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37)
학기말 평가 (1)
타냐가 오필리스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갔던 교복도 여기저기 매무새가 흐트러져 있고, 풍성하고 아리따운 금발 머리칼도 푸석해진 채 툭툭 잔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퀭한 눈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복도로 들어선 타냐는, 메이드에게 외투와 짐을 건네고 휘적휘적 복도를 걸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메이드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타냐는 당장이라도 크어어, 거리며 좀비 같은 소리를 낼 것 같은 인상이지만… 그냥 축 늘어진 몸을 늘어뜨린 채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대낮의 오필리스관을 못 본 지 꽤 됐다.
꼭두새벽부터 기숙사를 나서서 밤늦게나 되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나름 보람도 있고, 일 처리가 엄청 어려운 것도 아니다.
타냐를 향한 경의나 선망의 시선이 무척이나 만족스럽기도 하다. 타냐는 기본적으로 명예욕이 있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영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도 잔뜩 남아 있긴 하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최근 들어 자꾸 선을 넘으려고 하는 엘테 상회 쪽 세력이다.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사 본부 쪽에서도 굉장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서적류를 쓸어 담아서 시세를 올리고 있는 최근 행보.
쌀 때 잔뜩 모아 놓고, 비쌀 때 차근차근 팔아 치워 차익을 남기려는 단순한 의도로 보이지만… 엘테 상회의 자금력을 생각해 보면 그 이상의 방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적류와 학용품, 문구류, 교육용 마공학 용품 따위를 쟁여 둔 채 풀지 않으면… 개학 이후의 학사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당장 학생들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에 몰리기 때문이다.
엘테 상회는 이미 아켄섬의 물류를 혼자서 책임지고 있는 상태다. 그런 매물들을 인질 삼아 학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면, 학사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이 모든 게 그냥 기우였으면 좋겠으나,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원하는 대로 돌아가기만 하진 않는다.
엘테 상회가 나름대로 상도덕 잘 지켜 가면서, 장기적으로 실베니아 학사의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되어 준다면 가장 좋다.
그러나, 이렇게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한 구도에서는… 학사는 언제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어느 선을 넘어간다면, 엘테 상회가 아니라 다른 물류 유통로를 추가적으로 확보하려 들 것이다.
엘테 상회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 아파…. 머리 아프다고….”
타냐는 호화로운 복도 사이를 비틀비틀 걸어 나가면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급기야는 학사 쪽에서 일단 새로운 물류 유통로를 뚫기 위한 예비 계획을 미리 수립해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상업 도시 올덱 쪽에 공고를 낼 생각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진 내부적으로만 도는 이야기다.
학사 차원에서는 유통로를 다양하게 만들어 놓는 게 안정적이고 편하지만, 엘테 상회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쥐꼬리만 한 옛 학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꾸준히 아켄섬의 물류를 책임져 줬던 이유가 있다. 이렇게 먼 훗날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실베니아의 규모가 방대해지고, 그 독점적 지위로 이윤 좀 남기려고 했더니 갑자기 다른 사업 파트너를 찾겠다고 한다. 이러면 또 엘테 상회 쪽에서는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가운데에서 조율해 줄 인물이 필요하다.
타냐와 학사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엘테 상회 쪽에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
“일단은… 방에 들어가 누워서 좀 쉬자.”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바빴다. 일단 타냐는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이 먼저였다.
얼른 방에 들어갈 생각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던 차.
“…….”
문득 옆을 돌아보니,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타냐뿐만이 아니었다.
인기척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질 않아서, 타냐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야 그럴 만했다. 안 그래도 평범한 사람에 비해 꽤나 왜소한 체구인데, 온갖 경량화 마법을 몸에 잔뜩 두르고 있어서 깃털처럼 가벼운 사람이다.
그나마 그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제 상반신만 한 마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체구에 비해서 지나치게 커다란 그 모자는 소녀의 상징과도 같다.
“루, 루시 선배님…?”
흠칫 몸을 떤 것은 루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주변에 별 관심이 없는 소녀지만, 타냐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뒤로 휙 빼고는 복도 창가 쪽으로 달라붙었다.
그러다가, 말을 건 상대가 타냐인 것을 확인하고는 뭔가 안심한 듯이 몸에 힘을 풀었다.
루시는 외관만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채취, 분위기, 행동의 특색 같은 것을 두루 판단하는 감각이 날이 서 있다. 항상 나태하고 굼뜬 인간으로만 보이지만, 그 감각은 날카롭게 주변 상황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인기척을 감지하자마자, 타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말았다. 에드 로스테일러다.
불타는 듯한 그 금발 머리칼은 물론, 애초에 사람 자체가 에드와 기묘할 정도로 비슷하다. 한집에서 태어난 남매지간이니 어쩔 수 없다.
“아, 안녕하세요….”
타냐는 어색한 듯이 인사를 건넸다. 애초에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이다.
루시는 학기 초에 한번 깽판을 부려 가면서, 타냐를 잡아 죽이고자 길길이 화를 낸 일이 있다.
그 뒤로 모든 오해가 잘 풀리고, 에드가 루시를 끌고 와서 타냐에게 사과까지 시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해소되지 않는 묘한 어색함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루시는 타냐의 바로 옆방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오다가다 마주치는 일이 잦으니, 피차간에 영 불편할 따름이다.
루시에게도 타냐에게도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저어….”
몸에 힘을 풀고서는 숨을 푹 내쉬는 루시. 타냐는 뭐라 말을 건넬까 고민하던 차에….
“저번엔 미안했어.”
먼저 사과를 꺼낸 사람이 바로 루시였다. 꽤 시원스러운 말투였다.
“내가 오해를 했었지.”
“아, 아뇨. 저번에 사과하셨잖아요. 굳이 또 하실 필요는 없어요….”
타냐는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 미묘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타파해 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루시의 옷이 꽤나 더럽혀져 있다는 사실에 눈이 갔다.
“또 어디서 낮잠을 자다 오셨나 보네요. 요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기 참 좋죠. 날씨도 좋고, 일교차도 거의 없고….”
그야말로 화두를 이어 나가기 위한 신변잡기적인 대화. 의례적인 말에 불과하지만, 루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오라버니 캠프에도 여전히 자주 드나드시죠? 사이가 좋다고 들었는데요.”
“요즘엔 잘 안 가.”
“어, 어라…? 그래요…? 왜, 왜요…?”
혹시 싸우기라도 했나. 타냐는 상상이 잘되질 않았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에드와, 기본적으로 나태한 루시는 완전히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큰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주변인들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엮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먼저 가까워지려고 살갑게 구는 일이 없다.
그런 기질 탓에, 에드와 루시는 서로에게 별로 큰 기대를 품지도 않는다.
그냥 오두막이나 관리하면서 사는 사내와, 가끔씩 찾아와서 낮잠 자다 가는 소녀의 관계일 뿐이지 않았을까.
타냐는 딱 그 정도로 생각하며, 루시의 미묘하게 어색한 반응에 의아함을 품었으나.
“다른 데서 낮잠 자고 나면… 좀… 꼴이 안 좋잖아.”
“…네?”
“스커트 자락도 더러워지고, 먼지도 많이 묻고, 머리도 푸석푸석하잖아….”
일단 대화 내용만 들어 보면 별로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화자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 튀어나왔다.
타냐도 다소 당황스러웠으나, 타냐의 옆에서 짐과 외투를 들고 있던 메이드는 아예 눈이 휘둥그레져서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시 메이릴이 자기 외관을 신경 쓰고 있단 말인가….
메이드들이 아니었으면 머리도 안 묶고, 옷도 대충 챙겨 입을 뿐인 루시 메이릴이… 누군가에게 흉한 몰골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타냐의 옆에 있던 메이드는 순간적으로 자기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 루시 메이릴이 맞나 하고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남 눈치를 본단 말인가. 바로 그 루시 메이릴이.
그제야 타냐와 메이드는 깨닫는다. 루시 메이릴은 비로소 소녀가 되어 가고 있다.
아직은 그 시발점에 불과해, 누군가를 신경 쓰거나, 밉보이고 싶지 않아 하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나태한 기질은 그대로이며, 소녀다운 취미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딘가에 늘어져서 낮잠이나 잘 뿐인 하루 일과도 마찬가지다.
사이즈에 맞지도 않는 교복을 입고 학사 내부를 이리저리 유령처럼 노니는 모습도 전혀 변한 게 없다. 사람 본성 그리 쉽게 안 바뀐다.
그러나, 거대한 불꽃도 그 시작은 미약한 불씨 아니던가.
원래 이런 소녀적 품성이란 것은 한 번에 넘어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물들어 가는 것이다.
타냐는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그 기묘한 마녀 모자도 벗고, 예쁜 백발을 단정하게 정리한 뒤, 깔끔하고 귀여운 드레스를 입고 교양 있게 웃는 루시 메이릴의 모습이다.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쭉 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 나갔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일쯤에나 캠프에 가 보려고….”
“아, 그래요…?”
“응. 너무 오래 안 가니까… 가고 싶긴 하더라고….”
마치 길 잃은 고양이처럼 주눅이 들어서는 모자를 꾹 눌러쓰는 모습. 그 모습이 메이드에게는 치명상이었던 모양이다.
자기 심장 부근을 꽉 움켜쥐더니, 튀어나가서 루시의 손을 맞잡은 것이다.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시 아가씨. 내일은 제가 기필코, 선임 메이드로서의 모든 경력을 걸고 가장 아리땁게 치장해 드리겠습니다. 원판이 워낙 아름다우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갑자기 진심을 다해 루시를 격려하는 메이드의 모습이 본인은 썩 갑작스럽게 느껴진 모양이다.
루시는 땀을 삐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냐는 루시를 보내고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으리으리한 오필리스관의 개인실은 학생용 기숙사라기보다는 궁전 내부처럼 보인다.
단정한 교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테이블에 와서 앉았다. 그곳을 보니, 웬 서신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음…?”
메이드들은 청소를 마치고 나서 학생들의 개인실 테이블 위에 그 사람 앞으로 온 여러 서신들을 남겨 놓고 나간다. 굳이 우편물을 찾으러 나갈 필요가 없으니 꽤 편하다.
허나, 타냐는 학생회장이 된 뒤로는 대부분의 서신을 학생회 쪽을 통해서 받고 있었다.
대부분은 공무에 관한 것이므로, 굳이 기숙사에 돌아와서까지 일에 관한 문서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기숙사를 통해서 전달된 이 서신은 무엇인고 하니… 본가에서부터 전달된 편지다.
“아버지의… 밀랍 인장….”
크레핀 로스테일러와 편지를 주고받은 지는 꽤 됐다. 그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었다.
학생회장이 된 뒤로는 너무 바빠서 자주 소식을 알리지 못한다. 그러니 양해해 달라.
크레핀은 학생회장이 된 타냐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학사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크레핀 로스테일러는 황실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정신이 없어, 대륙 남단에 처박혀 있는 아켄섬의 일까지 모두 신경을 쓸 정신적 여유는 없다.
그래서 최근 들어 편지가 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타냐까지도 정말 바빠졌기 때문이다.
“정말 간만에 온 편지네….”
타냐는 편지를 뜯어보고는, 크레핀 로스테일러가 써 놓은 여러 의례적인 말들을 휙휙 읽어 내려갔다.
학생회장이 되어서 어떤지, 학사 생활은 잘 적응이 되는지, 친구는 많이 사귀었는지, 귀족 자제들이나 유력가 자제들 중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현자의 봉서 매입 계획은 가시화되었는지.
늘상 묻는 그런 질문들이 이어지기에, 타냐는 마음을 풀어 놓은 채 계속 눈을 굴려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편지의 막바지에 쓰인 내용이 타냐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타냐는 조용히 소리를 내어 다시 읽었다.
“첫 방학을 앞두고 나니… 간만에 네 얼굴이 다시 보고 싶구나. 방학 중에는 본가로 귀가해서 쉬다가 돌아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던데, 타냐 너도 본가로 돌아와서 좀 쉬다가 실베니아로 복귀하거라. 기왕이면….”
타냐는 편지를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기왕이면… 에드도 함께….”
그 뒤로 쓰여 있는 내용도 가관이었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학사 내 평판도 좋고, 마법 실력도 출중해졌고, 성실해졌다면… 가주로서는 그런 에드를 다시금 로스테일러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황녀님을 모욕한 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제아무리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가족으로서, 그리고 아비로서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기회를 주고 싶다.
녀석에게 전하거라.
아르웬을 잃은 뒤로는 다시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원한다면, 로스테일러 가문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나는 녀석이 몰락 귀족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디 이번 방학에 본가로 돌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그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진중하게 논의해 보자꾸나.
발신인
크레핀 로스테일러.
* * * [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
―천 년 이상을 살아온 나무가 벼락을 맞아 떨어진 가지에, 갖가지 마력 처리를 하여 효율적으로 정령 감응을 도와줄 수 있도록 만든 지팡이.
모든 속성 정령의 감응력을 증폭시키고, 정령계 마법의 마력 효율이 크게 증가한다.
정령 친화력과 관계없이, 일단 계약한 정령이라면 모든 정령식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등급: 매우 희귀 제작 난이도 : ●●●◐○ ※ 특수 재료를 활용한 제작품입니다. (메릴다의 수호목) ―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를 다룰 때 드는 마력 효율이 더 좋아집니다.
― ‘풍랑의 가호’의 효과 반경이 더 넓어집니다.
― 정령식 ‘상승 기류’의 효과 반경과 위력이 매우 향상됩니다.
[ 어떤데…? ]“아무 부담이 없네.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새하얀 원피스를 늘어뜨린 소녀가 뒤로 올려 묶은 머리를 쓸어내렸다.
이리저리 마력을 휘두르자 근처에 바람이 휘감긴다. 그래도 내 마력에는 크게 영향이 없었다.
“앞으로 너 다룰 때는 이 지팡이를 활용하는 게 좋겠다. 부피가 커서 보관이 용이하지 않은 건 단점이긴 한데, 그래도 인간 형태의 너를 이 정도로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만한 단점이지. 필시 늑대 형태일 때도 훨씬 수월할 거고.”
나는 캠프 근처에 있는 강가의 바위에 앉아, 어제 완성시킨 마공학 용품을 시험해 보는 중이었다.
이제 꽤 몸 상태가 호전된 예니카도 따라와 앉아 있었다.
“와아… 마공학으로 지팡이를 만드는 건 처음 봤는데… 확실히 위력이 대단하네. 나도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 여러 지팡이를 선물 받은 건 많긴 한데, 이 정도로 효율 좋은 지팡이는 처음이야.”
예니카가 항상 들고 다니는 떡갈나무 지팡이도 그리 나쁘지 않은 물건이다.
그러나, 마공학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마나 효율을 증폭시킨 물건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너도 한번 써 볼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지팡이를 예니카에게 건네주었다.
“으, 응… 지금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긴 한데… 많이 호전됐으니까….”
그렇게 자신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눈을 감고 집중하자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정령들이 현현된다.
불완전한 몸 상태로도 이 정도라고 하니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 우와… 마력 효율이 좋은 수준을 넘어서, 아예 거의 느껴지질 않네. 그냥 몸에 당연스럽게 마력이 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예니카 너는 나보다도 훨씬 더 감응력이 좋으니까,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
“응…! 에드, 이 지팡이 쓰면 더 빠르게 정령술의 위력을 높일 수 있겠다. 정말 대단해. 이래서 마공학, 마공학 하는 거구나.”
그렇게 말하며 예니카는 내게 지팡이를 다시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받지 않았다.
“응?”
“그거 네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흘러내리는 강물에 손을 북북 씻었다.
“응? 내 거라고?”
“너 주려고 만든 거야. 너한테 신세 진 게 많잖아.”
“아, 아니… 신세라니… 이번에만 해도 내가 아픈 동안 신세를 졌는걸.”
“애초에 아팠던 이유도 나 도와주겠답시고 무리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게 무작정 마다할 필요 없다.”
나는 손을 탁탁 털어서 물기를 없애고, 다시 바위에 걸터앉아서 이야기했다.
“항상 고맙다.”
예니카는 지팡이를 올려다보며, 눈을 떨었다.
“항상 말로만 해서 미안했다.”
“…그래도, 이건 정령 감응이 어느 정도 되는 내가 쓰기보다는 에드가 쓰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아…?”
“어차피 똑같은 걸로 하나 더 만들 거야.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가, 같은 지팡이…! 한 세트 같은 거구나…! 그렇구나… 헤헤….”
예니카는 행복한 상상이라도 하는 건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지팡이를 꽉 끌어안았다.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면 주는 입장에서도 뿌듯함을 넘어 송구스러워진다.
“고마워, 에드… 진짜 소중히 쓸게….”
메릴다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음흉한 웃음을 흐뭇하게 흘리고 있었고, 예니카는 한동안 지팡이를 꽉 안은 채 쭉 헤픈 미소를 지어 대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리액션을 해 주니 주는 보람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학기말 시험이네. 에드는 필기는 맨날 거의 만점에 가까이 받았으니까, 실기만 잘 보면 되겠구나.”
“응, 그렇지. 그리고 그다음은 방학이고.”
“에드는 방학 동안 뭐할지 계획해 둔 거 있어?”
“글쎄… 일단 캠프 여건을 좀 더 좋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창고도 좀 크게 만들고, 오두막도 좀 개축하려고. 더 넓게 살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그리고 허브나 야채, 아니면 자그마한 한해살이 식물 정도 키워 보고 싶고, 캠프 주변에 울타리도 하나 좀 치고 싶고… 어쨌든 하고 싶은 거야 많다. 정리가 좀 필요할 뿐이지.”
“그렇구나… 혹시 힘든 일 있다 싶으면 도와줄게. 나도 이제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 남의 일이 아닌걸.”
“그래, 고맙다. 그래도 일단은 네 몸 건강부터 관리하는 게 우선이야.”
나는 예니카와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북쪽 방향에 내 오두막이, 대충 남동쯤 되는 방향에 예니카의 오두막이 있다. 말 그대로 이웃집이지만, 제반 생활 환경은 대부분 공유해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정말 동거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모닥불을 기준으로 남서 쪽에는… 꽤나 품질 좋아 보이는 통나무가 겹겹이 쌓여 올라가고 있었다.
혼자만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 위화감이 생겨나므로, 나름대로 우리를 배려해 최대한 비슷하고 단출한 크기로 짓는 듯하다. 허나, 내부 시설이나 건축 재료의 질은 확실히 좋다.
로르텔의 집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예니카는 괜스레 볼을 부풀렸다.
― ‘갑자기 여기에서 산다고 해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저도 나름대로 조건을 끌어왔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오필리스관 최고의 실력을 갖춘 메이드 벨 씨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캠프의 제반 시설을 관리해 줄 거예요. 에드 선배님 혼자서 관리하기가 영 힘들었을 테니, 훌륭한 일 처리 솜씨를 갖춘 인력 하나가 늘었다고 생각하면 꽤 나쁘지 않죠?’
확실히…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다.
로르텔이 여기에 와 산다고 해서 나로서는 딱히 불편한 점은 없다. 애초에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하고 있는 그녀이니만큼, 나한테 손 벌릴 일도 없다.
오히려 그녀가 고용한 벨 마이아가 캠프 유지 보수에 힘을 보태 준다면, 나는 대외 활동이나 수련 활동에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
괜스레 내 뒷바라지를 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데, 그래도 뭔가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봉사할 것 같은 이미지다.
특히, 이번에 예니카를 간병하면서 어찌나 가사 일에 열심히 인지… 뭔가 기뻐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뭐, 로르텔과 계약 관계이기도 하고, 받을 돈 다 받는다고 하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나는 생선구이의 뼈를 발라서 한 덩이 입에 집어넣고, 예니카에게도 건네주었다.
과일을 깎고 있던 예니카는 생선구이를 한입 물고서는 흡족한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괜스레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서, 나는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켄섬의 밤하늘이 늘 아름다운 것이야, 이제 와서 말해 봤자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 * *
“칼레이드 교수님, 이제 학기말 시험이 3일 후에요…! 슬슬 실기 시험 평가 항목 만들어서 제출해야 된단 말이에요…! 아니, 사실 이미 제출 기한 지났어요…! 억지로 늘린 추가 기한이란 말이에요…!”
클레어 조교수는 칼레이드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글래스트 교수의 오랜 친우이자, 갖가지 원소 마법에 능통한 베테랑 마법사 칼레이드 록스테르.
원래 교수직을 내려놓고 코헬톤 무법 지대에서 방랑 생활을 하던 마법사였으나, 이번에 생긴 공석을 채우기 위해 학사 쪽에서 끝끝내 설득해서 데려와 앉혀 놓은 중년의 사내였다.
머리는 더벅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은 퀭하다. 교수라기보다는 걸인같이 생긴 몰골이다.
그 글래스트 교수와 호적수로 여겨질 만큼 마법 실력이 좋지만, 타고난 기질은 글래스트 교수와는 정반대였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말아 피우는 연초 냄새가 가득하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지 않으면 자욱한 연기가 가득히 차올라 있었다.
책상 구석에서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본인은 머리를 처박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깐깐하지만 매사 성실하고 일 처리를 잘하던 글래스트 교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인간상이다.
대체 저런 인간과 글래스트 교수가 어떻게 친우 관계를 유지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클레어 조교수가 제발 일 좀 해 달라며 한참을 깨우자, 고개를 휙 쳐들고 스읍― 하며 침을 삼키고는, 내뱉는 이야기도 가관이다.
“그거 뭐… 대충 만들어서 제출하면 되잖아….”
“학기말 평가라고요, 학기말 평가…! 담당 학생들이 전부 다 참가하는 학기말 평가…! 아시잖아요!”
“그거야 뭐… 네 연구실에서 적당히 만들어서 제출해라…. 뭐 지도교수가 이리저리 참견하는 것보다는 편하겠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클레어 조교수는 마른세수를 한번 한 다음,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쾅!
그리고 문을 지그시 닫고는 거기에 이마를 박고 기대었다.
익히 들어왔던 칼레이드 교수의 평가와는 너무나 달랐다.
칼레이드 교수는 먼 옛날에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직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평가를 듣자 하면, 워낙에 깐깐하고 화도 자주 내서 글래스트 교수와 함께 2대 미친개로 통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 처리는 확실한 성격이니, 글래스트 교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되겠거니 했던 클레어 조교수다. 그러나 웬걸, 복직한 칼레이드 교수는 하루 종일 일은 손에도 대지 않고 한심한 아저씨처럼 연구실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익히 들었던 설명과는 하나도 공통점이 없다.
당연히, 업무량은 전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살려 줘….”
인복(人福) 원툴.
대충 그렇게 버텨 왔던 클레어 조교수의 삶에, 일생일대의 위기와도 같은 인간이었다.
“나 좀 살려 줘…!”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실베니아의 모든 연구실을 통틀어 가장 유능하다는 그녀의 학사 조교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