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96)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896화
백색 드라칸은 육성이 아니라 정신파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입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온몸이 얼어버린 상황에서도 말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신파조차 얼어붙은 듯 가닥가닥 끊어지는, 생소한 감각이 공포스러웠다.
[정, 말로… 에리, 우… 란팔, 로, 제……?]그리고 그 의문조차 끝까지 말할 수 없었다.
꽈광!
에리우가 거침없이 뛰어들어 별방망이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몸이 터져 나갔다.
[어째, 서……?]백색 드라칸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에리우 란팔로제가, 어째서?]몸이 박살 나서 얼어붙은 땅을 나뒹굴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을 뿐이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난다.
그를 감싼 푸른빛이 강해지면서, 얼어붙어 부서진 몸이 급속도로 재생하기 시작한다.
마왕에게서나 볼 법한 초재생능력이었다.
평소의 에리우였다면 초재생능력이 제대로 발현되기도 전에 추가타를 넣어서 끝장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백색 드라칸이 재생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깊어졌어.’
그녀는 그 광경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했다.
* * *
본래 자연에서 태어난 요괴는,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연으로 여우 요괴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섬김받고, 인간들이 제물로 바친 인간을 먹으며 힘을 기른 끝에 신이 되었다.
그리고 짐승과 인간의 모습을 합친 신은, 용족에게 사로잡혀 용족화 시술을 당함으로써 용족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보다 고위의 존재로 격상된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재앙이었고, 전락이었다.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여우인간은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죽여 버리고 잡아먹으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만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용족이 되는 순간 그는 질서와 규범을 지키도록 강요당했다.
충동을 억누르고 용족이 강요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그래야만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그 사실에 진저리쳤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던전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도망쳤다.
용족으로서의 부분을 분리하여 봉인하고, 오랜 세월 동안 잠들며 때를 기다렸다.
자신에게서 자유를 박탈한 용족의 신화가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용족이 신화의 패권전쟁에서 패배한 채로 신화가 끝난다면, 나를 용족으로 만드는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런 믿음으로 도박을 한 것이다.
도전자를 먹어치우지 않고 던전의 일부로 만든 것도 그것을 위해서였다.
신성을 더 키워서 설령 용족으로서의 부분이 봉인에서 풀려나더라도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해.
그러나 그 장대한 야망은 모르드 일행을 만남으로써 실패로 끝났으며…….
* * *
‘너무 깊어졌어.’
에리우는 탄식했다.
여우 요괴는 용족이 되는 것을 넘어서 파멸에 이르고 있었다.
용족은 순수하게 번식하는 것만으로 이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외부의 존재를 끊임없이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개체 수를 유지하고, 종족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모든 용족은 여섯 진룡에게 뿌리를 둔 존재라는 것이다.
용족 부모에게서 태어난 용족도, 다른 종족이었다가 용족화 시술을 받아 용족이 된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흑룡(黑龍) 이스트람
백룡(白龍) 란팔로제
녹룡(綠龍) 오그룩시안
황룡(黃龍) 이레티샤
적룡(赤龍) 바렌쉬엔
청룡(靑龍) 하르그티온
같은 진룡의 계보를 잇는 용족들은, 핏줄보다도 더 깊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에리우는 자신과 같은 뿌리로 이어진 용족의 파멸을 보고 있었다.
‘신성의 바다에 빠져서 익사하고 말 거야.’
용혼강림의 동조율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백색 드라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서 폭주하고 있다. 결국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인해 그릇이 부서져 버리리라.
그러나 부서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진룡에 가까워져 간다.
깊숙이, 더욱 깊숙이.
그들의 근원을 향해 떨어져 가며, 더욱 신화적인 권능을 손에 넣는다.
[어째서!]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죽음이 예정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째서 당신이 그토록 초라한 모습으로!]백색 드라칸은, 본래의 그라면 할 리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백룡노호!
막무가내로 전개한 용신통이 폭발한다.
콰아아아아아!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다.
순백이 냉기 파동이 반경 1킬로미터를 극초음속으로 강타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정령들을 불러내서 막아낸 케엘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멀찍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용신통을 전개하는 속도도, 위력도 차원이 달라져 있었다.
“아직이다.”
모르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에리우가 뭔가를 보고 있다.”
같은 진룡 란팔로제에게 뿌리를 둔 존재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에리우 란팔로제!]백색 드라칸이 외치고 있었다.
[당신일 리가 없어!]“그래, 아니야.”
에리우가 이를 악물었다.
-백룡노호!
그 앞에서 다시금 용신통이 폭발한다.
-백룡노호!
에리우도 같은 용신통으로 맞선다.
순백의 파동이 서로 충돌하며 일순간이 거대한 얼음장벽을 형성하고…….
쿠구구구궁!
그 무게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붕괴한다.
자신의 몸통보다 몇 배는 큰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에리우가 푸른 궤적을 그려내며 그 사이를 질주한다.
[어째서 당신이 이토록 초라한 모습인가! 이래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래서는 안 된다!]백색 드라칸은 절규하고 있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완전히 용혼강림에 정신이 먹혀 버렸다.
꽈광!
그 앞으로 뛰어든 에리우가 별방망이를 내려찍었다.
양팔을 교차해서 그것을 막아낸 백색 드라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난 에리우야.”
그녀가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백색 드라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한다.
“나는…….”
그녀의 몸을 감싼 푸른빛이 강해진다. 백색 드라칸을 감싼 푸른빛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빼앗기지 않을 거야.”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백색 드라칸은,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자신의 신화를 용족의 신화에 먹혀버린 것에 이어 자아까지도 잃어버린 채 파멸을 향해 전력으로 추락해가고 있다.
백색 드라칸이 미친 듯이 웃는다.
[말은 쉽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에리우 란팔로제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으면서!]“나는 초라하지 않아.”
[아니, 당신은 초라하다! 에리우 란팔로제는 위대한 존재였어! 우리를 위해…….]백색 드라칸이 움찔했다.
[…우리를 위해 죽었다?]순간 에리우의 칠감이 과거의 한순간을 포착한다.
* * *
에리우 란팔로제는 드넓은 창공을 날고 있었다.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보다 수십 배는 큰 백색의 용이 그녀를 머리 위에 태우고 있었다.
“가라.”
에리우 란팔로제가 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죽는 건 나 혼자면 되느니.”
“하나도 안 멋있으니까 썰렁한 농담 그만하거라. 저건 나 하나로 봉합할 수 있다.”
에리우 란팔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야만 하느니라.”
그녀의 눈이 닿은 곳에서, 태양이 먹히고 있었다.
일식(日蝕)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연현상과는 다르다.
어둠의 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녹여 태양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으니까.
“가거라. 모두에게 내 마지막을 전해줄 누군가가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에리우 란팔로제는 하늘을 향해 별방망이를 집어 던졌다.
별방망이와 이어진 염동력의 실이 그녀를 붙잡고 하늘 높이 상승시킨다.
안타까워하는 백룡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져 간다.
[용족?]태양에 가까운 천공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리우 란팔로제? 네가 어째서 여기에?]에리우 란팔로제가 웃는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몇 번이나 전장에서 만났던 목소리였다.
“루트라.”
태양신 라타스가 동대륙에서도 그 신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낸, 위대한 화신.
오대신격의 하나로 불리는 라타스는, 용족의 신화 세계관이 건재한 동대륙에서는 아직 그 신위를 위협받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 얄미운 낯짝을 얼려서 부숴 버리고 싶었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에 먹히는 태양 곁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부유하는, 눈부신 빛에 휩싸인 남자의 멱살을 쥐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에리우 란팔로제는 루트라의 멱살을 잡고 지상으로 집어 던졌다.
[에리우 란팔로제! 어쩔 셈이냐!]“온 힘을 다해 우리의 백성을 지키도록 해라. 넌 재수 없는 신이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명예를 아는 놈이라고 믿느니라.”
[설마… 죽을 셈이냐!]“글쎄.”
에리우 란팔로제는 유성처럼 추락해가는 루트라에게 코웃음을 쳐주고는 다시 태양을 향해 비상했다.
“닿기만 한다면…….”
그녀의 몸 위로 새하얀 용의 형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울부짖고 사라지는 환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십 미터, 수백 미터, 수 킬로미터, 수십 킬로미터…….
끝없이 커져간 끝에 태양을 집어삼키는 괴물과 마주할 정도로 거대한 백색의 용으로 화한다.
[…태양조차 얼음 덩어리로 바꿔놓으리라!]그리고 신화의 백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울부짖었다.
-백룡노호(白龍怒號)!
백룡을 이루는 모든 힘이 폭발하며, 어둠에 먹혀가던 태양을 집어삼켰다…….
* * *
“…….”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창 적과 격전을 치르는 동안에 잠이 들다니.
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를 위해… 죽었다…….]백색 드라칸은 망연해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또한 본래 그가 느낄 감정이 아니다. 용혼강림에 먹혀 버렸기 때문에, 과거에 존재했던 용족 누군가가 된 것처럼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
“그렇구나…….”
에리우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조금은 닮았구나.”
방금 전에 백일몽을 통해 본 것은 짧은 과거의 편린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진실이었다.
[에리우 란팔로제는 죽었다!]백색 드라칸이 광기에 차 외친다.
하지만 에리우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서로 소중한 것이 다를 뿐이었어.”
자신과 그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싫어하는 파도 소리를 자신은 좋아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와 자신은, 겉모습만큼이나 닮은 구석도 있었다.
‘소중한 누군가가 죽는 것보다는 내가 사라지는 게 나아.’
에리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에리우 란팔로제 또한 그랬다. 그녀는 그런 마음으로 죽었다.
[너는 에리우 란팔로제가 아니야!]“고마워.”
절규하는 백색 드라칸에게 에리우는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자신에게 일부나마 과거를 엿보여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래도 나는 너처럼 되지 않을 거야.”
[아아아아아아!]백색 드라칸이 비명을 지른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 균열이 발생하며 푸른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명체의 몸이 파괴되는 게 아니라 도자기가 안쪽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 나가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파멸의 순간이 왔다. 그의 몸이 더 이상 용혼강림으로 흘러드는 힘을 견디지 못한다.
‘만약 너처럼 나를 빼앗기는 때가 온다면.’
에리우는 모든 용족이 내재한 그 파멸의 가능성 앞에서 별방망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쳤다.
‘스스로를 부숴 버려서라도 막겠어.’
그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것이다.
콰아아아아아!
에리우의 일격이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파멸로 추락하던 존재의 고통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