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로빈과 로버트 일행이 페르딤 첩자들 속에 침투했다.
그사이,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피로도 풀 겸 몸을 씻고 지미가 끓인 스튜로 허기를 달래고 있자 막사로 데릭이 들어왔다.
“제이드. 로빈이 나름 한 건 해냈어.”
후드를 걷고 미소를 지은 데릭이 화살에 매달린 편지를 꺼냈다.
“고생했어, 데릭. 어디 줘봐.”
편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하자 그 내용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로버트와 로빈이 남긴 편지에는 구불구불한 글씨와 그림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제법 급했나 보군.’
급히 썼는지 휘갈겨진 로버트의 글씨가 읽기 힘들었지만, 해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짚어가며 문장을 해석했고, 금방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새벽 두 시. 요새 하수도의 철창을 부수고, 스물의 침입조가 내부를 헤집는다.
성문을 열면 산에서 대기 중인 삼백의 정예병이 합세할 것. 도움을 요청.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정보]– 제목 : 텅 빈 성의 주인은 누구인가?
– 설명 : 아케르 요새의 출전이 예고된 지금, 당신은 삼백에 달하는 페르딤 유격대가 성을 점령하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은 이 정보를 이용해 페르딤에 가담할 수도 있으며, 성이 빼앗기는 것을 순순히 지켜볼 수도, 또는 성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당신의 선택이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 보상 : ???
[경고. 이 퀘스트는 당신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동시에 새롭게 떠오른 퀘스트와 시스템에 침음했다.
분명 1회차에선 본적 없는 퀘스트였다. 물론 그 이유는 짐작되었지만······.
‘실패하면 요새의 함락. 그리고 결국엔 마누스의 패전으로 이어지겠군.’
시스템이 경고할 정도인 만큼 정말 중요한 퀘스트였고, 이것은 일종의 분기점인 셈.
사실상 내 1회차의 행보가 이어질 것이었다.
“이거 쉽지는 않군······.”
“삼백 명이라고? 제이드. 요새에 남는 병사는 백 명도 안 되잖아!”
“우리 별동대는 20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상대해?”
그란디스 백작은 회색 숲 전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긴 채 진군할 것이란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에 데릭과 다른 녀석들이 동요했다.
“지금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보고는 나중이야.”
나는 손을 들어 녀석들을 조용히 시키곤 말했다.
지금 누가 페르딤의 첩자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에도 이름을 알린 헨슨이야 유명했지만 다른 자잘한 녀석들은 기억할 리가 만무했다.
보고를 올리면 금방 성안으로 정보가 퍼질 거고, 그러면 녀석들도 알아채고 반응하리라.
‘그건 안 되지. 내 목표는 이 작전을 완전히 막아내고 페르딤에게 큰 피해를 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적들이 후방을 교란하는 것만으로도 전황이 힘들어질 거다.’
300의 페르딤 정예병 전부 잡아야 한다.
하지만 남은 수비 병력 대부분은 소초에 퍼져 있었고, 별동대를 제외한 요새의 병력은 오십여 명이었다.
“······그 방법이 있었지.”
“응? 뭐가 말이야 제이드?”
“아냐. 데릭. 이 작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 밀지를 전달 좀 해줄래?”
나는 로빈이 보낸 밀지에 몇 줄을 더 적고 조심스럽게 접어 데릭에게 건넸다.
“누구한테?”
“미하일. 그 사람에게 몰래 전달해줘.”
누가 스파이인지 알 수 없으니······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로 놈들을 치는 수밖에.
* * *
다음날.
아케르 요새는 그 어느 때보다 부산스러웠다.
병장기들끼리 부딪히며 절그럭거리는 쇳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
도열한 말들이 푸르륵거리는 소리까지.
성의 최소한의 수비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사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 수가 칠백이었다.
그 선두에는 그란디스 백작과 각 부대의 대장과 부대장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나 또한 별동부대 대장이란 직위로 함께였고.
“출정은 준비되었나?”
“예, 전부 정비 마쳤고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란디스 백작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돌격대 대장 루이스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바질로 수비대장. 내가 없을 때 요새의 수비는 자네에게 달렸네.”
“예. 백작님의 출정이 끝나고 돌아오실 때까지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 백작님.”
수비대장의 어깨를 두드린 백작이 슬며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곤 그를 마주 보았다.
“별동대장 제이드. 조사는 어떻게 됐지?”
“아직 별다른 진척은 없습니다.”
“그렇군······ 알겠다. 요새로 돌아와서 보도록 하지.”
내 대답에 그란디스 백작의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표정이었고 그에 주위의 대장들이 쿡쿡 소리죽여 웃었다.
숨기려는 듯했지만, 워낙 가까웠기에 그마저 잘 들렸다.
“출전한다!!!”
백작의 수신호에 맞춰 병사들 몇이 큰 소리로 외치며 마누스 왕국기를 들어 펄럭였다.
뿌우우──!
그에 병사 몇이 나팔을 불며 병력들에게 신호를 알렸고 전 병력이 성문으로 나아갔다.
대군의 긴 대열이 성문을 빠져나가자,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성문을 닫고 도르래를 돌려 철창을 내렸다.
쿵!
이제 성안에 남은 이들은 수비대장과 남은 수비대가 오십 명.
그리고 스물의 별동대원뿐이었다.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대원들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면 슬슬 시작해보자고.”
“암. 좆뺑이 한번 쳐보자고.”
그에 화답하듯 녀석들도 나를 따라 씨익 웃어 보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의 날이었다.
* * *
시간이 지나 해가 기울었고, 요새의 성 꼭대기에는 달이 걸렸다.
성의 거주민과 병력까지 대부분이 나간 지금.
아케르 요새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그리고 요새의 아래, 에르뒴 산의 지하 수맥을 따라 연결된 하수도.
그곳의 수로를 따라 후드를 뒤집어쓴 무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이곳에 잠입해 있던 페르딤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무리 안에는 잠입한 로빈과 로버트 등 대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강한 물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것 같았지만 로빈의 신경은 전방의 사내들에게 향해 있었다.
“저 앞으로 가면 바깥이랑 연결되는 하수도 철창이 있다. 그걸 폭파하면 우리 임무는 끝이다.”
“니미.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나는 내 아랫도리나 좀 터트리고 싶은데.”
“네 아랫도리는 터트릴 것도 없잖아?”
다시 한번 임무의 목표를 상기시켜준 녀석은 다른 병사와 킬킬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페르딤 병사가 총 여덟. 반면 이쪽은 넷. 아니 콜과 겐터까지 포함하면 여섯인가.’
로빈은 이번 작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가득했다.
품속에 든 단검을 만지자 시린 금속의 촉감에 다시 한번 복잡했던 머리가 차가워졌다.
드드득.
단검을 돌벽에 갖다 대 강하게 긁었다.
돌 부스러기가 튀며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물소리에 묻혔다.
‘이걸로 다섯 번째.’
그러는 사이 어느새 하수도의 끝에 다가왔다.
횃불을 들자 어둠 너머로 두꺼운 철창이 보였는데, 어찌나 두꺼운지 로빈의 팔과 비슷한 두께가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검으론 흠집도 안 나겠군.”
“한 번에 폭파한다. 준비해.”
선두의 사내, 스렁은 후드를 벗고 숨을 들이마셨다.
하수도의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기에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스링이 턱짓하자 다른 병사들이 품속에서 화약 주머니를 벽과 철창 사이에 끼워 넣었다.
화약이 너무 많으면 폭발음이 클 것이고, 적으면 화력이 약하거나 터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마법사 하나를 파견해주지. 번거롭게······.’
스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었다.
마법을 탐구하는 녀석들이기에 어딘가 음습하고 정신 나간 모습이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확실한 녀석들이었다.
특히 공화국에 협조하는 녀석들은 인간과 몬스터들을 가지고 실험하지 않나?
그런 모습을 보자면 꺼림칙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은 이해할 수도 없는 미증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편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념에 빠진 사이 다른 병사가 신호를 보냈다.
이제 불만 붙이면 되리라.
“횃불 하나 줘봐.”
스링은 뒤로 손을 뻗었지만, 누구도 횃불을 주지 않았다.
“이봐. 횃불 달라니까?”
변명하던 욕을 하던 대꾸가 와야 하는 데 왜 답이 없는가?
그에 이상함을 느낀 스링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끄윽. 끅.”
“이게 무슨!”
새로 왔다는 병사들과 용병놈들.
어째서 그들이 동료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가?
그 옆에는 이미 죽은 채 축 널브러진 이들도 있었다.
‘대체 언제?’
그 짧은 사이에 소리도 내지 않고 공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당황한 스링이 뒤로 물러서며 검을 꺼냈다.
“마누스 쪽이었나? 설마 핸슨 그 돼지 새끼가? 아니면 특공대 쪽이냐?”
“······.”
짐작 가는 곳을 찾아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반응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하수구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경계심을 끌어올린 스링은 순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어딜 보고 있나.”
“대체─”
언제 이렇게 빨리?
이어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재빠르게 다가온 사내의 단검이 스링의 목을 꿰뚫었기에.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늦었군.”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야. 벽에 칼자국 표시가 너무 얕아서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키텔로 레인저에게는 충분할 정도다.”
“그래그래, 키토산 레인저 만세.”
“뭐? 키토산? 키텔로 레인저다. 제이드.”
나는 뭐라 말하는 로빈을 지나쳐 쓰러진 녀석들을 살폈다.
미리 얘기한 대로 목을 조르거나 부러트려 죽였다.
다만 한 녀석. 목이 갈라져 죽은 녀석이 있었다.
“저, 저희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다만 저분께서······.”
내 시선에 당황한 녀석들이 말을 더듬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로빈이 겁을 제대로 줬나 본데.’
로빈의 철두철미한 성격상 계속 둘을 압박했을 거다. 아니 무조건이겠네.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녀석들이 가쁘게 숨을 내뱉으면서도 인정해달라는 듯 눈을 마주쳤다.
“그래. 콜, 겐터. 너희의 믿음은 충분히 증명했다.”
“가, 감사합니다.”
“일단 이 시체들부터 치우자.”
전부 목을 부러트리거나 질식시켜 죽였지만, 마지막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문제였다.
“롭, 브룩 일단 시체들은 다른 구역 하수도로 옮겨.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그렇게까지 멀리?”
“여기로 들어올 페르딤 특공대는 평범한 놈들이 아니야. 사소한 문제 하나만 있어도 눈치챌 거다.”
“알겠어, 대장.”
그러는 한편 남은 화약으로 핏자국 위에 조심스레 화약을 뿌리고 발로 문댔다.
최대한 화약 냄새로 가리면 좋겠는데······.
“로빈. 시작해.”
최대한 뒤로 물러나며 로빈이 철창에 붙은 화약 주머니 하나, 삐죽 튀어나온 끈에 불을 붙이고 물러났다.
그러자 치이익 ̄ 거리는 소리와 함께 끈이 타들어 가더니······.
콰앙!
삐이이이──!
한순간에 터진 굉음에 귀가 이명을 내며 먹먹해졌다.
뒤이어 폭발의 여파로 튄 물보라가 볼을 적시며 현실감을 다시 일깨워줬다.
잠시 후 피어오른 연기가 금방 가라앉자, 고철 쪼가리가 되어 바닥에 뒹구는 철창 조각들이 보였다.
“성공이군. 그리고 저건······.”
나는 부서진 철창이 있는 하수도 끝을 응시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다수의 인원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둔탁하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 어두운 곳에서도 비치는 호박색 눈동자.
‘놈들이다.’
데릭보다 덩치가 맞먹을 정도로 큰 키와 덩치를 가진 병사들이 다가왔다.
녀석들의 얼굴엔 그어진 흉터가 가득했고, 갑옷조차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하나 같이 뼈대가 굵었는데, 특히나 손이 두툼했고, 들창코를 가졌다.
놈들은 하수도의 어둠 속에 멈춰서더니,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우리를 훑었다.
그 눈길에, 몇몇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도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맹수의 우리 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마른침을 천천히 넘겼다.
“······.”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원래의 페르딤 병사가 그랬을 것처럼 고개를 깊게 숙이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폭발음이 생각보다 크더군.”
“죄송합니다. 화약의 양의 조절이 힘들어서······.”
다행히 녀석들은 잘 속아 넘어갔고 무리의 막내로 보이는 녀석이 내 말에 손을 내저었다.
“시간이 없다.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빨리 성문을 열어야 한다.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이쪽으······”
“잠깐.”
그때 대장으로 보이는 선두의 남자가 내 말을 끊었다.
특히나 흉터가 심한 남자였다. 입을 가로지른 흉터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일 정도.
그가 숨을 천천히 들이켜더니, 혀를 꺼내어 입술을 핥았다.
혀는 보라색이었고 이빨은 날카로웠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피 냄새가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