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38
38화. 파도처럼 몰아치는.
무대 위에는 마이크를 잡은 나와,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승현, 그리고 전자피아노를 두들기는 예송이형이 있었다.
음악의 초반부는 천천히 반주를 까는 예송이형의 피아노 사운드로 시작한다.
그렇게 서서히 피아노 선율에 귀가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승현이 강렬한 일렉기타 사운드로 치고 들어온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초반부의 빠른 템포가 시작된다.
‘아첼레란도(Accelerando, 점점 빠르게)’
그리고.
‘비바체(Vivace, 빠르고 활발하게)‘
무대 아래 관중이자 참가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가, 이내 굳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무대를 즐길 수 없다.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명의 합격자가 정해졌다고.
김설에 이어,
이 팀이 우리들의 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와는 반대로 참가자들 뒤쪽에 선 스태프들과 PD는 함박웃음을 짓고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다.
단순히 방송적 흥행에 기뻐하며 무대를 즐기기보다는
오로지 순수하게 좋은 음악만을 즐기러 온
그런 관중이 되어 있었다.
간주가 끝나고, 천천히 목소리를 내뱉는다.
순간 고개를 들자 내 눈 앞에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가 보인다.
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은 그동안 겪어 왔던 모든 수모와 안타까운 시선들을 모두 지워낼 수 있었다.
나를 동정하는 사람들, 나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뒤에 가선 나를 흉보던 사람들.
모두 잊을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이제 나를 잊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으며 기쁘게 노래 불렀다.
지난 날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
때 아닌 여름 같은 분위기로 열광적이었던 우리들의 무대가 끝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효인은 모두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 말했다.
“이제 식사가 끝나면 저는 밤 동안 여러분들의 무대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탈락자를 정할 거예요. 아마 2개의 팀을 탈락시키게 될 텐데, 마냥 편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편한 밤 되시고, 모두 내일 아침에 볼게요.”
효인은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다 같이 남아서 어색한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나자, 야외에선 개별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팀 단위가 아니라 개별 단위였으므로, 나와 승현, 그리고 예송이형도 각기 다른 시간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PD가 한 참가자에게 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팀이나 참가자는 누구인가요?”
이 질문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팀을 이야기했다.
“슈팅 스타요!”
“슈팅 스타 걔네 쩔던데요. 2차 오디션 방송 나온 거 봤는데, 그때 보자마자 알았죠. 아, 나 팀 잘못 들어 왔구나···.”
“그 뭔 아이스크림 이름 같은 거 있지 않았나요? 보컬 잘생긴 팀···, 한 팀밖에 없잖아요.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네. 하지만 보컬 실력이 진짜···, 그 보컬분 이름이 뭔가요?”
“신율님입니다.”
“그 이름은 기억해둬야겠네요.”
“없는데요?”
없다고 말한 유일한 참가자는 승현이다.
“그래도 말해주셔야 돼요.”
PD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그 김설씨요. 높이 올라가시겠던데요.”
실제로 PD의 질문 이후,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슈팅 스타만 말하자 PD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했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참가자는?”
그러자 이 때도 대다수의 반응이 같았다.
“김설씨요.”
“김설씨 잘하시더라고요. 그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봤어요.”
“아직 겨울도 아닌데 눈보라가 치는 느낌!”
그리고 김설의 인터뷰,
“김설님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았던 참가팀은 어디였나요?”
“············, 신율.”
“신율 참가자가 소속된 슈팅 스타 말씀이신가요?”
“아뇨. 신율.”
“그치만 신율 참가자는 슈팅 스타 소속인데요?”
“네.”
차갑도록 단호한 어투. 그리고 단답.
PD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인터뷰 차례였다.
“신율님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았던 참가자 혹은 참가팀은 어디였나요?”
“음······, 김설 참가자가 되게 신기한 분위기였어요.”
“신기한 분위기여서 좋았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뭔가 묘한 느낌? 노래 자체는 그냥 좋았어요. 어떠해서 좋다가 아니라, 그냥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 자체의 분위기는 굉장히 묘했네요.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 신비한 느낌도 좋았다면 좋았네요.”
정말로 그랬다.
김설 참가자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묘한 느낌이 있었다.
계속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나. 피부가 놀랍도록 하얗다는 것. 작은 체구와 대비되게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있다거나.
그러면서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할 때에는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저런 성량이 나오나 싶을 만큼 힘이 꽉 찬 목소리였다.
마치 미국의 살아 있는 전설적인 보컬 ‘NIA’가 연상되는 목소리.
아무쪼록, 이렇게 모든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끝나자 취침 시간이었다.
효인은 저녁식사 시간 이후에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계속 심사에 열중인 듯했다.
부엌에서는 참가자들끼리 뒤풀이를 한답시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신율씨도 와서 한 잔 해요!”
테이블에는 벌써 어느덧 여섯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다들 어느 정도 대화가 트였는지 친근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모르는 사람들이어도 한 데 어울려 놀고 대화하기를 좋아했으므로, 일단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미성년자였기에.
“같이 노는 건 괜찮은데···, 제가 미성년자여서요. 저는 음료수만 마시겠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놀랐다.
““신율씨가 미성년자라고요!!???””
순간 그동안의 대화 주제는 모두 사라져버리곤, 새로운 대화 주제로 술판이 이어졌다.
“진짜 미성년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니 나쁜 의미로 그런 게 아니고, 얼굴 때문에 최소 20대 중반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잘생겨서요.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요즘 애들 발육 진짜 빠르네요···. 나는 노화가 빠른데요···.”
테이블에 있던 참가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지만, 그런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고 이중에는 30대를 넘은 참가자도 있었다.
그렇게 연령대가 고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눴지만, 설마 이들 중에 미성년자가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끼리 효인 팀 참가자들 나잇대 예상해보고 있었거든요. 우리 다들 신율씨는 2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어려도 미성년자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면 아직 대학도 안 갔겠네요?”
“아 대학은 올해 붙었어요.”
“어디로?”
“한국예대 실음과에 가게 됐습니다.”
“이야~ 엘리트네 완전. 난 거기 재수했는데도 떨어져서 다른 데 갔잖아. 예비 5번 받았던 거 기억난다.”
“저는 현역 때 거기 예비 20번 받고 울었어요.”
어느덧 대화 주제는 나의 나이를 넘어서 나의 입학 예정 학교로까지 변했고, 그때 알았지만 꽤나 음악인들 사이에서 한국예대란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인 듯했다.
“여기 있는 사람 누구나, 고등학생 때 한국예대 가고 싶다는 꿈 한 번 쯤은 꿔봤을 걸요. 나도 그렇고요.”
그러나 이들 중에는 그 누구도 한국예대에 합격을 한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는 수험생 시절 다른 모든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을 했음에도 한국예대만은 불합격을 받아 아쉬움을 삼킨 적도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때가 내 인생 전성기였는데···, 그때도 한국예대는 못 갔어.”
점점 과거에 대한 한탄으로 바뀌는 대화들을 보니, 차마 우리 팀 전원이 한국예대 합격생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싶었다.
그러던 때, 테이블 옆으로 누군가 지나갔다.
김설 참가자였다.
김설은 테이블 옆 냉장고에서 우유 한 팩을 꺼내더니, 조용히 그것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대화 주제는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역시나 김설이었다.
“저 분도 되게 궁금한데, 나 아직까지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요.”
“샤워 할 때도 남들 다 없는 새벽 시간대에만 하시던데. 불편해할 것 같아서 나도 씻고 싶었는데 그냥 밖에서 기다렸잖아요.”
“김설님은 정말 나이를 아예 종잡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근데요···.”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저분 왠지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찾아봤는데···, 이 목소리 되게 김설님이랑 닮지 않았어요?”
그가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 영상을 틀어 보여준 것은, 2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국예대 축제의 무대 영상이었다.
그곳에는 김설과 비슷한 체구의 어느 여성이 무대 위에서 파워풀한 보이스를 내세우며 열광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챙이 긴 모자는커녕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려 얼굴이 환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에이, 분위기가 완전 다른데요?”
“그렇지만 목소리가 비슷하잖아요.”
“이런 목소리가 흔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이랑은 너무 달라서 같은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네요.”
“혹시나 그동안 어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나는 점점 분위기가 김설 참가자의 신상을 터는 것 같아 말했다.
“근데, 이런 식으로 사람 추리는 거 조금 실례인 것 같아요.”
순간 테이블의 분위기는 조금 싸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할 말을 해야 했다.
“맞네요. 저희가 조금 경솔했어요. 설령 진짜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게요. 이제 그만 다들 일어날까요?”
그렇게 3차 오디션 직전 탈락자를 고르는 날의 마지막 밤이 깊었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방으로 흩어져 잠을 청하고자 했다.
나는 급작스레 나 때문에 좋던 분위기가 깨진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적적하게 펜션 앞마당을 산책했다.
그러자 펜션 근처 외딴 곳에 있는 벤치에서 익숙한 모자를 볼 수 있었다.
김설이었다.
‘모르는 척 지나갈까···?’
나는 괜히 걱정을 하며 근처를 계속 걸었다. 그러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신율님?”
“네!?”
나는 깜짝 놀라며 어정쩡한 대답을 한 뒤에야, 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김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서 뭐하시나요?”
“아, 그냥 산책하고 있었어요.”
“아···, 네······.”
뭘까.
나를 왜 부른 걸까.
‘불렀으면 왜 불렀는지 말이라도 해주던지.’
나는 급작스레 오고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언가 내게 말을 붙이고 어떤 대화를 하려고 부른 것 같은데, 막상 곁을 허락하진 않는다. 나와의 대화를 불편해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곧장 펜션으로 돌아가자니, 사람이 불렀는데 그냥 돌아가는 게 예의인가 싶어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그저 보이스 옆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김설이 먼저 입을 다시 열었다.
“노래 잘 들었어요.”
“아아, 네, 저도 잘 들었습니다.”
“네, 좋은 밤 되세요.”
“김설님도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뒤에야, 나는 방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