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5
164. 청산 초등학교 운동회 >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연출진이 태주 일행을 깨우러 숙소로 향했다. 야간 카메라를 회수하고 이제부턴 다시 직접 촬영할 예정이었다. 오늘 있을 촬영의 순서를 되새겨 보던 PD의 눈에 낯선 광경이 잡혔다. 눈썰미가 날카롭기로 유명한 그녀는 곧 원인을 알아냈다.
“홍 작가님. 여기 좀 보세요.”
“어디요?”
“텃밭이요. 어제도 이랬어요?”
“어? 여기 왜 이리 깔끔해요? 누가 손을 봤나?”
‘설마 이태주 씨는 아니겠지?’
어제 텃밭을 보며 불만스러워하던 태주의 표정이 순간 기억났다. PD의 마음에 태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곧 그 의심을 털어 버렸다. 몸값 비싼 배우가 뭐가 아쉽다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을 맬까. 더군다나 자신의 텃밭도 아닌데.
동네 주민 누군가가 했을 거로 생각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피곤한 하루가 될지도 모르니, 카메라를 회수하고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출연진이 더 자게 두려는 배려였다.
“멍멍멍!”
“냐앙!”
“안녕하세요.”
이미 마당에서 반려동물들과 놀고 있는 태주 덕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배려였다. PD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두 동물과 잡기 놀이를 하는 태주를 보고, 좀 전에 했던 의심을 다시 했다. 대문 밖 텃밭을 정리한 게 그가 아닐까 하는….
일어나는 인원이 많을수록 점점 집 안에도 활기가 돌았다. 출연진들은 어제보다 훨씬 서로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낯설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박준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반찬 이름을 대기도 할 정도였다.
그게 하룻밤을 같이 지내서 서먹서먹함이 가셔서 그런 건지, 정신없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두 반려동물 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촬영할 수 있게 된 상황이 반가웠다.
-빰빠라라라람.
“으앗. 깜짝이야. 웬 방송? 웅얼거려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학교에서 운동회 한다는 방송인 것 같아요.”
“넌 저게 들려?”
“대충이요.”
다 같이 모여서 어제 얘기했던, 장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온 동네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오늘 있을 행사에 대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장비 품질이 좋지 않은 듯 심하게 울렸지만, 전혀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금일 청산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합니다. 모두 오셔서 학생들과 함께 오늘 하루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중간중간 알아듣기 힘든 말이 있었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온 동네가 떠나가라 여러 번 방송할 정도로 초등학교 운동회가 이 동네에선 꽤 큰 이벤트인 것 같았다.
“우리 언제 장사하러 가요?”
“그러게. PD님 우리 언제 시작해요?”
“편하신 시간에 시작하세요.”
“헐. 아니, 진짜 이래도 되나?”
굳이 언제 어떻게 시작하라는 말도 없었다. 그냥 출연진이 알아서 장사를 시작하면 자신들도 알아서 촬영하겠다는 태도였다. 예능 출연이 거의 없었던 태주와 한주원도, 꽤 자주 출연했던 진혁과 박준도 모두 당황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분식은 아침에는 안 먹겠죠?”
“그치. 원래 방과 후에 친구들하고 먹는 게 보통이니까.”
“전 점심시간에 외출하는 친구 따라가서 먹은 적 몇 번 있어요.”
“그럼 점심시간에 들어가야 하나?”
“음. 제 생각엔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가는 게 낫겠어요.”
태주는 일찌감치 운동장으로 푸드트럭을 가져가자고 의견을 내놓았다. 초등학교는 출입구가 정문뿐인 것 같았다. 만약 아이들이 등교 중일 때, 덩치 큰 푸드트럭이 학교 정문을 지나면 불편을 줄 것 같아서였다.
“전교생이 17명이라고 했지?”
“네.”
“이번 같은 이벤트 형식이 아니면 정말 이곳에 분식집이 들어올 일은 없겠다.”
“그렇겠죠?”
“통학에 방해될 것 같진 않지만, 네 말대로 하자. 차가 워낙 크니.”
느긋하던 아침 시간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일행은 태주의 의견대로 운동장에 미리 가서 자리 잡고 기다리기로 했다. 출연진이 분주해지자, 촬영진까지 덩달아서 바빠졌다. 촬영진 일부는 PD의 지시를 받고 푸드트럭이 장사할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러 먼저 출발하기도 했다.
“가서 아침 먹자.”
“멍멍.”
“킥. 왜 너희가 대답해? 너흰 이미 밥 먹었잖아.”
“냐아아.”
태산이와 밤이는 굉장히 사이가 좋았다. 가만히 보면 태산이 행동을 밤이가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진혁은 어제부터 줄곧 웃고 있었다. 행동이 조심스럽던 아이가 이곳에 온 후로 자유롭게 바뀐 게 마음에 든 것 같았다.
*
학교 정문에는 선생님과 익숙한 촬영진의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주원은 두 사람이 안내하는 곳으로 푸드트럭을 몰고 갔다. 차를 세우고 둘러본 학교 운동장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들이 성인이어서 작게 느껴지는 건지, 원래 작은 건지 조금 가늠하기 힘들었다.
학교 건물은 노란색과 연두색으로 칠해진 3층 건물이었다. 3층 건물에서 겨우 4개 학급밖에 운영되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학생 수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학교 아담하고 좋은데….”
“그러게. 아쉽겠다.”
학생 수가 부족해서 폐교를 맞은 것은 그들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마지막 운동회가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신청자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기다리던 청산 초등학교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경기에 참여하는 학생보다 선생님과 보호자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공 굴리기 재밌겠다.”
“요새 초등학교 운동회는 우리 때랑 많이 다르네.”
“우리 때는 청, 백, 홍 세 개 팀으로 나눠서 경쟁했는데.”
“이곳은 그냥 재밌게 노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네요.”
아이들이 한창 게임을 하는 운동장 한쪽에는 아이들을 보러 온 학부모들이 꽤 많이 있었다. 지정된 장소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박수를 치고 큰 소리로 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아이들을 위한 도시락과 음료수 등이 모두 있었다.
“어? 여긴 운동회에 음식 가져와도 되나 봐요.”
“응? 당연한 거 아니야?”
“음. 우리 학교는 음식물 반입 금지였는데요. 그래서 오늘 떡볶이 잘 팔리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음식물 반입 금지? 그럼 점심은?”
“초등학생일 때는 오전에 끝났고요. 중고등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주는 도시락 먹었어요.”
“헐. 진짜?”
그렇다고 대답하는 태주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박준까지 놀란 눈으로 봤다. 그는 그런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지 못한 듯 운동장, 정확히는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곳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도시락에 과자, 과일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집에서 준비해 온 음식이 저렇게 많은데, 사연 신청자는 무슨 생각으로 푸드트럭의 방문을 신청한 건지….
태주가 한 손님이 없을 거라는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사이사이 아이 손을 잡고 방문하는 손님이 있었다. 생각보다 분식을 사 먹는 사람들 숫자가 좀 됐다. 떡볶이, 어묵, 튀김 가리지 않고 전부 잘 팔렸다.
“와! 신기하네요. 예상보다 음식이 잘 팔려요.”
“그러게. 일찍 온 게 신의 한 수인가 보다. 점심 전이라 그런가 봐.”
“그래도 솔직히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야.”
“그러게요.”
진혁과 태주가 떠드는 사이에 한주원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의 말대로 솔직히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이 백 명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푸드트럭에서 일하는 사람만 네 명이었다. 아무리 봐도 수지에 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청산 초등학교의 운동회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큰 공을 서너 명의 아이들이 담요로 옮기는 경기나, 2인 기차 릴레이는 경쟁보다 같이 힘을 합치는 게 목표인 것 같았다.
물론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색 판 뒤집기 같은 경기는 확실히 승패가 나뉘는 경기였다.
-구름 천 다리 건너기를 도와주실 분은 운동장으로 나와 주세요. 어른 20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형들 우리 저기 나갈까요?”
“어디? 지금 하는 경기.”
“네.”
“흐음. 좋아. 그렇게 하자.”
구름 천 다리 건너기는 어른이 긴 천을 들고 있으면 그 천 위로 아이들이 지나가는 릴레이 경기였다. 태주와 일행은 둘씩 나눠서 게임에 참가하기로 했다. 손님도 많지 않은 푸드트럭을 지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운동회에 참석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어르신들 천을 너무 높게 드시면 아이들이 다칠 수 있어요.”
“네.”
“무서우면 내려와도 되니까 다들 조심해서 건너자.”
“네!”
-삑!
주의 사항을 알려 준 선생님의 신호를 시작으로 첫 번째 주자가 천 위에 올랐다. 출렁출렁, 아이들이 천 위를 지날 때마다 구름 천이 트램펄린처럼 움직였다. 천을 쥐고 있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지나가기 편하게 힘을 주어 천을 당겼다.
“하하하.”
“엄마!”
“꺄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천 위를 지나가는 아이들이 내는 즐거운 비명이 귀를 간지럽혔다. 맞은편에서 천을 쥐고 있는 박준이나 다른 사람들도 즐거운지 웃으면서 아이들을 응원했다. 아이들이 워낙 적어서일까, 전부 통과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진혁과 한주원 편의 아이들이 조금 더 빨랐다. 승리한 진혁은 태주와 박준을 향해, 역시 연륜은 못 당하겠지 라며 얄밉게 약을 올렸다. 태주가 힘준 주먹을 들어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구니 장대 들기를 도와주실 네 분 운동장으로 나와 주세요.
“여기요. 여기 네 명이요.”
다음 게임의 도우미를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자, 태주가 바로 손을 들었다. 박준의 팔을 잡고 공을 담을 바구니 장대를 들러 가는 태주의 눈이 승리욕으로 활활 타올랐다.
태주와 박준이 아이들이 던지는 공 세례 속에서 잘 버티고 있을 때였다. 진혁이 바구니 장대를 한주원에게 맡기고 방해하러 다가왔다. 진혁은 공을 피해 고개를 숙인 태주의 뒤로 몰래 다가갔다. 그리고 맞은편의 박준이 태주에게 경고하기 전에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아하하하. 아이. 형님!”
“하하하. 이래도 장대 안 놓지.”
“으하하. 아우. 진짜!”
간지러움에 장대를 놓친 태주의 눈에 불이 붙었다. 태주는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던 공을 주워 힘차게 진혁에게 던졌다. 진혁 역시 그에 질세라 공을 주워 던지기 시작했다. 둘의 공 싸움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이들도 상대편을 향해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삑!
“두 분 옐로우 볼입니다.”
“킥킥.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와하하하!”
사회를 맡은 선생님의 경고에 두 사람은 사과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바닥에 구르는 색색의 고무공 중 노란색 공을 들고 옐로우 볼이라고 외치는 선생님이 재밌어서였다.
이후로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네 사람은 도우미를 자처했다. 장애물 경주에서 훌라후프와 터널을 잡아 주기도 하고, 블록 쌓기 게임의 블록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꽃미남 포차라는 예능의 취지와는 많이 벗어난 것 같았지만, 네 명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청산 초등학교 운동회를 즐겼다.
“오랜만에 재밌었다.”
“저도요. 진짜 재밌네요.”
“그런데 우리 이러고 있어도 되나?”
“네?”
“우리 떡볶이 거의 못 팔았는데.”
초반에 몇몇 손님에게 팔고 그 뒤엔 장사는 나 몰라라 하고 운동회에 참가했다. 덕분에 준비해 놓은 음식들이 투명한 보관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음. 이렇게 할까요?”
“어떻게?”
“아이들이요. 우승 팀이 스탬프를 받았잖아요. 스템프를 돈처럼 사용해서 간식을 사게 하는 건 어때요?”
“오! 그거 괜찮네. 스템프 하나에 떡볶이 1인분, 이렇게 하자는 거지?”
“네. 그러면 다들 편하게 와서 먹을 것 같아요. 스탬프 없는 친구한테 많은 친구가 사 줄 수도 있고요.”
진혁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태주의 의견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해서 받은 스템프로 간식을 사서 친구나 가족에게 나눠 주는 것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출연자 넷의 의견은 바로 책임자인 PD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녀의 사인을 받은 작가들이 빠르게 메뉴판을 고쳐 주었다. 태주가 스템프 하나에 음식 1인분이라고 고쳐 쓴 메뉴판을 푸드트럭 앞에 세우는 사이, 한주원이 행사를 진행하는 MC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여러분 떡볶이 좋아해요?
“네!”
-저쪽에 푸드트럭 보이죠?
“네.”
-푸드트럭에서 스템프를 떡볶이나 튀김으로 바꿀 수 있어요.
“와아!”
MC 선생님의 안내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손님들이 푸드트럭에 찾아왔다. 친구랑 둘이 온 손님도 있었고,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온 손님도 있었다.
“엄마. 내가 떡볶이 사 줄게.”
“네가?”
“응. 나 스템프 두 개야.”
“어머나. 그럼 오늘은 우리 아들이 사 주는 떡볶이를 먹어 볼까?”
“이히히. 아저씨 떡볶이 두 개 주세요.”
진혁은 스탬프가 찍힌 이름표를 당당하게 내민 아이의 주문대로 떡볶이를 담았다. 앞니 빠진 얼굴로 웃으며 아저씨를 외치는 바람에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서비스로 튀김도 넣어 주었다.
-아아! 안내 말씀드립니다. 하얀 고양이하고 갈색 강아지 주인은 진행석으로 와 주십시오. 하얀 고양이 태산이하고 갈색 강아지, 밤이? 주인은 행사 진행석으로 와 주십시오.
“어?”
“태산이랑 밤이?”
“우와! 토끼다.”
“어? 토순이랑 토랑이다.”
“하양이도 나왔어. 어떻게 나왔지?”
떡볶이를 담던 진혁과 그릇을 정리하던 태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즉시 두 녀석을 잠시 맡겨 두었던 자신들의 매니저를 돌아봤다. 그들은 난감한 얼굴을 한 채 빈손을 들어 보였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하얀 닭과 낮은 관목 아래로 숨는 토끼들을 풀어 준 범인은 아무래도 두 녀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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