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그린 아이 vs 성기사단
“전투 준비!”
“하!”
갓 핸드는 한때 보급 부대 병사들이었을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시야를 꽉 채우며 몰려오는 것을 보며 치를 떨었다.
‘삶과 죽음의 순리를, 여신의 뜻을 부정하는 것들.’
저 부정한 것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해안가 전선을 떠나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성기사단만으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블루윙과 다른 초인들이 있는 곳에 합류를……!
소드 엠퍼러의 만류를 무시한 보람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물론 칠죄종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언데드를 생산하는 칠죄종이라면, 나와 성기사단이 상극이다.’
결코 자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조용하던 신전에서 교황과 추기경들이 솔레인의 군단 스킬을 응용하여, 성법과 단체 스킬이 조화된 기술을 개발했으니.
“여신의 세례! 공격력 비율을 최대치로!!”
“하!!”
이제 성기사단은 성물 없이도 영혼살을 버텨 낼 수 있고, 거듭된 전쟁에 3천여 명으로 줄어든 병력으로도 전성기 이상의 무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달려!”
“하!”
두두두두두두두.
거대한 신성력의 결계가 성기사들과 기마 전체를 뒤덮고.
“하!”
꽈아아아아앙!
그 상태로 질주한 3천여 기의 기마는 거의 그 세 배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을 말 그대로 으깨 버렸다.
“키에엑!”
“크륵!”
몸이 부서진 언데드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 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산개한 성기사들이 박살이 난 언데드들의 숨통을 끊기 시작했다.
“머리를 부숴라!”
“여신의 품으로 돌려보내!”
“사제들은 아군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언데드들을 정화하는 데 힘써라!!”
그 모습을 보며 갓 핸드는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임하고 있나이다.’
그래. 할 수 있다.
새삼 자신감이 들었다.
랑켄 평야에 강림했던 막강한 언데드 군단은 이제 없다.
놈들의 남은 군세라곤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성기사들이라면 수수를 베어 내듯 처리할 수 있는 하급 병사들이 전부일 터.
질투라는 칠죄종이 이런 하급의 언데드들만 데리고 나타난다면, 단숨에 놈에게 안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계 대전을 종식시키는 일에 그와 성기사단이 크게 공헌하게 되는 것이고.
그는 그만큼 완벽한 속죄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 곧 끝난다…….’
형벌의 기간이 끝나 간다는 생각은 세월 속에서 한없이 무뎌진 그의 감정에도 동요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심중 동요와는 상관없이, 오랜 세월 휘둘러 온 그의 검은 흔들림 없이 움직였다.
촤아아악.
“끄르륵.”
쿵.
부대의 책임자급은 되어 보이던 5단계급 그레이트 좀비의 비정상적으로 부푼 몸이 그의 신성 오러에 그대로 녹아내린 순간.
성기사단이 세 번째로 조우한 언데드 군단의 토벌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그때.
갑작스레 근처 숲에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지더니, 뿌연 안개와 함께 한 쌍의 거대한 녹색 불꽃이 허공에 떠올랐다.
[재미있는 수법을 쓰는구나, 혐오스러운 여신의 종들아.]찌이이이잉.
“큭!”
머릿속을 터트려 버릴 것 같은 지독한 울림을 주는 영파.
“히이이이이잉!”
그에 성기사단의 기마들이 일제히 날뛰기 시작하는데, 정작 그런 말들을 통솔해야 할 성기사들은 제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고만 있었다.
자연히.
쿵. 쿠웅.
“윽!?”
쿵. 쿵.
털썩
“끄악!”
말들이 연거푸 쓰러지며 성기사들이 단체로 낙마해 버리는데.
“단장님!”
“여신의 세례! 방어 비율 최대로!!”
우우우웅.
갓 핸드의 신성 오러가 변화함과 동시에, 3천여 명의 성기사단을 감싸는 신성 결계가 한층 더 강렬한 빛을 뿌렸다.
[여신의 종들을 내 종으로 만드는 것도 꽤 보람찬 일이 되겠지. 특히 너, 제법 특별한 카르마를 쌓아 왔구나. 탐이 나.]우웅.
녹색 불꽃이 자신을 응시하며 뿌리는 영파도 이제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갓 핸드의 마음속 불안은 훨씬 커졌다.
놈이 영파를 뿌리는 것만으로 이미 성기사단의 말들이 전멸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저게 무슨 강력한 마법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저 존재감이다.’
그저 한차례 영파가 울려 퍼졌을 뿐인데도 여신의 세례를 방어 모드로 돌려야 했다는 말이다.
‘글러터니와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같은 칠죄종끼리 이렇게 차이가……?’
영혼살이라는 칠죄종 최악의 권능이 어찌 성립되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애초에 세웠던 가정을 모두 폐기해야 했다.
하지만.
“성기사단 정렬! 대악마를 척살한다!!”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우리 모두가 죽는다 해도, 저 칠죄종은 잡아야 한다.’
여신의 종으로서 어찌 대적자를 앞에 두고 물러설 것인가.
그는 도망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기사들에게 명령을 전했고.
다행히.
“하!”
“여신께 영광을!”
“악마에게 철퇴를!!”
“우와아아아아!”
성기사 대다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적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푸하하하하! 천계의 천사들도 아닌, 네놈들 따위가!?]녹색의 거대한 눈동자가 한순간 번쩍인다 싶더니.
우우웅.
그 위쪽으로 7개의 검은 마법진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하나가 마도사들이 힘을 모아 만든 대마법진에 필적하는 흑마법들.
[짓이겨 주마!]번쩍.
콰콰콰콰콰.
검은 벼락과 불꽃, 그리고 우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성기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동시에 땅이 흔들리며 검은 넝쿨이 솟아올라 그들의 몸을 묶었다.
“아아아악!”
“여신께서 우리를 가호하신다!!”
콰드드득.
그에 갓 핸드가 서슴없이 덩굴을 뜯어내며 앞으로 돌진하는데, 그의 옆으로 성기사단의 정예들이 따라붙었다.
“단장님! 평기사들이……!”
“녹색 불꽃을 노려라!”
갓 핸드는 부단장의 말을 무시하고 허공에 떠오른 녹색 불꽃 한 쌍을 노려보았다.
여기서 아군을 구하려고 한다면, 결국 일방적인 수세에 몰리다가 전멸할 게 뻔했으니까.
‘여신이시여!’
번쩍.
성자급 신성력이 자신과 정예들에게 다시 한번 최고의 축복을 내리는 순간, 갓 핸드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를 따르라!!”
당하기 전에 친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갓 핸드는 녹색 불꽃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답이었다.
번쩍.
콰아아앙!
성기사단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던 마법진들이, 그의 신성 오러를 튕겨 내기 위해 녹색 불꽃 앞으로 모여든 것이다.
“큭!”
그의 신성 오러가 마법진의 절반을 박살 냈고, 뒤따르는 정예 백여 명의 마나블레이드가 나머지 마법진을 흩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튕겨 나갔던 갓 핸드의 몸이 관성을 무시하듯 허공을 밟고 녹색 불꽃을 향해 다시금 재도약했다.
화르르륵.
그의 전신에 일렁이는 새하얀 불꽃이 사위를 밝히듯 더욱 밝게 타오르고.
“하압!”
번쩍.
평생에 다시 없을 정도로 높게 솟구친 그의 신성 오러가 횡으로 그어지는데.
[너 하나는 제법이란 말이지. 그러나…….]그를 비웃는 듯한 영파와 함께 녹색 불꽃이 그 자리에서 슥 사라졌다.
쩌어어어어억.
힘껏 휘두른 신성 오러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자, 갓 핸드의 투구 속 눈동자가 확 커졌다.
녹색 눈알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놈이 다시 나타난 위치가, 성기사단에게 너무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안 돼!”
허공에서 급격히 꺾인 그의 고개는, 일반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비웃음 섞인 영파와 함께, 성기사들이 가장 많이 뭉쳐 있는 중앙부에서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흙먼지가 비산했다.
[크하하하하하하! 좋아! 이거지!]우르르르르릉.
뒤늦게 땅을 울리는 옅은 지진과 함께 오직 적의 영파만이 울려 퍼지는데.
“여신의 철퇴를!!!!”
그 순간 갓 핸드의 몸에서 솟구친 거대한 신성력이 빛의 유성으로 변하더니, 그 충격의 진원지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콰콰콰콰쾅!
[조금 더, 조금 더 발악해 다오! 크하하하하!]그 효과는 흙먼지를 걷어 내는 데 그쳤고, 그에 따라 허공에서 점차 진한 빛으로 뭉치고 있는 녹색 눈동자 유령의 형태가 드러날 뿐이었다.
애초에 8단계의 성법으로 칠죄종을 어쩔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조금의 미동도 없다니.’
갓 핸드는 이를 갈며 놈을 향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반전!”
“하!”
“악마를 죽여라!”
성기사 500여 명, 전력의 육분지 일이 한순간에 죽어 나갔다.
그만큼 여신의 세례의 힘이 줄어들었지만, 돌진하는 성기사들의 표정에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
광신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기사들에게, 순교는 곧 영광이었으니까.
그러나.
[자, 그럼 전 동료들을 상대로 싸워 보거라. 나의 종들아.]우드드득.
“크륵!?”
“크아!”
그런 성기사들마저, 좀 전까지 동료였던 이들이 흉측한 모습으로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여신의 종을 나의 종으로…….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푸하하하하! 싸워라! 싸워서 서로 죽고 죽여라! 그리고 내 종으로 다시 태어나라!!]허공에서 점차 뚜렷한 인간형 몸체를 갖춰 가는 그린 아이의 포효가 성기사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때.
“죽은 자는 여신의 품으로!!!”
전장 전체를 울리는 포효와 함께, 엄청난 신성력이 언데드가 된 성기사들 위로 쏟아졌다.
[음?]쿵.
털썩.
한순간에 다시 쓰러지는 성기사들의 사체.
그리고.
“여신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창백한 안색과 후들거리는 다리로 거듭 적을 향해 돌진하는 갓 핸드의 모습이 성기사들의 사기를 다시 올렸다.
[……짜증 나는군.]그러자 그린 아이의 시선은 자신에게 돌진해 오면서 금세 기력을 회복해 가는 갓 핸드에게 집중되었다.
[성력만큼은 천사장 수준이라……. 뭐, 성물이라도 가지고 있나 보지? 재미있어. 너는 특별히 내가 예뻐해 주마.]우우우우웅.
이제는 완전히 갑옷을 입은 인간의 형상으로 변한 그린 아이의 몸체에서 짙은 마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쓰러져라, 나약한 것들아! 다시 일어나라, 죽은 자들아!]콰드드드득.
“아아악!”
그린 아이의 손짓에 따라 솟구친 검은 넝쿨과 불꽃이 그를 포위해 가는 성기사들을 덮쳤고.
“크아아!”
그렇게 사망한 성기사들은 흉한 몰골을 드러내며 동료들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악마에게!”
“철퇴를!”
“여신의 뜻으로!”
그 위로 쏟아지는 성기사들의 검과 신성력들.
감당할 수 없는 재앙에도 그들은 끝없는 투지로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지휘하는 한 사람은, 그 순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그린 아이를 향해 달려드는 갓 핸드의 칼끝이 자신도 모르게 흔들렸다.
유일하게 경험해 본 칠죄종, 글러터니와 같은 정도로 적의 수준을 예단했던 것이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검제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쾅.
그렇게 흔들린 검은, 이제 완전히 검은 기사의 모습을 한 그린 아이의 손에 가볍게 잡혔다.
동시에.
[성력에 비해 무력은 형편없군.]꽈아아앙!
“컥!”
검은 기사의 발이 그의 복부를 후려치는 순간.
반사적으로 뻗어 낸 방패와 왼손이 동시에 으스러지는 것을 느끼며 갓 핸드는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쾅, 콰드드득.
나무 몇 그루를 그대로 부러트리며 숲속에 처박히는 갓 핸드.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검은 기사는, 손에 넣은 검을 몇 번 휘둘러 보더니 ‘흥’ 하며 집어 던졌다.
우득. 우득.
그리고는 스스로 육체의 일부를 다시 변화시켜 커다란 대검을 만들더니, 자신에게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향해 치켜들었다.
[역시 나는 직접 전투를 하는 것이 좋단 말이지. 비겁하게 마법으로 멀리서 깔짝거리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아.]유령의 모습일 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살벌한 살기가 달려드는 성기사들을 휘어 감는 순간.
– 다행이네, 나도 그런데.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의 앞으로 노을빛 유성이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