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25)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25화
제279장 예기치 못한 충돌
아르판 제국의 수도는 아르파누아라는 이름으로 불린 도시였다.
이 도시는 북방에 위치해 있기에, 다들 새하얀 동토 한복판에 위치한 삭막한 풍경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실제로 아르파누아를 보면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파누아가 위치한 지방은 광활한 동토 한복판에서 마치 그 부분에만 은총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따뜻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물이 풍부하고 비옥하기까지 했다. 이런 곳을 뿌리로 삼은 아르판 제국이 동토에 사는 다른 이들을 정복하고, 제국을 일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 비정상적인 기후에는 신화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한때 태양신의 자리를 노렸던 존재가 아르판 제국 황실의 조상에게 붙잡혀 이 땅의 얼음을 녹이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도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그 힘이 명멸하며 이 땅을 따스하게 덥혀주고 있다고 한다.
수확자 하쿠룬의 성역은 그 아르파누아였다.
그가 나고 자란 남대륙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땅이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땅의 추위는 정말로 끔찍했다.
그렇기에 그는 아르파누아를 자신의 성역으로 삼고, 황궁에 거하고 있었다.
비록 건축 양식의 차이가 크긴 했지만 그에게는 크고 호사스러운 공간이 익숙하기도 했다. 그는 신화에 남대륙의 패권을 다투던 쿠름 제국의 황손이었으니 말이다.
“자네들은 참 이상해.”
하쿠룬은 옆으로 누워 턱을 괸 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나?”
그의 앞쪽에서는 단죄자가 된 세 명의 카리안 클론들이 쌓인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만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쿠룬이 그들의 유능함을 높이 사서 붙여준 단죄자들이 그들의 지시에 따라서 일을 척척 처리하는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업무 효율이 나오고 있었다.
중년의 카리안 클론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시켰잖아?’
일 시켜놓고 왜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뭐 어쩌라는 것인가?
단죄자의 삶과 죽음, 그 영혼의 거취조차 뜻대로 결정하는 신화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입장이면서?
그 얼굴을 본 하쿠룬은 피식 웃었다.
“물론 일이 주어졌으면 해야지. 하지만 지나치게 열정적이어서 말이야. 혹시 그 일이 재밌나?”
“일은 재밌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죠.”
“그런데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나?”
“말씀하시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열정적입니까?”
중년의 카리안 클론은 눈살을 찌푸렸다. 진심으로 하쿠룬이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하쿠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열정적이지. 주어진 일을 척척 처리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일을 찾아서 하지 않나? 다들 신경 못 쓰고 있던 것까지 일로 만들어서 일거리를 늘리고, 그걸 또 사람을 붙여달라고 요구해가면서까지 척척 처리하고……. 자네들이 내 일을 시작한 후로 총 업무량 자체가 다섯 배는 늘어난 것 같은데, 혹시 더 되나?”
“…….”
중년의 카리안 클론은 말문이 막혔다.
‘듣고 보니 그렇네?’
그냥 습관적으로, 예전에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다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쿠룬이 말했다.
“내 고향에선 보통 점심 무렵에는 다들 세 시간 정도는 자거나 쉬었지. 자네들처럼 하루 종일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세 시간이나 쉰다고요? 그러고도 일이 되었습니까? 황실의 일 아닙니까?”
다른 카리안 클론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하쿠룬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고향 땅은 이곳과는 달리 아주 뜨거웠지. 한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많았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지.”
남대륙, 아니, 쿠름 제국 전역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쿠룬이 지내던 곳은 그랬다.
“자네들의 원본이라는 카리안이라는 마법사는 일에 미쳐 버린 존재였을 것 같군. 아닌가?”
“음……. 그랬긴 하지요.”
카리안 클론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쿠룬이 말했다.
“나하고는 정반대야. 나는 예전부터 일하는 게 싫었지. 그리고 야심도 없었고.”
수확자가 된 후에도 그런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더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지역이 아니라 이곳을 자신의 성역으로 삼은 것이다. 마경을 정화하는 전쟁이 끝난 후로는 수확자 중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땅이었으니까.
“황손으로 태어났으나 황좌에 대한 욕망 따윈 없이 그냥 귀한 존재로 대접받으며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지. 천년만년 언제까지나…….”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황손이었던 시절에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누구를 차기 황제로 지지할 것인가?
중립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목숨이 걸린 선택 앞에서 그는 피 말리는 고통을 겪었다.
수확자가 된 후로는 일을 강요받았다.
황손이었던 시절처럼 남에게 다 맡기고 놀고먹는 건 불가능했다.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일을 놔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자네들은 마치 나를 야심 있는 사람처럼 만드는군. 자네들 덕분에 내가 아주 열정적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
카리안 클론들은 흠칫했다. 마치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투였으니까.
그들의 굳은 표정을 본 하쿠룬은 아차 했다.
“미안하군. 탓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만으로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말이지.”
하쿠룬의 성역은 야심이나 열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부에서 떨어지는, 수확자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들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쿠룬이 업무를 카리안 클론들에게 맡긴 후로 급격하게 상황이 달라졌다.
일이 척척 처리되나 싶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늘어났다.
여태까지 신경도 안 쓰고 있던, 아르파누아를 따뜻하게 만드는 열기의 근원을 조사한다거나.
한번 단죄자들에 의해 파괴된 후로 대충 얼기설기 기우듯이 수복해서 살고 있던 아르파누아를 대대적으로 보수한다거나.
단죄자들의 무기 생산 기술을 체크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마법을 부여할 방법을 개발한다거나…….
광활한 옛 아르판 제국령 곳곳에 잠들어 있을 신화의 흔적을 탐색하기 위한 탐사대를 운영한다거나…….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하쿠룬이 이곳을 성역으로 삼은 후 전례 없는 활기가 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주변의, 나아가서는 상부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카리안 클론이 조심스럽게 하쿠룬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저희가 일을 추가로 벌이는 것이 불쾌하시다면…….”
“그런 뜻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지. 아주 재미있어.”
“재미… 입니까?”
“분명 내 일은 줄었는데, 주변에서 처리되는 일은 몇 배로 늘었지. 신경도 안 쓰고 있던 일들이 척척 굴러가더니 주변이 변해. 재미있지 않은가?”
“…….”
“아, 물론 중요한 건 내 일은 줄었다는 점이지. 내 일이 늘어났다면 내가 재미있어하고 있진 않았을 거야. 그 점만은 명심해 주게.”
활짝 웃으며 말하는 하쿠룬에게 카리안 클론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니스카는 일데르바 일족이 되었다.
이것은 케엘과 니스카, 양쪽 모두에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케엘은 그 경험을 수십 번, 수백 번이나 되새겨보았다.
‘불씨를 전하여 상대방이 지닌 불길을 키운다…….’
모든 엘프, 아니, 모든 정령 신화 세계관의 존재는 정령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들 모두는 본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령이다.
그렇기에 그림자 엘프인 니스카는 일데르바의 일족이 될 수 있었다.
일데르바 일족을 이루는 근원의 불씨를 떼어 그의 본질에 더한다. 그러자 그 본질이 근원의 불씨에 물들어 환하게 불타오르며 니스카의 존재를 일데르바 일족으로 바꾸었다.
케엘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냈는지 알았다.
한 번의 경험이었을 뿐이지만, 뭐든지 첫 번째 경험은 이후의 반복된 경험보다 훨씬 큰 울림을 남기는 법이었다.
케엘은 이 한 번의 경험이 자신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 경험을 되새기는 데 전념했다.
니스카는 자신이 더 이상 그림자 엘프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깨달음 후에 찾아온 것은 슬픔, 그리고 환희였다.
그리고 후자가 압도적으로 컸다. 영혼의 뿌리고 뭐고 수십 년 동안 굶주리며 쇠약해졌던 육체에 눈부신 활력이 넘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회복에만 전념하는 기간은 필요 없었다. 일데르바 일족이 되는 순간, 그는 마치 황금사과라도 하나 먹은 것처럼 쌩쌩해졌으니까.
일데르바 일족이 된 니스카의 외모는 변해 있었다.
비쩍 말랐던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가득했고, 해골처럼 야위었던 얼굴도 수려함을 되찾았다. 그것만으로도 어제, 아니, 아까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다.
“스승님…….”
문득 초드나가 생각났다.
자신에게 미래를 맡기고 희생했던, 하지만 적의 주구가 되어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던 사람.
그에 대한 은원은 정리했다. 은혜는 그의 영혼을 구하는 것으로, 원한은 언데드가 된 그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그래서 이제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순수하게 과거의 그를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천상에서 지켜보면서 아쉬워하십시오. 당신의 제자는 현세에 남아서 새로운 신화에 이름을 남길 테니.”
일데르바 일족의 힘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확신을 얻은 그의 몸에서 햇살 같은 빛이 일어나 주변을 밝혔다.
* * *
니스카가 케엘에게 마투술을 가르쳐보겠다고 찾아온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
일데르바 일족이 되면서 육체 능력도, 감각도, 신성까지도 모든 것이 변했다.
특히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를 당연시하는 상태가 수십 년 동안 계속되다가 갑자기 최상의 컨디션으로 회복되었으니 그 격차가 너무 컸다. 그만큼 새로운 존재가 된 스스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며칠 동안 그는 케엘과 세데아에게 몇 가지 상담을 했을 뿐, 스스로를 파악하고 익숙해지는 작업은 혼자서 했다.
니스카가 제안했다.
“일단 케엘 님의 실력을 파악할 겸 한번 붙어보고 싶군요. 어떻습니까?”
“해보죠.”
먼저 두 사람은 순수하게 마투술로만 맞붙었다.
당연히 케엘이 압도적으로 패배했어야 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니스카가 이기긴 했지만 케엘은 정말 끈질기게 버텨냈다.
‘놀랍군.’
마투술사로서 높은 경지에 오른 자가 반드시 자신보다 낮은 경지에 오른 자에게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싸움에는 아주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스카가 본 케엘은 변수 덩어리였다.
“검술이 굉장히 뛰어나시군요.”
“…….”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런 평가를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너무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라 케엘은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르드와 달시 때문에 기술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못 들어본 지가 한참 되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니스카는 의아함을 느꼈다.
“예? 다들 보는 눈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케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니스카도 나중에 모르드나 달시하고 여러 번 대련하다 보면 케엘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니스카는 의아했지만 더 파고들지 않았다.
“버티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십니다.”
그가 본 케엘의 검술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장점이 있었다.
그의 공세를 뚫고 밀어붙이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단 수세를 취한 케엘은 짜증 날 정도로 끈질긴 방어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걸 중점적으로 훈련해왔으니까요. 일부러 능력을 제한한 채로 훈련하는 경우도 많았고…….”
“음? 그런 훈련을 하셨다고요? 어째서입니까?”
“전에 보셨겠지만 보통은 권능과 정령으로 주변을 휩쓰는 걸 우선하거든요. 하지만 가끔 그걸 뚫고 저를 치는 적이 있어요. 자칫하면 한순간에 끝장나니까, 몇 초라도 버티면서 대응책을 발휘할 여유를 찾아야 하죠.”
아군과 훈련할 때는 꽤 자주 겪는 상황이었다.
다들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훈련하기에 매우 적절한 상대들이다. 모르드는 물론이고 에리우도, 리온도, 달시도 그랬다.
“멋지군.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군요. 그런 확신 위에서 훈련했으니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케엘에게 훈련 방식까지 들은 니스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승은 늘 말했다. 약점을 단련해서 메꿔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누가 시켜서 하면 모를까, 스스로 훈련할 때는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는 걸 피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니까.
“듣고 보니 오히려 의아하군요. 그렇게 훈련을 하시는데 절망의 벽을 넘지 못하시다니, 물론 절망의 벽을 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만…….”
“…….”
“왜 그러시죠?”
니스카는 의아함을 느꼈다. 케엘이 슬쩍 시선을 피했기 때문이다.
“아, 실은 그게…….”
케엘은 쉽게 말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니스카가 답답해하면서도 끈기 있게 대답을 기다리자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의 벽, 넘어버렸는데요.”
“네?”
“당신을 일족으로 만들고 나서 그 경험을 계속 되새겨보다 보니 어느 순간 되더라고요.”
“…….”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끌어달라고 부탁해 놓고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요.”
“…….”
니스카는 입만 뻐끔거렸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