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137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137화
카리아만은 아직도 그 피비린내를 기억한다.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서글픈 기억인지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피 웅덩이에 잠긴 아버지.
그로 인해, 어딘가 망가져 자신에게 ‘의무’를 강요한 어머니.
어쩌면 선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망가졌던 어머니의 옆을 지킨다거나.
혹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게끔 적극적으로 돕는다거나.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그걸 아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망친 게 최선은 아니었다는 것.
그는 최선이 아님을 알면서도 도망쳤다.
그리고 그건, 결국 그가 최선으로부터 도망쳤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그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어린 나이였다.
망가진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었던 때기는 했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책임을 지우는 것도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린 때의 기억이 가슴에 박힌 가시처럼 따끔거릴 때가 있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런 생각은 힘든 시기를 지나, 콘도르 용병단에 소속된 후에도 이따금씩 튀어나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용병단에 적응하고, 그들에게서 이름을 받은 뒤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을 즈음.
– 아들아!
어머니가 그를 찾아왔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답지 않게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로.
확실히 달랐다.
더 이상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시간이 어머니의 마음을 치유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의 방황이 어머니를 그리 만든 건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건 좋았다.
오랜 시간 골이 깊었던 모자 관계가 쉽게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는 자신을 지켜봤고.
자신 역시 늘 하던 것처럼, 자신의 신념에 맞게 살아갔다.
어느새 가슴에 박혀 있던 가시가 빠진 것 같았다.
더 이상, 피비린내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고.
어쩌면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신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서 해방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카리아만은 생각했다.
그러던 중.
– 멜 오른, 이제 ‘동포’로서 우리와 함께할 시간이다.
그 사건이 터졌다.
* * *
“……흐음.”
난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카리아만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까 전, 속박해 둔 떨거지 둘도 보았다.
부지런히 두들긴 덕분일까.
떨거지 둘이 정신을 차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그림자에 마물들을 담고 있을 정도니, 회복력도 빨라 곧 정신을 차리긴 하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콘도르가 대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가능성.’
사실 가능성 정도가 아니다.
아마 거의 확실할 것이다.
다만, 용병단장인 마일러스 경.
그가 결국 에녹한테 굴복했는가 아니면 버티고 있는가.
그 정도가 다를 뿐.
마일러스 경이 어떻게 되었느냐에 따라 계획의 방향성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라도 빠르게 콘도르 용병단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그럼 우선은…….’
“아들아!”
그때, 막 정신을 차린 카리아만을 밀리움이 끌어안았다.
그 ‘심판자’가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아들을 아끼는 모습은 확실히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카리아만은 품에 안긴 채 멍하니 있다가 자신을 안고 있는 게 누군지 깨달은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여긴 어떻게…….”
“널 찾아 이곳까지 왔다. 설마하니, 마물에 침식되었을 줄이야. 어찌 이런 일이…….”
“저, 전…….”
그 말에 카리아만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더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 여기 이렇게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마일러스 경이……!”
“괜찮습니다.”
난 우선 그를 진정시켰다.
패닉에 빠져 있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 향했다.
“다, 당신은…….”
“현 용사입니다. 이름은 미하일 발푸르기스라 합니다만…….”
“아아……!”
그 말에 카리아만의 입이 벌어지더니, 눈에 환희가 깃들었다.
날 만나길 기다렸다는 듯.
그러고는.
“용사님이시군요. 이, 이렇게 뵙게 될 줄이야!”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 아, 예.”
“대악마의 대가리를 부수고 다닌다는 그 용사님이라니!”
“제가 좀 악마 대가리를 부수는데 조예가 있기는 하죠.”
카리아만은 어쩐지 좀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꽤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밀리움과 마찰이 생겼던 것 아닌가.
하지만 어째 이렇게 직접 보니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개방적이시군요.”
“하하, 뭐, 여러 가지 일을 겪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난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카리아만의 상태를 차근차근 점검했다.
‘기억에도 문제는 없고, 정신적으로 뒤틀린 것도 아니야.’
다행히 마물을 분리하고 소멸시키는 과정에서 정신 쪽에 별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자, 그럼 카리아만 님.”
“예.”
“일단 먼저 제가 대가리를 깬 놈 둘을 보여 드릴 텐데, 진정하시고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잠깐, 은인,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조금만 시간을 두고…….”
밀리움이 말리려 했지만, 그녀를 막은 것은 카리아만이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아만.”
“용사님이 이렇게 하시는 걸 보면 시간이 없는 것 같네요.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두었던 괴한 둘을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카리아만의 눈앞에서 두건을 걷었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이들은……!”
“역시, 아는 자들입니까?”
“예, 둘 모두 용병단에 소속된 인물들입니다. 분명, 제 선배들이었습니다만…….”
카리아만은 우리를 습격한 두 괴한의 정체를 밝혔다.
말론과 바스커빌.
둘 모두 카리아만이 콘도르에 입단하기 전부터 있었던 선배 기수의 용병들이며, 둘 모두 제법 촉망받는 인재들이었다.
“말론은 빠른 검으로 유명했지요. 선배들 중, 속검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바스커빌은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줄 아는 게 장점이었지요. 상황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즉, 콘도르의 유망주였다는 거군요. 그런데 그런 자들이 침식됐다…….”
“아마 스스로 침식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애초에 저 역시 그걸 알아채서 다급히 나온 것이니.”
그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밀리움 경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마스터의 도움은…….”
“어머니께 침식된 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 보니, 어느새 나중에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까지 왔더군요.”
“……이해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자식이 부모를 걱정시키고 싶겠는가.
그렇게 혼자서 앓다가 이리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리 어머니께 변경백에 관한 것을 말해 두기는 했습니다. 그리하면 절 찾기 위해서라도 용병단을 나오실 것 같았기에.”
“아, 아아, 그래서…….”
밀리움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으로 카리아만을 다시 품에 안았다.
“그렇다면 계속 묻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본론입니다만…….”
“예, 말씀하시지요.”
“당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용병단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그것은…….”
카리아만이 괴로운 표정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콘도르 용병단의 타락.
한때 콘도르를 선망했던 입장에서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이리라.
“……절반 이상이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용병단장, 마일러스 경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요. 밀리움 경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만.”
“단장께서는…….”
카리아만이 입을 연 순간, 갑자기 뒤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이상 지껄이지 마라!”
“……허?”
난 이맛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바스커빌이 카리아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은 당장이라도 카리아만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
“그분께서 네게 부여한 은총을 기억해라! 그분은 특별히 네 재능에 주목했고, 은총을……!”
“조용히 하세요!”
콰앙!
난 또 뭐라 헛소리를 하려는 바스커빌의 머리를 내려쳤다.
“또, 또 이상한 말 한다. 주기적으로 머리를 좀 쳐야 하나.”
“크아악! 요, 용사라 해도 소용없다! 그, 그분의 힘은 아무리 용사라도 어쩔 수…….”
“명대사 나왔고요.”
어릴 적에 자주 봤던 소설에서 이런 대사가 참 많았다.
아마 대부분이 몇 페이지 내에 철거되는 삼류악역 전용이었지.
난 스태프로 놈의 머리를 툭툭 쳐 대며 카리아만에게 말했다.
“이 놈이 하는 헛소리는 그냥 무시하시고, 편하게 쭉쭉 말씀하시면 됩니다.”
“예, 현재 단장께서는 구금된 상태이십니다. 하필, 단장께서 가장 믿었던 부단장, 키에르가 배신을 하는 바람에…….”
“시기는 꽤 되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부단장의 배신.
회귀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귀 전에도 부단장이 배신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기.
보다 빠르게 대악마들이 움직이고, 지금 당해서는 안 될 이들이 당했다.
‘마일러스 경은 이대로 당하게 놔두기에는 아까운 인재란 말이지.’
이미 그가 망가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우선 그 가능성은 잠시 치워두도록 한다.
괜히 절망적인 예측에 매몰되어 봤자 좋을 것은 전혀 없으니.
그렇다면…….
“좋습니다.”
대충 필요한 정보는 다 들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뿐.
“역시 바로 콘도르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군요. 지체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지요.”
“그럼 저 둘은 어쩔 생각이냐.”
리안이 말론과 바스커빌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말에 따르면, 일단 둘 다 골수까지 마물에게 침식됐다는 거잖아. 그럼 이대로 두기도 좀 찜찜하기는 한데…….”
“따로 써먹을 구석이 있어.”
“써먹을 구석?”
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마물 둘을 보았다. 이제 인간이라고 하기도 뭣한 놈들.
본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스스로 악마에게 혼을 바치기로 판단한 시점에서 구원의 여지는 없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뭐, 뭘 할 생각이냐……?”
내가 스태프를 들자, 바스커빌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말론 또한 꽤 동요한 표정이었다.
“난 기본적으로 인간에게는 선을 지키는 편이지만, 혼을 팔아넘긴 변절자들에게는 선이라는 게 없거든.”
필요하다면 변절자에게는 잔혹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나라는 존재다.
회귀 전에도 그랬다.
애초에 내가 지크프리트와 크게 의견 차이를 보였던 것부터가 바로 그러한 점이었으니.
“도련님, 무슨 마법을 쓰실 생각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영혼 속박.”
난 짧게 답했다.
에녹의 편에 선 놈들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눈앞의 두 놈은 어느 정도 그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걸 위해서 영혼을 속박한다.
오로지 내 질문에 답하고 정보를 내뱉을 수밖에 없게끔.
이미 이 둘의 영혼은 에녹에게 사로잡혀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강제로 육체를 부수고, 영혼에 족쇄를 걸 수는 있는 것이다.
“확실히, 결코 가벼운 마법은 아니군요.”
집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수준이 높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잔혹하다는 뜻.
하지만 그 역시 내 방식이 잘못됐다거나 고쳐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 잠깐! 여, 영혼 속박이라니, 그 무, 무슨……!”
“알 필요 없어.”
어차피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스태프를 들고 마법을 시전했다. 새하얀 성광이 일대를 뒤덮었다.
화아악!
보통의 사람이라면, 경건함과 영광을 느낄 정도의 찬란함.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 안 돼……!”
지금부터 그 무엇보다 끔찍한 족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