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스스스스──
마왕, 마이어스의 심장을 한 줄기 검은 섬광이 관통했다.
파지지지지!
마기 포식자.
그 흑색의 검날 끝에서부터 점차 피어오르는 검보라빛 마력의 다발들.
마력은 곧장 오러의 형태를 갖추었고, 계속해서 밀려드는 마력에 점차 몸집을 키워나갔다.
쿠구구구구!
오러는 피어오르자마자, 격렬하게 진동했다.
마치 사납게 포효하는 맹수처럼 혹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무언가가 임계점에 이른 듯이, 불안하고도 폭발적인 힘이 느껴졌다.
당연했다.
오러가 피어오르는 곳은 다름 아닌 마왕의 심장이니까.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비교가 불가능한 마기의 정수.
그것이 마이어스의 심장이다.
당연하게도.
흑암성과의 상성은 최악이다.
마이어스의 기를 집어 삼키며 강렬해지는 흑암성의 힘.
그리하여 압축되고도 또 압축되어 통제조차 어려워진 오러.
그것이 검기가 되어 검 끝을 떠난 그 순간.
극한으로 압축되었던 오러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마치 핵분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마이어스의 몸속에서 한없이 부풀었다.
그 모든 과정이 단 1초라는,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인지하기도 어려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앙──!
온 세상을 뒤집어 버릴 듯한 폭발이 마이어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여러 번씩.
콰아아앙! 콰과과광!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마이어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쿠구구구구───!
아니, 그마저도 뒤이어 터지는 폭발에 가려졌다.
마왕의 신체조차 찢어버리는 폭발은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키며 일대 반경을 날려버렸다.
충격파에 밀려오는 공기.
폭발에 피어오른 새하얀 빛.
마이어스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이들은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큭! 제이드!!!”
“뭐, 뭐야! 어떻게 돼가는 거야!?”
데릭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며 제 친우를 부르짖었다.
카일은 검집을 방패 삼아 들며 폭발에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쳐냈다.
이네스는 신성력의 장벽을 펼쳐 아군을 보호했다.
칼라마르는 그 옆에서 몸을 움츠리며 제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네스 역시 제이드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제이드!’
어디에도 제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시야를 가득 메운 거대한 폭발뿐.
‘설마 저 폭발에 휘말린 거야?’
이네스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당장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거센 폭발은 그녀의 발걸음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전장의 모든 걸 날려버릴 것 같았던 폭발이 멎었다.
솟아올랐던 먼지들이 차츰 가라앉자, 그제야 이네스는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이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쓰러져 있는 제이드, 그리고 맞은 편에 서 있는 마이어스였다.
이네스는 마이어스를 바라보고 흠칫했다.
그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마이어스.
그의 몰골은 너무나 흉측하고 또 기괴했다.
육신은 녹아내렸는지 흔적만 남아 있었고, 시커먼 마기만이 응집해 인간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마저도 형태를 이루려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 제, 이드······! 네놈이, 감히!
비틀거리는 마이어스의 심장 한가운데엔 여전히 마기 포식자가 박혀 그의 회복을 저지하고 있었다.
‘몸이 붕괴한다! 어서 육신을······!’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죽을 수 없다.
하나의 생존본능만이 바스러져 가는 마이어스의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절그럭!
전신을 감싼 녹색의 사슬이 움직임을 막았다.
– 이, 이건······! 이게 왜 아직도!
초월자가 된 자신의 육신마저 날려버릴 폭발이었다.
그런데 이 사슬이 무사하다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그 순간.
맞은편에서 제이드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마이어스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마음대로 못 움직일 거야. 영혼 채로 구속된 거라서 말이야.”
– 구속······ 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제이드의 의미심장한 말에 마이어스가 얼굴을 가득 구겼다.
동시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떻게든 녹색 사슬을 뜯어내려 했다.
그러나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깊게 빠지는 늪처럼 녹색 사슬은 마이어스를 더욱 옥죄어 갔다.
‘사슬의 힘이 강해져 간다! 어째서!?’
당황한 마이어스가 사슬을 살피다,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사슬의 힘이 강해지는 게 아니다.
‘내 힘이······ 빠져나가고 있어?’
대체 어디서?
문득 마이어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가슴 정중앙에 박힌 검보라빛 검이었다.
제이드가 심장에 박았던 검.
– 설마 이것이······!
뒤늦게 깨달은 마이어스가 다급히 검을 집으려 했다.
그러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가슴도.
목을 제외한 모든 곳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마이어스를 향해 선고하듯 제이드가 중얼거렸다.
“깨닫기엔 이미 늦었다. 단념해라.”
– 닥쳐라! 그깟 말로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제이드의 말에 마기로 구성된 마이어스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때, 제이드의 옆으로 망령왕이 다가와 구속된 마이어스를 향해 말했다.
– 그 사슬은 존재 자체를 구속하고, 봉인하는 영혼의 사슬이다. 너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 우리가 영겁의 시간동안 빚은 무기지.
촤르르륵!
그 말처럼 마이어스의 몸을 감싼 사슬은 마기 포식자를 중심으로 점차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건 관이었다.
한번 붙잡은 대상을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준비된 신비의 관.
점차 마이어스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는 관.
그 모습을 보며 마이어스가 분노에 휩싸인 채 소리쳤다.
– 웃기지 마라! 내가······! 내가 이대로 패배하리라 생각하나!
– 나는 악의 화신이며! 마기 그 자체다!
– 이 세계에 나의 힘이 남아 있는 한! 나는 돌아올─
쿵!
끝끝내 관이 마이어스를 뒤덮자, 그의 목소리가 단절되어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녹색의 관. 그 가운데를 관통한 마기 포식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끝인 건가?”
한순간, 고요해진 전장에서 제이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제이드의 귓가로 들려온 경쾌한 알림이 대답했다.
띠링!
[마왕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퀘스트 ‘종장(終章)’을 클리어했습니다.]시야를 어지럽히며 떠오르는 메시지.
그래.
시스템이 직접 공언한 것이다.
그것이 제이드에겐 확실한 대답이 되었다.
“끝났······ 구나.”
제이드는 그 안도감에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렸다.
풀썩 주저앉으려는 걸 망령왕이 부축했다.
– 괜찮나?
“하하, 반쯤 죽을 것 같긴 한데. 아직 멀쩡해.”
– 그거 다행이군. 다시 재회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거든.
“재회라고? 잠깐, 당신 몸이······”
제이드는 그 말을 들으며 망령왕의 몸이 점차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구성하던 빛은 새하얀 빛무리가 되어 하늘 높이 떠올라 사라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건가?”
– 그래. 생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말이지.
제이드는 그 말을 듣고는 뒤돌아 전장을 바라보았다.
에메랄드빛처럼 반짝이는 유령 기사들이 제이드와 망령왕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 아아, 드디어──
–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가.
그들 역시 점차 빛무리에 휩싸이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때 유령 기사들의 앞으로 세 유령이 걸어 나왔다.
리아몬드와 미에레스, 그리고 아이덴그르트.
망령왕의 충성스러운 부하이자, 별빛 군단장을 맡았던 이들이었다.
– 별빛의 의지를 이어받은 두 주군께 경의를 표하라!
– 당신들과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 별빛보다 찬란한 긍지이시여! 그대의 앞길에 영원한 축복이 있기를!
그들은 제이드와 망령왕을 향해 일제히 경례했다.
[원혼들이 생의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영광의 와일드 헌트가 소멸합니다.]수만 명에 이르는 유령들이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다.
빛무리는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느새 걷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그런 빛무리를 비추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때쯤. 망령왕의 모습 역시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영계라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일까?
그곳이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저들이 마왕을.
마기라는 힘을 가두기 위해서 만들어둔 감옥이리라.
그는 마이어스가 봉인된 관을 들고서,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려 했다.
제이드는 그런 망령왕을 붙잡아 물었다.
“이봐, 저 녀석이랑은 이야기 안 해봐도 되겠어?”
제이드는 카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일은 멀리서 망령왕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망령왕은 그런 카일을 힐끔 바라보곤 제이드를 향해 말했다.
– 이미 난 만 년 전에 이미 사라졌어야 할 존재다. 저 아이에겐 나는 필요 없다.
그러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제이드를 향해 말했다.
– 하지만 너라면 다르겠지. 제이드. 나의 후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도와줄 수 있겠나?
제이드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카일과 친구거든.”
– 친구라······ 그거 다행이군.
제이드의 대답에 망령왕은 피식 웃더니 하늘을 향해 승천했다.
이내 망령왕은 그대로 빛무리가 되어 사라졌고, 관은 그대로 숲의 요정들이 받아 들더니 영계의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영계의 문 역시 금방 닫히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제이드를 바라보던 이들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어둠이 완전히 걷혔다.
높이 떠오른 하나의 태양만이 전장을 밝히고 있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승리.
“······이, 이겼어?”
“이겼다고!”
“우리가 살았다! 마왕을 물리쳤다!”
“제이드 만세!”
“제이드! 제이드! 제이드!”
“마왕 살해자 제이드! 대륙의 구원자 제이드!”
모두가 우레 같은 함성을 내지질렀다.
제이드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주변의 동료들과 얼싸안았다.
모두가 울고, 웃었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승리했다.
세상을 집어삼키려던 악으로부터.
제이드는 그 환호성에 몸을 돌렸다.
데릭과 로빈을 비롯한 세이비어 결사단.
카일과 바바크, 에반, 인디에고.
이네스와 함께 선 주신교단.
도로시를 비롯한 푸른 마탑.
그 외에도 미하일과 루퍼스, 카웰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제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드는 그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
다시금 터져 나오는 함성 속에서 제이드가 미소 지었다.
우리는.
승리했다.
두 번의 인생 끝에.
아니, 어쩌면 더 많은 반복 끝에서.
‘하지만.’
제이드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 세상에 관한 의문들.
제이드가 두 번의 삶 속에서 아직 해소하지 못한.
제이드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할, 진실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