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40)
마리엔은 제가 좀 더 차분한 성정이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바일레온을 조금만 덜 좋아했어도!
바일레온 비어스가 지독할 만큼 제 취향만 아니었어도 한결 여유롭게 결혼식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너무 잘생겼어. 인간이 아니야.’
신랑을 향해 걸어가는 이 순간.
바닥엔 첫눈처럼 새하얀 천이 깔려 있다. 단상으로 향하는 길의 가장자리는 오늘 새벽에 갓 꺾어 온 듯한 연분홍색 꽃송이와 싱그러운 잎사귀로 꾸며져 있다.
성스러운 신전에 은은히 감도는 생화의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물에 조그만 양초를 띄우는 아이디어를, 클로이즈는 대체 어떻게 생각해낸 건지.
마리엔은 하나하나 감탄하며 걷고 싶었다.
신부 입장을 하는 순간에까지 바일레온에게 정신이 쏙 빠져서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렇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내가 인간이 아닌 신과 결혼하다니.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도 뿌듯해하실 거야. 우리 딸 덕분에 신을 사위로 맞는 경험을 다 해본다고.’
베일 너머로 보이는 바일레온은 너무 수려한 나머지 현실의 인간 같지가 않았다.
결혼식 때 신랑도 흰 예복을 입는 제국의 풍습을 처음에 정한 사람은 누굴까?
극상의 심미안과 천리안을 가진 그 위인은 순조롭게 천국 문을 통과하지 않았을까?
왜냐면 천국의 수문장에게도 눈이 있을 테니까.
접니다. 저예요. 저 덕분에 200년 뒤에 바일레온 비어스란 남자가 결혼식에서 흰 예복을 입고요.
그 모습을 본 신부가 단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절하죠.
자, 신부를 기절시킨 자태를 미리 보시겠습니까? 이런 걸 가리켜 순백의 미남이라 한답니다.
‘그가 수문장에게 흰 예복 차림의 바일레온을 보여주면……. 기뻐하라, 위인이여. 천국 문이 열릴지니.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너의 복을 바라도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을 테지.’
부케를 든 손에 힘이 실렸다. 마리엔은 저와 달리 침착한 바일레온을 보면서 깊이 반성했다.
‘또 나만 동요하나 봐. 바일레온의 속이 어떤지는 몰라도, 아무 티도 안 나.’
전 아니다.
눈은 무섭게 반들거리고 입가는 자꾸만 움찔댈 것이다.
제발 숨소리만은 거칠지 않았으면.
마리엔은 부디 안개 같은 베일이 얼굴을 적당히 가려주기를 빌었다.
그리고 제 상태를 숨기기에 급급해서 아까부터 바일레온이 어떤 생각 중인지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오늘 결혼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 둘만 있게 다들 나가주십시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이마를 드러낸 신랑의 머릿속에는 천이백 명의 하객을 쫓아낼 생각뿐이었다.
‘다 나가세요. 왜 아직 앉아 계시죠? 제 말이 안 들립니까?’
다행히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신부가 바일레온의 앞에 다다랐다. 마리엔이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야말로 꿈결 같은 드레스에 꿈결보다 고운 신부였다.
“오늘은 바일레온 비어스와 마리엔 디디 리셰른이 부부로 맺어지는 날입니다. 주신의 축복 아래…….”
신관의 주례사가 시작됐다.
신관 앞에 마리엔과 나란히 서 있는 지금, 바일레온은 의례니 예법이니 하는 것을 싹 무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부와 마주 본 채로 주례사를 들으면 신전의 지붕이 무너지기라도 하나?
‘아닐걸.’
신전의 바닥이 꺼져서 그대로 지옥으로 떨어질 만큼 중죄인가, 그게?
‘그럴 리가.’
만일 신전의 바닥이 꺼진다면 그건 사랑이 깊은 신랑 신부의 탓이 아니라 하객석에 앉아 있는 진짜 죄인 때문일 터다.
예를 들면 아나이스 사제라든가.
레슬리 아나이스는 2황자를 주군으로 모시다가 마지막에 오데트로 노선을 변경했다.
바일레온에겐 그가 주군을 갈아치운 타이밍마저 교활하고 절묘하게 느껴졌다.
황후파였던 아나이스 가문은 위세가 꺾였어도, 레슬리 본인은 여전히 황궁을 활보하고 다니지 않나.
‘청첩장을 안 보낼 수가 없었어.’
오데트는 레슬리를 이전 세력 포용의 증거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바일레온과 마리엔이 황제의 측근임은 온 제국이 다 아는 사실이다.
레슬리가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다면 어딘가에서 뒷말이 스멀스멀 나올 것이다.
“결혼 서약문을 낭독하겠습니다.”
이런.
바일레온은 속으로 혀를 찼다.
다음 순서로 빨리 건너뛴 듯한 건 좋다. 딴생각하다가 그런 것도 괜찮다.
하나 그 딴생각의 중심에 불쾌한 하객이 있었다는 게 문제다.
‘차라리 마리엔에 대해 생각할걸.’
바일레온과 마리엔은 결혼 서약문을 읽었다. 이후는 바일레온이 손꼽아 기다리던 의식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반지를 교환하기 바랍니다.”
바일레온이 후작저 발코니에서 청혼반지를 건넨 날부터, 결혼반지는 그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신부의 약지에 봄빛 같은 반지를 끼웠다.
마리엔 역시 그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베일을 걷고 서약의 키스를 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바일레온이 신부의 베일을 걷었을 때, 그는 오늘부터 제 성이 리셰른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이름까지도 온전히 마리엔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에게.
드디어.
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평소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담백한 키스에 마리엔이 웃음을 살짝 참는 것 같았다.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주신의 대리자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장밋빛 풍요의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 ◆ ◇
성대한 피로연이 끝났다. 사람들은 마차에 오르는 리셰른 후작 부부에게 너도나도 인사했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행복하세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마리엔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을 흔드는 클로이즈에게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후사하겠다는 의미의 눈빛을 보냈다.
한데 상대의 반응이 이상했다.
수상할 정도로 환한 웃음과 알 수 없는 손짓.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여행 잘 다녀오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곧 마차가 출발했다.
“마리엔, 표정이 왜 그래요?”
바일레온이 물었다. 별생각 없이 남편을 쳐다본 마리엔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가렸다.
“어떡해. 너무 잘생겼어.”
“…….”
“진짜 제 남편이 맞으세요? 당신처럼 완벽한 미남이 저랑 결혼했다고요? 어쩌다가요? 으앙.”
“혹시.”
바일레온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표정이 이상해진 이유가 그것 때문은…… 아니죠?”
마리엔은 손을 내렸다.
“비어스 영애에게 후사하겠다는 눈빛을 보냈거든요. 결혼식 준비하며 여러모로 신세를 졌으니까요. 근데 돌아온 반응이 좀 이상해서요.”
마리엔은 아까 클로이즈가 했던 손짓을 따라 해보려고 애썼다.
“뭐, 이런 물결 같은 손짓을 하더니 눈앞에 대고 손을 모았다가 쫙 펴지 않나……. 마지막 동작은 기억도 잘 안 나요. 입에서 뭔가를 뿜어내는 시늉이었던 것도 같고.”
“클로이즈에 대해 한 가지 알려주자면요.”
이유를 알게 된 바일레온은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몸짓으로 설명하는 게임을 정말 못해요. 어릴 적부터 유명했어요. 친척들이 모였을 때, 아무도 걔랑 한 팀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아서 항상 내가 나서야 했거든요.”
“그렇다는 말은!”
마리엔이 손뼉을 짝, 쳤다.
“바일레온은 영애의 손짓을 해석하는 데에 도가 텄겠네요?”
“아뇨.”
바일레온이 잘라 말했다.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분야가 아니었어요.”
“저런.”
아마 바일레온 인생 최초의 실패이지 않을까.
그로부터 다섯 시간 뒤.
마리엔 일행은 첫날 일정을 일찍 마무리하기로 했다.
후작 부부는 수도에서 마차로 꼬박 이틀이 걸리는 예쁜 호수마을을 신혼여행지로 정했는데, 어차피 휴가를 2주 받았기 때문에 하루쯤 늦게 도착해도 괜찮았다.
바일레온에겐 오늘 이른 아침부터 단장하느라 고생했을 마리엔을 쉬게 해주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하여 마리엔 일행은 작은 성을 개조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수행원들은 호텔에서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제공하는 고용인 전용 공동 침실이 아니라 2인 1조로 일반 객실을 쓰게 했다.
“감사합니다, 후작님. 공짜나 다름없는 데엔 이유가 있거든요. 저런 공동 침실의 시트에는 열에 아홉 확률로 벼룩이 있죠.”
마리엔은 종일 충실한 마부 노릇을 한 휴고에게 그럼 깨끗한 방이 열에 하나 확률로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니요.”
휴고가 약간 질린 얼굴을 했다.
“열에 하나 확률로, 벼룩보다 더한 걸 만날 수 있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딱히 캐묻고 싶진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모른 채로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리엔은 편히 쉬라는 인사를 끝으로 방에 올라왔다.
“저녁도 먹었겠다. 잠옷으로 갈아입을까?”
어젯밤 제 손으로 짐을 꾸렸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환히 꿰고 있다.
바일레온이 욕실에 있는 걸 보니 목욕용품은 그가 이미 꺼내놓은 것 같다.
“잠옷은 이 황갈색 트렁크의 안쪽…….”
당연히 거기 있겠거니 예상했던 곳에 물건이 없다. 마리엔은 당황해 옷더미를 이리저리 뒤졌다.
“잠옷이 어떻게 한 벌도 없지? 분명히 챙겼는데? 잠옷이 없으면 2주 내내 뭐 입고 자?”
별안간, 손끝에 낯선 촉감이 닿았다. 마리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 이런 소재의 옷을 챙긴 기억이 없다.
“아니, 근데 이게 옷이 맞긴 해?”
너무 미끌미끌하고 얇고 작다. 마리엔은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옷더미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옷인지조차 불분명한 그것을 펼치자마자, 비로소 마리엔은 낮에 클로이즈가 한 손짓의 의미를 깨달았다.
위아래로 흔들거리던 손.
“물결처럼 하늘하늘한 네글리제를 넣었다는 뜻이었어요?”
눈앞에 대고 손을 모았다가 쫙 펴는 동작.
“이걸 보면 신랑의 두 눈이 확 뜨일 거라고?”
입에서 뭔가를 뿜어내는 듯한 몸짓.
“탄성을 터뜨릴 거라고요?”
어젯밤에 제가 챙긴 헐렁한 통짜 잠옷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복숭앗빛 네글리제는 마리엔의 피부색과 흡사해, 얼핏 아무것도 안 입은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킬 법했다.
광택이 흐르는 야들야들한 질감은 또 어떻고.
제2의 피부처럼 몸에 감기는 까닭에 가슴처럼 굴곡진 곳 아래에는 야릇한 음영을 만들어낼 터다.
“아니야. 아니야.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아가씨. 본인의 오빠가 어떤 식으로 키스하는지 모르죠? 모르니까 이런 것을 선물이랍시고 넣었지……!”
이 옷이 바일레온 눈에 띄어선 안 된다.
신부의 과감한 속옷에 무르익는 꿀 같은 첫날밤.
절대 그런 달달한 분위기로 끝나지 않을 거다. 마리엔 디디가 내일 아침 살아 있을 수 있느냐가 달렸다.
마리엔이 네글리제를 트렁크에다 쑤셔넣으려던 순간이었다.
“왔어요?”
바일레온이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놀란 마리엔은 네글리제를 옷더미가 아닌 제 스커트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난 먼저 씻었어요. 들어가요.”
“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