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1
80. 짧은 휴가 >
다시 시작된 김지혁의 욕설에 운석은 바로 문을 닫고 그 앞을 막아섰다. 철문에 막혀 욕하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남자, 태주는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용건이 있으십니까?”
“비상계단에 김지혁 배우예요?”
“맞나 보네요.”
대답하지 않는 운석을 보고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운석의 뒷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따라왔지만, 사실 그도 자신이 그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운석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도 묻고 싶은 얘기도 많았지만, 어느 것도 불가능했다. 지금 그와 자신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태주는 회귀 후 가장 씁쓸한 순간을 뽑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뽑을 것 같았다. 십수 년간 믿고 의지하던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이 가장 씁쓸한 순간이었다.
그의 눈에 운석이 난감해하는 게 보였다. 자신과 문 안쪽의 김지혁이 마주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이 이상 그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다고요, 형. 에효. 잔걱정 많은 건 이때도 같았구나.’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생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김지혁을 위한 건 아니었다. 그저 운석이 곤란해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빌어먹을 김지혁은 어떻게 T&T에 들어간 거야? 거기가 작은 회사지만 아무나 뽑진 않았는데.’
정원을 얻은 후로 느끼지 못했던 스트레스로 어깨가 굳는 것 같았다.
김지혁이 자신에게 아직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을 건드리면 이번엔 참지 않을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엔 운석도 포함해서였다.
복도를 돌아 나오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견우가 보였다. 자신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태주는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태주 씨. 여기 계셨군요.”
“죄송해요. 많이 찾으셨어요?”
“아닙니다. 가시죠.”
견우가 돌아가는 밴 안에서 이영신 배우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태주의 예상대로의 얘기였다.
“기사가 떴습니다.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많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자 임신시키고 버렸대요? 아니면 학생 때 왕따를 시켰다거나.”
“…기사 보셨습니까?”
“아니요.”
견우가 백미러로 태주의 얼굴을 살폈다. 태주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처음 기사 나온 곳이 OMNews 아닌가요?”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요. 김지혁 그 인간한테 그렇게 당해봐서 알죠. 괜히 운석이 형이 해커를 찾아줬던 게 아니다. 끊임없이 나오는 루머와 기사의 유포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기사가 나오는 것은 김지혁이 태주를 괴롭혔던 방법 중 한 가지였다. 만약 이영신이 하차하지 않았다면, 촬영장에서도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예전에 태주가 이렇게 당했을 때, 그는 감독과 작가의 지지를 받아서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촬영이 쉽지는 않았다. 김지혁의 괴롭힘은 촬영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태주는 갑자기 번뜩 드는 생각에 견우를 째려봤다.
따가운 눈길을 느꼈는지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매니저님.’
예전 기억이 떠올라 잠시 견우를 째려봤던 태주는 속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당시 김지혁의 매니저였던 견우를 잠깐 원망했지만, 연예인이 친 사고를 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김지혁과 그 지인 몇몇을 조사했던 내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OMNews의 기자 역시 그 조사 보고서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연예인의 약점을 잡아서 돈을 뜯어내거나, 다른 대가를 강요하던 전형적인 기레기였다.
태주에 관한 지속적인 악성 보도에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 절차를 밟기 시작하자, 부랴부랴 정정기사 한 줄을 내보냈던 인간이었다. 운석 형이 그를 만나러 몇 번이나 사무실로 찾아갔었는지 모른다.
‘허 참. 이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다 기억나네.’
가끔 운석이 형의 과보호가 시작된 게 이 일이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마 맞을 것이다.
태주와의 촬영 후로도 김지혁이 촬영하는 현장에는 항상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나왔었다. 그는 주로 한창 뜨는 신인 혹은 외모나 재주로 기대를 받는 이들을 괴롭혔다.
태주의 경우는 연출진의 지지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영신 배우처럼 교체되거나 현장에서 괄시를 당했었다.
‘아까 욕하던 꼴을 보니 성질은 그대로인가 보네. 이번 현장에서 그 꼴을 다시 볼 순 없지.’
*
태주는 연우와 태우, 쿠첼루스와 태산이를 태우고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낼 생각이었다. 새벽에 출발해서 인지 오전 중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 이 근처에 갈대숲 공원이 있대.”
“그래?”
“킥. 좀 일어나 봐. 형이랑 태산이랑 둘이 뭐하는 거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물침대에 태산이와 누워서 움직일 줄 모르는 그에게 태우가 놀러 가자며 성화였다. 당일치기의 짧은 휴가지만 그것도 즐거운지 태우의 얼굴이 활짝 폈다.
“좋아. 갈대숲에서 뭘 잡을 수 있을지 가보자.”
“뭘 잡아?”
“어, 아, 하하하.”
정원에서 수집과 채집에 익숙해진 태주의 말실수였다. 멋쩍게 웃은 태주가 태산이를 안고 일어났다.
“근처에 감자 캐기 체험도 가능하대. 오후엔 감자 캐러 가자.”
“좋아. 우리 감자는 태산이가 다 캐 줄 거야. 그 치, 태산아?”
“에이. 태산이가 무슨 감자를 캐.”
“태산이 땅 파는 거 본 적 없어? 장난 아니야.”
“진짜? 태산이한테 그런 재주가 있어? 그럼 체험 농장 예약한다.”
태주에게 농사는 일상이었다. 그는 매일 정원에서 약초와 작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농장일을 예약까지 하고 가서 하는 건 꽤 신선한 일이었다. 게다가 남이 키운 작물을 수확하는 일은 그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감자 캐기 체험이 기대됐다.
주차장에서 갈대숲 공원 입구까지 거리가 꽤 멀었다. 강한 햇빛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뜨거운 볕 아래를 지나는 일행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쿨링밴드를 차고 있는 태주와 태산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늘이 보일 때마다 그 아래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진작 여름에 쓸 아이템을 챙겨주지 않은 게 후회됐다.
“쿠첼루스 씨 괜찮으세요?”
“헉헉. 괜, 괜찮습니다.”
“저희 나온 지 이제 10분 지났는데요.”
“그게 제가, 헉. 아이고.”
태주는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쿨링밴드를 벗어서 쿠첼루스에게 건넸다. 사막 왕국 출신이라 더위에 강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고3인 태우보다 체력이 약하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그게, 완드가 없어서….”
아무래도 쿠첼루스는 체력 단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날이 덥긴 했지만, 저렇게 땀을 주룩주룩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 고작 10분 정도 걸었을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그에게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를 등록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갈대숲은 넓었지만, 역시나 그늘이 별로 없었다. 군데군데 정자가 있었지만,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땡볕 아래서 산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태산이와 동생들은 개의치 않고 기운 좋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냥냐앙.”
“안 돼. 갈대숲 복잡해서 들어가면 못 나와.”
“애오오옹.”
“안 돼.”
사람 키만큼 자란 갈대가 가득한 곳이었다. 태산이가 그 속에 들어가 숨으면 절대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태산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갈대숲으로 자꾸 들어가려 했다. 아무래도 산책은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당일 예약이 가능한 농장이 있어서 다행이다.”
“응. 이거 한 사람이 3kg 까지 가져갈 수 있대.”
“우린 12kg 가져갈 수 있겠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농장으로 가자, 농장 주인아저씨가 입구에서 일행을 맞아줬다. 그는 외국인과 고양이가 섞인 일행을 보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불편하시면 저희는 구경만 하겠습니다 ”
“아니, 그게 아니고요. 걔가 태산이 맞지요?”
“네? 하하. 네, 태산이 맞아요.”
“흐흐흐. 내가 태산이 팔로워예요. 아기 때부터 봤는데.”
농장 아저씨는 태산의 팬이었다. 처음 미튜브에 영상이 올라왔을 때부터 태산이 채널 구독도 하고, 파랑새도 팔로우하고 있다며 태산이 사진이랑 사인을 부탁했다.
“발 도장 사인은 나중에 보내드릴게요. 오늘은 안 가져와서.”
“하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아저씨. 제 사인은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도 나름 배운데요.’
태주는 자신을 본체만체하는 아저씨에게 자신의 사인은 필요 없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이제는 제법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저씨의 시선은 여전히 태산이에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지 깊은 패배감이 느껴졌다.
“연우야, 여기 감자 많아.”
“진짜 많다. 우와. 여기도 많아.”
쿠첼루스는 평상에서 쉬고, 동생들은 땡볕 아래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태주가 기대했던 태산이는 감자를 캐지 않고 있었다. 그저 감자밭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다.
“태산아 감자 캐자. 여기 구덩이 좀 파줘.”
“냥.”
“착하지? 형이랑 감자 캘까?”
“냥!”
태주가 살살 꼬셔봤지만, 날카로운 소리만 들려왔다. 감자밭을 떠나지 않는 걸 보면 구덩이 파기에 흥미는 있어 보였는데, 도와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킁킁킁.’
태산은 감자밭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낯선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일행이 모여서 감자를 캐는 곳을 벗어나자 더 진하게 냄새가 났다. 태산은 그 냄새를 따라서 타박타박 걸어갔다.
감자밭을 벗어나 수풀을 헤치고 계속 냄새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쯤 가자, 나뭇가지와 돌이 뒤엉킨 곳이 나왔다.
‘킁킁.’
냄새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좁은 나무 틈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냄새를 풍기는 것이 있었다.
태주는 도와주지 않는 태산이는 내버려두고, 열심히 감자를 캤다. 정원에서 하는 것보다는 불편했지만, 하다 보니 꽤 재밌었다. 쪼그려 앉아서 신나게 호미질을 하자, 어느새 통에 감자가 가득했다. 뿌듯하게 그 모습을 보던 그가 일행을 확인했다.
쿠첼루스는 평상에서 자고 있었고, 동생들은 열심히 감자를 캐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좀 전까지 밭 가장자리에서 놀고 있던 태산이 보이지 않았다. 농장을 크게 둘러봤지만, 태산이의 하얀 털이 눈에 띄지 않았다.
“태산아.”
“형?”
“태우야, 태산이 못 봤어?”
“못 봤는데….”
마지막에 태산이를 봤던 위치로 달려가서 한 번 더 태산이를 불렀다. 멀리 있더라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을 하는 녀석인데 조용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태산아!”
“태산아! 어딨어?”
“형! 형, 저기 하얀색. 태산이.”
태우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수풀 사이로 하얀 꼬리가 슬쩍슬쩍 보였다. 태산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오는 중인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일행은 태산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태산아?”
태산이 털이 다 빠진 시커먼 강아지를 물고 왔다.
강아지는 삐쩍 말라서 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어디서 다친 건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태주가 그걸 보고 바로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강아지를 감쌌다.
“태산아, 뱉어. 형이 잡았어.”
손안의 강아지는 살아있었다. 미약하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몸이 너무 마르고 작았다. 숨소리도 아주 가늘었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
“너구리요?”
“네.”
“강아진 줄 알았는데.”
“새끼 때는 비슷하게 보여요.”
태주 일행은 태산이가 물고 온 아이가 버려진 새끼 너구리라는 사실을 들었다. 병에 걸려 약해지자 어미에게 버려진 것 같다는 얘기였다.
“개선충도 심하고, 영양실조도 심해요.”
“치료는 되죠?”
“네. 다행히 치료는 가능해요.”
강아지인 줄 알고 입양할 생각을 했던 그는 얌전히 야생동물구조관리협회에 연락하는 일에 동의했다.
개선충 감염이 심해서 격리가 필요한 데다, 영양제를 맞아야 하는 새끼 너구리의 후처리는 마음씨 좋은 수의사 선생님이 해주기로 했다.
“아까 고양이가 물고 왔다고 하셨죠?”
“네.”
“그럼 걔도 예방 차원에서 약을 먹는 게 좋아요.”
“풋. 그래요? 주세요, 약.”
한 생명을 구한 태산이가 받을 보상은 진드기약이었다.
태주는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태산이게 약을 먹였다.
“냐앙!”
“착하다, 태산이. 이거 상이야. 상.”
“냐아아아앙!”
*
새끼 너구리 구조라는 잊지 못할 일을 겪은 휴가가 끝났다. 동생들을 기차역까지 바래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견우와 미나가 숙소로 왔다.
“매니저님 누나, 쿠첼루스 씨에요.”
“헤, 헬로우?”
“킥. 한국어로 하셔도 돼요.”
서로 소개하는 자리에 웃음이 퍼졌다. 미나는 미리 얘기해주지 않은 태주를 잠시 흘겼지만, 밝은 성격답게 곧 잊어버렸다. 일행이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태산은 텐트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태산이가 지금 삐졌어요.”
“호호호. 나 같아도 삐지겠다. 맛있는 걸 좀 주지. 진드기약이 뭐니.”
“하하하.”
너구리를 구하고 받은 보상에 대해 들은 일행은 태산이의 행동을 이해했다. 착한 일을 하고 보상으로 고기도 아니고 진드기약을 받은 일은 충분히 삐질 만한 일이었다.
태주는 태산이를 편들어주는 미나에게 작은 상자를 보여줬다. 동생들을 역에 내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사 온 펫 용 케이크였다. 기특한 일을 한 태산이를 위해 일부러 애견카페에 들러 사온 것이었다.
“호호호. 너도 참. 그걸 왜 안 주고 애를 저렇게 두니.”
“하하하. 귀여워서 그랬어요. 자기 삐졌다고 알아달라고 티 내는 게 귀여워서요.”
그날 태산이는 마음에 드는 보상을 받고 태주를 용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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