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누가 우리 율이 괴롭혔냐.
줄여서 내가 처음으로 출연하게 될 음악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정확히 따지면 도 음악 방송 프로그램이지만, 그건 오디션 명목이었으니.
이곳에서 나의 진짜 방송 데뷔가 이뤄진다고 볼 수 있겠다.
S 방송국 잠실점에 도착한 뒤, 4층에 도착하자 출연 가수들의 대기실이 줄지어 있었다.
“신인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경력이 오래된 가수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고요.”
“그러면 하나하나 들리면서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원래는 그렇죠.”
“원래라면···, 이젠 아니라는 건가요?”
“아뇨. 제가 알려드린 분에게 찾아가면 알게 될 거예요.”
도진권 매니저가 적어준 쪽지에는, 내가 찾아가야 할 사람의 이름과 함께 짧은 메모가 있었다.
[재용Prenditi cura di questo bambino.
– M.]
외국어로 된 메모는 필체 또한 워낙 악필이었던 터라, 철자 하나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들 정도였다.
‘영어는 분명 아닌데···, 무슨 뜻일까.’
나는 그 내용이 궁금하여 도진권 매니저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비밀이라며 대답을 피했다.
‘이상한 내용은 아니겠지.’
띵동-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고, 모퉁이를 돌자 곧바로 대기실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왼쪽 벽의 가장 첫 번째 대기실에는 [슈팅 스타 – 신율]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곳이구나.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보다 비좁았다. 결승 무대 직전 마련되었던 대기실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었달까.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매니저의 조언을 따라 선배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갈 준비를 했다.
다만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터라, 한동안은 대기실에서 대기해야 했다.
우선은 바로 건너편 방에 있는 ‘설민호’라는 가수의 대기실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어딘가 들어본 이름 같다고 생각했지만 명확히 떠오르진 않았다.
‘검색을 해볼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설민호의 대략적인 정보가 나왔다.
데뷔는 3달 즈음 전에 했으며, 발라드 가수.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다.
프로필 사진의 첨부 된 이미지는 어딘가 온화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도 짧게나마 보았는데 누구나 호감형이라고 느낄 만한 얼굴이었다.
끼익-
쾅-
건너편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설민호가 왔다.
나는 곧장 대기실에서 빠져나와, 설민호의 대기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두드렸다.
똑똑-
······.
아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들어가도 되는 건가?’
나는 한 번 더 두드렸다.
똑똑-
······.
분명 안에선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나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설민호인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문을 열지 못하고, 다시 나의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득 도진권 매니저가 해주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이 사람을 만나러 가라고 했지.’
재용이라는 이름.
아마도 내 추측이 맞다면, 이는 고재용일 것이다.
남자 아이돌 그룹 출신이며, 지금은 알앤비 위주의 장르를 부르고 있는, 데뷔한 지 10년이 넘는 베테랑 가수다.
평소 자주 듣던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가 가수들 사이에서 꽤나 인지도 있는 가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여러 방송이나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하고, 최근 솔로 활동으로 복귀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마, 그 재용이 맞겠지.’
나는 대기실을 하나 하나 지나치며, ‘재용’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렇게 절반을 넘게 대기실 복도를 지났는데도, 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야 하나. 설마 끝까지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어이!”
등 뒤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 맨 끝, 그러니까 나와 설민호의 대기실이 있는 위치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너!”
“저요?”
“그래! 거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나는 우선 선배가 부른 것이 확실하니 후다닥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뛰어와!?”
설민호로 추정되는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나는 곧장 뛸 준비를 했다.
그때, 이번엔 반대쪽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반대쪽 맨 끝 방, 그곳에서 다른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재용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어어, 그래. 갑자기 무슨 소란이야.”
“저 그게···, 신입이 바로 위 기수한테 인사도 안 하고 지나치길래 불러 세웠습니다.”
“그래? 얘가 걔야?”
“네 그렇습니다. 선배님.”
둘이 대화를 하는 동안, 나를 처음 불러 세웠던 남자는 조금씩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그 남자의 얼굴이 바로 앞에 오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설민호임을 알았다.
그는 화가 난 표정을 한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말했다.
“신입이 빠져가지고.”
강압적인 모습에 나는 조금 기가 눌려 있었다.
그런데, 잠깐.
‘방금, 재용이라 하지 않았나?’
나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정말로 재용이 있었다.
재용의 대기실은 가장 안쪽, 끝이었던 것이다.
즉, 이 방송의 최고참이라는 것.
나는 곧바로 재용에게 다가가 쪽지를 내밀었다.
“응? 뭐야.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쪽지? 이건 또 뭐야.”
“야, 말하다 말고 어디 가냐?”
등 뒤에선 나를 향해 따가운 말투로 신경질을 부리는 설민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이 쪽지밖에 없다.’
쪽지를 받은 용재 선배는 그 안에 담긴 메모를 읽었다.
그리곤
“흠······. 이게···, 무슨 말이지.”
큰일났다.
용재가 쪽지의 내용을 모르는 것 같다.
‘내 방송 커리어가 이렇게 처음부터 꼬이는 건가···.’
그때였다.
“민호야.”
“네! 선배님!”
“네가 먼저 왔냐. 신입이 먼저 왔냐.”
“···, 먼저 온 건 신입이 먼저 왔습니다.”
“그건 어떻게 알고 있지?”
“······, 제 대기실 문을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지?”
“·········.”
설민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당연히 할 말이 없을 거다.
문을 열어주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건 본인이니까.
그걸 재용 선배는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니까.
“민호야.”
“···, 넵!”
“이번만 봐준다. 돌아 가.”
“넵! 감사합니다!”
재용 선배의 말에 설민호는 곧장 뒤돌아 자신의 대기실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와중에 발걸음 소리는 최소한으로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 네가 율이니?”
용재 선배가 나를 불렀다.
“네, 슈팅 스타의 신율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용재 선배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조금 뻘쭘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대기실의 복도에는 다른 가수들이 점차 들어서기 시작했다.
“용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용재 선배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용재 선배님!”
수많은 아이돌 그룹, 솔로 가수, 뮤지션들이 용재 선배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주변에 모였다가 인사를 하곤 돌아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용재 선배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나를 한 번 흘겨보곤 지나쳤다.
그러던 중 어떤 가수가 용재 선배에게 물었다.
“용재 선배, 이 친구에겐 무슨 일입니까?”
그는 나를 조금은 아는 눈치였지만, 그것보단 용재 선배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가 더 궁금한 것 같았다.
그때 용재 선배가 대답했다.
“그걸 나도 모르겠단 말이지···. 하지만 확실한 건···.”
“확실한 건요?”
“이 아이, 함부로 건들였다간 큰일 날 것 같다.”
용재 선배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도진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 거야. 그리고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
용재 선배는 그 이후로 나를 데리고, 다른 가수들의 대기실을 함께 돌아주었다.
주로 내가 먼저 대기실의 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고, 용재 선배는 나의 뒤에서 말없이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러면 대기실 안에 있던 가수들이 가장 먼저 용재 선배에게 인사하고, 나는 그런 가수 선배들에게 인사한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모든 가수 선배들이, 나의 인사를 곧바로 받아주었다.
마지막 순서는, 설민호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마자 곧바로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었다.
설민호였다.
“용재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엔 죄송했습···”
“됐고. 이 친구 인사나 받아줘.”
용재 선배가 나의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민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데뷔한 슈팅 스타의 신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어···, 그래그래. 나도 반가워.”
정신이 반쯤 빠졌는지, 어쩔 줄을 모르는 설민호였다. 결국 재용 선배는 설민호에게 말했다.
“이제 좀 쉬어. 오늘 무대 잘하고.”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나의 신고식이 끝났다.
그런데 이걸 신고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왠지,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게임에서 치트를 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내 탓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 쪽지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악필의 외국어로 된 그 내용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이니셜을 적은 듯한 그 “M”이라는 글자.
그것이 어떤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M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그 글자를 보자마자 재용 선배는 무언가를 알아챈 눈치였다.
분명 도진권과 재용 선배는 어떤 긴밀한 관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진권은···, 도대체 어느 정도 레벨의 가수였던 걸까.
“율이도 이제 좀 쉬렴. 네가 첫 번째 무대니까 이제 곧 리허설 시작할 거야. 그럼 힘내고!”
재용 선배는 내가 대기실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뒤,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똑똑-
누군가 나의 대기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누구세요?”
나는 곧장 문을 열었고, 그런 나를 맞아준 건 다름 아닌 설민호였다.
그는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은 뒤 말했다.
“너, 재용 선배랑 무슨 관계냐?”
“네? 아무 관계도 아닌데요?”
“그래. 나도 알아. 너랑 선배가 같은 소속사도 아니고, 네가 출연한 오디션과 재용 선배는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 근데 갑자기 왜 재용 선배가 너를 감싸고도는 거냐고. 방금 너 재용 선배한테 무슨 이상한 쪽지 줬지?”
“···, 그런데요?”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해. 가수 커리어 꼬이기 싫으면.”
점점 더 강압적으로 구는 설민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나는 설민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이런 걸로 커리어 꼬일 가수는 아닌데, 혹시 본인 얘기인가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도저히 설민호에게 고운 말은 못하게 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