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7
127 기타는 연주가 되어
“박 과장님께서 이번에 너무 많이 받으신 거 아니에요? 한 곡에 7,000만원이라고요? 그러면 만약 앨범 작업이라도 한다고 치면······.”
내가 얼떨떨하게 묻자, 차리나 대리님이 먼저 결론을 내려주셨다.
“억 단위는 우습겠죠. 물론, 이번엔 장현필 가수님께서 워낙 곡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바람에 페이를 많이 받을 수 있던 거지만요. 시장 상황이 바뀐다든지, 순위권에서 한참 이탈이 되는 곡이 만들어진다든지 하면, 추후 곡비가 다시 내려갈 수도 있고요.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은 유지할 거예요.”
“······.”
내 얼떨떨함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차리나 대리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결국엔 수요와 공급이 서로 잘 맞아야 하는 거라서요. 그리고 저희 ⌜월광⌟이 해야 하는 일은 아티스트가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잖아요? 과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만, 저 역시 MJ가 이 정도 곡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즐기세요.”
“······ 굉장하네요.”
“그렇죠?”
7,000만원.
수연이한테 괜찮은 곰 인형을 사준다고 쳐도 2,000마리가 넘는다.
3,000원짜리 고급 구슬 아이스크림만 사 먹는다고 해도 2만 개가 넘는다.
물론, ⌜월광⌟과 수익 배분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이게 정확한 계산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이스크림 평생 자유 이용권 획득이라는 거네. 수연이한테 사주는 인형만으로 마을을 만들 수도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음악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런··· 어설픈 돈에 휘둘릴 나는 아니었다.
“크흠. 그러면 지금 중요한 건 녹음을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할 수 있냐는 거네요.”
“맞아요. 그런데 과장님께 듣기로는 장현필 밴드 분들은 투어로 지쳐있다는 모양이에요. 다들 연세가 연세다 보니 어쩔 수 없죠. 밴드맨이 연습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장현필 가수님께서 원하는 방향과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맞아요. 이 곡은 ‘장현필 가수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신 거니까요. 미국에서 이 내용으로 밴드맨 분들하고 실시간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차리나 대리님께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 준비된 미디로 만든 MR만 가지고도, 보컬 녹음은 장현필 가수님께서 알아서 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적이나 코칭을 할 수 있는 분도 아니니까.’
한평생을 바쳐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 가수 아닌가.
내가 악보에 적은 지시사항만으로도 이 노래의 방향을 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온라인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세션 녹음만 국내에서 하자고요?”
“네. 악기 녹음은 서로 앙상블을 맞춰야 하다 보니까 결국엔 디렉터가 필요하잖아요. 장현필 밴드맨 분들께서 이번에만 양해를 해주신다면, 그렇게 하는 게 더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투어 하면서 연습과 녹음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지고, MR도 더 빨리 나올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서로가 좋은 거죠.”
“음······.”
차리나 대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만약 가수님께서 오케이를 해주신다고 해도, 국내 밴드는 누구를 구하려고요? 결국 작곡가님하고 얼굴을 맞대야 할 텐데. 신뢰 관계가 없으면 MJ 정체를 숨기기는 어려울 거라고 보는데요.”
“차리나 대리님, 혹시 기억 안나세요?”
“네? 무슨 기억이요?”
“작년 이맘때요. 저랑 ⌜월광⌟이 계약을 했을 때, 저와 함께 청담동에 있는 카페에 왔었던······.”
“아! 그 밴드 분이요?”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밴드거든요. 이렇게 진행해보고, 장현필 가수님께서 그래도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면, 그때는 제가 미국에 가는 걸로 할게요.”
“엇.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MJ 정체는······.”
“저는 돈을 받는 프로잖아요. 제 욕심만 부릴 수는 없죠. 다만, 저도 하나를 내려놨으니, 장현필 가수님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실 거라고 봐요.”
“그렇다면 이젠 ‘차선’과 ‘차선의 차선’까지 준비가 된 거네요.”
“네. 당장은 제가 밴드를 설득부터 해봐야겠지만요.”
* * *
홍대는 여전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조금 한가해 보이는 가운데, 중간중간 버스킹하는 분들이 보인다.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고정하고 열심히 연주하는 이들.
어쿠스틱 기타 하나를 둘러메고,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창을 한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멈추어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한다.
나 역시 그 밴드의 연주를 잠깐동안 지켜본 뒤에야 다시 걸음을 옮겼다.
Star 라이브하우스는 홍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빨간 벽돌 건물.
카페였던 1층은 과일 주스 가게로 바뀌어있었고, 2층은 여전히 라이브하우스였다.
오늘의 공연 리스트가 쭈욱 쓰여있는 입간판을 보아하니 형들도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2층에 올라가자 거구의 남자가 나를 반겼다.
팔에 드러난 용과 호랑이 문신.
근육질 몸매.
“짜식. 독일은 잘 갔다 왔냐?”
내 어깨를 툭 하고 치는 대성이 형이었다.
“네. 잘 다녀왔어요. 진작 찾아왔어야 했는데 조금 늦었네요.”
“뭘 그런 걸 가지고. 너도 엄청 바빴다면서?”
“그렇게 됐어요. 지금 작업 중인 곡도 있으니까요.”
“잘됐네. 우리는 성수기가 막 끝났어. 대학 개강하고 나면 홍대도 조금 한산해지거든. 그게 확 체감되는 요즘이네.”
대성이 형은 나를 끌고 나가서 밥부터 사줬다.
짜장면과 탕수육.
후식으로 수박 주스를 사서 내 손에 쥐여주신다.
“같은 건물에서 영업한다고 10% 할인해주시거든. 우리도 공연 보러 오면 할인해 준다고 말씀은 드려놨는데 평상시엔 우리가 더 이득을 보게 되더라고.”
“좋네요. 맛도 있고요.”
“그렇지? 여기 수박 주스가 어지간한 곳보다 낫다니까?”
대성이 형을 따라 홍대를 걸었다.
대단한 곳을 간 것은 아니었다.
주택가를 가로질러 버스킹하는 무대를 구경하러 갔다.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화단에 엉덩이를 걸치자 명당이 따로 없었다.
‘작년에는 여기에 발이 안 닿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화단 아래까지 발이 닿게 됐다.
버스킹 공연을 하던 사람이 우연히 이곳을 쳐다본다.
밝게 웃는가 싶더니 대성이 형 쪽으로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버스킹 보러 오시는 거면 진작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
“됐어. 나도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온 거야. 연주는 잘 돼가고?”
“네. 다 형 덕분이죠. 이번에 잘하면 지상파에 나올 것 같아요. EBC 새벽 방송이긴 한데, 그게 어디에요?”
“그렇지. 우리한테는 큰 무대지. 연습 안 해서 실수하면 내가 너희 직접 찾아간다? 알겠냐.”
“큭큭.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고······.”
대성이 형한테 거의 90도로 인사하는 남자.
재작년, 팀에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공짜로 Star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을 시켜줘서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한다.
“됐어. 다 지난 일 가지고. 성공하면 형한테 비싼 밥이나 한번 사고.”
“당연하죠. 제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새끼. 말은. 가 봐. 다들 기다리고 있겠구만. 다음 곡 해야지.”
버스킹 공연 중에 보컬만 잠깐 달려 나온 상황.
남자는 대성이 형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무대로 돌아갔다.
공연은 훌륭했다.
인디 밴드답게 톡톡 튀는 멜로디와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노래를 듣던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위트 있는 곡이네요.”
“그렇긴 한데. 저런 독특한 노래를 만드니까 돈이 되겠냐, 이 말이지.”
“그래도 매력이 있잖아요. 저는 다른 곳에서 이런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어서요.”
대성이 형이 스윽 웃는다.
“뭐, 이 맛에 다들 홍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긴 해. 낭만에 취해서 말이야.”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성이 형은 수박 주스를 빨대로 쭈욱 들이켰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맺힌 물방울 개수가 우리가 이곳에서 공연을 얼마나 봤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형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남들을 도와주실 수 있는 거예요? 아무 대가도 없이요.”
내 말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지, 대성이 형은 내게 턱 하고 어깨동무를 걸어왔다.
“남이라니. 다 내 후배들인데. 그리고 대가가 없지도 않아. 나중에 쟤들이 뜨고 나면 알아서 홍대를 홍보해줄 거잖냐. 한 마디로 우리 Star 그룹은 반사이익을 얻게 되는 거야.”
“······ Star 그룹이었어요?”
“Star 악기점. Star 라이브하우스. 괜히 같은 이름으로 지었게? 그리고 저런 애들 보고 있으면 나도 힘이 나거든. ⌜대성하자⌟로 활동할 때 원동력이 되는 셈이야. 그러니 대가가 영 없다고는 볼 수 없지.”
“······.”
⌜대성하자⌟ 형들은 곧 6집을 발표할 거라고 했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고 있는 중인데, 이번 앨범엔 기대가 크다고 했다.
올 초에 냈던 싱글 앨범이 ‘인디 차트’에서 무려 2위를 기록했으니, 이제는 1위를 노려보고 있으시단다.
나는 무심히 말을 꺼내 봤다.
“그러면 그 앨범 발표 전에 저 하나만 도와주시면 안 돼요? 형들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아서요.”
“왜? 네 무대라도 만들어줘? 피아노만 치다 보니까 슬슬 기타가 치고 싶지? 원래 그런 거라니까.”
“그게 아니라 제 노래 세션 녹음 하나만 해주세요. 밴드가 필요한데 제가 아는 밴드 중에서는 형들이 제일 연주를 잘하거든요.”
“세션 녹음?”
“네.”
“가수가 누군데? 혹시 너야?”
“아뇨. 가수는 장현필 가수님이세요.”
“장현필 가수님이라면······. 장현필 밴드의 장현필?”
“네. 맞아요.”
“······.”
대성이 형은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바로 눈치챈 듯했다.
대한민국 레전드 밴드의 세션 녹음이다.
이 노래의 흥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만약 성공을 한다면 ⌜대성하자⌟가 한두 번 정도는 업계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수 있다.
무명과 유명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그건 설하 누나를 보며 너무나 잘 알게 됐다.
무명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니까.
유명은 누구나 찾으려고 한다.
누구나 아니까.
내가 보기에 ⌜대성하자⌟는 무명만 탈출한다면 잘 풀릴 것 같은 밴드였다.
그래서 내가 곡을 써주면 안 되겠냐고 슬쩍 묻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성이 형이 반대했다.
밴드만의 색깔이 있으니 내 곡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내가 설득할 만한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 달랐다.
실제로 내가 곤란한 상황 아닌가?
⌜대성하자⌟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 나는 미국으로 가야 한다.
수업을 빠져야 하는 만큼 설화 예중에 솔직히 말을 해야 할 것이고, 장현필 가수 관계자들의 입 역시 모두 통제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MJ가 한서진으로 밝혀진다?
‘어떤 여파가 생길지 지금은 알 수가 없지.’
하물며 ⌜대성하자⌟의 세션 녹음을 듣고 장현필 가수님께서 ‘별로다.’라고 한다면 그때도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겐 자신이 있었다.
홍대에 올 때마다 형들의 연주를 들었다.
⌜대성하자⌟ 실력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준급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대성이 형은 내 설명을 가만히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신다.
“차라리 쟤들을 소개해줄까? 연주가 꽤 괜찮은 애들인데 말이야.”
의도가 뻔히 보여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분명 잘하긴 하지만, ⌜대성하자⌟보다는 부족해서요.”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하냐? 쟤들도 우리랑 비슷비슷해.”
“제가 장담까진 못하죠. 하지만 제가 지금 직접 연주를 들어 봤잖아요. ⌜대성하자⌟ 연주도 많이 들어봤고요. 그래서 알 수 있는 거예요. 이래 봬도 제 귀가 꽤 정확하거든요.”
“······.”
“기회를 모두 다른 후배들한테만 넘겨주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형들하고 ‘같이’ 음악 하는 사람 아니었어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면 이번이 제대로 같이 음악을 할 기회잖아요. 제 노래와 형 밴드로요.”
“······.”
“맞죠?”
“······.”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만약 내 제안이 ⌜대성하자⌟ 밴드의 색깔을 헤치는 일이라고, 대성이 형이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이해한다.
음악가들은 고집이 있다.
물론, 나 또한 고집이 있다.
갑자기 내게 마음에 들지도 않는 장르의 노래를 뚝딱 만들라고 한다면? 바로 망설여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거절할 게 분명했다.
고로, 완강한 음악가를 설득할 방법은 없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대성이 형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대성이 형의 시선은 버스킹 무대에 고정돼있었다.
드러머의 상의는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기타리스트는 이를 악물고 리프를 연주한다.
베이스는 묵묵히 저음을 내리깔고 있다.
그 잠깐의 반주 중에 보컬은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관객들은 호응을 해줬다.
그들의 열정을 알기에 박수를 보내준다.
어느새 버스킹 연주자가 바뀌었다.
그렇게 한 번 더 연주자가 바뀌었다.
여름의 저녁은 길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여름이 영원하진 않다.
대성이 형은 하늘을 쳐다봤다.
나도 따라 하늘을 봤다.
그곳엔 어스름한 저녁 빛이 가득했다.
대성이 형이 문득 입을 열었다.
“스스로 일어나고 싶었어.”
그의 중얼거림에 나는 침묵을 지켜줬다.
버스킹 무대로부터 들려오는 은은한 음악만이 대신 대답을 해준다.
시간은 흘러갔다.
어스름이 어두움으로 바뀐다.
그제야 대성이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쯤 됐으면 말이야. 가끔은 욕심을 부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
승낙의 의미.
대성이 형 모르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건 욕심이 아니에요.”
“그럼?”
“형이 저한테 저렴하게 줬던 기타 기억나세요?”
“아, 그거? 그게 뭐라고.”
“그게 뭐긴요. 지금 그 기타는, 연주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거잖아요. 그 음악 중 하나가 이제야 형한테 돌아왔을 뿐이고요.”
“······.”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래.”
내 스마트폰과 헤드폰을 대성이 형에게 넘겨줬다.
대성이 형은 별말 없이 헤드폰을 귀에 썼다.
그리고 음원 앱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세션이 연주해야 할 멜로디가 헤드폰 너머로 얼핏 들려왔다.
대성이 형은 내 노래를 들으며, 어두워진 하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북극성을 보며, 한 번 더 대답했다.
“그래. 네 기타는······ 정말로 멋진 음악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노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