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3
273. 영화 연기 >
태주 일행이 분장을 마치고 수조로 왔을 때는 스태프 몇 명이 어선 위에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어선이 진짜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 위에서 움직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CG 작업을 쉽게 할 수 있게 수조는 사면과 바닥이 모두 녹색이었다. 어선이 있는 녹색 수조의 위로도 그린 스크린 벽이 세워져 있었고, 어선의 아래쪽에도 그린 스크린이 깔려 있었다. 배경인 하시마와 수면 장면 CG를 입히기 위한 준비였다.
“태주 씨 이쪽으로 오세요.”
“네.”
수다를 떨 때는 보이지 않던 이제영 감독이 그새 도착해서 어선의 주변을 돌며 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태주가 수조로 온 걸 보자 바로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오늘 어선에 올라서 촬영할 당사자의 확인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스태프들 내려오면 진권 씨랑 한번 올라가 보세요. 움직이기 괜찮은지 먼저 확인한 뒤에 리허설을 하죠.”
“네.”
“이번 촬영은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도 있어요. 혹시라도 체력에 부치거나,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얘기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순간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이제영 감독의 당부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영화는 과거가 배경이라서 그런지 CG가 굉장히 많이 들어갔다. 오늘부터 진행할 수중 촬영뿐 아니라, 항구와 일본의 거리, 하시마 탄광 등의 배경이 모두 CG였다.
그런 CG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CG 소스 촬영을 충분히 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장면도 여러 번 찍어야 했다. 연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CG의 완성도를 위한 소스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유로 CG 배경이 들어가는 장면에선 촬영 속도가 느려졌다. 평소 촬영 속도나 결정이 빠른 이제영 감독도 어쩔 수 없었다. 찍고 또 찍을 수밖에 없었다.
“확인 끝났으면 이만 내려오세요. 이상 없으면 배우들이 올라가서 확인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상한 점 느낀 사람?”
“저요! 파도 맞을 때 선수가 너무 들리는 감이 있었어요. 잘못하면 구르겠어요.”
“오케이. 선수, 접수했어. 다른 곳은?”
“저희 쪽은 괜찮았어요.”
태주가 어선에 올라가서 확인한 것은 어진권과 그의 스태프들이 오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스태프들은 모형 어선의 선수가 들리는 것을 조정한 뒤에도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안전을 위한 작업이라는 걸 잘 알아서 늦어지는 확인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
목적지가 항구에서 2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고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본 해안을 감시하는 해군은 부산 쪽으로, 일본 해안을 빠져나가는 항로를 주로 감시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더라도 전등 하나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배를 모는 일은 경험 많은 뱃사람한테도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손발이 맞는 동료도 없는 상황에선 더 그랬다.
승선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좀 나았겠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위험하고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이라, 배에 탄 인원은 겨우 둘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이 탄 사람은 뱃일엔 문외한에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었다.
“숙여.”
“해군입니까?”
“쉿!”
어선의 시동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숙이라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뱃고물에 몸을 눕히듯 붙였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파도 소리 사이로 모터음이 들려 왔다.
태생부터 뱃사람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때는 믿지 않았었는데, 그 말이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그에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다른 배를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기척을 죽이게 할 정도로 노련했다.
“휴우. 십 년 감수했네. 일어나.”
“으윽!”
“쯧! 그냥 앉아 있어.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 거.”
“미안합니다.”
“됐어. 애초 바라지도 않았어. 주판이나 튕기던 양반한테 뭘 바라.”
타박을 늘어놓던 사람이 순식간에 고물로 건너와 위장포를 그의 위에 덮어 줬다. 하는 말은 거칠었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실제로 말처럼 거친 사람이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훔치는 걸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원폭으로 항구가 아수라장 같은 상태였다고 해도 말이다.
머리까지 뒤집어쓴 어두운 색깔의 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생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찾아 헤맨 게 일 년 반이 넘었다. 겨우 알아낸 소재지가 지옥 섬이라 불리는 끔찍한 곳이라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이제 끝이었다. 이제 곧이었다. 곧, 동생을 찾을 수 있었다.
-꾸우욱!
긴장한 것일까. 손안에서 짠내와 비린내가 밴 천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그는 하얗게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쥐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이런 곳에 낭비할 힘은 없었다.
혹시라도 지옥 섬에서 동생을 찾지 못하면 그 흔적이라도 찾아 섬을 뒤져야 했다.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쉬어 둬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등을 기댔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뱃머리 앞 어둠에 잠긴 먼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케이, 컷!
어려운 장면이 아니라서인지, 이제영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바로 나왔다. 잠시 스태프가 어선을 정리하는 걸 기다렸다가, 같은 장면을 몇 번 더 반복해서 촬영했다. 그렇게 한참 촬영한 뒤에야 태주와 어진권은 어선 모형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 뒤에는 섬에 남겨진 사람들, 나가사키 항구로 귀국선을 타러 가지 못한 사람들을 태우고 섬을 탈출하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 준비가 끝나기를 태주와 어진권은 스튜디오 한 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찍는 게 일 년 반 만에 동생이 있는 데를 알아내서 가는 장면이지?”
“네.”
“당시에도 출입국 기록이 있었을 텐데, 너무 오래 걸린…. 아니다. 있어도 보여 주지도 않았겠지. 일본에서 파기한 기록도 많고.”
“맞아요. 일본에서 없애거나 공개하지 않는 기록이 태반이에요. 그런데 영화에서 성구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 밀항해서 기록을 찾지 못한 거예요.”
“밀항?”
어진권이 영화 촬영 준비를 잘해 오긴 했지만, 그 방향성은 몸을 만들고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등의 외적인 쪽이었다. 카메오로 출연하는 그이니 체중 조절에 주어진 대본을 숙지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성실한 태도였다. 영화의 시대 배경을 잘 몰라도 흠은 아니었다.
“당시에 몇몇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먼저 노동력을 확보할 욕심에 강제 징용자들을 밀항시켰어요. 일본 본토에 노동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거든요. 성구도 그런 기업이 밀항을 시켜서 오랫동안 찾지 못한 거예요. 공식적인 기록이 하나도 없어서요.”
“쓰읍! 아! 욕 나오려고 하네.”
“저도요.”
“후우!”
배경을 설명하는 태주의 입이 썼다. 과장이 섞인 영화 내용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엄연한 과거의 일이라서인지 그게 쉽지 않았다.
어선에 시선을 주고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얼굴에 감추지 못한 답답한 심정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기다린 뒤에 재개된 촬영 역시 별 탈 없이 마칠 수 있었다. 주연인 태주와 카메오인 어진권은 모두 경험 많은 배우였다. 대기 시간이 길었지만, 촬영에 들어가자 지전과 마찬가지의 집중력을 보여 주었다.
하시마를 떠나길 바라서, 태워 달라고 부탁하는 조선인 징용자 역할의 단역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모형 어선이 설치된 수조를 잠시 신기해했지만, 그들도 곧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태주, 너 데뷔작도 이제영 감독님이랑 했었지?”
“네. 선율이요.”
“그래서 그런가….”
“왜요, 형? 혹시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아니. 그런 거는 아니야.”
촬영이 끝난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어진권이 뜬금없이 태주의 데뷔작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그는 관찰력이 별로인 사람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요?”
“별거 아니야. 그냥 네가 연길 잘해서….”
“네? 감사합니다?”
“푸흡! 됐어. 신경 쓰지 마. 밥 먹자.”
“네.”
어진권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긴 했지만, 실제론 웃을 정도로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만족스럽게 촬영을 마쳤으면 그것으로 끝내야 했는데, 괜한 질시에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는 그런 자신을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속으로 연신 탓했다. 그렇게 잠시 탓하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질시. 질투와 시기. 눈앞의 태주에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이렇게 답답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어진권은 오늘 촬영장에서 본 태주의 연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빛나던 재능에 질투를 참기 힘들었다.
‘드라마를 찍을 때 하고는 사람이 달라 보였어. 그때도 분명히 무서울 정도의 아우라를 보여 줬었지만, 오늘 같은 모습은 아니었어.’
태주는 드라마 를 찍을 때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연기를 잘했었다. 작가가 모델로 삼아서 대본을 썼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렇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이었다.
게다가 초반부는 다른 드라마에 동시 출연하면서 찍었는데도, 허술하게 연기한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드라마를 찍을 때도 그 정도로 꼼꼼하게 연기했던 태주였지만, 영화 현장에서 본 그는 그 이상이었다.
이제영 감독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듯, 태주는 촬영하는 내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 과장된 연극적 표현이나 동작도 망설이지 않고 시도하는 등, 드라마 현장에선 보여 주지 않았던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었다.
특히 오후 촬영에서 경험이 적은 단역들을 지휘하듯 이끌었던 장면에선 마치 그가 유일한 지배자같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아마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처럼 태주를 질시했을 것이다.
“영화 참 어렵네.”
“….”
어진권이 나지막하게 뱉은 말을 태주는 못 들은 척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속사 운이 좋지 않은 그는 지금도 마음대로 작품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소속사를 전전하던 동안 그는 좋게 말하면 다양한 역할을, 나쁘게 말하면 대본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출연해야 했다.
그렇게 필모그래피가엉망이 된 뒤로 어진권에게 영화 대본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그에게 가는 대본조차도 업계를 한 바퀴 돈 뒤에 들어가는 매력이 없는 것이거나, 조건이 나쁜 것들이었다.
‘현재 상태 그대로 영화에 진권 형을 써 줄 사람을 찾기는 힘들 거야.’
다른 걸 다 떠나서 현재의 그의 연기 스타일은 영화에 맞지 않았다. 같이 촬영한 것은 겨우 하루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의 연기는 새로운 면이 없었다. 덕분에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지만, 그게 당사자에게 무조건 좋다 말하기는 어려웠다.
어진권은 너무 똑똑했다. 아니, 지나치게 노련했다. 그는 시청자가 바라는 그의 모습과 이미지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화에까지 끌어오고 있었다. 그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말뿐이었다. 여전히 도전을 망설이고 있었다.
“차기작은 정했어?”
“아직 안 정했어요. 드라마 시즌 2 일정도 잡혀 있어서요. 여유가 좀 있거든요.”
“들었어. 좀비물이라며?”
“후우. 네.”
“…고생했다.”
공포물에 약한 것은 어진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라마 를 찍을 때 가끔 출연하는 귀신 역할 배우가 무서워서 피해 다닌 것은 그도 같았었다. 예전 상황을 떠올렸는지, 어진권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화제 역시 영화에서 드라마로 옮겨갔다.
자칫 불편할 뻔했던 저녁 식사를 무사히 마친 태주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였다. 촬영이 늦게 끝난 것도 아닌데, 스튜디오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거리라서 도착이 너무 늦고 말았다.
“경기 북부 지역에 집을 하나 얻어야 하나?”
“예?”
“전의 드라마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그렇고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이동해야 하니까.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것 같아.”
“확실히 이동 거리가 먼 편입니다.”
“그렇지? 문제는 이 집이 꽤 마음에 든다는 거지. 쿠첼이랑 태산이도 여길 좋아하고.”
주변 환경도 전원주택 자체도 모두 마음에 들었는데, 촬영장에서 먼 게 문제였다. 자신을 경호하는 2호한테 운전까지 맡기게 된 일도 미안했다. 견우가 바쁠 때 몇 번 대신하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견우가 바빠서 거의 2호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저도 이곳이 마음에 듭니다.”
“그래?”
“네.”
“그럼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전원주택은 주변에 다른 시설이 없어서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시야가 미치는 곳에 높은 건물도 없어서 방비가 쉬웠다. 게다가 이곳은 쿠첼루스가 설치한 방어 마법진과 인식 교란 마법진 등이 작동하는 곳이라, 다른 곳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안전했다.
-벅벅벅!
“냐아앙!”
“에효. 들어가자.”
“네.”
두 사람이 대화 사이로 성질 급한 호랑이의 문 긁는 소리가 섞였다. 얘기하느라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간을 끌었더니, 안에서 들어오라고 난리였다. 이 이상 기다리게 했다가는 삐쳐서 귀여운 장난이 아닌, 짓궂은 장난을 칠지도 몰랐다.
“다녀왔습니다.”
“냥!”
“어서 오십시오, 태주 씨.”
“읏차! 갑자기 뛰면 어떡해! 조심해야지.”
“냐아앙!”
문을 열자마자 품으로 뛰어든 태산이를 겨우 받아안은 태주의 놀란 목소리가 전원주택 안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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