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4
44 출발
* * *
⌜월광⌟ A&R 1팀.
“권설하라고?”
“네. 우리 ‘듬직한’ 작곡가님께서 꼭 한 번쯤 컨택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박훈 과장은 곧바로 생각에 잠겼다.
권설하.
그다지 유명한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박훈도 알고 있었다.
8년 전 즈음, 모 종편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간신히 턱걸이 수상을 했던 가수.
‘거기에서···. 아마 3등을 했었지.’
하필이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에서 범람하던 시기라 다른 우승자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였던가?
이미지 변신을 하겠다고 소속사에서 섹시 컨셉을 밀다가 처참하게 실패.
그렇게 무난하게 주욱 주목받지 못했던 가수 중 하나가 권설하였다.
박훈은 그게 살짝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권설하 가수가 왜 우리 추천 리스트에 있던 거야?”
“제가 찾았거든요. 우리 회사 데이터베이스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했죠. 작곡가님께서 원하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가수였거든요.”
“고음역대의 맑은 목소리?”
“네. 요즘엔 그렇게 깔끔한 보컬이 별로 없잖아요. 확실히 메리트가 있었어요.”
“······ 일단 나도 다시 확인을 해봐야겠는데.”
박훈은 서둘러 권설하의 데이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PC로 그녀의 음악을 틀었고, 최신 뉴스도 검색했다.
차리나의 말대로 음색만큼은 ⌜TEST⌟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꽤 괜찮은 보컬이다.
하지만 역시나.
“차 대리, 잠깐만 와봐.”
“뭐 찾은 거라도 있으세요?”
“이거 직접 한 번 읽어봐.”
“······?”
차리나는 박훈 자리에 있는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해···. ⌜분노의 도시⌟라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열연을 선보인 그녀는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유망주로서···. 이분, 배우도 겸업하시는 분이었어요?”
“그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야.”
“네?”
박훈은 모니터 화면에 두 개의 웹브라우저 창을 띄웠다.
“권설하라는 동명이인 신인 영화배우가 있더라고. 그 사람의 뉴스가 먼저 떴을 뿐이야. 참고로 뉴스 검색 결과 1페이지 안에 가수 권설하에 대한 내용은 없었어. 배우 권설하만 있을 뿐이었지.”
“······.”
“우리 작곡가가 신인이라 패기 넘치는 건 알겠어. 나이도 어리잖아. 마음에 드는 가수까지 찾았고. 그런데 신인 작곡가에 무명 가수 조합은 많이 힘들지 않을까 싶네.”
“좀···. 그렇긴 하네요···.”
연예계라는 게 그렇다.
노래가 좋고, 보컬만 좋다고 해서 전부 뜰 수 있는 판은 아니다.
일단은 가수의 인지도가 ‘최소한’으로 뒷받침이 되어줘야 한다.
유명 가수의 경우, 길 가다가 재채기만 해도 포털사이트 1면에 기사가 실린다. ‘A급 가수의 나른한 포효! 크아아앙!’이라는 되도 않는 제목으로.
하지만 무명 가수라면?
길바닥에 10시간을 드러누워 있어도 기사는커녕 소문도 나지 않을 수 있다.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다가 입이나 안 돌아가면 다행이다.
그래서 박훈은 이 ‘최소한의 인지도’를 갖추지 못한 가수 권설하가 탐탁지 않았다.
“괜히 노래만 아까워질 수도 있어. 차라리 가창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지도를 챙기는 편이 나아.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큰 그림을 봐야 할 때야.”
“하아. 그런가요···.”
“이야! 이제 박 과장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네요?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요? 대박이네.”
그때, ⌜월광⌟ 1팀에 낯선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3팀의 김신우 과장.
1팀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다.
“김 과장은···. 남의 팀에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모르나 봐?”
“아, 아, 미안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그런데 이번 공모전에 1팀이 뽑았다는 작곡가, 그게 누군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겁니까? 거의 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던데.”
“그냥 평소랑 똑같다. 그러니까 갈 길 가지? 괜히 어슬렁대지 말고.”
“아이구 무섭네요. 그런데 박 과장님.”
“왜.”
김신우 과장은 날카로운 말을 하나 던졌다.
“제가 올해 진급해서 이제는 같은 과장 직급이 됐는데 말이죠. 아직까지 제게 반말을 쓰시는 건 조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 아닙니까?”
“······.”
“조~ 금 그런 것 같아서요~”
“······.”
박훈은 김신우의 말을 그대로 받으며 맞받아쳤다.
“그래서. 원래 우리 1팀 소속이었던 아티스트들, 부장님 빽으로 쏙쏙 다 빼먹고. 과장까지 달고 나니까 보이는 게 없나 봐? 이젠 기본적인 선후배도 몰라보네?”
“어휴. 선배! 그런 건 아니고 저한테 갑자기 예의를 지키라고 하셔서 한마디 한 거였죠. 너무 까칠하시네요.”
“······.”
“하여간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1팀이 살아남을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구경 온 것뿐이었거든요. 과장 하나에, 대리 하나라···.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하다니까요. 참. 그리고 선배.”
“뭐.”
김신우는 시선을 내리깔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가창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지도를 더 챙기는 편이 낫다는 박훈 과장님의 그 말.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이제라도 변한 모습을 보니 내년까지는 1팀이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하네요.”
확실히 비꼬는 말투.
박훈은 뛰쳐나가려는 차 대리의 손목을 잡았다. 하지 말라는 의미. 가만히 뒀다간 진짜로 박치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김신우 과장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오!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대리여서 콱! 쥐어박을 수 있었는데! 과장님, 저걸 그냥 둡니까?”
“어쩌겠냐. 틀린 말은 없는데.”
“제가 다음 3팀 회식 때 가서 또 들이박을까요? 저거 김 대리···. 아니, 김 과장 제 한주먹 거리도 안 되거든요?”
“아서라. 아서.”
‘그것 보다···.’
박훈은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봤다.
가수의 실력보다 인지도를 우선으로 챙기겠다는 말. 과거의 자신이라면 감히 생각도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박훈은 여태까지 실력만으로 아티스트들을 판단해왔다.
가수에게 맞는 곡을 찾아주려 애를 써왔고, 멋진 노래가 있다면 그 곡을 가뿐히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를 먼저 찾았다.
‘그런 내가 어째 이렇게 됐냐···.’
사내 정치로 1팀 실적이 제로에 수렴하면서.
한서진 작곡가를 만난 이후 큰 기대를 걸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실리부터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TEST⌟에는···. 권설하 보컬이 맞는 선택일까?’
지난 며칠 동안 만났던 몇몇 가수들 보다는 확실히 권설하가 ⌜TEST⌟를 잘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박훈은 권설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 기사를 뒤졌고, 그다음으로 업계 관계자에게 연락을 돌려봤다.
권설하와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가는 꽤 괜찮았다. 실력파에 훌륭한 인성. 자기보다 몇 살 어린 매니저한테까지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단다. 무대 위에서 매너도 좋은 편이고. 작은 공연도 성실히 했다고.
인지도만 빼고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물.
엔터 판을 모르는 신인 작곡가가 봤을 때, 확실히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신인은 이게 전부인 줄 알 테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의 신인 작곡가는, 박훈이 엔터 업계에 일하면서 처음으로 만났다고 할 수 있는 천재였다.
그의 말을 ‘신인 작곡가의 말’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게 옳을까?
엔터 계의 흔한 관행처럼 인지도만 좇을 게 아니라, 과거의 박훈이 그랬던 것처럼 보컬의 실력을 우선으로 따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렵네···.’
어느새 1팀의 인턴들은 모두 퇴근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근무하는 이들. 남은 사람은 박훈과 차리나 둘뿐이었다.
저녁을 먹고 올지, 아니면 일을 마저 하고 집에 갈지 고민하던 그때.
“여깄습니다.”
“응?”
차리나가 박훈에게 종이 뭉치를 건넸다.
“가수 권설하에 대한 보고서에요. 오늘 내내 고민하고 계셨잖아요. 직접 눈으로 보고 비교하는 게 더 좋으실 것 같아서요.”
“이야. 타이밍이 좋네?”
“인턴들 갈아 넣어서 만든 거라 금방 만든 보고서에요. 조금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재미있는 부분?”
“직접 읽어 보세요.”
“······.”
박훈은 보고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용을 주욱 읽어나갔다.
한 장, 두 장, 세 장.
박훈의 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권설하에 대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원 소속사인 ⌜QY⌟와 계약이 완전히 끝났다는 부분이었다.
정식 계약 기간인 7년을 모두 채우고.
1년 추가 계약을 한 상태에서.
불의의 사고로 양측 합의 하에 계약이 종료됐다.
그리고 그 불의의 사고라는 것은···.
“AC 2505편 사고?”
“네. ⌜QY⌟랑 권설하 가수가 서로 앙숙 관계는 아녔나 봐요. 원만하게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한 정보야?”
“네. 나름 보도 기사도 냈는데 ‘배우 권설하’ 때문에 묻혔을 뿐이에요. 해당 언론사 기자님 통해서 제가 따로 확인도 해봤는데 계약 종료는 사실이었어요.”
“······.”
“과장님, 이거 뭔가 우연만은 아닌 것 같지 않으세요? 한서진 작곡가도 그 사고 겪었다고 했었잖아요.”
“······.”
⌜월광⌟과 한서진 작곡가가 본 계약을 진행할 당시.
한서진이 박훈 과장에게 했던 말이 있다.
AC 2505편 사고 당사자로서, 당장은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고. 그러니 ⌜월광⌟이 그걸 강요할 수 없는 조항을 만들어 달라고.
슬슬 잊어 가고 있던 비행기 사고. 한서진이 언급을 안 했다면 그가 ‘희망의 아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참고로 여러 종류의 아티스트들 중, 작곡가가 대중 앞에 설 일은 많지 않다.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하는 대형 기획사의 대표급 정도 되는 프로듀서가 아니라면, 대중들은 작곡가가 누군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박훈은 한서진과 계약할 때 그 조항을 계약서에 흔쾌히 넣어줬다. 사실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한서진 작곡가의 나이를 떠올려보면, 당연히 보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AC 2505편 이야기는 ‘어라? 그 당사자를 다 만나보네.’ 정도의 헤프닝으로 지나간 일이었다.
오늘 권설하의 사연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우연이 계속 겹친다?”
“저도 미신을 잘 믿지는 않아요. 하지만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명곡은 이런 우연 속에서 많이 나오곤 하잖아요. 뭔가 느낌이 있지 않아요?”
비틀즈와 그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돈이 없어 음반을 만들지 못하고 있던 비틀즈. 캐번 클럽에서 그들과 만남을 가지게 된, 레코드 샵 사장이었던 엡스타인.
그들은 홀린 듯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고, 엡스타인의 사업수완으로 비틀즈는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됐다.
만약 엡스타인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비틀즈의 성공은 분명 굉장히 늦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연은 어떻게든 만들어졌다.
필연적인 만남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우연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작곡가가 원하고 있는 가수. 이보다 더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없지.”
“그러니까요.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믿어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12살짜리 작곡가를 말이지? 신인 작곡가에 다년 차 무명 가수 조합으로 가보겠다고?”
“네.”
“그거는···.”
박훈은 결국 씨익 웃었다.
“나 ⌜월광⌟ 처음 입사했을 때 생각나서 좋네. 그러면, 소속사 계약도 종료됐다는 권설하 가수는 어딜 가서 모셔 와야 되나?”
“아! 그것도 보고서 마지막 장에 정리해놨습니다.”
“······?”
“한 번 보시죠.”
차리나의 말대로 박훈은 보고서 마지막 장을 읽어봤다.
“······ 발목 인대 부상으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고. 거기에 사실상······. 가수 은퇴 선언을 한 거랑 다름이 없다고? 은퇴? 은퇴???”
“설득은 저랑 과장님, 둘이 직접 가서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전 소속사 관계자로부터 권설하 가수가 부모님 댁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소가 강릉이라는데 하필이면 제가 면허가 없지 않습니까?”
“······.”
“크흠. 과장님, 내일 운전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충성충성!”
“······.”
박훈은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어이없게 진행되는 일들.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끝없이 기회가 생기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잘하면 1팀에 새로운 가수를 데려올 수도 있을 테니···.’
공모전에서 시작된 일은 거침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박훈은 열심히 보고서를 만들어 온 차리나에게 괜히 트집을 잡았다.
“너, 올해엔 면허 꼭 따라. 내가 빡세게 연수 시켜줄 테니까. 알았어?”
* * *
다음날.
“······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아?”
“······ 저도 모르겠어요.”
앞 좌석에 탄 두 분이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도시락을 꺼냈다.
어머니께서 싸 주신 과일 도시락이 영롱한 빛을 낸다.
뚜껑을 열어 맛나 보이는 과일부터 먼저 골랐다. 이쑤시개로 키위를 콕콕 찍어 박훈 과장님과 차리나 대리님께 하나씩 건넸다.
그리고.
이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두 분께 상황을 정리해줬다.
“제 첫 번째 가수가 될지도 모르는 분인데, 설득을 하려면 제가 해야죠. 그리고 오늘 단축수업으로 1시에 수업이 끝난 게 어디에요? 다~ 인연이 있는 거라니까요.”
“······.”
“······.”
“설득만 잘하면 오늘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조금만 더 크고 나면 면허부터 따서 운전 교대도 잘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출발하시죠. 강릉으로.”
“······.”
“······.”
그 틈에 나는 도시락에서 샤인머스켓을 하나 찍어 먹었다.
새콤달콤한 맛.
오늘은 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