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97
196. 웨이민 >
태주는 전역일에 견우를 만난 후, 시간 내서 미나를 만났다. 영화 촬영 중이라서 바쁜 것을 알고 그가 거절하려 했지만, 태주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미나를 막을 수 없었다.
확인 결과는 머리가 조금 짧은 것 빼고는 입대 전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 피부 상태나 몸 상태는 입대 전보다 더 좋았다. 전역 후 공백기 없이 바로 복귀작을 찍게 될 거란 걸 알고 그 나름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넌 혼자서 무슨 휴가라도 다녀온 것 같다. 손댈 데가 없어. 관리는 어떻게 했어?”
“예전하고 같아요. 미용에 좋은 크림 꾸준히 바르고 가끔 팩 하고.”
“이놈의 이기적인 유전자.”
“하하하.”
농담처럼 말했지만, 미나의 말은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연예인은 남녀 무관하게 관리에 힘을 쏟는다. 남자 배우 역시 마찬가지로 작품을 위해서 살인적인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하곤 한다. 물론 그새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자신의 배우와는 관계없는 얘기였다.
“여주는 누가 맡기로 했어?”
“임민주 선배가 맡을 것 같아요.”
“임민주? 임민주 지금 서른하나 아니야?”
“서른둘이요.”
“스물둘 여대생 역인데….”
“동안이시잖아요.”
임민주가 동안이긴 하지만 태주와 비교하긴 힘들었다. 태주는 그녀가 처음 맡았던 20살 때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태도나 말투가 또래보다 어른스러워서 티가 나지 않지만, 밝은색으로 염색하고 눈썹 정리 정도만 해도 십 대로 보일 정도였다.
“넌 진짜 혼자서 뭐 좋은 거 먹은 것 같아. 네가 슈트를 자주 입어서 다들 나이보다 많게 보는데, 솔직히 동안은 네가 최고다.”
“하하하. 누나도 과일 많이 드세요.”
“맞다. 너 없으니까 과일 챙겨 먹기 힘들더라. 사 오는 건 맛도 없고. 진짜 어디서 파는지 알았으면 바로 사러 갔을 거야.”
“희라는 무지하게 사랑스러운 요정이 관리하는 정원에서 나는 과일이에요.”
“과수원이겠지. 정원이 뭐니? 그리고 요정? 호호호.”
태주는 미나의 웃는 모습에 그저 빙그레 마주 웃었다. 아마 미나는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정원의 존재는 믿기 힘들었다.
“희, 죠아요.”
“하하하. 희도 산이 좋아해.”
“꺄하.”
“형도 산이를 많이 좋아해. 쿠첼도 호도 미나 누나도 매니저님도 우리 산이를 좋아해.”
“앙. 사니 부끄더워.”
“하하하. 산이 부끄러워?”
지난 이 년간 태주의 외모에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과 다르게 태산이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호랑이 모습일 때는 그대로였지만, 아이 모습일 때는 개월 수에 맞게 자란 상태였다. 말도 많이 늘어서 가끔 주변을 놀라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럽다는 단어를 언제 배웠는지 너무 적절한 상황에 사용해서 그도 놀랄 정도였다. 여전히 혀 짧은 발음이었지만, 어느새 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다양해졌다.
“산이 진짜 많이 컸네.”
“이젠 한글도 읽을 수 있어요. 쉬운 동화책은 혼자서도 읽어요.”
“어유. 팔불출. 넌 어쩜 그렇게 한결같니.”
“크흠. 산이가 대견하잖아요.”
팔불출이라고 놀렸지만, 미나는 여전히 다정한 둘의 모습이 기꺼웠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배동석의 촬영 현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더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꽤 아쉬웠다.
드라마 ‘고정하세요, 전하!’의 촬영까지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 같이 내려오면서 그녀는 태주와 다시 같이 일하게 될 한 달 뒤를 기대했다.
*
태주가 전역해서 복귀작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순식간에 업계에 퍼졌다.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좋았고 복귀작으로 거론되는 작품 역시 초기대작이었다. 덕분에 태주를 섭외하기 위한 요청이 물밀 듯이 회사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 배우님은 광고가 정말 많이 들어온단 말이지. 예능 섭외도 마찬가지고.”
우 팀장은 직원이 정리해서 건넨 섭외 목록에서 쓸 만한 게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녀는 그 중 광고 섭외 목록은 그대로 내려놓았다.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따라서 광고 단가도 다시 책정될 테니 굳이 급하게 찍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광고 섭외 목록 외에는 대부분 예능 섭외 요청이었다. 그 요청 중에는 한창 유행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있었고 몇 시즌 째 인기를 유지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태주의 복귀를 알리고 드라마 ‘고정하세요, 전하!’의 홍보를 위해서 예능 나들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녀는 그런 프로그램 중 촬영 시간이 짧고 진행자의 평이 좋은 것을 몇 개 뽑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송재성 배우님. 사무실에 어쩐 일이세요?”
“대본 들어온 것 좀 확인하려고요.”
“박도형 매니저가 어제 받아 갔는데요. 혹시 전달 못 받으셨어요?”
“아니요. 받긴 받았는데….”
우 팀장은 갑자기 사무실에 나타나 우물쭈물하면서 버티는 송재성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어제 오전에 송재성의 담당 매니저 박도형이 회사로 들어온 대본을 모두 가지고 갔었다. 어제 가져간 양도 꽤 되어서 하룻밤 새에 전부 읽기는 무리였다.
“그거 예능 섭외 목록이에요?”
“네.”
“나도 볼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건 이태주 배우님한테 들어온 섭외라서요.”
“…예능. 나한테 들어온 예능 섭외는요?”
“음. 당장은 없습니다.”
우 팀장의 대답을 들은 송재성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누가 자신에게 예능 섭외가 들어오지 않는 걸 모른단 말인가. 그걸 알면서도 묻는 건, 바라는 것이 있어서였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우 팀장에 짜증이 났다.
송재성은 우 팀장이 이태주가 출연하는 프로그램, 예능에든 드라마에든 같이 출연하게 주선해 주겠다고 말하길 바랐다. 그게 그가 일도 없이 회사에 나온 이유였다.
“이태주가 들어가는 드라마는 어때요?”
“급하게 준비하는 거에 비해 별 탈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섭외도 끝났고요.”
“…섭외가 끝났어요?”
“네. 섭외 리스트에 올렸던 배우들 스케줄을 꾸준히 확인했더라고요. 그 배우들 대부분을 섭외했어요.”
일 처리가 꽤 만족스러웠던지 우 팀장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송재성은 그 미소를 보자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좋은 기회가 있으면 소속 배우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일도 제대로 못 한 주제에 웃는 게 기분 나빴다. 그는 그 길로 우 팀장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더 있다가는 뭐라고 한 소리 할지도 몰라서였다.
“….”
“송 배우님? 대본….”
인사도 없이 돌아 나가는 송재성의 모습에 우 팀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누가 볼세라 곧바로 인상을 풀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이 좋지 않은 송재성이었다. 괜한 오해를 사게 둘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잠시 송재성의 방문 이유를 고민해 봤지만, 그가 찾아온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영화만 고집하는 송재성이 예능 출연을 바라고 왔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본인에게 예능 섭외가 들어오지 않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손익 분기점도 못 넘긴 영화 두 편에 출연한 배우를 섭외할 예능은 없지. 그것도 주연도 아닌 조연을.’
우 팀장은 송재성이 정말로 대본을 확인하러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박도형 매니저가 영화 대본을 챙길 때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어서 왔을 텐데, 말도 없이 가 버린 게 의아했다.
“다음 영화는 괜찮은 거로 고르셔야 할 텐데….”
트리즈에선 아직 두 작품밖에 찍지 않아서 속단하긴 일렀지만, 송재성은 작품 보는 눈이 별로였다. 원래 아이돌을 맡던 매니저라 그런지 그를 담당하는 매니저 박도형도 안목이 좋지 않았다.
우 팀장은 다음 작품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이후 송재성의 작품 선택을 회사에서 하는 방향으로 설득해 보기로 했다.
우 팀장에게서 마음에 드는 반응을 얻어 내지 못한 송재성은 그 길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매니저 박도형이 기다리는 차에 탄 그는 그제야 제 성질을 드러냈다.
-퍽퍽퍽!
“젠장! 젠장! 재수 없는 년.”
“재성아, 진정해. 주차장에도 보는 눈 있다.”
“에이x! 출발해, 형.”
“그래.”
두 사람이 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박도형은 운전하는 한편 뒷좌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성질을 내는 송재성을 백미러로 확인했다. 그는 최근 송재성의 평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 방문을 말렸는데, 굳이 올라가서 기분만 상해 온 그가 답답했다.
“괜찮냐?”
“후우. 괜찮아.”
“드라마 대본은? 형이 내일 받아다 줄까?”
“됐어. 영화 찍을 거야.”
“그래.”
이태주 드라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보고 온다더니, 결과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박도형은 송재성이 다시 성질을 내지 않게 그 주제를 더 꺼내지 않았다.
“형. 아는 연예부 기자 있지?”
“기자? 몇 명 알지.”
“그럼 기사 하나만 내게 해 줘.”
“뭐? 기사? 무슨 기사? 아니. 누구 기사?”
“이태주. 이태주 기사 하나만 내 줘.”
박도형은 송재성의 말에 놀라서 차를 급하게 도로변으로 붙였다. 송재성이 이태주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짓 기사를 내는 것은 가볍게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소송에 걸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지 마라. 이태주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
“아, 왜? 왜 형까지 이태주 편을 들어? 형이 내 매니저지 이태주 매니저야?”
“그거랑 상관없어. 이건 너무 위험해. 회사 사람들이 기사 출처 하나 못 알아내겠어?”
“사실을 제보하는 건데 뭐가 문제야?”
“사실? 뭔데?”
송재성은 한 달 전쯤 봤던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복무 중 말년 휴가를 나온 이태주가 제작사 대표의 섭외로 드라마 출연 계약을 한 일이었다.
“아!”
“복무 중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되잖아. 누구는 몰라서 일을 안 해?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서 못 하는 거지.”
“이번에 들어가는 드라마?”
“어. .”
“음. 이건 그럼 형이 알아서 할게.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나서는 건 좀 아니다. 기자랑 술 한번 먹지 뭐. 술자리에선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기도 하니까. 취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고마워, 형. 역시 형밖에 없어.”
송재성은 좀 전까지 짜증을 내던 게 거짓인 양 활짝 웃었다. 박도형 매니저는 그 모습에 만족했다. 그는 이태주의 기사 건을 송재성에게 말한 대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송재성이 회사에서 받는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거짓을 알리는 것도 아니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
쿠첼루스는 오늘도 쉼 없이 울리는 알람에 골치가 아팠다. 지금은 그가 알기론 수업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대체 무슨 수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지….
-쿠첼. 오늘 기사 봤어요. 태주 오빠 복귀작 드라마 맞아요?
-밥차는 언제부터 보낼 수 있어요?
-오빠 의상은 무슨 색이에요?
-지방에서 촬영해요? 그럼 어디에서 자요? 호텔?
쿠첼루스는 이미 여러 번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했다. 소녀의 SNS에 DM을 보냈다가 지금 같은 상황을 맞을 줄 예상했다면, 상대가 어리건 부자건 상관하지 않고 고소했을 것이다. 그는 한숨을 삼키며 빠른 속도로 자판을 눌렀다.
-웨이민. 서포트는 소속사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촬영 장소나 숙소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선물 보내도 돼요? 군대 졸업 축하 선물.
-졸업이 아니고 제대입니다. 선물은 아마 받지 않으실 겁니다.
-왜요? 선물하고 싶은데. 그러면 산이 선물 보내도 돼요? 초콜릿 사 왔는데.
쿠첼루스는 흥신소를 고용한 사람이 그녀의 경호를 맡은 사람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경호 책임자는 그녀에게 정보의 대가로 상당한 금전을 받고 있었다. 태주의 소장품을 훔치고 라디오 방송 게시판에 글을 도배한 것도 그의 소행이었다.
그걸 알아내자마자 DM을 보냈었다. 웨이민이 쿠첼루스의 DM을 받은 후 바로 흥신소의 움직임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튿날 오후 전원 주택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같이 찾아왔다. 웨이민은 사과할 용기가 부족해서 어머니랑 같이 왔다고 설명했었다.
사실 웨이민도 태주의 책을 얻은 일이나 사적인 영상을 얻은 일이 불법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태주의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경호원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쿠첼루스의 메시지를 받고 정신을 차렸다.
‘태주 씨는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일상을 해치는 끔찍한 스토커로 기억할 겁니다.’
쿠첼루스는 웨이민에게 보내는 DM을 솔직하게 적었었다. 스토킹은 범죄고 태주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알렸었다.
그 메시지를 보낸 후에 웨이민의 스토킹이 멈춘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녀는 태주에게 직접 사과하겠다며 쿠첼루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주가 복무 중이라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웨이민은 보충역 자격도 있고 기사도 났는데, 왜 계속 군대에 있냐고 따졌었다.
“예술·체육요원 기사도 입대 취소를 바라고 웨이민 냈었지.”
쿠첼루스에게 정체를 들킨 이후로 이 골치 아픈 아가씨는 더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드러낸 그녀는 온갖 이유를 대며 선물 공세를 해 댔다. 특히 태산이에게 보내는 선물이 많았다. 그녀는 태주가 태산이를 아끼는 걸 알고 장난감과 간식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고 있었다.
-산이 초콜릿 보냈어요.
-웨이민. 선물은 그만 보내십시오.
-유기농 초콜릿이래요.
-유기농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 수업 들어야 해요. 메시지는 나중에 확인할게요.
한 상자에 수백만 원 하는 초콜릿이 문제가 아니었다. 초콜릿과 같이 보내는 장난감으로 이미 태산이 방이 가득했다. 그녀가 보내는 것은 보석이 박힌 고가의 장난감이라 처리하기도 난감했다.
쿠첼루스는 웨이민의 막무가내에 이마를 짚었다. 그는 아직 웨이민에 관해 태주에게 알리지 않았다. 스토커였던 웨이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었다. 스토커 건은 스토커의 정체를 알아내서 경고하자, 바로 그만뒀다고만 알렸다.
“후우. 이번엔 또 뭘 얼마나 보낸 건지.”
쿠첼루스는 그날 웨이민에게 DM을 보낸 일이 정말 후회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