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내가 붉은 폭풍을 뚫고 나오는 순간.
“어떻게─”
로이암이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확연히 느리고 약해졌다.
‘붉은 폭풍을 쓰고 나서, 기력이 바닥을 드러낸 거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올려서 팔뚝으로 그의 검날을 막아냈다.
카득!
1왕자 루퍼스에게 하사 받은 블랙 샐러맨더의 갑옷.
그 질긴 가죽이 기력을 다한 로이암의 검을 막아냈다.
알싸한 충격이 팔뚝에서 느껴졌다. 피부가 까지거나 뼈에 금이 간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로 공격을 몸으로 받아냄으로써, 큰 빈틈을 유도했다.
무릇 공격 적중을 확신하는 순간, 방어에는 소홀해지기 마련.
로이암 정도 되는 전사라도, 지치면 필히 그런 실수를 하리라.
‘역시.’
아니나 다를까, 로이암의 왼쪽 옆구리가 무방비로 드러났다.
마기포식자를 휘둘렀다.
푸욱!
점토를 베어내듯 로이암의 허리를 마기 포식자가 힘껏 베고 들어갔다.
“편히 쉬십시오.”
콰앙!
뒤에서 거대한 굉음과 기파가 터져 나왔다.
붉은 폭풍의 여파였다.
뒤를 힐끗 살핀 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경악한 채, 입술 사이로 피를 쏟고 있는 로이암이 눈에 들어왔다.
“자네······.”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로이암이 물었다.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았지? 방금은 확실한 기회였을 텐데.”
로이암의 두 눈이 옆구리로 향했다.
마기 포식자가 로이암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깊긴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체 왜?
로이암의 두 눈이 내게 묻고 있었다.
“고귀한 영웅을 이런 곳에서 죽게 할 수는 없죠.”
그의 두 눈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이, 게 무슨······!”
경악한 그의 얼굴이 마기 포식자로 향했다.
그러고는 팔뚝의 저주 낙인을 살폈다.
내 검의 존재를 눈치챈 건가. 노련한 전사답군.
[마기 포식자가 마기를 흡수합니다. (19%)] [마기 포식자가 마기를 흡수합니다. (20%)]그의 몸속에 있는 마기를 흡수했다.
고오오─
나는 마기 포식자를 세게 쥐었다.
이상하게도 로이암의 옆구리로 파고들려고 하는 마기 포식자의 떨림을 막아야만 했다.
‘뭔가 이상한데.’
이 녀석······ 마기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마기에 대한 끌림이 강해지는 듯하다.
스스로 마기를 탐닉하는 것이, 내 손에서 벗어나서 멋대로 움직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내가 검을 거두었고 로이암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기분이 묘하다.
“하······ 됐네.”
내가, 동부 최강의 전사를 꺾었다.
몸에 힘이 풀린 로이암이 쓰러졌고 나는 그를 받아서 조심히 바닥에 눕혔다.
“아버지!”
힐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달려 나왔다.
“로이암 경! 정신이 드십니까!”
“포션! 물 탄 포션이라도 쓰십시오!”
“일단 지혈이 먼저네!”
뒤이어 이아곤을 비롯한 기사들이 달려와 상처투성이의 로이암을 치료했다.
포션을 뿌려 마기 포식자에 깊게 찔린 상처를 지혈했고, 붕대와 연고, 약초들로 치료했다.
나 역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로이암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제이드! 해냈구나! 상급 기사를 꺾었어!”
“미친놈이, 그런 소리를 할 때냐? 제이드 괜찮아?!”
대원들 역시 나를 향해 달려 나왔다.
“어 괜찮아.”
나는 검을 바닥에 꽂아 둔 채 주저앉았다.
그룬이 내민 수통을 받아 목을 축였다.
그때 헤겔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네 녀석.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고 있나?”
“운이 좋았죠.”
“그게 농담이라면 농담은 앞으로 관둬라.”
헤겔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죽거렸다.
“로이암의 붉은 폭풍에서 빠져나온 자는 네놈이 처음일 거다. 그 누구도 막지 못했던 것인데······ 그 찰나에 빈틈을 파악하고 꿰뚫다니. 네놈은 대체······.”
헤겔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한편, 데릭과 로빈을 비롯한 녀석들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해야.”
나는 손을 내저었다.
로이암을 이겼다고 나를 불세출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건 정말 완벽한 착각이었다.
‘재능은 무슨.’
‘운이 좋았다.’ 이렇게밖에 말할 방법이 없었다.
로이암의 신체는 매우 쇠약해져 있었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 갇혀 있었으니 당연했다.
거기에 광기에 잠식된 그는 이성적이지 못했다.
모든 행동이 신체에 부담이 갔을 텐데 광기에 빠진 로이암은 그를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나는 광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붉은 폭풍’ 역시 대처법을 알고 있던 것이 컸다.
마지막으로 루퍼스가 주었던 레더 아머가 로이암의 반격을 막아 준 것까지.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진, 운 좋은 한 수였다.
‘그래도 이겨서 기분은 좋네.’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 하더라도, 일개 하룻강아지가 힘이 빠진 호랑이를 이긴 격이었다.
큰 산을 넘어간 기분이었다.
그때 기사, 힐다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가는 붉게 번져 있었고, 목은 이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로이암 경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죠.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더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짜는 지금부터지.
애초에 이 많은 인원을 데려온 이유는 이다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모두가 고개를 돌려서, 이 공간의 끝을, 가장 어두운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석문.
로이암이 막고 있었던 장소.
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 역시 상당했다.
그리고.
우우웅──
마기 포식자가 꿈틀거렸다.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이전의 움직임이 경고나 안내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분노나 탐욕 같았다.
‘네가 원하는 게 저기 있는 거냐?’
저 안에는, 이 사건의 원흉이 웅크리고 있다.
“가자.”
내가 몸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동안, 대원들이 육중한 석문의 잠금장치를 열기 시작했다.
그것을 푸는 것만 십여 분이 걸릴 정도로, 잠금장치는 복잡하고 단단했다.
저 안에 든 것이 절대로 나오지 못하도록 설계해둔, 거대한 감옥이기에.
“됐다! 이제 열어!”
쿠구구궁.
석문과 바닥의 돌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고, 우리의 앞에 짙은 어둠의 공간이 펼쳐졌다.
내부에는 빛 한 줌도 없었기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없었다.
“대기.”
지나온 길들처럼, 용기와 객기로 전진할 수는 없었다.
저 어둠 속에 웅크린 존재의 이름이 너무나 크니까.
“······.”
신중해야 한다.
나는 석문 입구로 걸어가서, 안쪽을 향해 조심스레 횃불 하나를 내던졌다.
탁─
십여 미터를 날아간 횃불이 바닥에 떨어지며 일대를 밝혔다.
정면에 돌로 쌓은 제단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 복장을 보건대 델토르 남작인 듯했다.
그의 옆에 커다란 돌 상자가 눈에 띄었다.
“델토로 남작님!”
“잠깐 기다려.”
나는 달려 나가려는 위즐을 붙잡고 싸늘하게 늘어진 남작을 바라보았다.
‘용사 카일이 이곳을 공략했을 때, 남작의 시체를 발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기에 있는 남작은······?
우우웅─
미세하게 떨리던 마기 포식자가 델토로 남작을 향하자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미 남작은······.
– ······먹잇감이다.
그 순간,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드디어 먹잇감이 들어왔구나.
노인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어딘가 아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고, 때로는 걸걸한 쇳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쓰러져 있던 델토로 남작이, 아니 광기의 악마가 들썩거렸다.
동시에 남작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쩌저저저─
– 그것도 아주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야.
남작의 손이 부풀어지며 턱─ 돌 상자를 짚고 일어났다.
상자는 이미 부서져 있었다.
‘봉인이 완전히 깨졌다.’
완전히 해방된 악마는 남작의 정신을 흔드는 걸 넘어서, 몸을 차지했을 것이다.
‘카일이 남작을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도 그래서였겠지.’
남작이 몸을 일으켰을 땐,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으저저저─
어둠 속 허공에······ 그것도 수 미터 위에 걸려 있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쿵─
그것이 우리를 향해서 한 걸음 다가왔다
쿵─
이어서 한 걸음을 더 움직여서 횃불의 불빛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마, 맙소사······.”
“저게 무슨······.”
드러난 그것의 모습에, 모두가 본능적인 신음을 흘렸다.
거대한 붉은 눈알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면서 우리를 샅샅이 훑었다.
그 아래, 칼날처럼 돋아난 이빨 사이로 노란색 진액이 흘러내렸다.
온몸이 회색 털로 뒤덮였고, 뼈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등 뒤로 무언가 자라났다.
쩌적! 쩌적!
피막의 날개였다.
그래, 그것은······ 거대한 박쥐의 모습이었다.
“마, 마수······.”
누군가 중얼거렸다.
아니.
저것은 그 이상의 존재다.
사특한 주술로 탄생한 일개 육신이 아닌, 필멸자의 머리로는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영적인 존재.
물질계에 현현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재앙으로 발전해나갈, 세상을 좀 먹는 죽음의 씨앗.
악마.
“전원! 전투 준비한다! 상대는 악마다!”
그리고 심지어.
[광기가 더욱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광기의 낙인이 당신의 신체에 침투합니다.] [광기의 낙인 (6%)] [광기의 낙인 (7%)] [광기의 낙인 (9%)]영웅 특성을 가진 나조차도 저주의 진행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다른 이들은 훨씬 더 빠를 것이다.
‘젠장. 한시가 급하다!’
나는 곧장 흑암성의 오러를 피워 올렸다.
화르르!
하지만 놈의 앞에서 깊은 밤에 피워올린 성냥개비 수준에 불과했다.
그것이 나를 내려다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어리석구나. 한낱 필멸자들 주제에 나의 요람에서 나와 맞서려고 하다니.
놈이, 마침내 완성된 피막의 날개를 펼쳤다.
훙──!
강풍이 불며 우리를 강타했다. 손을 들어서 얼굴 앞을 가렸다. 그러지 않으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큭!”
뒤로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고오오오······.
그러는 사이, 붉은 기운이 흉흉히 치솟아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기운은 넘실거리며 밀려와서 우리의 몸 주변을 에워쌌다.
몸이 한층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질식할 것처럼.
“저,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제이드, 후퇴를······.”
[대원들의 사기가 극도로 내려갑니다.] [대원들이 상태이상 ‘공포’에 빠집니다.]사기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다시 일으켜 세울 없을 정도로.
그러나 저들을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란, 인간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 극히 소수의 선택 받은 이들이라지.
나 역시 악마와 정면으로 마주한 경험이 없었기에,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으나······.
‘······후퇴해야 한다.’
이제는 알겠다.
대체 카일은, 저런 놈을······ 그것도 힘을 완벽히 회복했을 악마를 어떻게 잡았단 말인가?
– 겁에 질렸구나, 볼품없는 존재여.
동굴처럼 울리는 놈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날카롭게 긁어대는 기분이었다.
종전, 로이암을 쓰러뜨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한껏 고양되었다.
상급 기사를 꺾었다는 성취에 자신감이 차올랐고 마지막 석문을 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1회차 때와 달리, 영웅들과 나란히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 주제를 깨닫고, 절망을 받아들여라.
“일단······ 후퇴한다.”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여기에서 대원들을 모두 잃을 순 없다.
하지만.
“으그그그······.”
“모, 몸이······.”
“제, 제이드······ 움직일 수가······.”
모두가 마비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저주의 증상이 급속히 퍼지는 데다가, 악마의 기세에 짓눌려서 몸이 굳은 것이었다.
심지어 헤겔조차도 한 걸음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몇 명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기어코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 오호, 네놈은 무언가 다르구나.
쿵─
놈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하며 우리를 향해서 다가왔다.
놈이 발을 몇 번 구르는 것만으로도, 대원들과 기사들은 곤죽이 되어버릴 것이었다.
‘일단 막아야 한다!’
나는 놈의 앞을 막아선 채, 다시금 오러를 피워올렸다.
콰아아아!
– 크하하! 그래! 발악해보라! 나를 재밌게 해보라!
놈이 앞발을, 거대한 철퇴에 송곳을 달아서 휘두르는 것만 같은 그 우악스러운 것이 내게 날아들었다.
‘피했다가는 대원들이 휩쓸린다!’
나는 오러를 최대치로 피워내며, 피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서 휘둘렀다.
쾅──!
거대한 진동이 석실을 뒤흔들었고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내 몸이 붕 떠올라서 석실의 문에 처박혔다.
“─큭!”
곧장 몸을 일으켰다. 고통을 느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누군가 짓밟혀 죽을 테니까.
나는 바닥을 박차고 놈을 향해서 달려갔다.
“마기 폭발!”
놈의 몸은 마기로 이루어져 있다.
마기 폭발을 최대치로 일으킬 수 있다.
먹힐 것이다.
콰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거대한 빛과 화염이 놈의 몸뚱이 중심부에서 피어났다.
그 충격에 거구의 놈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 크하하! 재밌는 장난을 부리는구나!
“젠장······.”
이것도 안 먹히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숨을 골랐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생각하자. 방법이 있을 거다. 그러니까 카일이 해냈겠지.
주인공은 카일이라지만, 나도 카일의 옆에 설 운명이다. 분명 방법이······.
그런데.
– 어? 어어! 이, 이 힘은······.
놈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 설마, 그 검은······.
놈의 눈동자 움직임이 멎었다. 내 검에 시선이 맺힌 채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어서 찢어진 입꼬리가 굳었다. 마치 당황한 것처럼.
“······검?”
마기 포식자를 말하는 건가?
– 아, 안 돼! 다가오지 마라!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 이 봉인을 어떻게 깼는데! 또 다시 그 검이라니!
의아하던 찰나.
우우우우웅──!
마기 포식자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이거 왜 이래?!’
마치 날뛰는 짐승을 잡은 것처럼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변화는 검뿐만이 아니었다.
스스스스─
흑암성의 오러.
내 몸과 마기 포식자 주변에서 일렁이던 그것이, 마치 거대한 화재의 연기처럼 미친 듯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큭! 무슨!”
억누르려고 했으나 통제할 수 없었다.
더는 내 힘이 아닌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몸을 부풀린 검은 연기가 어떤 형상을 취했다.
짐승의 형상.
고오오오──
그래, 그것은 분명히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짐승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머리를 곧추세우며 아가리를 벌렸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집어삼킬 것처럼.
– 안 돼! 오지 말아라!
광기의 악마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다.
검은 연기가 점점 몸집을 불리더니, 놈의 머리 위에 드리웠다.
다음 순간.
우드드득─!
검은 연기가 놈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짓씹었다.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콰직! 콰드드득─!
그것으로 끝이었다.
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남작을······ 아니 악마를 포식한 검은 연기.
그것은 형체를 잃더니, 마기 포식자로 빨려 들어왔다.
“······.”
“······.”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등 뒤의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제이드. 그건 대체 뭐야?”
데릭이 경악한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