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8
128 불현듯
* * *
미국 플로리다 탬파.
탬파의 해변에서 여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
매년 이맘때마다 미국의 가수뿐만 아니라 세계의 가수들을 초청해 온종일 공연을 한다.
오늘만 해도 총 10팀이 무대에 오르기로 되어있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찾아온 장현필의 경우 괜찮은 타임테이블 순서를 받았다.
7번째.
몇 안 되는 한인들이 사는 탬파였지만, 그들은 장현필의 공연을 보기 위해 매년 이곳을 찾아왔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플로리다의 한인들이 제법 많이 오게 되는 페스티벌이 됐다.
관객 동원력이 꽤 괜찮아진 ⌜장현필 밴드⌟.
공연 관계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장현필에게 좋은 시간대의 공연을 준 것이다.
반짝이던 해변의 모래가 석양빛에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모래사장에 삼삼오오 앉아 무대를 바라봤다.
임시로 설치된 거대한 무대 위로 나이 지긋한 밴드가 올라온다.
팬들은 그들을 환영해줬다.
밴드를 잘 모르는 이들도 환호를 보내줬다.
장현필은 가볍게 인사를 한 뒤에 곧바로 노래를 불렀다.
열과 성을 다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량을 토해낸다.
시간은 야속했다.
젊은 시절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노래가 이제는 숨이 찬다.
대한민국에서 전설로 불렸던 밴드가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되어가고 있다.
2, 30대에 보여줬던 힘찬 연주와 노래는 더 이상 없었다.
단지, 세월을 쌓아가며 만들어낸 연륜과 경험으로 그 시절의 연주를 재현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쉽지만은 않았다.
장현필은 노래를 부르며 무대 아래를 바라봤다.
밴드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팬들이 이곳을 찾아준다.
아이의 손을 잡고서.
그 아이의, 아이의 손을 잡고서.
이곳을 찾아온 이들을 위해서 장현필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보컬의 한계를 끝까지 끌어올린다.
무대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하나둘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한국에서 온 밴드라고? 나이가 있는데도 가창력이 대단하네.”
“젊었을 땐 더 대단했다고 들었어. 한국에선 엄청 유명한 분이거든.”
“미국에서 종종 투어도 한다나 봐. 우연히 공연을 보고 팬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
“나도 그중 하나야. 특히 이 밴드 보컬 음색이 완전 대박이잖아!”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펜스 너머에 있던 남자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장현필 가수님은 아직도 전성기시네요. 직접 공연을 보러올 기회가 없어서 몰랐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박훈 과장의 말에 장현필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한창인 분이죠. 그런데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네. 신곡에 대해서요. 공연이 끝나면 가수님과 밴드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 시간가량의 공연이 끝난 뒤.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박훈은 차리나 대리에게 들었던 내용을 장현필 팀에게 전달했다.
한국의 모 밴드가 이미 연습에 들어간 상태고, 이틀 뒤에 녹음을 진행할 거라는 이야기.
지금 이곳에서는 장현필이 따로 보컬 녹음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현시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J 작곡가가 미국에 오는 시간보다도 더 빠르게 작업이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선배님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박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밴드에서 성격이 제일 까칠하기로 유명한 김만복이 트집부터 잡았다.
“아니, 현필이 형님이 뵙고 싶다는데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해요? 작곡비도 많이 받았다면서요? 그런데 작곡가가 얼마나 고상한 사람이면······. 아! 아! 형님!”
하지만 김만복의 말은 장현필 때문에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장현필은 김만복의 어깨를 꾹 누르며 사과부터 했다.
“동생이 아직도 철이 안 들어서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데 이 노래, 연주 난도가 제법 높아 보이는데 이틀 만에 연습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하루 동안 연습을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확히는 연습 기간이 3일이긴 하죠. 현재 진행 상황을 들어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장현필은 박훈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잔에 시선을 돌린다.
테이블에 미세한 진동이 있었는지 컵 안에 있는 커피가 살짝 흔들렸다.
장현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이 그렇다면 맞는 거겠지요. 그런데 그 밴드 이름이 뭐라고요?”
“⌜대성하자⌟입니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입니다.”
“허. 인디요?”
드러머 김만복이 다시 한번 대화에 끼어들었다.
박훈이 어떤 대꾸를 하기도 전에, 장현필이 김만복에게 다시 경고한다.
“우리도 무명으로 시작했어. 그것도 3년 동안 미군 부대만 돌아다녔던 거 기억 안나? 그러니 다른 밴드 무시하는 말은 하지 마. 다 재능있는 애들이야. 그 실력을 펼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제 말뜻은 그게······.”
“알겠는데. 저쪽도 사연이 있으시다잖아. 그러니 세션 녹음을 들어보고 결정하자는 거고. 맞죠? 박훈 과장님.”
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만약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MJ 작곡가가 바로 미국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MJ. 지금 얼굴 없는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죠?”
“맞습니다.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서로서로 한 걸음씩 양보할 줄도 알아야겠죠. 박 과장님 말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상황을 보고 아직도 툴툴거리는 김만복.
하지만 다른 밴드 멤버들의 생각은 김만복하고 다른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대성하자⌟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던 멤버들은 껄껄 웃으며 칭찬까지 해줬다.
“봐봐. 다들 잘하네. 드럼만 해도 만복이 보다 낫구만.”
“아니, 저는 또 왜 걸고넘어지십니까?”
“하여간. 요즘에는 가수나 밴드가 너무 많아져서 그런 거야. 잘해도 뜨기가 더 힘들어진 것뿐이지.”
“내 말이. 우리가 지금 데뷔한다고 했어 봐. 이렇게까지 떴겠어?”
“분명 어려웠겠지. 일단 나는 찬성이야. 이제는 우리 후배들이 현필이 형 세션도 하고 그래야지. 우리가 다 하려고 욕심만 부려도 안 돼.”
“연습하기 힘들어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고?”
“솔직히 체력이 부족하기는 해. 현필이 형 눈높이 맞추려면 최소 2주는 연습해야 할 거 아냐? 저 형이 그 시간을 순순히 기다려 줄 것 같진 않고······.”
“또또 사람을 24시간 갈아댔겠구만. 이 나이까지 말이야.”
“나는 이번엔 후배한테 세션 녹음을 맞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나도 찬성이야.”
“오랜만에 후배 한번 밀어주지 뭐. 연주가 괜찮으면 인터뷰를 하나 해줘도 좋겠어. ⌜대성하자⌟라 그랬지?”
“밴드 이름이 좋다니까?”
드러머 김만복 외 전원 찬성.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장현필이 쐐기를 박는다.
“단, 박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기간을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당연히 녹음 퀄리티도 나와야 하고요.”
“물론이죠.”
“그러면 저는 기존에 보내 준 MR을 가지고 보컬 녹음만 따로 하면 되겠네요.”
“맞습니다. 그러면 곡 발표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녹음 후에 믹싱과 마스터링, 그리고 음원 등록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장현필이 박훈의 말을 끊는다.
“일주일. 그 안에 모두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네?”
“만약 일정이 무리라고 생각하시면 저희 ⌜JHP⌟에서 해당 작업을 모두 맡으면 그만입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이틀 뒤에 MJ 작곡가가 보내줄 세션 녹음본이 전부니까요. 이외의 작업은 저희가 더 빨리 끝낼 자신이 있습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JHP⌟.
장현필이 대표로 있는, ⌜장현필 밴드⌟와 몇몇 가수들이 소속돼있는 연예 기획사.
원래 원칙으로는 가수가 곡을 사 갔다면, 마무리까지 가수 측 소속사가 작업을 주도하는 게 맞다.
하지만 박훈은 MJ라는 이름을 빌려, 해당 작업까지 모두 ⌜월광⌟에서 처리하기로 장현필에게 말을 해둔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서진이가 작업에 손을 대고 싶어 하니까.’
최근 발표한 ⌜신기루처럼⌟만 해도 믹싱 단계와 마스터링 단계에서 서진이가 각각 피드백을 줬었다.
이로 인해 결과물에 큰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완성도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더 문제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현필은 무척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곡이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 정도로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나?
박훈으로서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현재 돈은 지불한 사람은 장현필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일정을 말했다.
그렇다면 ⌜월광⌟은 최대한 그 일정을 맞춰줘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 외의 말은 사담에 불과했다.
박훈은 고민 끝에 장현필에게 약속했다.
“이틀 뒤에는 세션 녹음본을. 그리고 일주일 안에는 음원 등록까지 ⌜월광⌟이 마무리해드리겠습니다.”
장현필은 박훈 과장의 눈을 쳐다봤다.
박훈에게는 그와 눈이 마주친 얼마 안 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마침내 장현필이 옅은 미소를 띤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제게는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 * *
홍대 연습실.
“무슨······. 곡을 이렇게 연주하기 어렵게 만들어놨을까요?”
“하지만 노래가 좋잖아. 그러면 됐지.”
일성이 형의 물음에 대성이 형이 가볍게 대답했다.
“제 손가락이 찢어져도요? 이 부분 연주하고 있다 보면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는 거 알아요?”
“리드 기타의 숙명이잖아. 못 하겠으면 서진이한테 넘기든가. 쟤 어쿠스틱 기타 연주하는 거 보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더만.”
“······.”
“더 할 말 있어?”
“······ 끄응.”
일성이 형은 우는소리를 하다가 결국 다시 리프 연습에 돌입했다.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이어지는 연주.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며 이연 형에게 말했다.
“잘하시면서 엄살이 조금 있으시네요.”
“일성이?”
“네.”
“그게 자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 어떻게 28살이 14살보다 애 같냐. 서진아, 너는 저렇게 크면 안 된다. 알겠지?”
“에이~ 일성이 형이 어때서요. 성격 좋으시잖아요.”
조금 툴툴거리긴 해도 사람을 가장 잘 챙겨주시는 분이다.
숫자를 센 것은 아니었지만, 나한테 간식을 제일 많이 사준 형이기도 했다.
‘그러면 좋은 분이지.’
이연 형은 앞으로 메고 있던 베이스를 옆으로 돌리며 내 어깨를 툭툭 쳐줬다.
“착하다. 착해. 그런데 네가 그렇게 생각해주니까 쟤도 더 엄살 부리는 거 아닐까? 그냥 툴툴거리는 일성이를 자르고, 네가 리드 기타 자리에 들어오는 건 어때? 너라면 일렉도 금방 배울 것 같던데.”
리프를 연주하던 일성이 형이 크게 소리친다.
“이연 형! 다 들리거든요?”
“어. 들리라고 한 소리야. 너 지금도 연주 틀린 거 알지?”
“······.”
“연습 제대로 하자. 이틀밖에 안 남아서 빠듯한 거 알잖아. 농담도 적당히 하고.”
“치. 알겠습니다.”
나름 ⌜대성하자⌟의 막내 형답게 ‘치’라는 귀여운 말을 쓰시는 일성이 형이었다.
연습은 순조로웠다.
아예 내가 연습실에 붙어서 디렉을 하듯이 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기에 형들도 금방금방 곡을 이해해줬다.
장현필 가수님은 미디가 아닌 실제 악기 소리를 음원에 담고 싶다고 했다.
가상 악기만으로 노래를 만들어도 꽤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는 요즘, 콕 집어서 이런 요청을 해온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보컬뿐만이 아니라, 반주에서도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으면 하시는 거겠지.’
미디로 찍은 연주는 정확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그걸 보고 ‘좋은 연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기계의 연주와 사람의 연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람은 곡을 이해하고, 음표와 쉼표를 어떻게 연주할지 끝없이 생각하며, 결국엔 그 순간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게 된다.
그렇게 연주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실리게 되면서 ‘좋은 연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피아노 연주만 해도 그랬다.
아주 미세한 터치, 아주 미세한 호흡 하나에 연주 퀄리티가 달라진다.
그런 음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완전히 다른 연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음을 연주하더라도, 내가 연주하는 것과 다른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 부분에서 연주자 간의 특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주를, 작곡가인 내 의도대로, 내가 원하던 음악이 나오도록 설명하고 지시하는 게 바로 디렉팅이었다.
⌜대성하자⌟ 형들은 내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줬다.
나이가 어리다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고, 피드백대로 묵묵히 연주를 바꿔줬다.
담백하기만 했던 처음의 연주와 달리 무게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음이 없어지더라도 바로 눈치챌 수 있게, 연주에 짜임새가 있게 됐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학업과 병행하느라, ⌜대성하자⌟ 형들은 생업과 병행을 하느라, 온전히 연습에만 시간을 쏟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 연습 땐 꽤 훌륭한 수준의 연주가 만들어졌다.
녹음은 ⌜월광⌟ 1팀이 주로 사용하는 압구정동의 녹음실에서 진행했다.
이곳 엔지니어분들하고는 몇 번 본적이 있어서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다.
“이야! 이제는 장현필 밴드 곡까지 만드는 거야? 대박이네!”
“얘도 급이 엄청 많이 올라갔잖아.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MJ 곡 받고 싶어 하는 애들이 몇 명인데.”
“하긴. 특히 신인들이라면 껌뻑 죽을걸?”
“직접 서진이를 보면 기절하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러게. 연습생인 줄 알고 착각하는 애들도 많겠다.”
“······.”
아주 약간의 소란만 있을 뿐이었다.
⌜대성하자⌟ 형들은 차분했다.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 악기부터 점검한다.
드럼을 손보던 득수 형이 말을 걸어왔다.
그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 준비됐어. 동시녹음부터 갈 거지?
“네. 개별 녹음은 나중에 상황을 봐서 하게 될 것 같아요.”
– 그래. 그러면 시작할 때 신호 주고.
잠시 후.
옆자리에 있던 엔지니어님을 스윽 쳐다보자 어떤 버튼을 누르신다.
이젠 말을 안 해도 뜻이 통하게 됐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녹음실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
드럼이 박자를 타기 시작한다.
베이스가 저음을 연주하며 중심을 잡는다.
일정한 리듬 속에서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가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나는 악보를 바라봤다.
음표와 음표가 부딪힌다.
거기에서 생기는 미세한 어긋남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
선율이 슬픔을 말하기 시작한다.
리히터 선생님께서는 결국 밀러 아저씨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다.
10년 전······. 아니, 이제는 11년 전에 있었던 비행기 추락 사고.
당시에 어떻게 할 방법도 없다고 하셨다.
나 또한 밀러 아저씨가 바다에서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장현필 가수님께서는, 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나는 노래에 슬픔을 담았다.
그리고 작은 위로를 담았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 대의 일렉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묵직한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이 반주와 엮일 보컬의 노랫말을 위해.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 낸다.
잔잔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선율.
마음이 아려오는 멜로디.
조금은 불안정하던 음악이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녹음은 수없이 반복됐다.
“······.”
“······.”
“······.”
“······.”
녹음실에서 말을 하는 이는 나 이외엔 없었다.
밴드의 선율만이 내 질문에 대답한다.
끝없이.
조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같지만, 분명히 달라진 연주를 반복한다.
나와 ⌜대성하자⌟ 형들에게 주어졌던 짧은 시간.
연주는 불현듯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