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부터 약 두어 시간을 더 달린 끝에, 마침내 오아시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거 진짜지? 신기루 아니지?”
데릭이 환호성을 질렀다.
뜨거운 햇볕을 유독 못 견뎌 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랴? 약탈자들이 점거한 마을인데.
“데릭. 미안하지만 넌 못 가.”
“뭐? 왜!”
“작전이야.”
지금부터는 은밀함이 필요했다. 더불어 더욱 정체를 숨길 생각이기도 했고.
대원들을 인근 사구에서 대기시키고, 나는 드렌트와 함께 리테로 마을로 향했다.
“지금부터 내 이름은 ‘드이제’야. 마누스 왕국의 제이드라는 사람과는 관계 없지.”
“큭큭. 너무 성의없는 거 아냐?”
“때로는 성의 없는 게 더 알기 어려운 법이지.”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경비병치고는 험상궂게 생긴 사내 둘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이, 거기 뭐야?”
오고가는 사람이 적은 사막인 만큼, 먼발치에서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놈들이었다.
“하하, 저희는 그냥 나그네입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 근데 어쩌나? 우리가 입장료를 좀 받는데.”
내 말에 경비병, 아니 약탈자 졸병이 손을 동그랗게 말아 보였다.
“5실버만 주면 들여보내 주지.”
“아니 그게 무슨 양아치──”
“여기 5실버입니다.”
얼굴을 구기는 드렌트의 입을 막고 나는 돈을 냈다.
돈을 받아 든 약탈자들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지. 거 무기도 내려놔. 우리가 마을에서 보호해주는데 무기도 들고 있을 이유가 없지?”
우리는 순순히 무기를 건넸다.
“크크, 순진한 새끼들. 좋아 들어가 봐. 여관은 저쪽이다. 아래에 주점도 있고.”
“맛있는 대신 좀 비쌀 거다.”
피식 웃은 약탈자가 내 볼을 툭툭 치며 들여보내 주었다.
“제이드, 정말 괜찮은 거 맞지? 한 새끼가 내 창을 바라 보는 게 심상치 않던데······.”
“괜찮아. 다 확인하고 있으니까.”
[스틸 스왈로우와 감각이 동기화됩니다.]내 또 다른 시야가 놈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할 차례였다.
* * *
신기루 연구회 소속 주술사 트루디아.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석판을 바라보았다.
신기루 연구회는 숙명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수십 세대를 이어져 온 숙명.
사막 지하 깊은 곳에 갇힌 재앙.
그것이 풀려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대응하는 것이었다.
수백 년 된 전설로써, 세간에서는 이미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대로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고군분투 해왔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는군.”
끝내 재앙의 시작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몇몇 연구원들이 보낸 편지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이미 재앙의 전조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막 중심부의 마을들이 이미 재앙에 덮쳐져서 갈가리 찢겼다는 첩보였다.
재앙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보이는 모든 것들을 갉아먹을 것이었다.
“젠장······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신기루 연구회는 각지로 퍼져나가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두 개의 열쇠를 추적해왔다.
그리고 트루디아는 오랫동안 사막을 헤맨 끝에 첫 번째 열쇠를 찾았다.
그게 바로 이 석판이었다.
‘기껏 석판을 찾았는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열쇠는 도시 바티스타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트루디아는 이 석판을 들고 바티스타로 향해야 했다.
이곳 리테로 마을과 도시 바티스타와의 거리는 이틀에서 삼일 정도의 거리.
하지만······.
그녀는 창밖을 슬쩍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약탈자들 때문이었다.
약 한 달 전부터 리테로 마을을 점거한 약탈자들.
노예 약탈자 에그록.
사막정의단을 이끄는 그 악명 높은 약탈자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더니 마을을 점거하고 통행을 금지했다.
“젠장,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니.”
“죄송해요. 제가 잠시 마을을 들르자고 해서······.”
“아니네, 트루디아. 그게 왜 자네 탓인가. 진정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트루디아와 신기루 연구회 연구자들은 마을의 주점 한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놈들은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다.
돈을 뜯어내는 것.
그리고 마을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것.
하지만 그 두 가지만으로 리테로 마을은 메말라갔다.
외부에서 오는 여행객들은 눈치를 보며 거금을 주고 도망치듯 떠났다.
심기를 거스른 경우는 노예로 팔려나갔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든 외부의 연구회나 사람에게 연락해 도움을 받아야 했다.
신기루 연구회의 다른 회원들에게 연락이라도 할 수 있다면, 구출 요청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약탈자 놈들은 마을을 점거한 직후 전서구부터 깡그리 죽여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회원들에게는 그만한 힘도 없었다.
고심하던 한 회원이 말했다.
“트루디아. 우리가 난동을 피워볼게. 그때 마을에서 탈출하는 거야.”
“그건 안 돼요! 지난번에 들어온 나그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잊었어요?”
이곳이 도적의 소굴인 걸 안 여행객 한 명이 야밤에 탈출했다가, 다음 날 마을 중앙에서 목이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탈출한다 해도 문제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도 하루 동안 가야 해요. 숨을 곳도 없는 사막에서 놈들에게서 어떻게 벗어나겠어요.”
누군가 저 약탈자들을 쓸어버려 준다면 모를까.
트루디아는 무력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술집의 문이 벌컥 열리며 약탈자 몇이 들어왔다.
“어이. 요즘 술집에 모여 있고 뭐하냐?”
“아직 살만한가 보다?”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회원들이 먹던 맥주를 뺏어 들었다.
“어이, 트루디아. 내가 제안한 건 생각해봤어?”
그때 등이 심하게 굽은 꼽추 한 명이 노골적으로 음흉한 눈빛으로 트루디아를 바라보았다.
트루디아의 미간이 작게 구겨졌다.
꼽추는 도적단 간부 한 명의 동생이었다.
놈은 마을에 온 직후부터 계속 트루디아에게 추파를 날려대었다.
“내 품에 안기면 황홀한 밤을 보내게 해주지, 어때? 그렇게 이쁜 얼굴을 썩히기엔 아까운데 말이야. 크히힛! 크힛!”
불쾌한 웃음을 내뱉던 꼽추의 말에도 트루디아와 신기루 연구회는 불쾌감을 내비칠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주술사들이라는 이유로, 약탈자들은 그녀와 회원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주술사들을 건드리면 재수가 없다는 사막 풍습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의 주술이 사막의 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일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벌컥!
주점의 문이 열리며 웬 낯선 사내 둘이 들어온 것이다.
‘외부인?’
두 청년은 피부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사막의 햇볕에 그을렸으나, 그 시간이 길지 않은 정도.
즉, 타국에서 온 외부인이란 뜻이었다.
“응? 뭐냐, 네 놈들은?”
“아까 온 외부인 놈들인가?”
약탈자들이 물었지만 두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트루디아가 앉아 있던 테이블 옆에 앉았다.
“주술사이십니까?”
“······예? 아, 네.”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트루디아는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검은머리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바티스타까지 동행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 그게.”
바티스타! 그녀와 회원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목적지가 아니던가?
그게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터에 회원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자신들의 속내가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봐.
그 모습에 꼽추, 고브는 얼굴을 구겼다.
사내놈의 키는 자신보다 훨씬 큰데다, 자기가 탐내는 여인을 노리고 있었다.
“어이.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년은 못 나가. 내가 찜했다고.”
그러자 사내가 의자를 뒤로 빼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으, 응?”
꼽추, 고브는 순간 섬찟했다.
사내의 눈빛이 모래마저 얼어붙을 사막의 겨울보다 싸늘했다.
“뭐야 이 못생긴 새끼는.”
“뭐, 뭐?”
하지만 사내의 뒤이은 말에 그 감정은 분노로 타올랐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몬스터인가? 말도 잘 못 알아듣네.”
챙!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린 꼽추 고브가 곧장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외부인인 거 같은데, 상황 파악이 안 되나?”
“고브. 이 새끼들 그냥 노예로 팔아버리자고.”
고브와 약탈자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달려들면서 검을 휘둘렀다.
“꺅!”
트루디아와 회원들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사내는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토록 크게 휘둘러진 검격을 피해냈다.
분명 재빠른 기습이었거늘, 고브의 움직임이 현격하게 느려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쩍!
뒤이은 사내의 발차기가 고브의 안면에 꽂혔다.
쿠당탕!
“커헉!”
고브뿐만이 아니었다. 고브와 함께 온 약탈자들 역시 사내의 주먹과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쯧, 그런 싸구려 대사 치는 놈치고 한 방을 버티는 놈을 못 봤네.”
마을의 숨통을 옭아매고 있던, 공포의 대상이었던 약탈자들.
그들이 단 한 명에게 나동그라지는 광경.
그 광경에 트루디아는 숨이 멎는 듯했다.
신기루 연구회 회원들은 아예 숨을 내쉬지도 않았다.
“너, 너 이 새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가 가만둘 것 같아? 딱 기다려 이 새끼야!”
약탈자들이 도망치듯 술집 밖을 나섰다.
트루디아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요?”
“제이─ 아니, 드이제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저, 저는······ 트루디아에요.”
갑자기 이 상황에 통성명이라니?
잠시 멈칫한 트루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저 인간들은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약탈자들이에요. 당신들을 응징하러 올 거라고요! 아니 어쩌면 당신들뿐만 아니라 우리까지도······ 피, 피바람이 불 거예요!”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드이제라는 사내는 태연했다.
“피바람은 이미 사막 깊은 곳에서 불고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네?”
“저는 고대의 재앙을 막으러 왔습니다.”
트루디아의, 아니 모든 회원이 헉─ 하는 소리를 내고 숨을 멈췄다.
멸망한 사막 왕국에서부터 예언처럼 내려오는 고대의 재앙에 대한 경고.
‘그걸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지?’
분명 재앙에 대한 건 오직 이들만이 아는 이야기였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밀결사단, 신기루 연구회.
하지만 숱한 세월이 지나고, 사구들의 모습이 몇천몇만 번 변화하는 동안, 그들은 힘을 잃고 말았다. 지금 남은 사람들이 가진 건 사명감일 뿐.
그래서 사막의 권력자들은 다가올 재앙을 헛소문으로 치부하거나, 그런 것이 있다는 걸 아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지금 재앙을 막는 게 아니라, 재앙 같은 약탈자들이 당신을 공격할 거라고요!”
이자가 우릴 도와 재앙을 막는다 해도 그건 차후의 일. 지금 당장 분노에 찬 약탈자들이 무기를 들고 이 남자를 공격할 것 아닌가.
드이제라는 남자는 맨손이었다. 뒤에 선 동료도 마찬가지였고.
“당신······ 죽을 거예요. 그것도 목매달려서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그는 테이블에 놓인 포크 하나를 들어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쾅!
그때, 문이 거칠게 열렸다.
꼽추가 몇몇 약탈자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형! 저 녀석이야!”
“네가 내 동생을 때린 놈이냐?”
유난히 덩치가 큰 약탈자가 으르렁거리며 커다란 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사막정의단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내가 묻잖아. 너냐?”
“형이나 동생이나 대사가 싸구려네.”
“뭐? 씨발?”
“너는 한 방은 버틸 수 있지?”
“······내가 온몸을 부러트리고 손발을 잘라 주지. 턱으로 기어 마을 밖을 나서게 해주마!”
쿵. 쿵. 쿵.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발걸음을 내며 다가온 간부가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순간.
드이제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푹!
무언가가 꿰뚫는 소리와 함께 간부의 몸뚱이가 뒤로 기울어졌다.
쿵!
“어?”
트루디아의 눈이 커졌다.
눈을 뒤집어 까고 죽은 간부의 이마에, 포크가 박혀있었다.
‘분명 저 사람이 들고 있었는데······ 언제?’
그 놀람은 주점 안 전부로 퍼져나갔다.
“혀, 형?”
꼽추의 눈이 커지고, 약탈자들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을 때.
“역시 한 방이네.”
드이제는 여유롭게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깐 미뤄야겠네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웬 은빛의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왔다.
무언가를 발톱으로 움켜쥔 채로.
그건 한 자루의 검이었다.
스릉.
검집에서 뽑히는 서늘한 소리가 주점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