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Lord Who Doesn't Want to Level Up RAW novel - Chapter 117
김정철이 테이블에 앉자 갑자기 가게에 불이 꺼졌다.
정전이라도 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주방 쪽에서 조명이 들어왔다.
“흡!”
이윽고 청년이 칼과 무를 들어 보이더니 신기한 일을 시작했다.
타타타타탁!
엄청난 손놀림으로 무를 썰기 시작하는데, 무에서 잘려 나온 것들이 허공을 날아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를 썬 당근이나 오이가 날아다닌다.
앉은 자리인지라 손놀림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꽤 신기한 일이었다.
“호오.”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아주 작은 감탄사를 내밀고는 실망해 버렸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그의 몸이 늙어 버렸다는 게 실감이 돼서.
20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요리사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꼈을 것 같다.
어쩌면 자리에서 일어나나서 트릭을 확인하려 주방으로 다가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호기심과 기력은 반비례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요리로 보여 주는 퍼포먼스이겠거니 짐작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실망이 스스로에 대한 것이라면, 두 번째 실망은 요리사에 대한 것이었다.
마지막 영업에 딱 한 명의 손님만 받는다는 글귀에 이끌려 들어오긴 했으나, 그래서 오히려 낭만을 기대했다.
자신과 요리사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 요리사는 실력보다는 퍼포먼스를 위주로 장사를 하던 이였던 것 같다.
가게가 왜 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화려함은 잠깐이다.
결국은 중요한 것은 원론이다.
퍼포먼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맛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 나도 참으로 늦게 알았던 사실이지.’
그도 마흔 무렵에는 화려함에 취해 있었다.
어떻게든 회사의 실적과 겉으로 보이는 덩치를 키우려고만 노력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쉰, 예순에 회사가 더 성장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건실하게 성장시켰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들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김정철 회장은 자신이 상념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따뜻한 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종업원도 없구나.’
그래도 요리사가 눈치는 빠르다.
자신이 퍼포먼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알자, 어느 순간부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감정은 잘 못 숨기는 것 같다.
입이 이만큼 나와 가지고 뾰로통해 있는 게, 삐진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는 안 들리지만 툴툴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앞에선 아들놈도 삐지고, 손자 놈도 삐지더니, 이젠 요리사도 삐지는구먼.’
그래도 손자랑 엇비슷한 나이란 생각이 드니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다.
요리사는 빠른 손놀림으로 쉬지 않고 요리를 했지만, 이상하게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 많은 요리가 한 번에 나오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데 말이었다.
“이보게, 셰프.”
그만해도 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쉬지 않고 들리던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끝이 났다.
그리곤 요리사가 거대한 철판을 들고 다가왔다.
철판 위에는 10개가 넘는 요리들이 올라가 있었는데, 저걸 들고 올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철판의 두께 자체도 상당하거니와 팔팔 끓는 냄비부터 해서 수많은 요리들이 채워져 꽤 무거워 보이는데 말이다.
탁.
셰프가 음식을 올려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뒤로 빠졌다.
“냄새가 참 좋구먼.”
정말이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냄새가 훨씬 좋았다.
김정철 회장이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숟가락을 들어, 죽처럼 보이는 뭔가를 떠먹었다.
그 순간, 김정철 회장의 눈이 커졌다.
-아닛?
-이게 무슨 맛인가!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이, 이게?’
정말이지 놀라운 맛이었다.
이런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씹는 맛이 있고, 고소하면서도 짭짜름하다.
아주 깊은 맛이 느껴져서 혀로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감탄이 우러나왔다.
“허어…….”
김정철 회장이 저도 모르게 긴 탄식을 내뱉고는 다른 요리로 숟가락을 돌렸다.
-미미!
-특급 요리사!
이 역시 엄청나다.
가게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배경음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혀끝이 즐겁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이게 웬걸.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미각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김정철 회장은 계속해서 요리를 먹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소식을 유지해 왔다.
어렸을 때는 맵고 짠 것을 좋아했지만, 이러한 식습관이 건강에 문제가 야기한다는 의사의 소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냐.
마지막의 마지막만큼은 마음껏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김정철 회장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식을 먹었다.
먹고, 또 먹었다.
모르겠다.
이게 회광반조라는 것일까?
죽기 직전에 일순간 기력을 회복한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게 철판 위에 올라온 음식의 3분지 1 정도를 비웠다.
더는 먹지 못할 정도로 먹었다.
배가 빵빵해진 것 같은 기분으로 만족스럽게 웃은 김정철 회장의 시선이 주방에 서 있는 셰프에게로 향했다.
아직도 삐져 있는지 입이 댓 발이다.
“이보게, 셰프.”
“왜 그러슈?”
“내가 지금껏 먹어본 요리 중 최고였네.”
“아니, 뭐…….”
표정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손자뻘이나 되다보니 제법 귀엽다.
“그래, 얼마인가.”
“음…….”
잠깐 고민하던 청년이 말했다.
“천만 원.”
“천만 원이라고? 이유가 뭔가?”
“요리 하나당 백만 원이요.”
평소 같으면 가드들을 불러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줬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천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너무나 많은 돈도 아니다.
“카드 되는가?”
“안 되는데.”
“내 현금이 그 정도까진 되지 않는데?”
“얼마나 있어요?”
지갑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가 다섯 장이 있다.
“그거라도 받죠, 뭐.”
선심 쓴다는 말투다.
어이가 없었지만, 김정철 회장은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청년에게 수표를 건넸다.
“잘 먹었네.”
“맛있게 드시더만.”
“그래. 아주 맛있었네.”
수표를 건네준 김정철 회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배가 이렇게 부른데도 요리를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상하다.
평소에는 식탐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이었다.
‘다음에 또 올 수 있으면 좋겠군.’
김정철 회장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 * *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 사람의 목숨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진유성이 의술에 능통해서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의술에 조예가 있긴 하다.
어차피 혈도라는 게 무공과 관련된 것이기에 진유성은 사혈(死穴)과 생혈(生穴)에 대해 능통하다.
하지만 그가 남자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아본 것은 의술 때문은 아니었다.
선천진기가 너무 흐릿했다.
길어봐야 몇 달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눈앞에서 풀썩 쓰러질 줄은 몰랐지만.
진유성이 쓰러진 젊은 친구를 신사답게 의자에 앉혔다.
그리곤 몸을 짚어 보았다.
“음?”
돈이 많은 친구인 것 같다.
몸에 좋다는 약재는 다 먹었다.
수십 년 묵은 산삼도 꽤 많이 먹은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음식값을 쉽게 냈겠지?’
진유성도 이젠 상식이란 게 있다.
요리 10개의 값이 천만 원이 제법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가게에 천마신교란 현판이 붙어 있는 이상, 이것은 비싼 게 아니다.
그는 천하제일인이었으며 고금제일인이었고, 중원을 일통한 천마신교주였다.
감히 자신이 해 주는 요리를 먹고 적은 돈을 낸다는 것은 이 친구에게 죄를 짓게 하는 일이다.
아무튼 이놈의 몸에는 많은 양의 기운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이 혼탁하게 혼재되어 있고, 과다하게 축적되어 있다.
영약이 늘 몸에 좋은 건 아니다.
흡수하지 못한 기운이 너무 많이 쌓이면 오히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운을 억누르기도 한다.
게다가 이 자식은 음기를 타고 났는데, 양기의 영약을 너무 많이 먹었다.
이러니까 선천진기가 그렇게 흐려져 있던 거다.
‘부족한 오백만 원은 여기서 가져갈 수 있겠군.’
진유성이 남자의 장심에 손을 뻗었다.
그리곤 그의 몸에 내재된 혼탁한 기운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흡정대법은 아니었다.
흡정대법은 타인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지만, 진유성이 흡수하는 건 정기가 아니었다.
그저 몸에 불순하게 쌓인 융화되지 못한 기운을 걷어 가 주는 것이었다.
그 양이 진유성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많았다.
레벨업을 20번 정도는 해야 얻을 수 있는 기운이었다.
“으음…….”
간신히 숨만 쉬던 남자가 침음을 흘렸다.
억눌려 있던 선천진기의 숨통이 트이고, 진유성이 적절히 조화될 정도의 기운만 남겨 놨기 때문이었다.
아마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건강 관리를 잘한다면 20년을 살 수도 있었고.
“흠.”
진유성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보았다.
사실 그냥 목숨만 살려 주는 정도로 손을 써 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약간의 도움을 준 것은, 인성이 나쁘지 않은 친구 같아서였다.
한참 어리게 보일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돈도 냈잖은가?
물론 신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요리 실력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진유성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남자를 앉혔다.
그리고는 가게 앞에 놔뒀다.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다 보면 정신을 차리겠지.
진유성은 그리곤 가게의 문을 닫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요리 장사의 막을 내리듯이.
* * *
김정철 회장은 정신을 차렸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꽃 냄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
‘냄새?’
냄새가 너무 생생했다.
건강을 잃은 뒤로 이 정도로 생생한 냄새는 못 맡았던 것 같은데 말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따스했다.
그동안은 약간의 바람만 맞아도 뼈가 시리면서 덥고, 더우면서 추웠는데 말이었다.
김정철 회장이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음식을 먹었던 식당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살짝 화가 났다.
주인 청년이 너무 야박하다.
아무리 그래도 쓰러진 노인을 이렇게 밖에 방치하다니.
하지만…….
“이, 이럴 수가!”
몸이 너무나 개운했다.
꼭 10년, 아니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청년 시절의 몸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정력적으로 일을 하던 쉰 후반대의 느낌이다.
김정철 회장이 깜짝 놀라서 가게의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가게는 닫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설마 요리가?’
아니, 그건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고 하더라도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그거 외에는 이유가 없었다.
삼국시대의 유명한 명의인 화타는 이러한 말을 남긴 기록이 있다.
삼월 인진쑥은 내가 손댈 수 없는 병을 고치지만, 사월 제비쑥은 불쏘시개일 뿐이라네.
시의적절한 음식이 약보다 병에 큰 효과를 보인다는 말이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김정철 회장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일단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낸 그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무슨…….
“대정고 앞에 있는 천마신교란 식당에서 요리를 하던 남자를 찾으란 말이야.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를 끊은 김정철 회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을 회상하기 위해 찾아온 압구정에서 마지막이 아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 기회를 준 고마운 이를 꼭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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