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96
던전 안의 살림꾼 96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길드를 통하면 일이 좀 더 복잡해질 뿐이지, 꼭 원덕삼이 일을 해결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닙니다! 불공평하기는요! 아주 공명정대한 거래이고말고요! 목숨을 살려 주신다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을 하겠습니까!”
간신히 내려온 동아줄이 사라져 버릴까 봐 원덕삼은 있는 힘껏 알랑거렸다.
이에 희나는 남은 마석 조각들을 들어 보였다.
“그럼 이렇게 계약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희원은 마석 계약이 끝난 후에야 원덕삼의 묶인 몸을 풀어 주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원덕삼은 저린 팔다리를 주물렀다.
희나와 희원은 그가 제대로 몸 풀 시간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래서 우릴 어떻게 도우려고요?”
“한시가 바쁘니 빨리 뭐라도 말 좀 해 보쇼.”
재촉에 원덕삼은 어기적어기적 몸을 움직였다.
“아, 알았습니다. 우선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컴퓨터는 왜요?”
“헌터넷 들어가서 해킹하고, 정보 차단하려면 필요합니다.”
“오. 헌터넷을 해킹한다고요?”
희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헌터넷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헌터들이 소통하는 창구였고, 그만큼 보안이 빡빡했다.
헌터넷에 침투하는 건 미국 국방부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주 약간 틀어 놓는 정도지만 해킹 가능합니다.”
원덕삼은 지금 그런 헌터넷에 손을 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허술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납치 실력과는 달리, 정말로 그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 컴퓨터로 우리 정보 좀 지워 줘요.”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헌터넷에 대해 잘 모르는 희나는 그 말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 집에 들어가서 노트북 어디에 뒀는지 찾고 있을 테니까 여기 좀 치우고 들어와.”
대신 남은 두 남자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희나는 재빨리 노트북을 찾아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낡은 노트북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조금 버벅거리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척 양호한 상태였다.
“일단 청룡 길드의 입김이 닿아 관련 정보는 거의 지워진 상태입니다. 대신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인증글들이 문제죠. 그걸 제때 못 잡아내서 저 같은 사람이 생긴 겁니다.”
원덕삼이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설명했다.
바둑이에게 쥐어 터져서 울긋불긋한 얼굴로 진지한 말을 하니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나와 희원은 질문을 쏟아 냈다.
“그럼 원덕삼 씨는 그런 글들을 곧바로 삭제할 수 있나요?”
“그런데 예전에 올라온 인증글들을 본 사람들이 우리를 추적해 오면 어떻게 합니까?”
원덕삼은 둘의 눈치를 살피며 잠시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휘저었다.
“제가 빅 브라더가 아닌 이상 익명 게시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이 ‘땅콩’ 키워드를 가지고 뒤를 캐는 걸 막는 일입니다.”
두루뭉술한 설명에 희나가 그를 추궁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요.”
“그러니까, 제가 가상 공간에 일종의 덫을 놓을 겁니다. 그 덫은 여러분의 특별한 ‘땅콩’이라는 단어에만 반응하죠. 그래서 누군가가 땅콩의 핵심 정보에 접근하려 하면 덫이 발동될 겁니다.”
“덫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제게 연락이 오는 동시에 상대의 컴퓨터에 공격이 가해질 겁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다시 손도 못 댈 정도로 호된 공격입니다. 만약 공격을 벗어났다 하더라도,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원점 주위만 빙빙 돌게 될 테니 절대 여러분에 대한 정보를 캐내지 못할 것입니다.”
“……뭐, 목숨 걸고 하시는 거니까 잘하셨으리라 믿어요.”
희나는 컴퓨터로 서류 작업만 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므로 원덕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마석을 통한 계약의 효력은 믿었다.
이 집 안에서 원덕삼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했고, 희나와 희원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정말 많은 걸 잃게 될 테다. 능력부터 시작해, 어쩌면 목숨까지도!
꼬르륵.
진지한 와중에 어딘가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다름 아닌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원덕삼의 배에서 나온 소리였다.
“크, 크흠. 흠.”
그는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하며 변명했다.
“해킹 능력도 스킬이라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어서…….”
“그럼 그 해킹 스킬 쓰려면 뭐를 계속 먹어야 하나요?”
“그, 그렇긴 합니다. 아니면 에너지 드레인 현상이 와서 행동 불능 상태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꼬르르륵, 꾸륵.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꼬르륵 소리가 거나하게 울렸다.
“아이고…….”
퉁퉁 부어 울긋불긋한 꼬락서닐 하고선 배곯은 소리까지 내는 모습이 제법 처량했다.
“어휴. 이거 먹어요.”
희나는 그 불쌍한 모습을 보다 못해 부엌을 뒤져 먹다 남은 달걀 샌드위치를 건넸다.
자길 납치했던 사람이라 미운 마음도 들었지만, 배고파 굶주린 꼴을 보는 건 또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이래서 살림꾼인가 보다.’
희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원덕삼은 자기 앞에 내민 달걀 샌드위치를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몹시 배고픈 상태여서 그런가, 샌드위치 때깔이 평소보다 몇 배는 고와 보였다.
“고, 고맙습니다!”
그는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집어 입안에 쑤셔 넣었다.
“헉!”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팅팅 부었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으깬 달걀이 부드럽게 혀를 감싸는 맛이 일품이었다.
원덕삼은 남은 샌드위치 세 개를 순식간에 흡입했다.
바둑이에게 잔뜩 맞아 입안이 퉁퉁 헐었을 테지만, 그런 아픔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하긴 배가 고프긴 할 거야. 어제부터 한 끼도 못 먹었을 테니까.’
희나는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이라도 좀 마셔요. 목 막히겠어요.”
생수 한 잔을 앞에 밀어 주니 그 또한 벌컥벌컥 단번에 비웠다.
“크!”
원덕삼은 개운하게 컵을 탁,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제가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는 40년 평생 먹어 왔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강진현 덕분에 이런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익숙해진 희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다 먹었으면 빨리 작업이나 마저 하세요. 잘하면 맛있는 저녁을 차려 드릴 테니까.”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고말고요!”
원덕삼은 의욕 넘치게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았다.
‘이왕 털린 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던데…… 밥이라도 맛있게 먹고 죽어야지.’
실수는 돌이킬 수 없었고, 이미 마석에 맹세까지 한 상태였다. 잡념을 비우고 할 일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신들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덕삼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 됐습니다!”
저녁거리를 준비하던 희나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원덕삼이 개운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 했어요? 완벽하게?”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원덕삼을 감시하던 희원은 끝까지 의심을 풀지 못하고 그를 다그쳤다.
“제 능력 안에서는 가장 완벽합니다. 헌터넷 안에서 정보를 찾는 건 불가능할 거고, 그 외의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는 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저, ‘미스터 원’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원덕삼이 사뭇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사실 푸르딩딩한 얼굴에 초라한 행색을 하고서 그런 말을 하니 썩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니 믿기로 했다.
「시원찮은 해결 시 바둑이가 응징할 것.」
옆에서 고물고물 기어 온 오색이가 은근슬쩍 겁을 주었다.
오색이의 말에 바둑이도 은근슬쩍 다가와 이파리를 슬쩍 들어 보였다. 원덕삼의 싸대기를 갈겼던 그 이파리였다.
“헉, 허억. 저, 정말 완벽합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설마 제가 제 목숨을 걸고 장난질을 치겠습니까?”
원덕삼은 오색이와 바둑이의 용맹한 모습에 몹시 겁을 먹은 듯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희원이 그런 원덕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어쨌든 그쪽은 내 동생을 납치한 사람이니까요. 지금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이야기도 입 하나 벙긋하지 않을 테고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이 또한 마석에 대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이제 뒤처리도 다 했으니 풀어 주시면 정말,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원덕삼은 두 손을 모아 쥐고 거의 빌듯이 애원했다.
하지만 희원은 처참한 몰골의 중년인이 코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빌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까딱 안 했다.
한국인의 핏줄 깊숙한 곳에 흐르는 예의와 공경은 가족 앞에서 가차 없었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에 희나가 시원한 콩나물국을 국그릇에 퍼 담으며 한 소리 했다.
“원덕삼 씨는 우리 집에서 당장 못 풀어 줘요. 우리가 땅콩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으니, 앞으로도 그쪽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원덕삼은 이제 희나에게 굽신거렸다.
“이대로 풀어 주신다면 밖에서도 성심성의껏 온 힘을 다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희나 또한 강경했다.
“안 돼요. 그쪽을 어떻게 믿고 내보내 줘요? 곁에 두고 감시해야지.”
희나는 톡 쏘아붙이고는 국그릇을 쿵 내려놓았다.
“이봐요, 이리 와서 그릇이나 좀 날라요. 허튼소리 하지 마시고요. 지금 팔다리 안 묶어 두고 사람대접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아세요.”
“아, 알겠습니다.”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