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8
138 발자취
* * *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카네기홀.
그곳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 2층에서 강유한은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선율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피아니스트의 감정 변화에 따라 관객들이 숨을 내쉰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차세대 거장으로 언급되며,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는 피아니스트의 공연이었다.
‘뛰어난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나오는구나.’
제자가 서게 될 무대를 하루라도 먼저 확인하기 위해서, 한서진보다 조금 일찍 미국에 도착한 강유한이었다.
그는 앞으로 제자가 알게 모르게 경쟁해야 할 연주자를 가만히 지켜봤다.
연주를 모두 마친 피아니스트는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을 바라본다.
무대 위에 있는 피아니스트는 무척이나 빛났다.
강유한은 문득 옛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이곳 무대에 올라갔던 때.
처음으로 미국에서 연주 여행을 이어가던 때.
젊은 날의 자신을 잠깐동안 회상했다.
그때, 관객들이 연주자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강유한 역시, 멋진 연주를 보여준 피아니스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강유한은 인근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서 옛 동료 연주자들이 강유한을 반겼다.
“정말 오랜만이로구만! 그동안 잘 지냈나?”
“나야 늘 똑같지.”
“선생님은 정말로 그대로이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뵌 게 3년 전이었나 그랬는데, 오히려 더 젊어지신 거 아녜요?”
“허허. 사람이 농담은.”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와 캐나다 출신의 오보이스트.
강유한과 동시대에 활동했었던 프로 연주자들이었다.
그들은 근황 이야기부터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제는 곧바로 ‘한서진’으로 바뀌게 됐다.
“사실, 나는 그 아이가 보고 싶어서 미국에 오게 된 거거든. 얼마 전까지 유럽에서 한창 활동 중이었는데, 동료들이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닌가? 에틀링겐에서 그 아이를 보고 놀랐다나 뭐라나. 덕분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네.”
“큰 결심을 했구만. 그런데 아무 일정도 없이 이 공연만 보러 온 건가?”
“크흠! 에이전시에서 공연 한두 개를 잡아주긴 했지만, 주목적은 그 아이의 카네기홀 공연을 놓치기 싫어서였다네. 무척 기대 중이라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인 미하우 파얀스는 진작부터 거장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
지금까지 10개 이상의 연주 앨범을 내며,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자네의 기대는 그 아이가 충분히 채워줄 걸세.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영재들 중에서도 그 아이는 특별하거든.”
“허! 그 정도인가?”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아마 이번 카네기홀이 꽤 괜찮은 시작점이 될 걸세.”
“강유한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로 세기의 천재가 나온 모양이로구만.”
대화를 듣고 있던 오보이스트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런데 그 아이, 벌써부터 특유의 기풍을 가지고 있던데요? 그 짧은 CNN 뉴튜브 영상에서도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진짜로 깜짝 놀랐어요.”
“가야 할 길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지. 나를 만나기 전부터 만들어진 연주자였다네.”
“그렇다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걸까요?”
“글쎄. 워낙 신비로운 아이라서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만.”
“신비로운 아이요?”
“그 아이의 내면은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깊거든. 그게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도 있겠지만, 또 노력도 못지않게 하는 아이라서 말일세.”
“······.”
강유한은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 그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피아니스트 파얀스는 불현듯 떠오른 걸 강유한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자네가 대한민국에서 최연소로 카네기홀 공연을 했다고 했던 때가 언제였지?”
“허허허. 대체 몇 년 전 일을 이야기하는 건가?”
“가만있어 보자. 내 기억으로는 자네가 22살일 때가 아니었나? 그때 대한민국에서 난리가 났었다고 자네가 그랬었는데 말이야.”
강유한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땐 젊었으니까. 그런 말도 하고 다니긴 했지.”
“그러다가 이제, 자네 제자가 다시 ‘대한민국 최연소’ 카네기홀 연주자가 되는 건가?”
“그 전에 한 명이 더 있긴 했네. 19살. 당시에 꽤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한국에서 나왔거든. 그다음에서야 이 아이가 대한민국 최연소 기록을 바꾸게 된 걸세.”
“허허. 대단하구만. 그 아이가 올해 만 13살이라고 했지?”
“맞네. 무척 어리지.”
“이러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나! 오랜만에 클래식계에 스타가 나올지도 모르겠어. 기대가 되는구만. 기대가 돼.”
뉴욕에 있는 클래식 음악가들.
그중에서도 강유한을 알고 있는 거장들은 하나 같이 그 아이의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 * *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그곳에 선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쓴 여자아이가 크게 걸음을 내디딘다.
당당한 아이의 모습.
“우리 오빠가 이제 미국까지 진출하다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수연이는 기자들을 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비행하는 동안 내게 배운 영어 문장을 말해본다.
“안녕하세요! 저희 오빠를 촬영하러 나오셨나 봐요?”
하지만 곧이어 돌아오는 기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수연이는 화들짝 놀라며 내 뒤에 숨고 말았다.
“오, 오빠. 예상치 못한 질문들인데? 우리 계획이 어긋났어! 큰일이야!”
“대단한 말은 아니야. 네가 귀엽대. 그리고 혹시 내 동생이냐고, 혹시 음악을 하냐고 물어보시네.”
“아! 그랬구나. 엇?”
수연이가 어머니에게 혹 잡혀간 사이, ⌜Schmid⌟의 로저스 디렉터님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이곳에서 하는 인터뷰는 형식적인 거라고 했다.
적당한 그림을 따기 위해서라고.
정식 인터뷰는 카네기홀에서 다시 할 거라고 하셨다.
기자님들과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곧바로 카네기홀 근처의 호텔로 향했다.
공식 일정은 내일부터.
덕분에 오늘은 휴식이었다.
“와! 오빠 이것 좀 봐봐!”
커튼 안쪽에서 꼬물거리던 수연이가 소리친다.
수연이를 숨기고 있던 커튼을 걷어봤더니 확 트인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잡아준다고 하시더니.’
3.41km² 면적을 자랑하는 거대한 공원.
뉴욕 맨해튼의 상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수연이는 눈을 빛냈다.
“새봄동에 있는 공원을 다 모아도 이 정도는 안 되겠어.”
“그럴지도 모르겠네.”
“우리 동네 뒷산처럼 저기에도 다람쥐들이 살까?”
이 대답은 어머니가 대신 해주셨다.
“청설모가 산다고 하더라고. 운이 좋으면 만날 수도 있다는데?”
“와! 대박! 빨리 가보고······.”
“그런데 수연아, 우리 오늘은 일찍 자야 해. 오빠 시차 적응하는 게 먼저잖니. 그렇지?”
“······ 싶지는 않아요. 오빠, 우리 빨리 자야겠다. 그렇지?”
언제나 오빠가 먼저인 수연이였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래. 오늘은 일단 푹 쉬자. 내일부터 움직여도 늦지 않으니까.”
“맞아. 그리고 나도 사실 해야 할 일이 있었어.”
“해야 할 일?”
“응!”
순차적으로 샤워를 하고, 옷까지 갈아입은 우리 가족.
수연이는 침대에 엎드린 채 어머니 스마트폰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뭔가 했더니 내 기사를 열심히 찾아보고 계신다.
“히히히. 오빠 이것 봐봐. 우리가 귀여운 남매라는데?”
인천공항에서 수연이하고 내가 똑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진이 기사에 실려 있었다.
“이런 사진을 잘도 찍으셨네.”
“그보다 우리가 닮았대! 댓글에도 그런 말이 있어. 참. 우리가 남매라는 사실은 결국 숨길 수가 없었나 봐. 크흠! 어쩔 수 없지 뭐. 오빠랑 나니까.”
수연이가 보여준 스마트폰에는 실제로 그런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ㄴ 와! 얘네들 뭐야? 무슨 아역 배우들이야?
ㄴ 엌ㅋㅋㅋㅋ 선글라스 맞춰 쓴 거 왤케 귀엽냐. 미쳤넼ㅋㅋㅋ
ㄴ 크흐! 오빠는 벌써부터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고 있고. 동생도 나중에 뭐 하는 거 아냐?
ㄴ 진짜 미칠듯한 귀여움이다 ㅠㅠ
ㄴ ㅋㅋㅋㅋ 남매가 왤케 닮았어?
우리 가족은 한참 동안 그런 기사를 찾아봤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곧바로 잠을 청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 침대에서.
나와 수연이가 한 침대에서.
마치 행복한 가족 여행을 온 느낌을 받으며.
미국에서의 첫째 날은 금방 지나갔다.
* * *
다음 날.
늦은 오전 시간.
로저스 디렉터님과 카네기홀 관계자분이 호텔 로비에 찾아오셨다.
“오늘 곧바로 1차 리허설을 할 예정입니다. 연습실은 ⌜Schmid⌟에서 따로 준비해둔 상태라 걱정하실 필요는 없지만, 리허설은 장소의 제약이 있어 3번만 연주해볼 수 있게 될 겁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도 미리 들었던 말.
나 혼자 사용하는 공연장이 아니었기에 당연한 내용이었다.
“3번이면 충분해요. 다만, 마지막 리허설을 할 땐 피아노 조율을 중점적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가 지긋한 카네기홀 관계자.
존 그레이 디렉터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바가 생기면 언제든 내게 말해주면 된단다. 여차하면 피아노를 바꿔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곧바로 카네기홀로 이동했다.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차로는 금방 도착했다.
우리 가족들을 로저스 디렉터님께서 안내를 해주시기로 했고, 나는 따로 존 그레이 디렉터님을 따라갔다.
카네기홀은 무척 화려했다.
넓은 로비에 세련된 장식.
크림색 대리석 바닥을 따라 걷다 보면 보이는 아치형 천장.
이런 부분이 분명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 베토벤이라고요?”
“그래. 그의 친필 편지란다. 30년 전에 소더비에서 낙찰을 받아왔지. 꽤 큰 돈을 줬어.”
“······.”
“하하. 놀라기는 아직 이르단다.”
그레이 디렉터님은 벽에 붙어 있는 액자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드보르작,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의 친필 악보.
그들의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한 수많은 거장의 사인과 사진.
그리고 유명한 팝스타들의 물품도 전시가 되어있었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이들이 기증한 물건들도 있단다. 참고로 너도 곧 여기에서 연주하게 될 테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지.”
“······.”
내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레이 디렉터님께서는 껄껄 웃으셨다.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바로 가보자꾸나.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말이다.”
“제게요?”
“그래. 이곳에서 연주하는 이들이라면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
‘보여줄 것? 해야 할 일?’
약간 어긋나는 디렉터님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카네기홀에서 조금 구석진 곳에 가게 됐다.
아무도 없는 곳.
로비 입구처럼 화려한 장식도 없는, 어느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레이 디렉터님은 문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열쇠로 열고서 나를 먼저 들여보내 주셨다.
고급스러운 책장이 주욱 늘어선 작은방.
그 중간엔 책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설마······. 맨해튼 한복판에서 납치를 당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농담 비슷한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그레이 디렉터님께서 말을 이어가셨다.
“외부인에게 공개가 되는 곳은 아니거든. 이곳은 카네기홀의 역사를 모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다행이네요. 저는 어디 잡혀가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하하하. 그러면 빨리 오해를 풀어줘야겠구나.”
그레이 디렉터님은 책장에서 두툼한 책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표지에 쓰인 글자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게 됐다.
덕분에 이곳이 금방 어딘지 알 수 있게 됐다.
“혹시 방명록인가요? 여기는 방명록을 모아둔 방이고요?”
“바로 맞췄구나. 이건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공연을 하게 된 아티스트들이 쓴 방명록이지. 너도 이곳에서 연주하게 됐으니, 카네기홀의 역사와 함께하게 됐다고 봐야겠구나.”
그레이 디렉터님은 방명록의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여주셨다.
거기엔 얼마 전에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연주했던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니스트의 글귀가 쓰여있었다.
–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역사적인 공간에서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곳의 관객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그 앞에도.
그보다 훨씬 앞에도.
수많은 이들의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디렉터님의 말씀처럼 이 책자는 카네기홀의 역사였다.
“그런데 저는 아직 공연 전이잖아요? 벌써부터 방명록을 쓰나요?”
“쓰는 건 공연이 끝난 직후지. 오늘은 소개만 해주는 거란다. 쓸만한 말을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라고 봐주면 좋겠구나.”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로저스 디렉터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거든요.”
“이건 카네기홀에서 직접 설명해주는 게 관례니까. 그리고 대중들에게 공개된 내용도 아니란다. 언젠가 공개하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지.”
“신기하네요.”
“너도 이 비밀은 지켜줬으면 좋겠구나. 뭐, 이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들어 그레이 디렉터님께 질문을 해봤다.
“그런데 만약 괜찮다면 다른 분들이 쓴 방명록을 찾아봐도 될까요?”
“내 앞에서라면 상관없단다. 과거 음악가들의 방명록을 통해 다음 세대의 음악가가 얻어가는 게 있으면 좋지. 그러라고 이곳을 만든 거니까.”
“그러면······.”
“혹시 강유한 피아니스트님의 기록이 궁금한 거니?”
“어······.”
그레이 디렉터님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네 스승이 그분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말이다. 어디 보자. 다 찾아볼 수는 없고. 그의 첫 번째 연주라면 거의 50년 정도 됐을 테니까······.”
책장을 얼마간 뒤적거리던 그레이 디렉터님은 조금 오래돼 보이는 책자를 책상 위에 올려놔 주셨다.
페이지를 몇 장 스르륵 넘겨서 내게 건네주신다.
그 중간쯤에서.
나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유한 피아니스트.
교수님께서 22살 때, 처음으로 카네기홀에서 연주하셨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한국대에 레슨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듣게 된 소문이었다.
이 당시의 교수님은 꽤 강렬한 필체로 기록을 남겨두셨다.
– 카네기홀은 음악의 신성한 성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연주하면서 제 음악적 여정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클래식의 불모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첫걸음을 디뎌냈습니다. 앞으로 많은 음악가가 대한민국에 나타날 것이고, 저는 그들을 응원해줄 겁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저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음악적으로 더 성숙해질 겁니다. 22살의 피아니스트가 선언합니다. 저는 또다시 이곳을 찾아오겠습니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
과거, 젊으셨을 때 교수님께서 어떤 분이셨을지 알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카네기홀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라 선명히 기억이 나는구나. 동양의 사자. 강유한 피아니스트님은 별명에 걸맞게 형형한 분이셨지.”
“그러면 디렉터님께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곳에서 일을 해오신 거예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평생직장이 되어버렸단다. 삶이란 이래서 재미있는 거지.”
“······ 그렇네요.”
나는 고민했다.
사실, 방금 그레이 디렉터님께 물어보려고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걸 물어보기 위해 다른 몇몇 피아니스트님의 방명록을 보고 싶다고 질문을 드려봤다.
내 나름의 연막작전.
몇몇 연주자의 방명록을 확인해주시던 그레이 디렉터님은 내게 아예 새로운 책자를 건네주셨다.
“이게 목차다. 연도별, 이름별로 정리를 해뒀으니 너도 찾을 수 있을 거다.”
“아! 감사합니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원래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쓰는 아티스트들도 있으니 너도 천천히 보거라.”
카네기홀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분들이 있어서, 나는 꼭 확인해보고 싶던 걸 찾아볼 수 있었다.
목차를 한참 뒤적거린 뒤에 나는 책장에서 낡은 책자를 하나 꺼냈다.
종이를 한 장씩 차분히 넘겼다.
한 장씩.
한 장씩.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했다.
현재, 거장이라 불리는 연주자들의 이름이 방명록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오래돼서 바래진 종이에 쓰여 있는 글자들을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원하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크 밀러······. 피아니스트······.’
밀러 아저씨는 내게 피아노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해주시지는 않았다.
건초염으로 피아노를 그만두기 전, 한창 연주를 많이 하셨을 때의 이야기는 언제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셨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아저씨의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7살의 아저씨가.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마치고 쓴 방명록을 읽어봤다.
–
음악. 저는 그 안에서 모든 답을 찾았습니다.
새 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하물며 사람의 감정에 숨어있던 소리조차 음악에 깃들어있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이 평온한지 묻습니다.
당신이 행복한지 묻습니다.
당신이 위로받길 원합니다.
모든 이가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을 찾아와준 수많은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제 연주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만드는 음악을 통해.
당신이 치유를 받았으면 합니다.
오늘 제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 방명록을 쓰면서 아직도 그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있다면 오늘 제 연주를 듣고 털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에게 제 뜻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음악가입니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7살의 철없는 피아니스트입니다.
–
“······.”
숨이 깊게 들이마셔졌다.
그 숨은 곧바로 크게 내쉬어졌다.
나는 아저씨가 쓴 글귀를 손으로 쓰다듬어봤다.
굳어버린 오래된 잉크가 손끝에 걸린다.
잉크 가루가 손에 조금 묻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밀러 아저씨에게 또 한 번 영감을 얻었다.
방명록을 가만히 쓸고 있던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내 것.
이제 이 건 내 것이다.
그레이 디렉터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리허설을 하기 위해 콘서트홀로 향했다.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
그 웅장한 규모에도 나는 기죽지 않았다.
객석에는 ⌜Schmid⌟의 수많은 관계자와 강유한 교수님, 카네기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내 연주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이들.
내 1차 리허설을 보러온 이들이었다.
그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수연이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그들을 관객 삼았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내 안에 가득 차오르고 있는 영감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아주 잠깐이면 됐다.
그리고.
아직까지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건반 위에서 펼쳤다.
감정이 일순간 쏟아진다.
내 안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피아노를 거쳐 그들에게 향한다.
이야기가 전해진다.
평온과 행복, 위로를 연주한다.
나는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서.
카네기홀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밀러 아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