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rdener in a Hunt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1)
칼도어는 후보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대미궁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 주었다.
어차피 이 애송이들을 데리고 실전은 무리다.
그래서 대미궁의 분위기만 파악시켜 주려고 했는데, 이 녀석들이 살짝 건방을 떠는 게 아닌가.
“저희 몬스터 하나쯤은 잡아 볼 수 있어요오~”
“아저씨 튜토리얼 미궁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선생님 말씀도 좋고 한데 저희도 체험이란 걸 해야 돼서…….”
후보생들이 어디까지 경험을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평범한 후보생이라면 모를까 13살짜리 초등학생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 초등학생의 체격이 성인과 비슷하다 해도 무턱 대고 들이미는 건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 했는데…….
‘이 녀석들에게 쓴 맛을 보여 주어야겠군.’
칼도어는 일행을 이끌고 어떤 구역으로 나아갔다.
평범한 헌터들이 능력치가 리셋 된 상태로 겪는 튜토리얼 던전의 1스테이지.
어둠 너머에서 마물들의 소리가 들려오자 일행은 바짝 긴장했다.
칼도어가 콧바람을 뀌며 본소드를 어깨에 메었다.
“그렇게 싸우고 싶다고 했으니 싸워 봐라. 단, 대미궁은 지상과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보다시피 공간이 협소하고 마물들의 움직임도 다르다. 특히 이 앞의 고블린들은 독침을 쓰니 미리 포션을 마셔야 할 거야.”
후보생들은 급히 포션을 복용했다.
유진은 너무 긴장해서 체력 포션을 마시다가 다슬이에게 제지당했다.
“이거 말고, 독저항 포션 있잖아. 응. 그거.”
벨트의 포션을 짚어 주기까지 했음에도 그녀의 손가락이 벌벌 떨렸다.
다슬은 하는 수 없이 포션을 꺼내 그녀의 입에 부어 주었다.
꼴깍꼴깍.
마치 모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 같은 모습에 칼도어가 실소를 흘렸다.
‘챔피언의 딸이라고?’
챔피언이 살아났다가 한심한 모습에 뒷목을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니 유진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창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해서 고블린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몇 살이나 위인 일행들이 버벅거리는 동안 그녀는 빠르게 도약해 가변형 창을 찔러 냈다.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 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잽싼 몸놀림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칼도어도 이 수법에는 나름 감탄했다.
탱커의 방패 위의 공간을 찔러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만약 반격이 날아와도 탱커가 막을 수 있도록.
‘나름 챔피언의 딸이라는 거군.’
전투가 끝난 뒤, 칼도어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유진의 나이가 열셋이란다.
그가 유진을 따로 불러내자 그녀의 눈동자가 안타깝게 흔들렸다.
“아, 아저씨 저 맛없어요… 뼈만 남아가지고 살도 별로 없을 거예요…….”
“넌 내가 식인마로 보이냐? 안 먹으니까 따라와라. 이야기 좀 할 게 있으니까.”
어둑어둑한 복도로 나가 발광석을 꺼내자 주변이 약간 밝아졌다.
칼도어는 진지한 얘기를 꺼냈다.
“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 중 한 명이었다.”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왜냐하면 나도 그와 동류니까. 네 아버지는 주신의 챔피언이었다. 어머니 쪽은 모르겠군.”
“주신의 챔피언이 뭐예요?”
역시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칼도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챔피언이란, 주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전사를 의미한다. 드래곤과 동급 이상의 힘을 가졌지.”
유진의 눈이 점점 커졌다.
드래곤은 복지 센터의 아이들에게도 그 악명이 알려져 있었다.
물론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고, 그저 강력한 몬스터로 알고 있는 아이가 태반이었다.
그런 드래곤과 동급 이상이라니.
“아빠가 그런 분이셨다니… 하지만 아빠는 결국…….”
큰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자 칼도어는 황급히 그녀를 달랬다.
“울지 마라. 네 아버지는 충분히 강했다. 다만 하이로드 쪽이 조금 더 강했을 뿐. 챔피언의 피를 이은 계집애가 울면 안 돼.”
유진은 훌쩍훌쩍하다가 겨우 진전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송이를 어떻게 교육시키지?
“하여간 너에게도 챔피언의 피가 흐른다. 훈련은 몇 번 해 봤겠지만 실전은 처음이었겠지. 떨리지 않았나?”
“…그, 모르겠어요. 정신을 차려 보니 몬스터 가슴에 제 창이 박혀 있어가지고…….”
자기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초보자에겐 흔한 얘기다.
“평범한 인간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챔피언의 피를 이은 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다음부터는 공격하지 않아도 좋으니 전투 시에 움직임을 똑똑히 인식해라. 하나하나 신경 써서 움직이란 말이다, 알겠나?”
“네, 넷!”
박력 있는 목소리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칼도어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주신께서 너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분을 실망시키지 마라.”
“주, 주신님이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대미궁에서 위대한 존재들이 헌터들을 구경하고 때론 힘을 내려 준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자니, 첫 번째 드래곤이니 하는 존재 말이다.
하지만 주신까지 포함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얼어붙었다.
「주신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신이 당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주신이 당신에게 100시간 동안 주신의 가호 LV9 특성을 선물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아… 아?”
듣던 것과는 좀 다른데?
제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라곤 해도 대미궁에 들어가서는 핀잔만 듣는 게 대부분이었다.
오죽하면 실망했다는 소리를 안 들은 헌터가 없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주신은 그 누구보다 온화했다.
칼도어는 주신이 선물한 능력을 들은 뒤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확실히 다른 자연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내려 주는군. 꼬맹이가 다치는 꼴은 보기 싫었나 보지? 챔피언의 피를 이은 자여. 너 또한 챔피언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주신을 직접 대면하게 될지도 모르지.”
“제가 주신님과…….”
“헌터가 되기로 한 것은 자의냐, 타의냐?”
“저,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서… 셀레나 님이 추천해 주기도 하셨구요.”
“그렇다면 처신을 바로 해라. 주신을 실망시키지 마라. 그는 언제라도 너를 저버릴 수 있다.”
“그, 그러면 안 되는데…….”
유진은 안절부절못했다.
주신이 자신에게 실망이라도 한 것처럼 덜덜 떨었다.
칼도어는 다시 그녀를 다독였다.
“네가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아니고.”
“아, 알겠어요.”
유진은 나름 마음을 다잡았다.
칼도어는 그녀를 후보생들에게 돌려보냈다.
그 뒤 주신에게 의사를 보냈다.
―내려 준 힘이 너무 과했소. 발록에게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겠던데.
―아… 실수였어요, 칼도어. 뭘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뭐 이런 꼬맹이가 왔나 생각했는데 나름 움직일 줄은 알더군.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는 점이 문제지만.
―아카데미에 들여보내긴 했지만 대미궁에 보낼 줄은 몰랐어요. 아직 어린 나이인데.
―열셋이면 싸우기에 충분한 나이지.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검을 잡았고 일곱 살에 몬스터를 죽였소. 챔피언의 딸이라고 제법 재주를 부리니 키우는 맛은 각별할 것 같더이다.
―잘 부탁해요, 칼도어.
의사가 끊긴 뒤 칼도어는 곰곰이 생각했다.
전대 주신 아크였으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고 어른이고 간에 위험한 곳에 처넣고 살아남은 자만이 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겠지.
그리고 능력을 찔끔찔끔 내려 주며 애간장을 다 태웠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이 주신은 너무 온화하군.’
성전 얘기를 들어 보니 힘 조절 같은 자잘한 실수도 곧잘 하는 모양이었다.
아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
‘뭐, 나쁘진 않아.’
조금 어수룩한 주신을 모시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혹시 아는가?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할지도.
칼도어는 후보생들에게 돌아갔다.
* * *
드디어 미국 던전의 보물 상자가 바뀌었다.
에센스를 더 지불하는 대신 사이커의 특성에 맞는 아티팩트가 나오도록 조정된 것이다.
성소와 조각상, 쪽지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미국 사이커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던전 개편은 금방 타국으로 번져 나갔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헌터와 몬스터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지하의 일거리가 폭증했다.
고대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으니.
아침부터 형석과 직원이 와서 노트북에 화상 채팅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었다.
“실은 고대어 해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워낙 난해해서 여러 언어학자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더군요.”
애초에 고대어는 인간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서 그렇다.
지하도 배운 게 아니라 능력으로 얻었을 뿐이었다.
‘이거 바꿔야겠어.’
그날 밤까지 열심히 상담해 준 지하는 정원에 들어가 세계수의 테라드론들을 불러냈다.
“고대어를 쓰면 안 되겠어. 평범하게 대륙 공용어로 써 주면 좋겠는데, 안 될까?”
녀석들은 ‘왜 이제 와서?’ 하는 몸짓을 했지만, 너무 바빠졌다는 말에 그럭저럭 납득했다.
얼마 후 전 세계의 보물 상자 쪽지가 모두 대륙 공용어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기뻐했다.
이제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
물론 아티팩트의 자세한 특성은 여전히 그를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지하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미르위키가 전면 개편되었다.
전 세계의 헌터들이 자국의 언어로 번역된 지하의 공략을 읽으려 에센스를 써 댔다.
잘 모르는 헌터들은 이런 말을 했다.
―바보 같으니, 공략 같은 건 그냥 공유해도 되는 거잖아? 약점만 알면 되는 건데.
―그러면 버프를 못 받는다고. 반드시 에센스를 지불하고 읽어야 테라드론이 버프를 주는데, 그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어… 그래?
아는 체했던 헌터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공격력 버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한국의 헌터들이 잘 보여 주지 않았는가.
아티팩트의 공격력 상승 특성, 조각상이나 성소 등과 합쳐지면 공격력이 폭증한다.
던전의 클리어 속도도 말도 안 되게 빨라지고 헌터의 부상도 대폭 줄어들어 여유를 찾는 등 장점이 어마어마했다.
이제 외국 헌터들은 한국과 동등하게 되었다며 희희낙락했다.
물론 한국 헌터들은 그걸로는 안 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지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신성에 기겁했다.
‘무, 무서워.’
범위가 한국에서 전 세계로 늘어나니 단위가 달라졌다.
지하는 이 신성을 쓸 곳을 찾았다.
‘음… 드랍에 변화를 조금 주고 싶은데…….’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다양해졌지만 뭔가 부족했다.
지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정원을 돌아다니다가 세계수 안에 보관된 보석들을 떠올렸다.
다듬어진 혹은 원석 그대로의 보석들.
게헨나의 보석들을 죄다 가져왔는지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쓸 수 없을까?
‘아, 맞아. 보석 시스템이 있었지.’
모바일 게임에는 흔히 들어 있는 그것.
띵, 소리가 나면 유저로 하여금 화면을 둘러보게 만드는 그것.
속성이 부여된 보석을 아티팩트의 소켓에 끼워 강화시키는 건 많은 게임에 포함된 요소였다.
다만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등의 귀중한 보석에 적용할 경우 떼어 내서 팔 우려가 있었다.
‘자수정이나 청금석 같은 것만 쓰자.’
문제는 보석에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느냐.
지하는 연금술 재료를 펼쳐 놓고 다각도로 실험했다.
수차례 피어오르는 연기에 펫들이 대피했다.
‘좋아, 됐어.’
다행히도 보석에 특성과 스킬을 부여하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지하가 만들면 옵션을 지정할 수 있지만 테라드론은 랜덤이다.
즉, 어떤 옵션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게 거래를 활성화시켜 줄 거야.’
능력을 강화해 주는 아름다운 보석, 좋잖아.
헌터들은 마음에 드는 보석을 구하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에센스를 투자할 것이다.
‘색깔별로 옵션을 정해 두는 편이 좋겠어.’
처음 몇 개만 알려지면 다른 보석은 감정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지하는 보석을 감정받기 위해 텍사스 소 떼처럼 몰려오는 헌터들을 떠올리곤 몸서리를 쳤다.
‘봉사도 나쁘진 않아.’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런저런 하소연과 무용담 등을 털어놓는 사람이 많아 그걸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할 일도 많아서 어쩔 수 없어.’
이게 성장했다는 걸까.
지하는 조금 씁쓸함을 느끼며 보석에 옵션을 부여했다.
그의 작업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 * *
정원의 어느 날.
지하는 테라드론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있는 걸 목격했다.
“너희, 왜 이러고 있어?”
자세히 보니 녀석들의 가운데에 황제꿀과 신비한 열매가 놓여 있었다.
왠지 모양새가 열렬히 토론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토론할 게 뭐 있지?’
황제꿀이 맛있나, 신비한 열매가 맛있나 뭐 그런 건가?
지하가 얼굴을 들이밀자 한 녀석이 앞 발톱에 꿀을 묻히고 다른 발톱으로는 열매 조각을 들어 올렸다.
주인이라면 ‘어느 쪽을 택할 거야?’ 라고 묻는 듯했다.
“어… 나는…….”
대충 대답하려 했던 지하는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테라드론마다 취향이 다른 것이다.
‘탕수육과 비슷한 거구나.’
성호와 경백이 찍먹이냐 부먹이냐를 놓고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이던 게 떠올랐다.
―탕수육은 임마, 찍어서 먹는 거야. 튀김 요리는 뭐다? 바삭함이 생명이라고. 소스를 부으면 탕수육이 어떻게 되겠어? 너 다른 튀김도 간장을 부어 먹냐?
―형님, 뭘 좀 모르시네. 탕수육이라는 요리는 말입니다. 원래 소스를 부어서 나오는 거라고요. 튀김과 소스가 잘 어우러지는 게 옳게 된 거란 말입니다. 튀김은 간장에 찍어 먹지만 탕수육은 합쳐진 게 하나의 완성된 요리라니까요.
지하는 언제나 얻어먹었기에 나설 입장이 아니었다.
주미와 선영, 해선은 대충 먹었고 싸움은 성호와 경백의 몫이었다.
너무 시끄러워지면 주미에게 등짝을 얻어맞곤 했다.
‘탕수육 먹을 때마다 싸웠지… 아마?’
지하는 사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먹는 게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성호와 경백은 회색 주의자라고 분개한 후 각자 찍먹이 좋다고, 부먹이 진리라고 설파하고는 했다.
이 테라드론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각자 황제꿀과 신비한 열매 뒤에 서서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라 토론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펫이나 테라드론끼리 나누는 의사는 지하에게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일촉즉발.
금방이라도 폭력 사태가 터질 것 같았다.
급기야 덩치가 큰 한 녀석이 나섰다.
‘나한테 이겨 보라는 거야?’
싸움 방식은 다행히도 힘겨루기였다.
뿔과 집게를 서로 얽고 상대방을 들어 올려 팽개치면 끝난다.
방식이 방식인 만큼 덩치가 큰 워리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관리자에 속하는 나이트와 하이나이트는 이 무리에 속해 있지 않았다.
‘이거 재밌네.’
지하가 미소를 짓고 구경하자 펫들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나 싸움 구경은 재미있는 법이다.
지하는 껍질에 점이 박힌 테라드론을 응원했다.
녀석은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큰 녀석들이 달려드는 힘을 역이용해서 뒤집어 버리는 수법을 애용했다.
‘점박이 잘한다!’
녀석은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급격한 체력 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한 테라드론에게 붙잡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하이나이트가 나이트 몇 마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하이나이트는 싸움에 가담한 녀석들을 불러 일렬로 세웠다.
콩, 콩, 콩, 콩.
앞다리가 망치로 변형되어 테라드론들의 머리를 두들겼다.
아마 잔소리도 퍼붓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것들이 요즘 밑에 애들이 들어왔다고 팔자가 폈지? 나 때는 말이야…….
몇몇 테라드론이 귀 부분을 막았다.
사람이고 테라드론이고 잔소리가 싫은 것은 같나 보다.
한참 훈시를 늘어놓던 하이나이트는 잎접시에 담긴 황제꿀과 신비한 열매를 발견했다.
으음…….
그래서 하이나이트는 뭘 선택할까?
녀석은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의 나이트들도 눈치만 볼 뿐,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했다.
모든 테라드론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이나이트는 결국 두 개를 지하의 앞으로 가지고 왔다.
‘주인은 어떤 게 더 좋아?’ 하고 묻는 듯하다.
이럴 땐 좋은 방법이 있지.
“잠깐만 기다려.”
지하는 칼과 작은 나무 접시를 가지고 와서 신비한 열매를 얇게 썰었다.
층층이 쌓고 잎 접시를 기울여 황제꿀을 천천히 부었다.
오오오!
윤기 있는 황제꿀이 열매를 적시고 흘러내리는 자태에 테라드론들이 흥분했다.
그리하여 맛있는 열매꿀절임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하면 둘 다 먹을 수 있잖아?”
앞으로는 이렇게 먹으면 된다, 라고 지하가 이정표를 제시했다.
황제꿀이냐 열매냐를 놓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
테라드론들이 기뻐 엉덩이춤을 추고 있을 때, 열매꿀절임에 손을 대는 불순한 축생이 있었다.
곰이가 나서서는 한 입에 먹어 버렸다.
테라드론들이 우뚝 멈췄고 녀석은 혀로 주둥이를 핥았다.
―맛있곰.
정원의 공기가 싸늘해졌고 펫들이 녀석을 덮쳤다.
―당연히 맛있지, 그걸 말이라고!
―테라드론의 간식까지 축내는 놈은 맞아야 돼!
―죽어, 그냥 이대로 죽어!
―아앗 아프곰.
곰이가 굴러서 퇴장하자 망연자실해 있는 테라드론들이 보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저런 표정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하는 황급히 열매꿀절임을 만들었다.
수가 많으니까 양도 많아야겠지.
큰 접시에 열매 슬라이스를 차곡차곡 쌓고 황제꿀을 아낌없이 부었다.
그걸 내놓자 테라드론들이 기뻐 날뛰었다.
맛있는 간식이 두 배니까 기쁨도 두 배!
테라드론들은 맛 좋은 열매꿀절임을 섭취했다.
모두가 행복했다.
곰이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