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4
4화 질문 좀 합시다
아델라인은 어떤 방 안에 갇혀 양팔과 다리가 의자에 묶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녀는 방 한구석에서부터 방문까지 길게 이어진 핏자국을 보자, 점점 두려워졌다.
점점 후회가 몰려왔다.
왜 하필 오늘 움직여서.
아델라인은 계속 머리를 굴려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상했다.
세이드의 정보 길드는 황태자가 직접 소탕했다고 나왔는데. 알렉스 매닝햄이라는 인물은 결코 황태자의 밑에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때, 문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가서 부상자 확인하고, 사살한 적 수 기록해.”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그 대화가 끝나자, 문이 열리고 알렉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렉스는 아델라인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고는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깊고 푸른 눈빛이 아델라인을 관통하는 듯했다.
잔뜩 긴장한 그녀의 오감은 알렉스를 비롯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에게서 나는 화약 냄새와 피 냄새. 촛불 하나만 켜진 이 방의 모습, 밖에서 불어오는 밤의 차가운 공기.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가 죽어 가는 단말마까지.
그 모든 게 아델라인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몰아넣은 장본인인 알렉스는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짧게 갑시다. 오늘 여기에 왜 왔습니까.”
“…….”
아델라인은 말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하나의 로판 소설 속 세상이고, 그 소설의 연재분 마지막 화에서 당신은 부하들과 함께 죽었다고.
그런 말을 하면 미친년 소리를 들을 테니까.
그럼,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제가 말해야 할 의무라도 있나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알렉스의 눈썹이 살짝 들썩이더니,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없으십니다, 공녀님.”
목소리만 들었다면 안도했겠지만, 알렉스의 표정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 깃든 여유로운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러면 저도 하나 되묻죠. 제가 당신을 여기서 살려 보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뭐라고요?”
찰칵.
알렉스의 허리춤에서 차가운 금속음이 들렸다. 그의 손은 어느새 피스톨로 가 있었다.
아델라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저를, 죽이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을 응시했다.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의 모습은 살벌하고… 아름다웠다.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상황 파악이 되신 듯하군요.”
겁에 질린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알렉스는 운을 뗐다.
“피차 번거로운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슬슬 아는 대로 말하시지요. 이번 건도 그렇고, 저번에 인신매매 현장도 그렇고. 묻고 싶은 게 참 많습니다.”
그의 연이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델라인은 입을 열 수 없었다.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을 짓누르는 이 살벌한 분위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저는…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아델라인이 울먹이며 말해도 알렉스는 그런 그녀에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분이 정보 길드의 비밀 아지트는 잘도 찾았습니다.”
그건 소설에 나와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녀는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말을 마음속으로만 외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델라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양보한다는 듯 그녀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면, 제가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를 한번 해 보시죠.”
그러나 도저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소설 시작 시점 2년 전의 이 상황에서 주인공도 아니었던 그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게 무엇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세 명. 그중 하나가 세이드.
그리고 세이드는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이기도 하지. 자신의 팔 전체에 입은 끔찍한 흉터를 아무도 모르게 숨길 정도로.
“세, 세이드는 살아 있어요.”
“아쉽지만 세이드는 죽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좀 진부하군요.”
그는 관심 없다는 듯 귀를 손가락으로 후비며 말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세이드는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서 도망쳤어요.”
“그걸 입증할 증거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이드의 등에 찍힌 낙인은 오직 소설 속에서만 다뤄지는, 여주와 세이드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내용이었다.
소설에서 읽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 이 상황에서 낙인에 관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군.”
그녀가 증거를 대지 못하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대원에게 말했다.
“휘태커 경감과 휘하 후속 병력을 요청해. 이제 들어가서 쉬자.”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그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저 계단 아래에서부터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중, 중대장님!”
다급한 목소리로 알렉스를 부르자, 그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뒤로는 속삭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로서는 그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알겠다. 곧 내려가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세이드가 살아 있다라…….”
알렉스가 중얼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을 가진 그가 다가오자 아델라인은 몸을 덜덜 떨었다.
어떻게 되는 거지, 난.
머릿속에서 온갖 비극적인 상상들이 되풀이되었다. 암울한 전망뿐이었다.
그때, 그녀의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렸다.
“운이 굉장히 좋으신가 봅니다. 공녀님께서는.”
“에……?”
사르륵.
아델라인을 구속하던 밧줄이 풀리고, 그녀의 몸은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다.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녀에게, 알렉스가 말했다.
“세이드의 생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지금 추궁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한번 정돈하며 말했다. 그러는 모습마저 제가 알던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멋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뵙겠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유는 들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뒤 그녀를 일으켜 세운 알렉스는 바깥에 대기 중인 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스워포드.”
“상병 스워포드.”
“공녀님을 일출 전까지 제 자리에 모셔 두도록.”
“…알겠습니다.”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그녀는 목소리만으로도 스워포드라는 인물이 품은 불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을 열자 모습을 드러낸 스워포드에게서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럼, 황궁에서 뵙겠습니다.”
알렉스는 모자를 벗어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치, 다시 보게 될 것을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 * *
“부상자?”
“경상 둘, 중상 하나입니다.”
총검에 손이 베이기라도 한 것인지 왼손에 붕대를 감은 병사가 그에게 보고했다. 중상자가 발생했다는 보고에도, 알렉스의 표정은 밝았다.
“레이크 하사. 맞나?”
“네, 그렇습니다.”
눈치 하나는 죽여 주는 이들의 입은 고급 시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정교하게 맞춰져 있었다.
레이크 하사는 이번 임무에서 중상을 입은 것이다. 저번 인신매매 현장 검거 작전이 아니라.
아무튼 그런 것이다.
“흠. 레이크 하사는 2소대 증원으로 넣을까.”
“알리바이 짜는 건 1소대가 낫지 않겠습니까. 2소대는 딱히 한 것도 없습니다.”
“2층에 진짜 아무도 없었어?”
“그건 아니지만.”
그 병사는 이마 가운데를 손날로 가르는 시늉을 했다.
“이 짓만 했죠 뭐. 제압하는 건 한순간이고.”
그 말을 들은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젠가 손도끼를 다 압수하든가 해야지 이거… 원.”
알렉스는 한숨을 쉬었다. 수도에 주둔한 이후 대원들의 피로가 차곡차곡 쌓이며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직까지는 별문제가 안 되었기에 두고 보기만 했지만, 이런 사소한 일탈들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뭐, 그들에게 휴식을 보장하지 못한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적당히 해. 적당히.”
“네네. 알겠습니다.”
그들이 건물을 나오자, 열심히 뒷마무리를 하는 대원들이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파견 나온 경비대 간부와 함께 조사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휘태커 경감은 알렉스를 보자 손을 들어 그를 불렀다.
“매닝햄 대위!”
“휘태커 경감님.”
서로를 향해 경례한 둘은 가까이 붙어 속삭이기 시작했다.
“피해는?”
“경상 2, 중상 1입니다. 확인된 적 피해는 사상자 72명. 3명 빼고 다 처리했습니다.”
“중상 1은 그… 하사?”
“맞습니다.”
시신의 상태를 살펴본 휘태커 경감이 그에게 말했다.
“…증거물로 제출하기는 힘들겠다, 야.”
“좀 봐주십쇼, 그런 건.”
“그래야지. 우리 쪽에서 뭘 더 바라겠어. 아무튼.”
휘태커 경감은 담뱃대를 들어 불을 붙이고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대어는?”
“놓쳤습니다.”
“…쯧. 아쉽구먼. 뭐, 고생했어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철수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아, 이거.”
휙.
휘태커 경감이 알렉스에게 조그마한 벨벳 주머니를 던졌다. 그가 그 주머니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자, 금화 몇 닢이 보였다.
“애들끼리 한잔 걸칠 정도는 될 거야.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
휘태커 경감의 진심 어린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의 말에 살짝 안도한 듯 미소를 지은 휘태커 경감은 알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가. 그럼… 고생했어. 들어가 봐.”
“나중에 뵙겠습니다.”
알렉스가 먼저 거수경례를 하자, 휘태커 경감도 그에 맞춰 경례했다.
“모두 모여! 철수한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천막과 개인 호뿐이라고 해도, 집은 집이니까.
* * *
다그닥. 다그닥.
아델라인은 스워포드 병장이 모는 말 뒤에 탄 채 빠르게 밤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이해가 힘들 정도로 휙휙 바뀌는 상황에, 아델라인은 자신의 앞에 앉아 말을 모는 이 사람에게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뭐라 물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살해 협박을 받았다가, 갑자기 귀가 조치라니.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힐 수 있는 단서라도 찾기 위해, 스워포드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스워포드 씨?”
“말씀하십시오.”
아델라인은 날이 서 있는 듯한 그의 말투에 흠칫 놀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에게 질문했다.
“매닝햄 대위는… 어떤 사람인가요?”
“…….”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자신이 물어봐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한 건가,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렇게 그녀가 자책하려 할 때 즈음, 스워포드가 입을 열었다.
“최고의 상사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따르고 싶을 정도로.”
최고의 상사라. 그의 말에서 그 어떤 가식이나 비꼼도 없었기에 신기했다.
항상 소설 속에서는 게으르고 무능한 장교로 묘사되던 알렉스가 부하들에게는 최고의 상사라니.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뭐, 별거 있겠습니까. 부하들 최대한 챙겨 주고 의견 반영 잘해 주는 게 최고의 상사지요. 능력도 있고. 항상 앞에서 대원들을 이끄시는 리더니까요.”
“그런가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신뢰가 묻어나고 있었기에.
“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걸어가시길.”
“…고마워요.”
저 멀리 공작가의 저택이 보이는 지점에서 멈춰 선 스워포드가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낑낑대며 간신히 말에서 내렸다.
“다음에 또 볼 일이 없기를.”
그는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델라인은 의구심에 빠졌다.
대체 소설이 시작하기 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존경받던 훌륭하고 실력 있는 장교인 알렉스 매닝햄이 소설 속에서는 고구마 농장주가 된 거지.
“좀 더 알아봐야겠어… 이건 뭔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