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한편 그 시각.
카일은 조심스럽게 동굴 밖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을 공격해왔던 짐승 떼와 신수 무리.
꼬박 하루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카일, 전부 간 건가?”
“기척은 전부 사라졌어. 아마 다른 목표를 발견한 건지. 전부 물러난 것 같아.”
카일은 뒤따라 나오는 바바크와 엘프 장로, 핀나흐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했다.
밖으로 나오자 카일의 말대로 동굴 밖의 숲은 풀벌레마저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날뛰던 신수들 때문인지 주변의 나무와 풀들은 부러지고 밟혀있었다.
“어머니의 숲이······.”
생명의 숲, 성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경관의 모습에 핀나흐가 탄식을 내뱉었다.
카일은 핀나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신수도 숲의 동물들도 전부 폭주했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아마 성역의 신관들도 전부 당했을 확률이 높네.”
성역의 신관은 세계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관리자들.
성역에 들어온 자신들이 습격당한 걸 생각해본다면, 성역에 있던 그들이 무사할 가능성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카일. 자네가 말했었지? 숲의 어머니 몸에 붉은 뿌리가 덮어지고 있다고.”
“맞아.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카일은 검과의 공명을 통해 바깥의 동태 곳곳을 살폈다.
그중에는 세계수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숲의 어머니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해야겠어.”
“그러면 조심하는 게 좋겠네. 아직 주변을 배회하는 짐승들도 좀 있거든.”
카일은 그렇게 말하며 바바크와 핀나흐를 이끌고 숲 안쪽으로 향했다.
신수들의 명령을 받은 것인지, 근처에는 돌아다니는 짐승과 거대한 벌레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괴물들 전부 카일 일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일이 들고 있는 새까만 단검의 힘이었다.
월영도(月影刀).
주변에 환상을 흘려, 남들이 쉽게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진 단검.
일전에 악마의 추종자 세력을 처치하고 얻은 아티팩트였다.
‘수백 마리에 가까운 짐승 떼에겐 소용없었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유용하지.’
바스락. 바스락.
그렇게 짐승들의 감각을 속이며 수풀 안쪽으로 나아가는 그때.
쿠워어어어!
아우우우─!
저 멀리 성역 아래에 난 협곡에서 수많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혹여나 신수의 습격은 아닐까, 카일은 집중해서 기척을 숨긴 뒤, 협곡 아래를 확인했다.
“뭐야 저건······?”
숲에서 보고, 또 보지 못했던 동물들이 무리 지어서 움직이고 있었다.
각기 다른 종들이건만, 하나의 무리를 형성해서 이동하는 기이하고도 비현실적인 풍경.
당연하게도, 동물들은 전부 마기의 영향을 짙게 받았는지 변이되어 있었다.
그런 마수들이 이동하는 방향은······.
“······북서쪽? 어디로 가는 거지?”
“여기서 북서쪽이라면······ 이상하군. 마을이 거의 없는 곳이네. 규모가 큰 마을들은 남쪽에 몰려 있다네. 마을의 엘프들을 노리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네만······.”
카일과 마찬가지로 갸웃거리던 핀나흐 장로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이 협곡을 따라 쭉 빠져나가면 생명의 숲을 그대로 빠져나가는 길이네! 그것도 최단 거리지.”
“숲을 빠져나간다고?”
왜지?
카일은 의문을 품은 채 이동하는 마수 떼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수백, 수천 마리. ‘군단’급에 육박하는 숫자다.
‘무언가 벌어지려 하고 있어.’
저만한 마수 떼가 숲 밖을 나간다면······ 거대한 위기가,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만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이드. 넌 어디에 있지?’
제이드.
역시나, 그가 필요하다고 카일은 판단했다.
* * *
철컥!
철커덕!
은색의 갑옷이 내 몸에 알맞게 조율되기 시작한다.
주먹을 쥐자 은색의 건틀릿이 반짝인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으로 은색 투구의 바이저가 내려왔다.
[어비스 킬러를 착용했습니다.]어비스 킬러.
대마법사 살리아만과의 전투에서 새롭게 진화한 무기이자 방어구.
마력에도, 마기에도 카운터를 칠 수 있는 특수한 갑옷이 내 몸을 감싸자 전신에 강한 힘이 감돌았다.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2%)]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4%)]그뿐만이 아니다.
크르르르!
내 옆에 선 검보라빛의 드레이크.
등의 비늘을 따라 뒤덮인 단단한 모노리스 갑옷.
날카롭게 세워진 발톱과 비늘들. 꼬리 끝에 매달린 철편까지.
모노리스의 갑주를 착용한 칼라마르 역시 더욱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슬쩍 뒤에 쓰러진 신궁을 바라보았다.
카야의 부축받고 있었고, 머리 위의 은색 날다람쥐 신수 역시 제 주인을 보호하겠다는 듯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궁의 시선은 신수들에게만 향해 있었다.
“······부탁이다. 그 아이들을 해치지는 말아줘.”
“잠자코 지켜보고 있어.”
신수의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끝까지 저것들을 걱정하다니.
저걸 미련하다 해야 할지, 저 정도 애정이 있어야 신수 관리자가 되는 건지.
‘나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앞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 잘 듣게 해줄 테니까.”
솔리무어라고 했던가?
커다란 덩치의 푸른 사슴 신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5%)] [어비스 킬러가 마기를 충전합니다. (7%)]아니, 마기까지 뿜어내며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기가 10%까지 충전된 시점.
‘간다.’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파앙!
어비스 킬러의 밑바닥에 각인된 에어 프레스가 작동하며, 내 도약의 탄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꾸워어어어!
그러자 솔리무어의 양쪽으로 자라난 뿔 사이에서 푸른 기운이 뭉쳐 광선처럼 쏘아졌다.
적잖은 마기와 심상찮은 위력이 느껴졌다.
‘저건 그냥 맞으면 안 되겠어.’
나는 도약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이프리트 방패를 들었다.
지금은 이프리트가 역소환되었다고 해도, 망령왕의 유산.
방패 자체의 성능도 뛰어났다.
콰아아앙!
그대로 강하게 휘두르자 푸른 광선이 튕겨 나갔다.
치이이익!
튕겨 나간 광선은 그대로 주변의 바닥과 나무를 녹여버렸다.
그때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삐이이익!
커다란 덩치의 검은 올빼미. 스톨라스였다.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을 활짝 펼치며 내게 내려찍으려 들고 있었다.
하지만 놈을 상대할 건 내가 아니다.
“칼라마르!”
내 외침과 동시에 칼라마르가 흉포한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스톨라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삐이익!
내려찍으려던 발톱의 궤도가 바뀌었고, 허공에서 칼라마르와 뒤엉켰다.
덕분에 나는 멈추지 않고 푸른 사슴, 솔리무어를 향해 뛰어들었다.
꾸워어어!
솔리무어는 그런 내가 괘씸하다는 듯 울음을 터트리며, 다시 두 뿔 사이로 푸른 기운을 응축시키고 있었다.
“그걸 또 쓰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아?”
나는 그런 녀석을 비웃으며 어비스 킬러의 기능을 발동시켰다.
[어비스 킬러 속 마기 포식자 – 흑암의 힘을 불러옵니다.] [마기 폭발이 발동합니다.]“마기 폭발.”
흑자색의 검날을 타고 검보라빛의 검기가 녀석이 쏘아낸 광선을 맞받아쳤다.
콰아아앙!
나를 향해 쏘아진 푸른 광선.
그것을 마기 폭발이 가르며 연쇄적인 폭발이 터져나갔다.
그 폭발에 휩쓸린 솔리무어가 튕겨 나가며 쓰러졌다.
그런 녀석의 새하얀 뿔의 한쪽은 뚝 부러져 있었다.
꾸워어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녀석이 뿔 사이로 기운을 모아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 쪽 뿔이 부러진 녀석은 힘을 모으지 못한 채, 울음소리만 내지를 뿐이었다.
‘한 놈은 어느 정도 무력화했다. 칼라마르 쪽은?’
고개를 돌리자 바닥을 나뒹굴며 싸우는 칼라마르와 검은 올빼미, 스톨라스가 보였다.
크롸라라!
[‘칼라마르’가 스킬 – 마나 스케일(LV. 2)을 사용합니다.]칼라마르는 자신의 비늘에 마력을 두르며 날카로운 발톱의 공격을 막고 피했다.
동시에 모노리스로 강화된 앞발을 휘둘렀다.
콰앙!
나가떨어진 스톨라스가 인근의 나무 한 그루를 깔아뭉갰다.
즉시 칼라마르가 달려들었고, 놈의 목을 향해서 입을 벌렸다.
그런데.
훙!
갑자기 시야에서 스톨라스가 사라졌다.
‘······은신?’
놈이 공간 속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시야에서 목표를 잃은 칼라마르가 다급히 멈춰선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쾅!
부러진 통나무가 그대로 날아가 칼라마르를 날려버린 것은.
내가 다급히 칼라마르를 향해 달려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새하얀 머리를 가진 소년.
에반이었다.
“에반?”
“제이드. 은신이다.”
“역시.”
“그리고 그 신수의 은신 방법 나와 똑같아. 녀석의 깃털이 주위의 빛을 통과시키고 있어.”
에반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손을 들어 보였다.
우드드득.
어린 소년의 손이 한순간 뒤틀리며 마수의 손처럼 변했다.
뒤이어 에반의 손이 반투명해지며 흐릿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에반 역시 은신의 대가인 만큼, 올빼미가 쓰는 능력이 뭔지 캐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파훼법은······?”
“간단해. 보이게 만드는 거지.”
내 물음에 에반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렸다.
곳곳으로 뻗어나간 머리카락이 나무 사이사이로 선처럼 연결되기 시작했다.
저건······.
나는 에반의 의도를 깨닫고는 씨익 웃었다.
“아이디어 좋은데, 에반?”
그리고 나는 칼라마르에 붙어 있던 모노리스 갑옷의 일부를 가져왔다.
촤르르륵!
이내 모노리스 조각들은 내 의지에 따라서 변형되어, 작은 쇠공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에반의 머리카락 곳곳에 걸었다.
“제이드? 에반? 지금 뭐 하는 거야?”
“제이드 님? 저걸 대체 왜 지금······?”
주위에서 의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면 알게 될 테니.
게다가 스톨라스, 그 신수 역시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사이, 칼라마르는 자세를 고쳐잡고 곳곳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후웅! 후우웅!
그러나 종종, 광풍이 이곳저곳에서 불면서 수풀이 흩날리고, 나뭇잎이 치솟았다.
스톨라스.
놈은 근방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칼라마르, 집중해라.”
크르르르······.
내 말에 따라 칼라마르는 자세를 낮추며 예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인간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감각을 지닌 칼라마르지만, 시야에 보이지 않는 건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훙─!
왼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가도, 오른쪽으로,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딸랑─!
곳곳에서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종소리.
내가 모노리스를 변형시켜 에반의 머리카락 곳곳에 걸어둔 것들이었다.
딸랑! 딸랑! 딸랑!
종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스톨라스. 녀석이 움직이는 그 방향이.
종들에 의해서 유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에 안 보이게 변한 거면, 다른 걸로 눈에 보이게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우리가 아니었다.
크롸라라!
“칼라마르!”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칼라마르의 입이 열렸다.
[‘칼라마르’가 스킬 – 브레스(LV. 2)를 사용합니다.]마나 하트에 가득 모아두었던 강대한 마력이.
검보라빛의 숨결로 화하며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적중.
삐이이익!
비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스톨라스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끝이다.”
칼라마르를 감싸고 있던 모노리스들이 내 의지에 따라.
열 개의 송곳으로 변환되었고.
추락하는 스톨라스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