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152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152화
“레메게톤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말은 바로 해야지. 난 무엇이건 될 수 있다. 그저, 널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이런 거라 이런 형태를 취했을 뿐.”
레메게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나와 거의 흡사하다고 봐도 좋을 외모.
하지만 어딘가 분위기는 다르다.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이 외모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
“시조를 흉내 낸 건가.”
“정답. 너희들의 원형이자, 내 창조주. 뭐, 제법 위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탁자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과자가 생겨났다.
“우선은…… 앉아. 결계를 통과하느라 꽤 고생했을 것 같은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레메게톤에게 그 기색을 보여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다만.”
난 레메게톤이 소환한 차와 과자를 마법으로 불태웠다.
“이것들은 빼자고.”
“허.”
그 순간, 앉아 있던 레메게톤의 입가가 비틀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같잖은 수작은 부리지 말라고.”
난 놈을 똑바로 응시했다.
실체는 종이와 잉크, 그리고 마법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형태를 취한 이상 지금 내 앞의 놈은 인간이다.
인간과 같은 악의를 품을 수 있으며, 탐욕에 휩싸여 날 죽일 수도 있는 존재.
“그림자로 만든 차와 과자. 사람 하나 죽이기 딱 좋네.”
“……흐음.”
레메게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놈의 두 다리에서 이어진 그림자가 마구 요동쳤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군.”
“네 탐욕을 아니까. 그림자를 이용하는 건 악마의 전유물이지. 이걸로 날 침식시킨 후, 지식을 집어삼킬 셈이었나?”
“그렇다면?”
“어림도 없는 개수작이라는 말을 해 둘게. 설마하니, 용사인 내가 이런 개수작에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쯧.”
레메게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뭐, 좋아.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반말을 할 참이지? 난 네 시조인 초대 발푸르기스의 분신이다. 후손인 넌 당연히 예의를…….”
“말했잖아, 용사라고.”
난 입꼬리를 더 올렸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미소에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
용사로서, 아니, 회귀 전부터 마신에 대항했던 아르고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
놈은 그림자를 다룬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놈에게 포함된 성분 중 악마가 얼마나 비중을 차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악마 새끼에게는 존대 안 해.”
이놈은, 악마다.
* * *
리안 파슬로프는 검사다.
그것도 ‘차세대 검성’이라는 화려한 명성을 가진 검사.
당연하지만 스스로의 실력에도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하일의 용사행을 따라다니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최근.
……아니, 대략 2년 전부터 생기게 된 천적이 있었으니.
“비켜라!”
“으아아아아!”
바로, 발푸르기스 되시겠다.
리안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곳곳에서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리안은 어떻게든 벼락을 피하기 위해 죽어라 뛰었다.
‘이런, 미친!’
8서클의 대마도사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지녔는지, 대충 듣기는 했다.
그냥 세다. 건드리지 마라.
정말 미친 듯이 막연한 말들뿐이었지만, 하여간 들은 건 맞다.
그래서 세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이건…….
“이건 좀 아니잖아!”
그야말로 ‘규격 외’라는 표현이 딱 맞다. 마스터와는 다르다.
8서클이라는 게 얼마나 강력하고, 다양한 마법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지를 리안은 지금 전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각하, 진정하시지요!”
집사가 근육으로 가득 찬 상체를 자랑하며 후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그는 7서클.
고작 1서클의 차이……!
하지만.
“집사, 고작 그 정도의 근육으로 날 상대하려 하는가!”
“크어어억!”
요란하게 달려든 것이 무색하게 집사의 몸이 처참하게 튕겨져 나왔다.
제아무리 마법(물리)라도 8서클의 힘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아, 아이단…… 이 아니라, 각하! 일단 진정하시길!”
“그래, 내가 널 팬 적은 없었지! 진즉에 이랬어야 했는데!”
“아, 아니…… 가아아아악?!”
7서클인 집사마저도 무력하게 허물어졌다.
한데, 6서클인 노스트라 자작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스태프가 핏빛으로 번뜩였다.
“뭐, 뭐, 뭐야…… 저거…….”
에일렌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당당하게 맞붙고 싶어도, 저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포식자를 눈앞에 둔 초식동물이라도 된 것만 같다.
이 느낌, 익숙하다.
‘미하일!’
그래, 그 느낌!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후작에게서는 공포라는 압도적인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후작이 스태프를 휘두를 때마다, 벼락과 광풍이 불어닥쳤다.
집사와 노스트라 자작은 온몸이 누더기가 되어 가면서도 필사적으로 후작을 막으며 외쳤다.
“막으십시오, 공자, 공녀! 각하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아가리!”
“커헉!”
집사의 몸이 화려하게 허공을 날았다.
그가 뿜어내는 핏줄기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었다.
노스트라 자작이 소리쳤다.
“도련님을 믿으시지요! 지금까지 잘하셨잖습니까!”
“잘했으니까 문제지!”
후작이 그 말과 함께 스태프를 들어서는 노스트라 자작을 후려쳤다.
자그마치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자작의 심각한 행태마저 방관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풀 스윙.
결국 적극적으로 막던 두 사람이 무력화됐다.
쿠오오오.
새파란 안광을 번뜩이며, 후작은 서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음?”
“더는, 못 가십니다.”
파들파들 검을 쥔 손을 떨면서도 리안이 후작의 앞을 막았다.
그만이 아니었다.
에일렌 또한 마찬가지.
후작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 둘을 쳐다보았다.
“파슬로프와 린델의 아이가 아니더냐. 도대체 너희 둘이 뭣 때문에 그 녀석을 그리 싸고도는지 모르겠구나.”
“일단은…… 용사, 아닙니까.”
“그래, 용사. 용사지…….”
후작은 그리 말하며 뒷목을 주물렀다.
오랜만에 좀 격하게 움직이니, 좀 뻐근하기는 하다.
“하지만 내 아들이기도 하다.”
“아들인 만큼, 좀 믿어 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지금까지 그 녀석이 한 것을 보셨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지.”
그런데 그래서 문제야.
후작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쿠웅.
고작 한 걸음에 불과했건만, 리안과 에일렌에게는 마치 육중한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휘청거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굽혀질 것만 같다.
빌어먹을.
도대체 그 녀석을 돕는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둘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 무릎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검을 놓치지도 않았다.
후작은 잠시 멈춰 서서는 그런 둘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내가, 그 녀석이 ‘레메게톤’에게 먹힐까 봐 이리 서두른다 생각하는 게냐.”
“……아닌지요?”
“아니다. 너희 둘의 말대로, 난 내 아들을 안다. 이렇게 일을 벌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후작은 제법 과격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다.
당연히 아들을 믿었다.
다만, 후작이 걱정하는 것은 아들이 레메게톤에게 먹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아들이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가 아니라면 그리 걱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은 용사가 되었다.
용사란 무엇인가.
악마를 증오하고, 척살하는 것이 바로 용사의 역할이다.
그 악마가 어떤 존재가 됐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입장에서 ‘레메게톤’에 대한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면…….
“쯧.”
후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스태프를 쥔 손을 가볍게 털었다.
앞에 자신을 막고 있는 두 아이는 결코 자신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힌 듯 보였다.
“잠시, 자고 있거라.”
“그게, 무슨……?!”
하지만 둘이 뭐라 반항하기 전, 수면 마법이 둘을 짓눌렀다.
자그마치 대마도사가 직접 시전한 수면 마법이다.
아무리 촉망받는 유망주라고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털썩.
자신을 막은 넷을 정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후작은 알았다.
‘이조차 전부 이 망할 아들놈의 계산 내일 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아비의 속을 썩여야 직성이 풀리려는지.
투덜대며 후작이 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서고의 문 앞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 참상을 구경하고 있던 기사 둘이 서 있었다.
상대가 상대인 데다가, 기세가 무시무시해 끼어들기도 뭣해 가만히 있던 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색함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요압, 아비아달.”
“……예, 옙! 각하!”
두 기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일단 그들이 알기로 서고 내부에서 큰 소란이 일어난 것은 없었다.
기사인 그 둘이 후작이 감지한 미세한 결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리도 없었고.
하지만 이 둘도 눈치라는 게 있지 않은가.
“호, 혹시 도련님이 또 뭔가 일을 벌인 겁니까?”
“너희들의 책임은 아니다. 애초에 너희들에게 그 녀석을 막을 권한은 없었으니.”
후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둘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선지자의 서고와 관련된 규칙을 조금 손 볼 필요가 있을 듯싶었다.
“……어쨌건, 열거라.”
“예, 옙!”
기사 둘은 빠르게 서고의 문을 열었다.
후작은 눈을 번뜩이며, 성큼성큼 문을 넘었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아들과 면담을 좀 해야겠구나.”
* * *
레메게톤은 악마였다.
그 성분 중 ‘악마’임을 증명하는 게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심할 여지는 없다.
적어도 악마라 정의하기에는 충분할 만큼 섞였을 테니까.
“흐음, 악마라. 너무 단편적인 면만 보는 게 아닌가?”
레메게톤은 피식 웃었다.
그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제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작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으로 내가 악마임을 증명한다고? 흠, 그것 참. 그렇게 따지면 날 가보로 모신 네 가문은 악마의 가문이 되는 셈이군.”
그렇다면 결국 발푸르기스도 악마의 가문이라는 소리가 아니냐.
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간단히 긍정했다.
“그렇겠지.”
“허.”
레메게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난 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내가 뭐 그럴 리가 없다며 발광이라도 할 줄 알았나?”
“좀 기대하기는 했지.”
우스운 이야기다.
애초에 우리 가문이 악마와 무언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진즉에 했었다.
마법이라는 힘의 원류를 파고들자면, 악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발푸르기스는 마법의 정점에 달한 가문이 아니던가.
“쯧.”
레메게톤은 내 반응에 재미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용사라기에 좀 기대를 했는데, 진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군. 하여간, 재미가 없어.”
“딱히 악마를 즐겁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아니, 악마 아니라니까?”
레메게톤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날 악마로 정의하는 건 참으로 1차원적인 발상이다. 나도 그 빌어먹을 것들은 혐오한다고.”
“그렇다면 뭔데?”
“굳이 말하자면, 갈래가 다른 건데…… 하, 내가 멋대로 결계를 망가뜨리고 찾아온 네게 왜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네 결백을 증명해야지.”
“하, 네 시조의 분신인 내게 결백을 증명하라?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였다.
쿵!
갑작스레 한 차례 땅이 울렸다.
곧이어, 익숙하기 짝이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익숙한 존재감.
재미있다는 듯 놈이 말했다.
“이것 참, 아이단이 왔군.”
“곤란한데.”
“그러게,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침입자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 레메게톤은 빙글거리며 날 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당연히 내가 굽히고 들어갈 것을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물었다.
“오히려 너야말로, 괜찮겠어?”
“뭐?”
“이렇게 되면, 넌 또 기약 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 테지. 상대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하.”
내 말에 레메게톤이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레메게톤은 고독한 존재다.
한때 시조와 함께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위험한 마도서’로서 서고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을 뿐.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존재건, 고독을 원하는 존재는 없다.
놈은 지금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과연 어떨까.
잠시 후, 놈이 손을 들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쯧.”
딱.
그리고 그 순간, ‘서고’에 변화가 생겼다.
방금 전까지 자연스레 흐르고 있던 시간이 멈췄다.
점차 가까워지던 진동 역시 이 순간을 기점으로 멈췄다.
시간 정지.
레메게톤이 제 영역인 ‘서고’에 있기에 가능한 제한적 초고위 마법.
“좋아, 이야기를 해 보자고.”
레메게톤의 시선이 내 어깨 쪽으로 향했다.
놈은 정확히 세트를 보고 있었다.
“거기 사도께서도 함께 말이야.”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세트가 경악한 눈빛으로 레메게톤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