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163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163화
아이테르의 무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 자매에 대한 증오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 저주할 것이다!
– 날 배신한 모든 것들을!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며, 아이테르는 증오와 악의를 숲 전역에 흩뿌렸다.
그 질척한 기운으로 인해 어둠 숲은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전락했고, 도망자 엘프 정도를 제외하면 감히 숲에서 살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숲에 사는 엘프들은 천천히 아이테르의 굴레를 받아들였다.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순수한 엘프라 불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손을 낳고 새로운 ‘도망자’들을 받아들이며, 숲에는 왕국이 생겨났다.
도크 알파헤임.
다크 엘프들의 왕국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진짜 더럽게 많이 달려드네.”
리안이 얼굴을 찡그리며 검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털어 냈다.
주변에는 혀를 길게 내민 채, 나자빠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고블린부터 오우거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지속적으로 습격을 해 왔다.
“심지어 몬스터들의 상태도 이상해요. 죄다 아예 생명은 도외시하고 달려든다고 해야 하나.”
“그야말로, 광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군요.”
에일렌과 집사 또한 꺼림칙하다는 표정.
미아가 조심스레 모두에게 물었다.
“저, 저기, 너희들은 괜찮아? 머리가 아프다거나, 폭력성이 생긴다거나 하는 문제는…….”
“음? 딱히 그런 건 없는데.”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그 저주의 근원에 접근하는 거잖아? 생각보다 별것 없기는 하네.”
“별것 없는 게 아니지.”
난 주변을 살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스태프를 흔들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였더라? 그, 세계에서 단 셋, 아니, 네가 하나 더 만들었으니 넷밖에 없는 신비급이라 했나?”
“그래, 덤으로 여기에 사용된 재료는 생명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세계수’의 일부고.”
세계수는 ‘엘프’의 어머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다크 엘프의 어머니로 취급받고 있는 아이테르조차도 시조라 모셔야 할 존재가 바로 세계수.
그녀의 일부가 있는 이상, 이곳의 악의와 증오는 우리에게 닿지 못한다.
최근에 스태프를 괴상한 용도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원래 이 정도의 물건인 것이다.
[그걸 알면, 이제 좀 정상적인 용도로 사용해 주렴…….]‘그럭저럭 잘 쓰는 중이야.’
온전히 스태프 용도로 쓰고 있냐고 하면 꼭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게 ‘스태프’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건 아니다.
난 마법사다.
결코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부류가 아니야.
[그, 그래. 알면 됐지…….]세트가 식은땀을 흘렸다.
어쨌건 습격해 온 몬스터들의 수를 보았을 때, 무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점점 악의가 짙어져 갔다.
악의는 ‘새카만 안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조차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안개였다.
하지만 무덤에 거의 다 왔는지 이제 안개는 꽤나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 으흑…… 흑! 흐흑…….
흠? 이건 또 흥미로운데.
정확한 외모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엘프의 형태를 한 안개가 울고 있었다.
처절하고, 서글프게.
이 엘프의 정체가 무엇인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아이테르.’
이런 것들과 연관된 존재라면 그녀 외에는 없을 테니.
광기, 악의, 증오…….
결국 감정에서 출발한 것들.
당연히 그 형태는 본래의 주인을 닮게 되는 것이다.
설령 지금에 와서 그것들이 본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뒤틀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뭐야, 너 뭐 보냐?”
“이 참사의 근원.”
난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리안의 질문에 답했다.
이걸 볼 수 있는 건 여기서 나뿐이다.
나머지는 그냥 기분 나쁜 안개로만 보이는 모양.
물론 이런 게 보인다 해서 소통이 가능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더 나아갈수록 아이테르의 ‘다른 기억’들도 보일 것이라는 뜻.
“참사의 근원이라는 건…… 그, 이 숲이 이렇게 된 원인이라는 엘프에 대한 거 말이냐.”
“어, 맞아.”
리안은 내가 왜 그것을 볼 수 있는지, 또 무엇을 보고 있는지 시시콜콜 묻지 않았다.
미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 기억이라면 엄청나게 참담한 것들밖에 없을 텐데.”
“그래도 봐야지.”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지 못하면, 이번 일은 결코 해결하지 못할 터다.
‘두들겨 패건, 뭘 하건.’
어쨌건 뭐든 간에 상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내 감정은 딱히 문제가 안 되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그때마다, 내게 악의가 형태를 취하며 정보를 보여 줬다.
– 어째서, 어째서야…….
–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 그저 그 아이가 건넨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잖아!
아이테르라는 ‘엘프’의 삶.
당연하지만 긍정적인 일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배신당했고, 절망했으며 무너졌다.
내가 보는 것은 그 기록.
비극으로 마무리된 삶이니.
“……이렇게 된 건가.”
회귀 전, 알지 못한 속사정을 알게 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비극을 보는 것이 유쾌할 리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테르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을 때 즈음.
“아.”
검은 안개가 걷히고, 천천히 우리의 앞에 ‘무덤’이 드러났다.
그것은.
“……하.”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담한 광경이었다.
* * *
‘지금.’
헤도스는 주변의 감시가 아주 잠깐 약해진 것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마스터 어쌔신의 은신.
그가 이곳에서 가디언으로 복종하고 있던 것은 그가 다크 엘프들보다 암살자로서의 역량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어릴 적부터 새겨진 저주.
그 저주가 여태까지 헤도스에게 족쇄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족쇄는 이제 없다.
그는 그림자 사이를 지나며, 루이나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의 참담한 상태가 자세히 보였다.
‘……빌어먹을.’
그가 루이나의 부탁에 따라, 이곳을 떠났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불과 몇 년 사이.
장생종인 엘프가 단기간에 이 정도로 망가졌다는 건, 그만큼 처참한 고통을 받았다는 말이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조심스레 루이나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신을 잃은 채였지만, 다행히도 호흡은 느껴졌다.
‘하지만 생명력이 미약하다.’
그는 암살자로서, 타인의 생기를 감지하는 것에도 능했다.
냉정하게 봤을 때, 현재 루이나의 상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절로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제아무리 마스터 어쌔신인 그라도 루이나에 대한 것까지 냉정해질 수는 없었다.
‘진정하자. 준비해 둔 포션을 복용시킨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하지만 헤도스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용사, 미하일 발푸르기스.
그라면 어떻게든 루이나의 상태를 크게 완화시키고, 확실하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품에서 포션을 꺼내려던 때, 루이나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으, 음.”
“루이나, 정신이 듭니까!”
루이나가 서서히 눈을 뜨더니 휘둥그레졌다.
“헤, 헤도스?”
“억지로 움직일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다, 당신이 어떻게…….”
루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헤도스를 보며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믿을 만한 분의 도움을 받아 왔으니.”
“미, 미아는……! 그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당신이 이곳에 있다는 건……!”
“괜찮습니다, 루이나.”
헤도스는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말씀드렸다시피, 믿을 만한 분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전부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 온 겁니다.”
“그게, 무슨…….”
루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헤도스의 저주가 해결됐다는 사실은 물론, 미하일에 대한 것 역시 알지 못하니까.
그렇기에 안심하기보다는 불안해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정신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 하도록 하지요.”
“위, 위험해요, 헤도스! 당신이 여기에 와서는 안 됐어요. 지금 이곳에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루이나를 품에 안았다.
그는 다른 다크 엘프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
우선, 루이나를 이 지옥에서 빼내는 것이 그의 최우선 목적.
그런데 그때였다.
“그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구나, 아이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아…….”
그에게 안겨 있던 루이나가 절망이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적!’
헤도스는 직후 바로 움직였다.
암살자로서의 감.
단 일격에 목을 벤다.
발을 뗀 순간 이미 그는 엘프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빠르구나. 어지간한 존재였다면 단숨에 목이 날아갔겠어.”
“……!”
헤도스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 그의 일격은 무언가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단검을 ‘어둠’이 붙잡고 있었다.
그건 검게 뭉친 찰흙과도 같았는데, 무척 단단하고 견고했다.
“마스터 어쌔신이라. 흐음, 재미있구나. 저주에서 벗어났는가.”
어느새 엘프는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단검을 막은 ‘어둠’은 지팡이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헤도스는 절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좋지 않군.’
그 순간, 엘프가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지팡이가 잘게 떨리더니, 주변의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망할.”
잠깐의 불평과 함께 그는 깔끔하게 어둠에 봉쇄된 단검을 포기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가 모습을 감추기가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동시에 그림자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촤악!
그림자에서 꿈틀거리던 ‘무언가’가 베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순풍이 일대를 할퀴었다.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수십, 수백의 공격이 일제히 어둠을 난도질했다.
단 몇 초.
그가 엘프, ‘아이테르’의 공격을 무위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
헤도스는 빠르게 계산했다.
어떻게 하면 루이나와 함께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지금 눈앞의 저 엘프가 용사님께 들은 그 ‘아이테르’라는 사실은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방금 전 공격으로 출구 하나는 뚫었다.
난도질한 공격들 중, ‘출구’를 막고 있던 그림자 또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테르’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대답이 없구나. 과묵한 성격인가? 하긴, 어느 쪽이건 내게는 별 상관이 없다만.”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두드렸다.
그러자, 방금 전 헤도스가 베었던 ‘그림자’들이 다시 생겨났다.
“이건……!”
“내 아이들이 그토록 받들어 모시던 선조가, 설마 이 정도 힘도 없으리라 여긴 건 아니겠지?”
“……선조?”
헤도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게?
아니, 아니다.
‘다크 엘프’는 분명 엘프로서 어둠을 품은 이질적인 존재지만, 결코 사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건 다르다.
이 어둠 숲을 덮친 증오나 광기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그것들이 단순히 격정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것들이라면 이건…….
‘악마!’
근본부터가 그것들과 닮아 있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자연히 느낄 수 있는 거부감.
“흐음, 감이 좋구나. 뭐, 나로서는 별 상관없다만.”
‘아이테르’가 지팡이를 들었다.
모든 퇴로가 차단됐다.
그 단순한 행동으로, 방금 전까지 있던 실낱같던 빛조차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아, 아아…….”
루이나의 얼굴에도 절망감이 감돌았다.
‘아이테르’는 당연하다는 듯 지팡이를 겨눴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둘에게 다가왔다.
“죽이지는 않으마. 이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많으니.”
어둠이 다가온다.
‘아이테르’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헤도스의 존재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변수에 불과했으니.
‘빌어먹을.’
헤도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확실히 상황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적어도.
화아악!
“……음?”
그 직전까지는 말이다.
헤도스의 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헤도스는 다급히 품을 풀어헤쳤다.
“이건, 그분께 받은…….”
빛은 주변을 밝히더니 이내 그와 루이나를 감쌌다.
그것을 본 ‘아이테르’가 눈을 부릅떴다.
“이건, 설마……!”
그녀는 뒤늦게 둘을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 힘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빛이 그 둘을 삼켰고.
“아.”
‘아이테르’의 앞에서, 그 둘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