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tycoon of all time RAW novel - Chapter 3
2화.
미래그룹 성관규 회장.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평창동에서 보낸 차와 기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분위기를 띄웠던 어머니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뒷자리에 앉은 부모님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 계셨다.
기사는 오직 자기 일만 충실하겠다는 듯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각이 지나치게 잡힌 그의 모습이 내부 공기를 더 얼어붙게 했다.
성현우는 뒤를 돌아보며 어머니와 시선을 맞췄다.
“어머니.”
“그래, 현우야.”
불안함이 남아있던 어머니의 눈에 미소가 감돌았다.
성현우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자신 때문에 아들이 미래그룹 사람으로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만 갖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모른다.
자신이 호텔을 물려받고 승승장구했다면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당시 어머니는 멍한 상태에서 건널목을 건너다가 뺑소니를 당하셨다.
성현우는 어머니를 다시는 그렇게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씌워놓은 굴레를 할아버지가 스스로 벗기게 하겠다는 결심을 얹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잠시 후, 평창동 저택 앞에 차가 도착했다.
운전했던 기사가 어머니 쪽 문을 열고 집에서 나온 남자가 아버지 쪽 문을 열었다.
모두 깊게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큰아버지 부부와 고모 부부를 부르는 것처럼 ‘사장님’이나 ‘사모님’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도 나오지 않았다.
성현우는 부모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전 삶, 이때 보고 처음 보는 거다.
다시 봐도 웅장한 저택이었다.
전 삶에는 바로 이 순간부터 주눅이 들었다.
부담과 두려움이 몰려들어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잘해야겠다는 다짐뿐이었다.
드디어 현관으로 들어서고 성현우가 멈칫했다.
그때 안에서 나온 집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시라는 회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후 집사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응접실로 안내했다.
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이게 어떤 대우인지 아버지는 안 것이었다.
반면 재벌가 저택에 처음 온 어머니는 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끝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집사는 모른 척하며 성현우 가족을 착석하게 했다.
“회장님께서는 손님과 함께 계십니다. 일정이 끝나면 부르신다고 하시니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이후 여비서가 다과를 내왔다.
어머니는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는지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인 성현우를 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성현우는 그런 어머니에게 차를 권했다.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다과를 건넸다.
그래도 아버지와 성현우는 미래그룹 피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반면 어머니는 이번 일로 지금까지보다 더한 고통과 죄스러움에 시달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 얼굴에 묻은 침통함이 짙어졌다.
그럴수록 성현우의 다짐과 결심도 점점 강해졌다.
그렇게 30여 분이 흐른 후 집사가 다시 왔다.
“성현우 님만 오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얼음이 되었다.
성현우를 향해 미안한 눈빛을 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좌절이 느껴지기도 했다.
성현우는 그런 두 분께 잘하고 오겠다는 시선을 남긴 채 응접실을 나갔다.
집사는 길고 긴 복도로 안내했다.
점점 더 안으로 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전 삶에서는 이때부터 극도의 긴장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누군지 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알고 있다.
성현우는 등을 더 반듯하게 세우며 집사의 뒤를 따랐다.
드디어 메인 응접실에 다다랐을 때 집사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후 집사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큰아버지 부부, 고모 부부의 시선이 쏟아졌다.
성현우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한명 한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순간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쭈!”
그런데 이건 웅웅거리며 듣던 미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모가 상대를 비하하며 내는 목소리였다.
성현우는 그런 고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모부가 고모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만하라는 눈짓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큰아버지 부부의 표정이 변했다.
벌레 보듯 무시하던 눈빛에 흥미가 플러스 된 것이었다.
큰어머니의 표정은 더 노골적이었다.
아닌 척 곁눈질을 했지만, 성현우의 위아래를 몇 번이나 훑어보았고 숨을 몇 번 쉬는지까지 세겠다는 듯 뚫어지게 주시했다.
자기 아들과 비교하는 것 같았다.
성현우는 그런 큰어머니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이동했다.
순간 큰어머니의 눈빛에 당황이, 고모의 눈빛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고개를 돌리며 무시하는 것으로 외면했다.
그렇게 또 30분이 지났다.
누구 하나 앉으라는 말이 없었다.
맹물 한 잔도 주지 않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더더구나 없었다.
그렇게 성현우는 동물원 속 동물 신세가 되어서 그 시간을 견뎠다.
전 삶에서도 불안하기는 했지만, 이 시간만큼은 잘 견뎌냈었다.
하지만 전 삶에서는 여기까지였다.
그때는 자신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심리적으로 바짝 쫓기게 하셨지만, 이번은 아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신규 임원을 이런 식으로 평가했다.
성현우가 할아버지의 수법을 생각하며 미소를 머금을 때 집사가 다가왔다.
“서재로 들어가시지요.”
* * *
묵직한 문이 열리며 드디어 미래그룹 회장이자 할아버지이기도 한, 성관규 회장과 마주했다.
전 삶, 이 순간에 뵙고 처음 뵙는 거다.
아니다. 호텔 행사 때문에 멀리서 뵌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는 철저히 남남으로 생각했다.
그럼 지금 이 순간이 갈림길인 거다.
전 삶처럼 남남으로 살 것이냐, 호텔을 물려받을 손자로 살 것이냐.
성현우가 자세를 바로 하며 정중앙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처음 뵙습니다. 성현우입니다.”
그런데 한참 후 돌아본 성관규는 고개만 까딱할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처음 보는 손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재진이 젊을 때를 빼다 박았구나.”
“…….”
“지금 대학 졸업반이라지?”
성관규는 전 삶처럼 용건부터 꺼냈다.
그때는 그의 딱딱한 태도에 당황했다.
왜 손자라고 불러주지 않는지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은 용건부터 꺼내주는 게 더 좋다.
“내년 2월에 한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합니다.”
“그럼 뭘 할 거냐? 공부를 더 할 거냐? 아니면 취업해서 돈벌이에 나설 거냐?”
“취업하고 싶습니다.”
“학위 딸 생각은 없다는 말이지?”
“네.”
“한국대학이니 취직은 어렵지 않겠구나. 미래그룹으로 들어오는 건 어떻겠니?”
성관규는 처음 본 손자에 대한 그 어떤 애정이나 관심 표현 없이 질문만 해댔다.
마치 면접 보는 시험관 같았다.
성현우는 아직까지는 전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성관규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단어 하나가 들렸다.
역시 허공 속에 떠다니는 것처럼 약간 울리는 듯했는데 부모님과 함께였을 때보다 조금 더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희망.’
성현우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곳은 미래그룹 회장 개인 서재다.
미래그룹의 비서실장이나 일부 고위 임원이 아니면 못 들어오는 곳이다.
또한, 그의 장남과 장손자도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만 들어온다.
그런 곳에 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저택에 환영받지 않는 손님이 들었을 리도 없다.
성현우는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했다.
부모님과 있을 때 들었을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스스로 읽고 있는 줄 알았다.
과거로 돌아온 부작용일 거라는 생각도 했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명히 들렸다.
혼란스러웠다.
과거로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굳는 것 같은 서늘한 두려움도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어떤 것이라도 붙잡아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성현우는 성관규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래그룹에서 일하겠습니다.”
전 삶에서는 ‘기회를 주시면’과 ‘실망시키기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 미래그룹에 받아들여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오라는 말이 없었는데도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할아버지 성관규는 앞과 뒤에 붙는 쓸데없는 말을 싫어한다.
믿는 사람이 아니면 경계를 풀지 않는다.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은 더더욱 경멸한다.
특히 이렇게 면접 보는 자리에서는 더 그렇다.
무엇보다 지금 성관규는 자신을 손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다.
그런 그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성현우는 자세를 더 바르게 하며 상대의 시선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전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순간 성관규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어떤 일을 주어도 해낼 수 있다는 거냐?”
“어떤 일을 주셔도 해낼 수 있는 것 맞습니다만, 그건 미래그룹의 인사방침은 아닌 줄 압니다.”
“…….”
“미래그룹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도 다른 대기업에 비해 5% 이상 차이 납니다. 저는 그 정책이 회장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능력을 판단한 후 적재적소에 넣으라는 말인 거냐?”
“그렇습니다.”
성관규가 등을 펴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너는 아직 대학 졸업반이다. 내가 네 능력을 어떻게 알지?”
“회장님께서는 인사팀과 비서실장을 통해 이미 제 16년의 성적표와 담임 및 지도교수의 평가서를 갖고 계실 것이고 이미 그것으로 답을 내셨을 겁니다.”
“…….”
“그리고 회장님 책상에 놓인 보고서에는 미래그룹 계열사 중 오너가의 역할이 가장 취약한 곳이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곳 중 한 곳을 제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성현우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순간 성관규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물론 그것도 전 삶의 성관규를 알아서 느낀 것이었다.
만약 몰랐다면 비웃음으로 알았을 거다.
반면 성현우는 전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귀가 웅웅거리며 또 다른 단어가 귓가를 스쳤다.
‘뭐지?’
그렇게 한참 동안 손자를 바라보던 성관규.
벨을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유통 쪽에도 자리가 있다고 했나?”
“MD팀 주임급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성관규가 성현우를 향해 물었다.
“경영학을 전공했으니 유통 MD팀으로 보내주마.”
“회장님께서 먼저 골라놓으신 다른 곳을 듣고 싶습니다.”
“설마 마음에 안 든다는 거냐?”
“그것보다 제게 선택지가 많았으면 합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냐?”
“제 능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은 겁니다.”
“당돌하구나.”
“자리에 따라서는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네 아버지가 그리 가르쳤니?”
“네.”
성관규는 묘한 미소를 띠며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호텔 구매팀 대리 자리도 남아있습니다.”
성관규는 그래도 유통이 낫겠지? 하는 표정으로 성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성현우는 달랐다.
“호텔로 보내주십시오. 대신 다른 직책을 원합니다.”
“다른 직책?”
“호텔은 대리급부터 관리자입니다. 좀 더 관리자다운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감사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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