자를 하나라도 더 줄여놓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한울왕자의 동맹으로서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물자를 지원하고, 후방을 든든히 해주기는 할 것이다.
“모르드 부대의…….”
“음?”
“왜 그러시오?”
“생존자 부대를 그렇게 부르는 건가?”
“아, 미안하오. 사람들이 귀공을 모르드 장군이라고 부르는 건 알고 있소?”
“…….”
사람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안 해서 모르고 있었다.
“귀공이 허락한다면 공식적으로도 장군이라 칭하고 싶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미 백성들이 그렇게 부르며 칭송하고 있는 데다가 장군이라는 직함에는 모두를 설득하기 쉬운 힘이 있기 때문이오. 물론 흑룡어사나 신들의 성자로 불러드릴 수도 있긴 하오만, 병력을 거느린 지휘관이라면 아무래도 장군으로 불리는 게 가장 직관적이지 않겠소?”
“으음. 알겠다.”
모르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면 괜히 정정하려고 해봐야 혼란을 부를 뿐이다.
한울왕자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생존자 부대는 다소 불명확한 이름이지 않소? 아무래도 모르드 장군 휘하의 모르드 부대라고 부르는 게 여러분을 세력화해서 알리는 데도 좋을 것으로 사료되오.”
“일리가 있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모르드의 기분은 미묘했다.
‘모르드 섬에 모르드 장군에 모르드 부대라니…….’
어째 자신의 이름이 붙은 무언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신화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이름이 알려질수록 좋은 것이긴 하지만…….
조리 있게 모르드를 설득한 한울왕자가 말을 이었다.
“모르드 부대원 중에 전사자가 나온 것은 알고 있소?”
“뭐라고?”
“아직 모르셨나 보군. 주석운이라는 무사가 개척마을을 지키다가 전사했소.”
“…….”
모르드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부상자는 있어도 전사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이 기이한 일이다.
“그래서 참전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들었소. 그런 자원자들의 참전을 허가해 주기를 요청하오.”
“알겠다. 그 문제는 내가 부대원들과 면담을 해보고 결정하지.”
“잘 부탁드리겠소.”
* * *
온누리의 장례문화는 기본적으로 화장(火葬)이었다.
먼 과거에는 매장이 가장 보편적이었던 때도 있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몇 번의 거대한 언데드 사태와 요괴 사태를 겪으면서 화장이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생존자 부대, 아니, 이제는 모르드 부대로 불리게 된 이들은 주석운의 장례를 모르드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렀다.
시간이 갈수록 김운산 일파와 프록스 일파로 갈라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르드 일행을 울타리 삼아 뭉친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동지애를 느끼고 있었다.
파르웰과 케엘이 일으킨 성대한 불길로 화장을 치른 뒤, 그들은 주석운의 유골을 여럿으로 나누었다.
일부는 전통적인 유골함에 담아 용하의 진룡사원 묘지에 안치했고, 나머지는 작은 금속상자에 나눠 담아 주석운과 친했던 이들이 목걸이로 만들어 걸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이 싸움의 끝까지 데려가 주겠다는, 그들 나름의 의식이었다.
“이미 겪은 이들도 있겠지만, 이제부터의 싸움은 단죄자와의 싸움이 아니다.”
한울왕자 세력이 치를 싸움은 스스로를 온누리 사람이라고 여기는 동포들끼리의 내전이다.
“그럼에도 참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 마음을 따르도록.”
“전 가겠습니다.”
“우리의 동맹 아닙니까? 어차피 싸워서 피를 흘리는 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적어도 그동안 정붙인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석운이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지요.”
놀랍게도 모르드 부대는 다들 참전 의사를 밝혔다.
그들이 용하에 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용하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곳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들이 그토록 다시 보기를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은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었다.
이후의 세상에서 온누리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겠노라는 이들이 모인 프록스 일파조차도 그 점에서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분의 의사를 존중하지.”
모르드는 전의로 불타오르고 있는 이들에게서 눈을 돌려 한 곳에 시선을 던졌다.
모두의 열기에 동참하지 않고 망설이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니스카와 서둔이었다.
“저는…….”
고민하던 니스카는 한숨을 쉬었다.
“…모르드 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단죄자들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니스카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가장 막강한 전력인 그가 빠지는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프록스 일파는 이후에 대륙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꿈이라도 있지만 니스카는 얼마 남지 않은 엘프들을 데리고 서대륙으로 떠나고 싶다는 입장이었으니까.
“저는… 갈게요.”
서둔은 참전하기로 했다.
솔직히 참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만 전쟁터에 보낼 수는 없었다.
사실 김운산은 이런 싸움에서는 서둔을 떼어놓고 싶었지만, 서둔이 그럴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딸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김운산은 뜻을 돌릴 수 없었다.
김운산 일파의 수장이라는 입장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