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암석곰 무리가 전부 쓰러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의지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며 활공하는 무기들이 놈들을 찢어발겼으니까.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나는 넝마가 되어 쓰러진 암석곰 무리를 바라보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
“제이드, 그건······?”
맞은 편에선 단원들이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 설명할까 하다가 나는 깔끔하게 요약해 설명했다.
“새로 얻은 힘이야.”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그런 건 들어 본 적도 없어!”
기가 찬다는 듯 몇 명이 헛바람을 내쉬었지만, 물음은 이쪽이 먼저였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암석곰 무리가 여기에 찾아온 거지?”
“제이드. 내 실책이다.”
대답은 위에서 들려왔다.
“······로빈? 너 왜 거기 있어?”
고개를 들자 신수의 요람이 되어주는 커다란 나무.
이른바 요람의 나무 위로 로빈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것이다.
로빈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올라오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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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설명은 이러했다.
내가 신수의 요람에 들어간 뒤, 단원들은 각자 대기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로빈은 잠시 주변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으로 요람의 나무를 올랐다고 한다.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높은 만큼,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고 한다.
“나무 위에 있다가 오히려 암석곰 무리의 주의를 끌었다는 거지?”
“······그렇다. 미안하다 제이드. 썩은 가지가 있더군. 그게 꺾이는 바람에. 초보적인 실수였다. 키텔로 레인저로서 부끄럽군.”
요람의 나무에 매달린 로빈이 죄책감 서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다 아래쪽의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단원중 그 누구도 다친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운이라는 걸, 로빈도 나도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모노리스를 얻지 못했으면, 문을 열자마자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아서 아무도 안 다친 거야. 알지?”
“알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그런 자신의 실수를 알기에 고개를 숙이는 로빈.
원체 잘하는 녀석인 만큼 이 정도면 됐겠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나무에 올라가서 발견한 건 있나? 굳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의아했다. 로빈이라면 하지 않았을 돌발행동이었으니까.
반대로 말한다면······.
······로빈은 어느 정도 확신하고 움직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오면서 발견한 흔적들로 보건대, 멀지 않은 곳에 키텔로 레인저들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역시나, 조급한 마음에 수색을 서두른 모양이었다.
“뭔가 발견한 게 있어?”
“그래. 하나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눈을 빛내는 녀석.
“저길 봐라. 제이드.”
로빈은 곧장 평평한 가지 하나 위로 올라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저 멀리, 빽빽한 가지들이 뒤엉킨 나무들 위로 흰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선처럼 그어져 있었고, 언뜻 보기엔 수풀 위로 쌓인 먼짓덩어리처럼도 보였다.
물론 진짜 먼지일 린 없었으니, 무언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발견한 게 저것이다. 다만 확실하게 확인하겠다고 집중하다가 암석곰을······.”
“그건 이제 됐어.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니까.”
다시금 죄의식을 끄집어내는 녀석을 대충 달래고 나는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스틸 스왈로우를 띄워 날렸다.
내 시야와 동기화된 스틸 스왈로우가 가까워질수록, 그 희끄무레한 물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 위에 걸려 있는 그것은······
“거미줄?”
······다름 아닌 거미줄이었다.
그것도 한줄기 한줄기가 두껍고 끈적끈적한 거미줄.
그리고 그 근처에는 사람 크기만 한 고치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그런 거미줄 곳곳에는 사람만 한 거미들이 사사삭-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스틸 스왈로우를 움직여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야 고치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사람들이다.’
새하얀 고치 끝에는 엘프들과 사람들이 머리만 쏙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의식을 잃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로빈, 키텔로 레인저 중에 남부식으로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는 녀석도 있어?”
“그런 옷을 입는 건 콜빈 밖에 없는데······? 혹시 곱슬머리인가?”
로빈의 되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래도 저기에 키텔로 레인저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서, 설마 전멸한 건가?”
내 중얼거림에 눈빛이 흔들리는 로빈.
“진정해. 아직은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꿈틀거리는 고치를 바라보며 녀석을 진정시켰다.
악마들은 보통 신선한 생명체, 즉 생기를 원한다.
짐작하기론 악마, 말라고니스에게 조종당하는 신수들이 사람들을 포획해서 저장해둔 게 아닌가 싶었다.
생명의 숲은 원체 넓으니, 곳곳에서 잡은 영혼들을 일시적으로 비축해두듯 말이다.
악마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그 방식은······.
‘······우리에게도 일말의 기회지.’
살아 있다면 우리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때, 스틸 스왈로우의 시야로 새로운 마수가 보였다.
파리와 모기를 섞은 듯한 거대한 마수가 고치로 날아오더니, 대롱 같은 기다란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푹!
그대로 몇몇 엘프들과 인간들의 영혼이 뽑혀 나가는 것이 보였다.
‘미친.’
수확.
영혼이 수확된 고치들은 하나 같이 크게 꿈틀거렸다가, 힘을 잃고 늘어졌다.
그중에는 콜빈이라 불린 사냥꾼도 있었다.
“······.”
“······제이드. 어떻게 됐지? 레인저들은 무사한가?”
나는 차마 동료의 죽음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일부는. 빨리 가지 않으면 희생자들이 늘어날 거야.”
나와 로빈은 서둘러 요람의 나무에서 내려가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곳 ‘어머니의 정원’은 현실 세계와 정령계가 뒤섞인 땅.
지금은 내 특성, 정령의 은총으로 길을 나아갈 수 있다지만, 자칫 나와 떨어진 사람들은 이곳에서 영영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신중히, 일행들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기동해야 했다.
100명에 가까운 집단이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숲길로 나아갔다.
나와 로빈이 방향을 잡았고, 정령술사들이 세심하게 지형을 조작하며 전진해나갔다.
찌르륵! 찌륵!
풀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이따금 풀벌레나 작은 새의 울음만이 들려왔다.
그렇기를 10여 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펼쳐져 있던 거미줄과 고치들.
높이가 적어도 20~30미터는 될법한 기다란 나무들 사이사이로 새하얀 거미줄들이 마구잡이로 무질서하게 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질서 사이로 유유히 활보하는 거대한 거미들이 눈에 띄었다.
끼기기긱!
커다란 거미들이 괴상한 울음을 토해내며 나무 위를 오가고 있었다.
옆에서 카야갸 속삭이며 설명했다.
“누에 거미에요. 나무 위에 집을 만드는 녀석인데, 거미줄을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알아차릴 거예요.”
거미의 사냥방식 그대로였다.
“다들 들었지? 조심해. 자칫하면 낚일 거야.”
나는 사방천지에 쳐진 거미줄을 바라보며 일행들에게 경고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삼십여 마리다.
그리고 흙바닥에도, 수풀에도, 나무 사이에도 새하얀 실들이 늘어서 있다.
언뜻 보기엔 널려 있는 비단처럼 느껴질 정도.
저 하얗고 끈적이는 비단 줄을 건드는 순간, 놈들이 반응할 테고, 거미줄에 묶인 이들을 구하기도 전에 우리가 거미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머리 위에서 거미줄들이 날아들어서 우리를 옭아매겠지.
‘아니, 다른 변이된 동물들을 불러올 수도 있겠어.’
악마, 말라고니스를 위해 영혼을 수확하는 곳이다.
당연히 타락한 신수들을 비롯해 동물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리는 최선의 방법을 고안했다.
몇몇 대원이 은밀하게 접근해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생존자 고치를 끊어내고, 확보하여 후퇴한다.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고는 생존자를 구출할 방도가 없기에, 사실상 발각될 수밖에 없는 방법.
분명 놈들의 추격이 들어올 것이 뻔하지만.
“이곳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다른 지형이 훨씬 나을 거예요.”
“동감이야. 좁은 곳보단 확 트인 지형이 전투에 유리할 거야.”
카야의 말에 대답하며 나는 고치를 향해 날아드는 파리를 바라보았다.
또 한 명, 엘프의 영혼이 뽑혀 나가고 있었다.
그 너머로 수많은 파리가 새 고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이 제일 중요해······.’
들키지 않고, 거미줄 지대로 접근해야만 계획을 실행할 테니까.
까닥 잘못하면, 거미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넘어, 모두가 저 파리들에게 영혼이 뽑혀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제이드. 내게 맡겨라.”
로빈이 내 앞으로 나서며 눈을 빛냈다.
방금, 소음을 내서 암석곰을 끌어들이는 실수를 했으나, 로빈만큼 나무 위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 사람으론 부족하다.
손은 한정되어 있고, 고치는 많다.
고심하는 내 시야로, 두 인물이 비쳤다.
세이비어 결사단의 임시 단원.
하지만 그 누구보다 능력은 확실한 녀석들.
“에반, 인디에고.”
1회차 용사 파티에서 가장 은밀하게 움직이던 암살자. 그리고 물건을 탈취하는데도, 길을 뚫고 들어가는 데 특화된 도둑.
이 둘이라면 지금 상황에 가장 최적화된 인재나 마찬가지다.
“너희는 로빈을 따라 고치들을 탈취해.”
흰 머리의 소년과 구릿빛 피부의 청년이 눈을 빛냈다.
“알았다.”
“헤헤. 맡겨만 주십쇼.”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둘의 모습에 나는 작게 미소 짓곤 로빈을 향해 턱짓했다.
“작전을 실행한다.”
* * *
세 단원이 접근을 시도하는 동안 나는 스틸 스왈로우를 띄워 주변을 관찰했다.
다행히 누에 거미들도, 영혼을 추출하는 파리들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
이대로만 간다면 탈취 작전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때.
크르르르.
내 옆에서 대기하던 칼라마르가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칼라마르가 스킬 – 마기 추적(LV. 4)을 사용 중입니다.]뭐?
나는 떠오른 메시지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 뜻은 명확했다.
마기를 가진 새로운 존재가 근처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칼라마르. 방향은?”
내 물음에 칼라마르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우리가 왔던 방향이었다.
나는 곧장 스틸 스왈로우를 그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포착한 건······
‘······부엉이?’
검은 털로 뒤덮인 붉은 눈의 부엉이가 나무에 박쥐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놈은 매우 거대한 크기였다.
마치 곰처럼.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놈. ······신수다.’
심지어 한 마리가 아니었다.
녹색 털을 가진 길쭉한 원숭이, 그리고 일전에도 보았던 푸른 사슴까지.
다수의 신수들.
그리고 그 뒤로 삼백 마리는 될법한 변이된 동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나는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제야 나는 최악의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함정이었다고······?”
섬찟.
다음 순간, 다른 방향에서 기기묘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신수들이 있는 방향이 아니다. 거미 둥지가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곳을 바라보며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어둠 속에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들에서 말이다.
쩌저적.
기다란 나무줄기들이 서서히 열렸고.
그 사이로 벌어진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붉은 안광을 터트렸다.
엔트들이었다.
나무와 똑같이 생겨서 구분할 수 없는 종족.
“······하, 젠장.”
한쪽에선 거미 둥지가.
반대편에선 타락한 신수들과 동물 무리가.
그리고 타락한 엔트들까지.
그제야 나는 어딘가 찜찜했던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로빈의 실수가 아니었어.’
요람의 나무에서 암석곰 무리가 습격해왔을 때부터······.
‘처음부터 걸려있었군.’
이미 우리는 놈들의 거미줄에 걸려있던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이곳은 숲이고.
숲을 관장하는 존재가 악마에게 오염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