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
수상한 고서적 – 2
“누나, 이거 하늘서점에서 가져온 거예요?”
“응. 거기 사장님이 이거 계속 반품 들어온다고 하소연하시더라. 책이 고풍스럽긴 하잖아? 던전에서 나온 게 다 그렇지만. 그래서 장식용으로 싸게 팔았는데 하나같이 이건 못 갖고 있겠다고 되팔았다는 거야. 신기하지?”
“그렇구나···내용이 없으니 좀 이상하네요. 뭔가 써 넣어야 할 것 같고.”
“마술이 걸려 있는 거 같긴 한데 나도 이런 책은 싫어, 에비!”
선영이 책을 탁탁 터는 시늉을 하자 지하가 그 책을 잡았다. “이거 제가 살게요.”
“응? 내용도 없는 걸 뭐 하러?”
“그냥 장식용으로 괜찮겠다 싶어서요.”
“그래, 그럼.”
지하도 만만치 않은 고서적 매니아임을 아는 그녀는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책을 넘겨주었다.
하늘서점의 주인은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내 장담하는데, 이거 한 사흘도 안 지나서 가게로 돌아올 겁니다.”
“그건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열두 번이나 그랬거든요. 손님이라고 대단한 재주가 없는 이상···결과는 같겠죠.”
서점 주인은 담담하게 예측했다.
하긴 열두 번이나 팔았는데 계속 서점으로 되돌아왔다면 무슨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건 나한테 오기 위해 고생한 거야. 너도 우리 집에 같이 가자.’
무한의 마도서.
뭔지는 몰라도 대단할 것 같은 이름이 아닌가?
지하는 이런 안개에 가려진 신비를 좋아했다.
그래서 고서적을 읽을 때에도 문장에 숨겨진 진짜 의미, 은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곤 했다.
대부분은 별 의미가 없었지만 이건 뭔가 다를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왔다.
둘은 적당히 쇼핑을 마친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는 마도서의 속지에 온갖 펜으로 글자를 적으려 시도했으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진짜 안 적히네.”
이쯤 되면 진짜 마술이라도 걸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덜컥 집어오긴 했는데 천둥새의 깃털과 잉크를 어디서 구하지?
‘천둥새···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데.’
헌터넷에서 검색하자 한 건의 정보글이 떴다.
「천둥새 : 극지와 사막, 해양을 제외한 다양한 던전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괴조. 날개길이 25m정도의 초대형 조류이며 생포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시간제한 등의 요소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15-16563 전투보고서에 의하면 놈의 둥지와 알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응?”
당황스럽게도 여기까지가 정보의 끝이었다.
뭔 끝맺음도 제대로 안 해놨을까.
하긴 헌터들의 관심사는 대부분 몬스터에 쏠려 있어서 던전 안의 동식물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기껏해야 동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도인데 던전에 들어가서 연구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애초에 연구할 게 없으니까 뭐.’
지하는 헌터넷을 끄고 상태창에 당당히 새겨진 고대마법 스킬과 좋은글솜씨 특성을 눈여겨봤다.
고대마법 스킬이야 연금술처럼 어색하진 않은데 문제는···
‘좋은글솜씨 이게 특성이나 될 만한 건가?’
헌터들의 특성이라고 하면 패시브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성호의 스톤스킨, 서혜진의 검타기, 황선영의 종이술 등등 전투에 효율적인 특성이 아주 많았다.
40개 정도의 클래스에 특성은 수백 가지가 넘는데 그 중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좋은글솜씨라니.
‘그냥 글을 잘 쓰게 되는 건가.’
지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마도서를 치우고 노트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펜이 종이를 오가며 정돈된 글씨를 수놓았다.
원래 지하의 글씨는 보기 좋은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금 노트에 새겨진 글씨는 상당히 예뻤다.
누가 본다면 인쇄한 줄 착각할 것이다.
그는 잠시 펜을 내려놓고 자신의 글씨를 감상했다.
‘예쁘긴 한데···이걸 어디에 쓰라는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한동안 글씨를 바라보다가 살짝 웃었다.
그래, 뭐 대단한 의미가 필요하겠는가.
살아가는데 자그마한 기쁨을 주면 그만인 것을.
지하는 한동안 글씨를 연습했다.
좋은글솜씨 스킬 레벨이 2로 올랐고, 이제는 인쇄물과 거의 차이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던전이 열렸다.
.
.
.
“이게 여기에 열리네.”
원래 던전이 열리면 주변의 에테르가 흔들린다.
파장이 커서 헌터들은 물론이고 에테르에 민감한 사람들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리는 느낌이 나자 지하는 가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길에 게이트가 펼쳐져 있었다.
“카테고리 0급인가···”
들어가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지만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이런 구석진 곳의 던전은 몬스터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지하도 꿈속의 숲을 이런 던전으로 포장하지 않았는가.
‘들어가 보자.’
배낭을 둘러메고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난이도 : 카테고리 0급
유형 : 초원, 계곡
목표 : 천둥새의 깃털
시간제한 : 1시간
대상제한 : 일꾼」
‘어? 이상하다?’
이런 퀘스트창은 처음 본다.
지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창을 들여다봤다.
카테고리 0급 던전에는 목표고 시간제한이고 없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대상제한은 지금까진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둥새의 깃털은 또 뭐야.’
마치 그에게 맞춰진 던전 같지 않은가?
이 던전에 들어와서 천둥새의 깃털을 집어가라고 권유하는 듯한···
‘누군가가 던전을 열어준 것 같아.’
그 누군가는 꿈속의 숲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에 발을 디뎠다.
초원, 계곡이라는 말 그대로 드넓은 벌판에 높은 계곡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이한 건 극지 던전에서 본 거대한 나무뿌리가 여기에도 있다는 점이다.
너무 뜬금없어서 이게 여기에 있어야 할 게 맞나 의심할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크면 여기저기에 나무뿌리가 있는 거야?”
지하는 나무뿌리 앞에서 쪼그려 앉아 껍질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 나무는 세계 전체를 지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그 책에서 거대한 나무가 나왔었는데.’
각 종족의 신화가 거대한 나무와 얽혀 있어서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났다.
그걸 읽다가 꿈속의 숲에 빠져들었었지.
‘그럼 나를 여기로 부른 게 이 나무?’
나무가 대답을 하지는 않으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동안 나무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나무뿌리 끝에 내려앉았다.
「천둥새」
‘니가 천둥새구나.’
너무 커서 새인지 몬스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카테고리 0급 던전이니 아마도 동물이겠지만.
녀석은 지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날개를 펼쳐 괴성을 질러댔다.
강렬한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나갔고, 지하는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이래서 천둥새구나.’
괴성이 천둥과 같다고 해서 천둥새.
한참 웅크리고 있으려니 그의 곁에 깃털 몇 개가 살며시 내려앉았다.
천둥새는 지하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날아가 버렸다.
“···뭐가 이래.”
마도서를 구하고, 던전이 열리며 천둥새가 깃털을 던져주고 가는 이 일련의 상황이 무척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밤 숲에 들어갔을 때 테라드론들이 잉크를 가져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혹시 내가 너를 도와주고 있다고 알리고 싶은 건가?’
얼마나 황당하면 이런 상상까지 할까.
하여튼 벌어진 건 벌어진 것이다.
지하는 던전 안을 살펴본 뒤 천둥새의 깃털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김형석의 지시를 받아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한 헌터가 급히 보고했다.
“예, 팀장님. 예. 지금 확인했습니다. 카테고리 0급 던전인 것 같습니다. 배낭을 들고 들어갔는데, 뭘 갖고 나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는 지하가 나온 게이트에 들어가려 했으나 이상한 힘에 밀려났고 보고했다.
형석은 그 보고를 받곤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을 가리는 던전이 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란 소린가? 어떤 힘이 밀어내는 것 같다고? 알았다.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는 폰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지하라는 청년에게 행운이 온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스킬도 특성도 없는 헌터라더니···그게 특성이잖나.”
주위에 던전이 자주 열리는 특성. 참 좋은 특성 아닌가?
형석은 지하 주위에 던전이 열리는 것을 특성으로 판단했다.
이런저런 특성 다 있는데 그런 특성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애매하군.’
계속 관심을 가지기에도 아예 신경을 끄기에도 애매했다.
확실히 그가 만들어낸 포션은 대단했지만 정작 이후로는 만들지 않고 있었다.
그 열매가 다 떨어져서인가?
‘조금 더 지켜보는 수밖에.’
형석은 자리에 앉아 금고에서 서류를 꺼냈다.
부산의 한 동맹길드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거인족의 발견이라는 해괴한 내용이었다.
도저히 믿을 순 없지만, 마귀개미 던전의 몬스터를 몰살시킨 게 거인족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 증거란 거대한 손자국이란다.
부산갈매기 길드장이 필사적으로 은폐에 힘썼으나 수십 명이 참여한 만큼 정보가 새버렸다.
‘거인족이라···내가 모르는 신화등급 몬스터가 있었나.’
타닥타닥.
김형석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헌터들이 애용하는 정보 사이트 헌터넷.
이 사이트에는 보통 헌터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최초의 각성자 아홉 명의 후손인 싱글 넘버즈.
한승혁은 실종됐으니 제외하고 2위부터 9위까지는 특정한 게시판에 대한 접근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게시판을 미르위키라고 불렀다.
몬스터의 종명과 위험도가 게시되어 있긴 하지만 따로 글을 올리거나 수정할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이 헌터넷을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수수께끼였다.
서버의 데이터가 어디로 전송되는지조차 모른다고 하니.
형석은 한동안 신화등급의 몬스터 정보를 누비며 거인족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갱신되었을 리가 없지.’
미르위키의 정보는 최초부터 지금까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둘 이상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면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냥 신종 몬스터인가.’
신종 몬스터 치고는 너무 크지 않나?
손바닥 흔적으로 사이즈를 가늠해보면 거의 빌딩만 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보통 몬스터는 클수록 강력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덩치가 그 정도 되려면 멸망등급은 넘어서야 한다.
‘극지 던전에서 발견된 집게 몬스터도 그렇고 뭔가 있어.’
형석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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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마법···여깄다.”
지하는 거대한 나무가 나온 책을 다시 읽었다.
내용에 따르면 거대한 나무가 최초의 종족들에게 마법을 전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이 마법이란 게 워낙 난해하고 익히기 어려운지라 쉽게 쓰기 위한 일종의 꼼수를 개발해냈다.
‘그게 룬마술, 룬워드구나.‘
룬워드는 현대의 헌터들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에테르 스톤을 가공해 룬 스톤을 만들고, 거기에 룬어를 써넣어 지팡이 등에 배치한다.
이 룬워드 지팡이를 든 마술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화력을 낼 수 있었다.
오죽하면 이들을 누커라고 부르겠는가.
어지간한 던전에 마술사를 데려가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던전을 스피디하게 클리어하는 게 중요해진 최근, 빠르게 몬스터를 삭제하는 마술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룬마술이 고대마법의 편법에 불과하다고?
“창조···조화···변화···파괴.”
더 읽어보니 고대마법이 네 종류로 나누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창조의 마법은 필멸자가 손댈 것이 아니고, 그나마 조화나 변화, 파괴의 마법이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음···마법은 세상을 바꾸는 법칙이고 마술은 그냥 파괴의 기술이구나.”
마법이 바다라면 마술은 그 안의 해류라고 보면 정확할 듯싶다.
하지만 그 마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룬워드 같은 게 예시로 나와 있으면 좋을 텐데.
지하는 한참동안 책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뜻밖의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땅에 꽂은 나뭇가지가 어엿한 나무로 자라 있었다.
줄기에 새겨진 글자가 녹색으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