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80)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980화
제294장 단죄자의 인류
가장 거대한 배, 대군주 백경은 심해저평원에 처박혀 있었다.
로텐다르가 들이받고 모르드 일행이 침입한 시점에서 다시금 크라켄족들에게 속박당했기 때문이다. 제4형태로 이행하면서 빠져나갈 틈이 있었지만, 모르드와 마주한 리케인에게는 그런 조작을 할 여유가 없었다.
쿠구궁……!
그런 백경이 요동쳤다.
콰아앙!
내부로부터 파괴적인 힘이 터져 나온다.
곳곳에 구멍이 뚫리면서 불길한 저주의 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여러분.]그리고 로텐다르의 함장석에 앉은 케엘이 의념으로 말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모르드가 리케인에게 승리했다.
그들 일행은 백경을 내부로부터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크라켄족 여러분, 물러나 주십시오.]로텐다르의 뿔에서 빛이 솟아나 칼날의 형태를 이루었다.
“로텐다르, 가자.”
케엘의 명령에 로텐다르가 전속력으로 백경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빛의 칼날이 다시금 백경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리케인은 자신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은 망망대해 한복판이었고, 자신은 크기가 수백 미터는 될 것 같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뱃전에 서 있었다.
“여긴?”
리케인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기에 오기까지의 기억이 없었던 탓이었다.
[선장님.]그때 누군가 자신을 불러서 돌아보니, 그곳에는 낯선 얼굴이 있었다.
“…누구?”
[…….]상대는 세상에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으로 리케인을 바라보다가, 화를 냈다.
[골파입니다, 골파! 당신이 죽여서 부선장으로 삼아놓고서 모르는 척을 해?]“어, 음. 골파, 그렇게 생겼었구나? 그랬었지.”
리케인은 당황했다.
그의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골파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언데드가 아니라 생전의 모습이었다는 뜻이다. 상반신은 푸른 비늘의 어류와 인간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인간이 보기에는 괴물 같은 모습이었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널 죽…….”
거기까지 말하던 리케인은 흠칫했다.
기억이 났다.
자신이 단죄자가 되어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온 일들이.
“…….”
그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서 어느 순간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내가… 내가 이 손으로 그런 짓을…….”
그는 덜덜 떨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긴 꿈을 꾼 기분이었다.
‘너는 오래전에 감았어야 할 눈을 감지 못하고, 끝없이 나쁜 꿈으로 떨어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모르드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 악몽을 끝내주마.’
그의 모든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긴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 악몽 속에서 자신이 한 일은, 모두 현실에서도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장님.]그때 골파가 리케인을 툭 쳤다.
흠칫 놀란 리케인이 그를 바라보자 골파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와서 혼자 비운의 주인공인 척하지 마십쇼.]“내가 널 죽였는데?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서 그런 끔찍한 일들에 동참하게 만들었는데?”
[그랬죠. 그래서 전 억울합니다.]“뭐?”
[제가 나쁜 게 아니라 선장님이 나쁜 거였는데, 똑같이 나쁜 놈으로 만들어져서 나쁜 짓을 해버렸잖아요.]“…….”
[같은 이유로, 선장님도 억울한 사람입니다. 선장님이 나쁜 게 아니라 선장님을 나쁜 놈으로 만든 것들이 나빴던 거죠.]“…궤변이야.”
[결국 그 모르드라는 양반한테 시원하게 처맞고 뒈져서 구원받았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선장님은, 나쁜 놈이 되었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옳은 선택을 했습니다.] [맞습니다.]“그래요.”
[마지막엔 좀 멋있었다고 생각해. 나도 같은 신세가 되어봤으니까 말하는 건데,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거야.]“동감이야. 불가능한 일이었지. 리케인, 너였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거였어.”
“우르한, 레트, 발레인, 나운…….”
백경을 따르는 전투함에 탔던 그의 사도들 또한 이 자리에서 웃고 있었다.
어느새 배 위에는 수많은 이들이 서 있었다.
인간도 있었고, 바다의 백성인 자도 있었다.
배에 올라타기에 적절하지 않은 모습이거나 혹은 너무 큰 자들, 예를 들면 깊은고래족 같은 이들이 바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두가 생전에는 리케인의 친구였고, 결국은 단죄자 리케인에게 죽은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그 영혼을 구원받아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너희들…….”
[우리는 구원받았어.]“다들 모르드, 그 양반하고 그 친구들이 구해줬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선장님보다 더?”
그 말에 리케인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 그대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 같은 놈하고 비교가 되나? 놈들의 주구로 전락해서 몹쓸 짓이나 하고 다녔던 나하고는 달리 세상을 구하실 몸인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리케인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가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
“…이제는 당신의 말을 믿어.”
리케인은 저주받은 자신의 죄악을 끊어준 남자, 모르드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 죄인은 저승에서나마 당신이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겠다, 종언의 영웅.”
[그렇게 될 것이다.]그 중얼거림에 화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리케인은 흠칫 놀라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배 위로 신성한 은색의 빛이 쏟아지며, 그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 위에 있던 모두가 자연스럽게 좌우로 비켜서서 길을 여는 가운데,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은발의 여성이 짙푸른 눈으로 리케인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나의 자손, 리케인.]“여신이시여…….”
리케인은 자신의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비통함이 넘쳐흘렀다.
“제가 당신께 크나큰 죄를 저질렀나이다.”
[용서하마.]“예?”
[다 용서하마, 나의 사랑스러운 자손아.]세레스는 리케인을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는 악몽 속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했다. 난 그게 자랑스럽구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용서해 주길 바랐다.
아마 자신만이 아니라 단죄자가 되었던 모두가 그럴 것이다. 삶의 방향타를 빼앗긴 채 악몽 속에서 표류한 자라면 누구나.
리케인은 그 사실에 흐느꼈다.
[이제 지켜보자꾸나. 저들이 보여줄 수평선 너머의 풍경을…….]세레스는 그런 그를 다독이며,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구원받은 영혼들을 태운 배가 현세의 존재가 닿을 수 없는 미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쿠구구궁……!
대군주 백경이 소멸해 간다.
모르드 일행을 다시 태운 로텐다르가 내부에서 맹공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선체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자 그때부터는 바깥에서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로텐다르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바다의 백성들이 총공세를 퍼붓자 결국 그 초거체를 움직이던 심장, 축복로가 폭발하고 다른 선체도 저주의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끝났군.”
모르드는 백경이 서서히 부서져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함장석에 몸을 묻었다. 전투의 열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리온이 중얼거렸다.
“저런 게 아직도 셋이나 더 있단 말이지?”
“엄밀히 따지면 저것만큼 무섭지는 않겠지. 하나는 남대륙 쪽에 있는 모양이고.”
모르드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파르웰이 말했다.
“전투도 다 끝나가는 것 같네요.”
백경이 거느리고 있던 적 대군, 그리고 전투 중에 백경의 부름에 응하여 이 해역으로 모여들었던 적 지원군 또한 전멸했다.
워낙 수가 많아서 도망친 수도 상당한 것 같지만 구심점을 잃은 그들은 지금까지처럼 큰 위협이 될 수는 없으리라.
‘느껴진다.’
모르드가 구원한 영혼은 적의 것만이 아니다. 이 전투에서 죽어간 아군의 영혼 또한 구원했다.
확실하게 우위를 점한 상황이었음에도 아군 또한 수천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모르드가 구원한 영혼은 총 8만을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여전히 단죄자 전체에 비하면 티끌 같은 숫자겠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숫자지.’
모르드는 그렇게 느꼈다.
이번 전투는 세상의 운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앞으로 바다의 백성들은 모르드 일행에게 전폭적으로 협력해 줄 것이며, 그것은 저 거대한 단죄자 세력을 상대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게 분명했다.
“이제부터 할 일이 산더미겠지만…….”
모르드는 미소 지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로텐다르가 심해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은 이 승리를 즐기도록 하자.”
그것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말이었다.
생전에 무신의 화신이자 천하제일궁으로 불렸던 단죄자 이홍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놓쳤군.”
그녀는 순식간에 멀어지는 기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대단한 놈이야.”
방금 전까지 그녀는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에 표적을 끌어들인 다음 전투를 수행했다.
그러나 상대는 그 함정을 모조리 격파한 다음 포위망을 빠져나가 버렸다.
‘쯧. 영혼 강탈자는 저놈 이상이겠지. 역시 아무리 최저한으로 잡아도 한 명은 더 필요해. 머리가 굳은 높으신 분들께서 이번 일로 내 말을 좀 들어주시면 좋겠군.’
홍화는 불만스럽게 혀를 차며 포위망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다가 한순간 빛으로 화해 2킬로미터나 떨어진 그 한복판에 나타났다.
그곳은 제법 큰 마을의 폐허였다.
신화의 예언자였던 수확자 테루넴의 예지를 바탕으로, 이 마을을 중심으로 반경 5킬로미터를 죽음의 함정으로 만들고 표적을 끌어들였다.
동원된 것은 1천 명의 단죄자, 그리고 표적을 상대하기에 최적이라고 판단된 괴물들 2천.
거기에 홍화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단 한 명을 붙잡으려고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홍화.”
그녀가 표적이 남긴 파괴의 흔적을 살피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고윤보. 그래도 살아남긴 했네. 무신의 화신이었던 체면치레는 했어.”
“나 지금 아파 뒈지겠거든? 굳이 그런 비아냥으로 마음에 상처까진 안 줘도 되잖아?”
고윤보라 불린 단죄자 사내가 털썩 주저앉았다.
체격이 그리 크지 않고 소처럼 유순한 눈매를 가진 중년의 남자는 허리띠에 여러 개의 비도(飛刀)를 주렁주렁 차고 있었으며,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홍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야. 그 거리에서 잘도 살아남았다고 감탄한 거지. 그 거리에서 살아남은 건 너뿐이야.”
“…영광으로 여겨야 하나?”
고윤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신의 화신이라고 불렸던 세 명이 합공했고, 근거리에서 싸운 두 명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남았다……. 이 경우는 살아남은 당신에게 찬사를 바칠 수밖에.”
“…….”
고윤보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는 눈으로 홍화를 바라보았다.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단죄자 세력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표적을 잡기 위해서 무신의 화신 셋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 셋 중 월도(月刀)를 귀신같이 다루던 여자가 죽었다.
‘차라리 이 여자가 앞에서 싸웠더라면……. 궁사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긴 하지만.’
무신의 화신이라고 다 비슷한 실력인 게 아니다. 무신의 화신은 꽤 많은 숫자가 있었고, 실전에서의 기량은 천차만별이었다.
무신이 특정한 인물을 무신의 화신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예의 한 분야에서 천하제일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윤보의 경우는 비도술의 천하제일인이기에 무신의 화신이 되었다. 그러나 비도술이 기가 막히다고 해서 무인으로서의 경지가 엄청나게 높다는 보장이 있는가?
고윤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신의 화신이 되는 기준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기에 더욱 그랬다.
비도술은 신혈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분야다.
그에 비해 궁술은 에소우의 후예들과 경쟁해야 하는 분야다.
홍화가 천하제일궁 소리를 들었던 것은, 동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에소우의 후예들보다 뛰어났다는 뜻이다.
애당초 무신의 화신이 되기 위한 난이도 격차가 너무 심한 것이다.
홍화가 무신의 화신 중에서도 최강을 논하는 강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걸 봐.”
문득 홍화가 파괴된 가옥을 가리켰다.
갑자기 뭔 소린가 싶어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본 고윤보는, 곧 오싹함을 느꼈다.
“…그 남자의 흔적인가?”
“그래.”
이곳에서의 싸움은 난전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표적 입장에서도 힘의 가감을 하나하나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는 싸움이었을 것이다.
“놀랍군……. 그 난전 중에 이렇게까지?”
그런데 그곳에 남은 것은, 무너지는 벽 일부를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게 베어낸 흔적이었다.
그런 흔적이 하나가 아니었다. 놀랍도록 정밀하고, 과하지 않게 절제된 공격이 남긴 예리한 흔적들.
“의식하지 않고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뜻이지.”
“란슬리시아 신족…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군.”
고윤보는 식은땀을 흘렸다. 새삼 자신이 살아남은 게 천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적은 란슬리시아 신족이었다.
이 땅에서 나타난 게 아닌, 끝없는 폭풍 너머의 서쪽으로부터 온 자.
“역시 이 남자를 확실하게 잡으려면 한 명은 더 필요해.”
“한 명? 한 명만 더 있으면 된다고?”
“무신경이 한 명만 더 있으면, 잡을 수 있을 거야.”
“…….”
고윤보는 숨을 삼켰다.
무신의 화신 중에서도 무신경에 도달한 이는 세 명밖에 없다.
그리고 단죄자가 된 자들 중에는 두 명뿐이다.
“테루넴 님께서는 저 남자를 잡을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고, 이걸로 한 번을 써버렸으니 이제 남은 기회는 두 번뿐이야. 이 두 번을 결코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다음에는… 그래, 확실하게 가늠해 보는 게 좋겠어.”
홍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고윤보는 그런 홍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문 몸을 일으켜서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