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157
“모종의 방법으로 불카누스 경이 움직이지 못하는 건 확실하겠죠. 하지만 그걸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빙하대공의 영지를 찾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악마의 영지는 지난번 사용했던 살육대공의 팔로 입장하면 된다는 거군.”
베아트리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레온 또한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
“당분간 자리를 비울 것이다.”
가을 추수를 앞두고 널널한 휴식을 이어나가고 있는 만신전은 레온의 느닷없는 선언에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어디 가시나요?”
나름 짬과 위치가 있는 하리가 질문했다.
“비체와 함께 게이트를 탐색할 생각이다.”
“???”
더욱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 그렇다면 더더욱 단둘이서만 게이트를 탐색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온은 초력의 강자이지만, 그 자신이 집단의 힘을 좌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초인이기 이전에 사령관. 초인들의 시대인 이 지구에서 맨앳암즈라는 대규모 병단을 키워내지 않았던가.
그 자신의 막강한 버프 능력을 생각하면 군대··· 최소한 기사단은 데리고 가는 것이 맞았다.
“기사단이라도 데려가셔야 하지 않나요?”
기사단장인 천소연이 손을 들었다. 만신전에는 이미 숱한 정예세력이 존재한다.
당장 산하로 들어온 한빛궁의 박용신이 그러하고, 천검길드의 광검자 천진수나 불새길드 이용완, 한유리, 황금사자 길드의 황금철과 황연하도 레온에게 협력적이다.
레온은 유사시 ‘군단’을 동원할 인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짐은 악마들의 땅으로 향할 것이다.”
“······!”
놀라는 그들에게 레온이 찬찬히 설명했다.
“허나, 살육대공 때처럼 정벌이 아니다. 놈들의 차원에 잠입해 찾아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너희들은 휴식을 취하며 만신전을 잘 지키도록 하라.”
은밀임무라는 것이다. 레온과 베아트리체 둘 뿐이라면 어떤 위협이 있든 어떻게든 후퇴할 수 있을 테니까.
두 사람 다 초력의 무력을 가진 건 당연하고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베아트리체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
가을추수 기간. 레온과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악마들의 차원으로 떠났다.
* * * *
대격변 이후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세계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헌터길드의 하위층들은 노란색이나 초록색 게이트를 열심히 클리어하고, 빨간색이나 주황색 같은 고위 게이트는 S급 헌터와 공략대가 있는 대형길드가 처리한다.
그러다가 인류의 위기라고 불리는 흑색 게이트가 등장할 때면 티격태격하긴 해도 주변국들이 합심해서 어떻게든 클로징해낸다.
인류의 전력은 3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해졌고, 이제 어지간한 게이트는 여유롭게 방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 오늘 클로징된 게이트는 총 17개. 공략 진행 중인 게이트는 42개입니다.”
“흠··· 남은 게이트가 평소보다 많군.”
헌터협회 김진수 과장의 보고를 들은 오강혁 협회장은 생각보다 많은··· 미 클리어 게이트가 신경 쓰였다.
“음··· 연 평균으로 치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아~”
그제야 오강혁은 자신이 가진 위화감을 깨달았다.
최근 한국 내 게이트들이 속속 클리어되는 이유는 어떤 대형길드의 존재 덕분이었다는 것을.
“만신전은 추수기간이라 여전히 휴식 중이라던가?”
“예, 33%씩 로테이션으로 쉬고 있는 모양입니다.”
만신전은 투자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오지나 저등급,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게이트도 차별 없이 클리어해주었기에 협회에 있어 아주 귀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영향은 10대 길드들에게도 끼쳐 지금은 한빛궁이나 불새, 황금사자와 천검 길드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그분의 존재가 크긴 크군.”
“뭐, 이이상 커지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김진수 과장은 만신전에 파견 나가 있으면서 만신전과 레온이라는 사내의 잠재력을 피부로 느꼈다.
“알고 계시겠지만, 레온 폐하는 한 국가에 국한될 분이 아닙니다.”
“아네. 대통령 각하는 정치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네만.”
레온이 당장 나라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 어디까지나 한국과 그 적법한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다.
무엇보다 그가 보는 눈은 ‘국가’나 ‘대륙’이 아닌 ‘세계’.
“만신전의 내년 성장률은 어디까지 치솟을 거라 보는가?”
“우크라이나의 초르노젬, 헤이룽 인민국의 베이다황, 미국의 캘리포니아 옥수수밭··· 마소로 오염되었던 전 세계 곡창지대가 정화되며 데메라 여신님의 신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뿐만일까.
만신전은 그 교리와 가입방법이 인터넷을 통해 매우 접근성 좋게 뻗어있다.
기존 대형 종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실존하는 신과 기적은 무신론자 뿐 아니라 기존 종교계의 신도들까지 빠져들게 하고 있었고.
“실제로 한국 내에서만 성법 사용자만 사백 명 이상 알려졌습니다. 신앙하는 신의 가벼운 술법을 부리는 수준이지만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만신전의 위세는 연 단위가 아니라 달 단위로 폭증할 것이다.
“유엔 악마사건이 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정부와 지도층을 불신하면서 만신전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이걸 잘 됐다고 해야할지······.”
“무엇이든 과도기가 있는 법일세.”
이미 야피를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받고 있는 오강혁 협회장은 전 세계에 심각한 수준으로 암약하고 있는 악마들이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레온과 만신전 뿐이라는 확신이 더욱 가중되었고.
“이대로만 가주면 좋겠군. 만신전의 규모가 커질수록 세계의 안보는 차츰차츰 해결될 거야.”
하지만 오강혁은 경험상 알고 있다. 보통 두려운 적은 가장 취약한 때를 노려 싹수를 잘라내기 마련이라고.
────────!!
그 순간, 협회의 직원들의 휴대폰··· 김진수 과장과 오강혁 협회장의 휴대폰에도 찢어지는 것 같은 경보음이 울렸다.
협회 직원이라면 의무적으로 설치된 게이트 출몰 경보. 그것이 연달아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협회장님···! 이건!”
김진수 과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는 경보음이 말하는 바가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오강혁 협회장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십대 길드에 비상령 내리게! 그리고 만신전··· 한하리 대리를 통해 곧장 야피 경과 연결해!”
“예···!”
오강혁은 서늘한 등골에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휴대폰에는 전국 각지에서 출몰한 백여개의 게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되고 있었다.
막내 대악마
게이트는 동굴 안쪽에서 열렸다.
“다행히 놈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로군.”
“지난번에 왔을 때, 혹시 다시 올 때를 대비해 봐둔 장소예요.”
“정말이지 비체 그대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소.”
레온은 안도하면서도 황폐해진 살육대공의 영지를 둘러보았다.
“철저하게 파괴한 보람이 있군.”
지난 한일 연합공략대와 함께 이곳에 왔을 때는 주변 촌락을 급습해 악마 추종자들을 포로로 삼으면서 철저하게 주변을 파괴했다.
덕분에 새로운 촌락이 지어지거나 악마들이 상주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음?”
그때, 레온의 시야에 한 무리의 악마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초인적인 시야로도 이 정도라면 대략 5~60km는 떨어져 있는 거겠지.
“악마 놈들이 없지는 않군.”
“영지를 수습하러 온 자들일까요?”
“그럴지도. 비체, 그보다 이것 좀 보시게.”
레온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꺼내 보였다.
“불카누스 경의 단검이······.”
전쟁과 불꽃의 기사였던 그의 의식단검이 희미한 잔불을 일으키고 있었다.
“별철무구와 성력의 공명현상일세. 오랜 인연을 쌓은 무구라면 있는 일이지. 그 단검은 불카누스 경과 꽤··· 특별한 인연이 있거든.”
“그렇다는 건 근처에 불카누스 경이 있다는 걸까요?”
그 말에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성배기사쯤 되면 대륙을 넘어서도 그 존재를 피력할 수 있지. 불카누스 경이라면 행성 반대편에 있더라도 공명을 일으킬 걸세.”
고로 이것만으로 불카누스가 근처에 있다고 확신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 간다면 이 단검이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해요. 게이트 내에서 좌표를 찾기에는 말이에요.”
베아트리체는 이 마계에서 불카누스가 있는 좌표로 게이트를 열 생각이었다.
이전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지혜의 군주를 피해 안토크 경과 공간도약을 한 것처럼 말이다.
“좌표를 찾을 때까지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이곳을 거점으로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럼 짐이 주변을 좀 살피고 오겠네. 확인해볼 것도 있으니.”
“그 전에 폐하. 해야 할 것이 있어요.”
“?”
가벼운 접촉이 있었다.
숨이 맞닿는 거리에서 닿은 손가락의 감촉.
여왕의 하얀 손가락에 담긴 마력이 레온의 이마에 콕 닿는다.
이마에 맞닿은 손가락은 기분 좋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환몽의 장막, 빛을 가려라.”
맞닿는 거리에서 속삭이듯이 울리는 목소리가 레온의 귀를 간질거렸다.
목소리에는 마력이 있다, 특히나 마술사에게는 모든 행위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테지.
마술사가 아닌 레온에게는 간질거리는 시간일 뿐이지만.
“다 됐네요.”
조금 아쉬울 정도로 찰나였던 교류가 끝나고 베아트리체가 싱긋 웃어 보였다.
“폐하의 성력을 감추었답니다. 성물을 꺼내거나 성법을 사용하면 풀릴 정도의 자그마한 위장이지만요.”
“그런가.”
레온의 단답형 질문에 베아트리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아쉬우셨나요?”
누구보다도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그녀의 도발적인 눈웃음에 레온은 피식 웃으며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었다.
“그대처럼 아름다운 이의 유혹에 아쉽지 않은 사내는 심장이 없는 이요.”
“폐하는 여인을 기쁘게 하는 말에 익숙하시네요.”
“궁중생활의 미덕 아니겠나?”
그 말에 베아트리체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본디 왕족은 사교계의 중심인 법이니까.
“주의 드렸던 부분을 조심하시고 행동해주세요. 이곳은 적지 한복판. 여차하면 게이트를 열고 퇴각하면 되지만, 그들의 경계를 사게 될 거예요.”
“알고 있네. 성물과 성법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야.”
그 말을 끝으로 레온은 동굴을 나와 주변을 살폈다.
‘이 주변에 다른 움직임은 없군.’
악마들의 영지라곤 해도, 주변이 무자비하게 파괴된 데다 땅 넓이도 보통이 아니다.
악마들의 부동산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종의 특성상 개체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터.
적어도 이 동굴 주변은 안전하다. 베아트리체가 아주 제대로 좌표를 선정한 것이다.
‘현명한 여인이야.’
레온 자신은 어렸을 적부터 대공가의 적자로서, 여신의 수행기사로서, 선택받은 사자심왕으로서 꾸준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았지만, 그 지혜가 야크트 스피너나 베아트리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자심왕은 문관이 아닌 무장. 그 위치는 고결한 기사이자 왕국의 최종병기에 가깝다.
‘카스티야도 현명한 여인이었지.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
────
그때, 레온에게 속삭이는 여신의 목소리.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네 여신의 조언을 넘기는구나, 하고 토로하는 목소리.
그것은 조언이라기보단 다른 무언가에 가깝지 않은가, 하고 레온은 생각했다.
“후우······.”
레온은 동굴 주변을 모두 살피고 너머의 폐허가 된 황야를 응시했다.
이 지점에서 수십 킬로미터. 폐허가 된 촌락 안에서 한 무리가 수상한 작업을 행하고 있다.
생명체가 있다면 저 무리가 유일하다.
* * * *
살육대공의 영지가 쑥대밭이 되고 아카샤가 사라졌다.
놈들에게 잡혀간 이상 소멸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뒷수습을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폐허가 된 대공령의 영지를 수습하려는 이는 없었다.
-저요? 왜요?
-내가 미쳤다고 거길 들어가? 놈들이 또 게이트를 열면 어쩌려고!
-아, 저는 일이 바빠서······.
악마들은 사상 최초로 침공을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졌고, 거기에 그 침략자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라는 것에 더더욱 충격받았다.
-미친. 라이온하트 그 새끼가 왜 여기서 나와?
-대, 대공을 잡아 죽였다고? 어, 언제 또 오는 거지?
-아아아악! 우린 다 죽었다!
라이온하트 왕국을 침공했던 악마들이었다.
최후의 데몬 게이트가 파괴되기 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도주에 성공한 그들은 라이온하트와 성배기사들에게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건 그쪽 세계를 침공한 악마들뿐이 아니다.
-마술사 여왕까지? 베아트리체 그 마녀년이 왔다고?
-아, 아파··· 모, 몸이, 가죽이···! 이빨이!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쾌락과 타락의 악마들이 점찍은 타락의 마성. 교태를 타고난 천성의 존재.
그 마술사 여왕을 타락시키고 타락군주로 각성시키기 위해 악마대공 퀘이와 대악마 안드로진이 벌인 수작이 기백 년이다.
그 전에도 마술사 여왕은 유명했다.
불멸의 존재인 악마들이 다시 돌아오는 걸 막겠답시고 ‘트라우마’를 심어주자는 기획을 세운 작자 아니던가.
덕분에 오로지 고통만을 주기 위한 고문 속에서 쇼크로 죽어나간 악마들은 모두가 그 마술사 여왕을 두려워했다.
한쪽은 영혼 자체를 소멸시키는 파괴자였고, 다른 한쪽은 영혼에 고통을 심는 마녀였으니.
숱한 강자들을 상대해본 적 있는 악마들에게 그 둘은 유독 공포스러운 존재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도 안 맡잖아!’
폐허가 된 살육대공 아카샤의 영지를 수습하는 일을 어떤 대악마도 맡고 있지 않다.
지혜와 탐구의 대악마는 회의에서 손사레를 치는 주변의 대악마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평소라면 약탈당했다곤 해도 무수한 보물이 남아있을 대공령을 차지하겠답시고 나섰을 작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공령에 진입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
사자심왕과 마술사 여왕의 귀환을 두려워하는 탓이었다.
오바 아니냐고?
논리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지구의 연합 공략대는 게이트를 열고 살육대공의 영지에 진입했다.
그렇다는 건 이쪽 좌표가 노출됐다는 소리다.
이미 한 번 노출된 좌표 근처에서 머물렀다간 가장 먼저 타겟이 될 터.
당연히 악마들은 대공령에 진입할 생각을 못 했고, 주변 영지의 악마들까지도 피난을 선택했다.
한때, 마계에서도 초고가를 갱신했던 살육대공의 영지와 그 주변은 연이은 부동산 폭락으로 폭삭 망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