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산, 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노래.
한국예술대 실용음악과의 면접이 끝났다.
최종 합격자 발표는 면접일로부터 7일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학원에서는 당분간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휴가를 주었다.
휴가를 주지 않아도 이 시기 수험생들은 학원에 나오지 않는다. 다들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본격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용음악과는 대부분의 대학이 수능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터라 더더욱 그랬다.
정시 실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율이도 이번 주는 학원 나오지 말고 좀 쉬다 와라.”
용준 선생님이 말했다.
“음···, 쉰다고 해봤자 딱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정 할 거 없으면 부모님 모시고 좋은 데라도 갔다 와.”
용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떠오른 것이 있었다.
강원도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어머니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임마 효자였네.”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할 때였다.
용준 선생님이 나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시 학원에 돌아오는 날엔, 그때 네가 받은 ‘?’ 랭크가 무엇이었는지 말해주마.”
순간 그동안 잊고 있던 ‘?’ 랭크에 대한 생각 때문에 움찔했지만.
“괜찮아요. 이젠 신경 안 써요.”
달라진 나였다.
그래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을지도?
*
– 그래서 너는 강원도에 어머니 뵈러 다녀온다고?
– 응, 너는 뭐하고 지낼 거야?
– 글쎄······, 율이 없으면 심심해서 어쩌나.
– 연경이도 있잖아. 연경이랑 같이 노는 건 어때?
– 연경이 요즘 멘탈 나가서 연락도 못 하는 중···
– 아이고, 실기 결과가 좋지 않았구나.
– 응······
유진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것은, 그동안 유진이 생각 이상으로 입시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연경이 수시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받았다는 것 정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입시에 성공적인 궤도를 달리고 있는 내가 괜히 위로를 해봤자 악영향만 있을 것이다.
문득 시험도 안 본 지혜가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이겠지.
승현이는 면접날 이후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되었지만
전혀 불안하진 않았다.
면접 당일 날,
“이 형님은 쩔게 봤다. 최소 차석 입학 예정이다. 반박시 네 말이 다 틀리다.”
“오오, 진짜 합격 하는 거야?”
“사실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뭐.”
“······, 그럼 그렇지.”
승현은 그렇게 말하곤, 앞으로 자신은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올 때까지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할 거라고 했다.
무슨 축구 감독으로 플레이를 하는 게임이라는데,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 되어도 게임 중일 수 있으니 확인차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아야 했다.
악마의 게임이라나 뭐라나. 축구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고,
“아버지, 저 휴가 동안 어머니 좀 뵈러 다녀올게요.”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를 뵈러 간다고 하자 반가워하며 차비와 용돈을 주었다.
“서울역에서 KTX 타고 가면 금방일 거다. 표는 아빠가 예매해줄게. 가는 길에 맛있는 것도 사먹고, 네 엄마가 복숭아를 좋아하니 집 도착하기 전에 복숭아 하나 사가면 좋아할 거야.”
“네 아버지, 그렇게 할게요.”
“혼자서 잘 다녀올 수 있겠지?”
“그럼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서울역으로 짐을 챙겨 떠났다.
내가 탈 열차는 오전 10시 1분에 출발하여 11시 58분에 강릉역에 도착하는 열차였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자 대략 9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나는 매점에서 간단한 아침식사용으로 김밥과 음료수 하나씩을 산 뒤 플랫폼으로 향했다.
서울역의 플랫폼은, 예전 중학생 시절 전국으로 백일장을 오갈 때 자주 탔던 곳이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나니 추억에 잠긴 기분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1년에서 3년 정도 전의 일인데, 그동안 나는 참 많이도 바뀐 기분이었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동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가진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과분한 인정을 받았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깨달음을 주는 선생님들, 친구들.
강릉에 다녀오면 다시 만나게 될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한층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가는 길도 가볍고, 돌아올 길도 가벼울 것이었다.
열차에 탑승하고 지정된 자리에 착석하자 객석에는 안내음성이 들려왔다. 이윽고 열차가 출발했고, 나는 김밥을 먹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KTX가 철도를 달리며 도심을 빠져나오자 대부분의 길목들이 논밭 혹은 산이 보이는 풍경이었다. 대도시의 높은 건물들과 빽빽한 상가는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탁 트였고 어쩐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싶었다.
나는 여유로운 마음에 설핏 낮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타이밍이 좋게도 열차는 어느덧 강릉에 도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엄마! 저 왔어요~!!!”
“어머어머, 아들~~!!”
나는 한 손에 복숭아가 가득 든 봉투를 들고 캐리어를 끌며 대문 앞에 서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소리를 듣자마자 주방에서 곧장 달려나와 나를 맞이해주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어머니는 두 손을 내 양쪽 뺨에 대어보며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나는 그동안 살이 쫌 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 눈에는 늘 핼쑥해 보이나보다.
“어머니랑 같이 먹으려고 복숭아도 사왔어요.”
나는 오른손에 든 봉투를 들어 올리며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아들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센스 있을까~ 이리 줘. 엄마가 맛있게 깎아줄게.”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복숭아를 들고 주방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그동안 캐리어를 내 방에 놓아두었다.
내 방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했다.
책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여전히 가지런하게 꽂혀 있고, 책상 또한 여전하다.
이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복숭아를 나눠먹었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쌓였던 서로의 개인사들을 하나 둘 풀어내다보니 시간음 금방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이런 날엔 외식을 해야 한다며 어머니는 나를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고깃집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은 어머니와 나는 소화를 시킬 겸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산책했다.
우리는 한동안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말없이 걸었고, 긴 고요 끝에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한동안 바다에 오는 게 두려웠단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죽을 뻔했기 때문에, 바다가 두려웠던 거다.
아니, 원망스러웠던 거다.
감히 내 아들을 집어삼키려 했으니 말이다.
바다에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리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하지만···, 바다에서 구조된 네가 물을 게워낸 뒤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을 때. 한동안 이게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봤어.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기라도 한 걸까? 열심히 믿어왔던 신은 없었지만 말이야.”
나는 말없이 계속 걸었고,
어머니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네가 건강하게 깨어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행복해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바다를 용서했단다.”
나는 조금 눈물이 나올 듯해서
일부러 배시시 웃었다.
어느새 웃으면서 흘리는 눈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는, 매일매일 이곳을 걸으며, 율이가 더더욱 행복해지게 해주세요. 그동안 갖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세요. 되뇌었지.”
나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배시시 웃는 얼굴에 눈동자는 흐릿했다.
밤하늘의 별이 각자의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할 말을 다 한 뒤,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흐음~ 으으음~~ 으음~ 흐으음~~”
어머니의 노래 소리와 함께 바다는 끝없이 파도를 밀어내는 중이었고 산에 있는 나무들은 잔잔히 부는 바람에 몸을 흔들었다.
나는 문득 그 조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노래.
밤하늘의 별들과, 빛들이 반사되는 투명한 물방울이나 해수면.
모래새장의 조개껍질들과 이름 모를 발자국들.
아무렇게나 휘날리는 머리카락.
육지의 동쪽 끝 풍경.
나는 어머니의 멜로디를 오래도록 기억해두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것으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노래는 이곳의 풍경 만큼이나 아주 아름다울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
강릉에서의 두 번째 아침,
나는 평소처럼 목욕을 하는 대신, 다른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엄마, 저 바다에 좀 다녀올게요.”
“괜찮겠니?”
“네, 정말 괜찮아요. 안전한 곳에서만 놀게요.”
나는 집 근처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고, 구조대원들도 착실히 근무에 임하는 중이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믿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조금 떨려서, 준비체조를 열심히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준비체조를 30분 동안이나 하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이런 과정이 필요했다.
첫 번째론,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었고.
두 번째론, 바다의 음악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어느덧 몸이 달아오르고 땀방울이 조금 맺힐 정도로 준비체조를 했다.
나는 물가로 들어가 발목 높이까지 잠기는 곳을 조금 걸었다.
해수면이 얕은 곳은 바닷물도 그리 차갑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
물이 무릎 높이까지 차오르자 정강이 밑으로 수온이 조금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더,
더 들어간다.
어느덧 물이 가슴께까지 차올라 있다.
조금만 더 들어가 본다.
이제 까치발을 들지 않으면, 입으로 숨을 쉬지 못한다.
나는 준비한 스노클을 쓴 채로,
바다 밑으로 잠수했다.
여지없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밤,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그 멜로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