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ader of the Demonic Cult, Zhuge Se, is reincarnated as the youngest scholar RAW novel - chapter (192)
지강백은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무림맹에서 구원이 올 것이다.
지금 본실력을 꺼내드는 것은 그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패를 꺼내는 때는,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다.’
그러나 조태염의 무공은 생각보다 강했고, 후기지수들은 생각보다 약했다.
일 수도 버티지 못하고 전부 당하자, 지강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까.
하는 수 없이 실력을 꺼내 놈과 맞서야 하는가.
아니면 제 몸 하나만 지키며 철저히 숨길 것인가.
‘후자를 택하면 여기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죽겠지.’
바로 그때, 남궁미향이 조태염의 공격에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순간, 지강백은 천기미리보를 펼쳐 단숨에 접근, 조태염의 팔을 잡아 세웠다.
그는 당황하는 조태염을 노려보며 차갑게 내뱉었다.
“놔라. 내 아내다.”
조태염은 당황한 눈빛으로 지강백을 응시했다.
자신의 공격이, 그것도 고작 후기지수 따위에게 막혔다.
조태염은 치욕을 받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런 하찮은 놈이!”
쇄애애액!
조태염의 반대쪽 손이 허공을 갈랐다.
지강백은 천기미리보를 펼쳐 남궁미향의 허리를 끌어안고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도 상대를 놓치자 조태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신을 차린 남궁미향이 신음을 흘렸다.
“으윽······.”
“잘 싸웠어. 미향아.”
지강백은 호야를 불러 남궁미향을 뒤로 데려가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홍매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침음을 삼켰다.
용기는 가상하나, 상대는 후기지수 네 명을 동시에 쓰러뜨린 괴물이다.
그에 비해, 제갈빈이라는 공자는 무공이라고는 익혀 본 적 없는 병약공자에 불과했다.
모두, 지강백이 이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 역시 놈을 여기서 밟을 생각은 없다.’
이 자리에서 조태염을 죽여버리면, 저 뒤에 있는 혈랑대까지 전부 상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놈들의 수만 해도 수십이 넘었으니까.
전생이었다면 물불 안 가리고 날뛰었겠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그렇다면.’
결심했다. 지강백은 ‘연기’를 하기로.
조태염을 적당히 상대해주며 시간을 끄는 것이다.
무림맹이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말이다.
“이놈! 실력을 숨기고 있었더냐!”
콰르릉!
분노에 찬 조태염이 또 다시 염화뢰 절기를 발출했다.
지강백은 홍매검으로 기운을 베어내며 조태염의 뒤로 신형을 이동했다.
그리고 놈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조태염은 곧바로 손을 돌려 검을 막았다.
“큭!”
조태염은 생각보다 더 강력한 일격에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바닥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겨보던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른 것은.
“우와아아! 대단해! 저 일격을 피해냈어!”
“남궁운 공자들도 당해내지 못한 상대를, 제갈빈 공자가 압도하다니!”
“공자님! 제발 저희를 구해주세요!”
“제갈빈! 제갈빈!”
지강백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어둠 속에 있으면 제아무리 작은 불빛이라도 크게 보이는 법.
저들에게 제갈빈은 이미 희망의 불꽃이었다.
‘계획에는 어긋나지만 이렇게 명성을 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지강백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연기하기로 작정했다.
지강백은 자세를 취하며 조태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우와아아아!”
“제갈빈! 제갈빈!”
후기지수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반면, 조태염의 표정은 뭐 씹은 듯 일그러졌다.
‘저 자식, 대체 뭐지?’
조태염은 아까부터 느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사내, 설마 힘을 숨기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고작 후기지수 따위에게 밀리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조태염은 진지하게 자세를 잡고 공격을 시작했다.
휘익! 휙!
지강백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며 검을 내질렀다.
빠르게 검날을 튕겨낸 조태염이 또 다시 내력을 방출했다.
바로 그때였다.
후웅!
바람을 일으킨 지강백이 그의 옷깃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찍어버린 것이다.
풍신환원공. 풍전등화 초식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조태염은 이번에야말로 당황을 금치 못했다.
원인 모를 압력에 짓눌려, 저도 모르게 중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 혈랑대 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심지어, 지강백은 그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뭐 하나? 벌써 끝인가?”
“······!!!”
그 순간, 조태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런 건방진 새끼들! 모조리 죽여주마!”
참다 못해 폭발한 조태염이 혈랑대에게 명령을 내릴 때였다.
황학루 근처에서 강렬한 기운들이 마구 접근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림맹의 무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지강백은 그쪽을 응시하며 미소지었다.
참으로 적절한 때가 아닐 수 없었다.
“쳇!”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린 조태염이 출수한 손을 거뒀다.
그는 몸을 돌리며 혈랑대 대원들에게 말했다.
“물러간다.”
“······존명.”
혈랑대가 다급히 물러나고 무림맹 무사들이 그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도착하는 즉시 부상자와 사망자를 확인하고, 수습에 들어갔다.
목숨을 구한 젊은 후기지수들은 그제야 살아남았다는 실감을 받고 미소를 지었다.
황학루에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가, 걷어진 것이다.
“도련님! 괜찮아?”
“그래.”
호야의 물음에 지강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호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한 번에 끝내버리지 않고 힘들게 이기는······꽥!”
지강백은 호야의 발등을 가볍게 누르며 입을 막았다.
지강백에게 다가온 무림맹의 무사가 포권을 취하며 물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지강백은 옷깃을 툭툭 털며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조금 쉬어야겠군요.”
지강백이 걸음을 돌려 황학루를 나가려 할 때였다.
부상을 치료하던 남궁운과 팽지혁이 다가왔다.
그들은 지강백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리오! 제갈빈 공자.”
“감사드리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제갈탄 역시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그에게 말했다.
“고맙다. 네가 날 살렸구나.”
지강백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에게 마주 포권을 취해보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지강백은 몸을 돌려 황학루를 나갔고,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환호성으로 그를 칭송했다.
용봉지회 습격. 그 사건으로 제갈빈이라는 사내의 명성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
열흘 뒤, 제갈세가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사악한 흑도에 맞서 싸운 두 젊은 영웅들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제갈탄과 제갈빈.
용감하게 흑도의 고수를 상대로 맞서 싸운, 가문의 자랑이었다.
이 축제를 만든 제갈현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제갈빈과 제갈탄의 앞으로 온 선물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전부 용봉지회에서 목숨을 구한 후기지수들이 답례로 보내 온 선물이었다.
‘연을 맺은 곳들 중에는 남궁세가로 고개를 돌린 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군.’
제갈현은 직접 인사를 하러 온 수많은 손님들을 보며,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집안이 북적거린지도 꽤 오랜만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듣기로, 제갈빈은 흑도 고수와 맞설 정도로 엄청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해도 홀로 흑도 고수를 막아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라, 그 증거로 제갈빈이 앉은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있지 않은가.
‘버린 자식이라 생각했건만······내 착각이라 이건가.’
이걸로 제갈빈의 명성은 크게 치솟았다.
제갈현은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후게 구도에 바람이 불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작은 바람이지만, 후에 큰 바람으로 바뀔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
‘일단은 이 축제를 즐기자.’
바로 그때였다.
시종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와 제갈현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가주님. 무림맹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제갈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무림맹에서 사람을 보냈다. 아마도 제갈빈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금방 가겠다고 전하거라.”
***
가주전 응접실로 들어온 제갈현은 손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무림맹의 핵심 부대인, 풍운검대(風雲劍隊)의 대주인 진광현이었다.
오랜 세월 무림맹을 수호해왔으며, 무림맹주 천유성의 두터운 신임을 얻는 인물이다.
‘이런 거물이 직접 올 줄이야.’
제갈현은 진광현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해보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천천히 구경하며 왔습니다.”
제갈현은 손수 진광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진광현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찻잔을 들었다.
“향이 좋군요.”
“다행입니다.”
잠깐 차를 음미하던 제갈현이 그에게 물었다.
“바쁘신 분께서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진광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제갈세가로 찾아온 이유는 다름아닌 제갈빈 공자 때문입니다.”
역시. 제갈현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용봉지회와 관련된 사건으로 왔을 터였다.
“이번 일로 맹주님께서는 크게 대노하셨습니다. 흑무림맹에서 번번히 무력시위를 벌이기는 했습니다만, 이번 일은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 맹의 입장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제갈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기지수들을 습격했고, 그 중 오대세가의 대공자들이 다치기까지 했다.
당장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맹에서는 강경히 대응하며 흑무림맹의 사죄와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일단 그들은 사죄의 예물과 보상, 그리고 혈랑대주 조태염의 처벌 권한을 이쪽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제갈현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일을 벌려놓고 보상과 사죄, 그리고 책임자의 목으로 대신하는 것.
그런데도 놈들을 가만히 놔두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었다.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는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거기다 일년 전의 정마대전의 영향으로 수많은 고수들이 죽어나갔지요. 현 상황에서 전쟁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럼 저희 가문을 찾아온 이유가······?”
“조태염의 죄를 밝히고 처벌하기 위해, 맹에서는 제갈빈 공자의 증언을 듣고 싶어합니다. 빈 공자는 그와 직접 싸우고 그를 패퇴시킨 장본인이니까요.”
그런 거였군. 제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광현은 빙긋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맹주님께서는 제갈빈 공자에게 큰 공을 세운 답례로 그를 무림맹에 초청해 성대히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허허.”
“아, 그렇습니까?”
제갈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무림맹주의 초청이라니! 무림인에게 그보다 더 영광은 없었다.
제갈현은 잘하면 제갈빈을 통해 무림맹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누가 뭐래도 무림맹은 현 강호의 중심지이기 때문이었다.
‘잘하면 빈이를 무림맹 요직에 앉혀 훗날 강북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고.’
제갈현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기분이었다.
요 근래 막내아들에게 계속 애착이 가는 그였다.
“맹주님의 초청이라면 더없는 영광입니다. 하하하!”
“그럼 곧 기별을 보내겠습니다. 맹에서 직접 빈 공자를 데리러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진광현은 잠시 제갈현과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잠깐 제갈빈을 만나고 갈까 했지만, 그는 방문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음을 기약해야겠군.’
제갈현은 직접 마중나와 그를 배웅했다.
맹의 깃발을 단 마차가 떠나가고 나자, 그는 다시 내원으로 돌아와 방문자들을 상대했다.
***
그날 밤, 지강백은 제갈현에게 무림맹 초청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지강백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기회로군요.”
“그래. 맹주님께 잘 보이면 네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갈현은 진중한 표정으로 턱을 쓸며 지강백에게 말했다.
“빈아.”
“예.”
“난 네가 달라진 모습이 보기 좋다. 이러다 네가 후계자 자리도 노리는 건 아닐지, 그런 생각하지 드는구나. 허허.”
지강백은 말없이 웃어보였다.
그 생각, 나중에는 확신으로 바뀌게 될 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난 네게 기대가 생겼다.”
제갈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네가 남모르게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넌 훌륭하게 흑도 고수를 패퇴시킴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오늘 네게 인사를 하러 온 사람들? 단순히 인사만 하러 온 것 같으냐? 아니, 그들은 널 새로운 줄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채워줄 새로운 줄 말이다.”
제갈현의 말은 정확했다.
오늘 지강백에게 인사를 하러 온 부류는 대부분 비슷했다.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알리며 눈도장을 찍었고, 더 나아가 가문에 대한 내 의중과 생각을 캐묻기까지 했다.
내가 차후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그들은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마 딸이 있는 사람은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을 수도 있다.
혈연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단단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나는 네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를 모르겠다만, 만약 네가 욕심을 지니고 있다면······어디 해보거라.”
“네?”
“내 목적은 오직 제갈세가의 강북 진출과 오대세가의 정점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걸 적어도 너희 대에서 이루기를 원하고 이해가 되느냐?”
제갈현은 자신의 기대를 내비침으로서 지강백의 의중을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자리를 원하면, 능력으로 기대를 충족시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빈이 네가 권력에 관심이 없다면 풍류 공자로 머물러도 좋다. 허나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제갈현이 속으로 드러낸 마음이었다.
지강백은 얼마든지 그에 응해줄 생각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지강백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
드르륵.
제갈현의 처소 문을 열고 나온 지강백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휘란과 마주쳤다.
“어머니.”
“이 늦은 시간에 널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구나.”
지강백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다.
제갈현이 나이고 들고 나서 각방을 쓴 지도 오래되었으면서, 갑자기 이 시간에 방문을 해?
보나마나 오늘의 연회로 인해 똥줄이 탔겠지.
‘빌어먹을. 왜 또 이 녀석이 알짱거리는 거야!’
진휘란은 굳은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을 읽고 있던 제갈현은 갑작스런 방문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에 웬일이오?”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닥 좋은 얘기는 아닐 듯하군.”
서책을 덮은 제갈현이 그녀에게 물었다.
“말해보시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진휘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 권이, 소가주 자리는 언제 주실 것인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제갈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소가주는 가주의 후계를 상징하는 자리다. 가주 대리로서 책무를 익히고, 가주가 될 준비를 하는 자리.
소가주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가주의 후계자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제갈현은 아직 가주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후계자 결정 문제도 나중 일로 미뤄뒀는데, 다짜고짜 소가주 자리를 내달라니?
“소가주 자리는 아직 먼 이야기요. 갑자기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거요?”
“권이 나이가 벌써 스물 일곱입니다. 이제는 그에 맞는 직책을 주셔야죠!”
“권이는 강호행만 세 번이오. 근데 제대로 된 업적이나 쌓은 적이 있소? 허구한 날 다른 가문에서 동년배들이랑 얘기나 나눌 줄 알지, 당당히 자랑할 업적이 하나도 없잖소!”
“인맥도 중요하다는 걸, 모르시나요?”
제갈현은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인. 우리는 무림세가요. 명성도 중요하지만 왕좌에 앉을 자가 힘이 없다면 인맥 따위, 없는 것보다 못하오.”
“권이의 무예도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둘째 탄이는 절정을 진즉에 넘었소. 그리고 빈이도······.”
제갈현은 말을 하다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진휘란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제갈현은 아직도 후계자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둘째 아들도 문제였지만, 갑자기 끼어든 막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다급해진 진휘란은 제갈현의 손을 잡고 매달렸다.
“서방님. 권이야말로 본가를 이끌어갈 기둥이에요. 아시잖아요. 권이, 일평생 무공에 학문까지, 가주 자리에 앉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어요.”
“······그만하시오.”
제갈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적은 제갈가가 오대세가의 정점이 되는 것이오. 오대세가의 정점이 된다는 것은, 곧 중원제일가(家)가 된다는 뜻이지. 그러니 나는 가장 뛰어난 인재를 원하오. 장남이니 인맥이니 하는 것보다, 다방면으로 훌륭한 인재를.”
제갈현은 자신의 손을 잡은 진휘란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직이 경고했다.
“권이의 능력 또한 높이 사고 있소. 그러니 나는 끝까지 그 애들의 능력을 확인하고, 가장 훌륭한 인재를 뽑을 것이오. 그나마 권이는 장남에다가 강호 경험도 풍부하니, 도움이 되겠군. 거기다 장로들의 지지도 높으니 열심히 하면 가주 자리에 앉을 수 있지 않겠소?”
“······.”
“그러니 더는 소가주 자리로 내게 매달리지 마시오.”
진휘란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화가 나서가 아니다.
그녀는 제갈현의 분노에 겁을 먹고 몸을 덜덜 떨었다.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분명 호되게 변을 당할 터였다.
“밤이 늦었소. 이만 처소로 돌아가시오.”
“네······.”
진휘란은 쫒겨나듯 밖으로 나오며 이를 부득 갈았다.
이게 다 빌어먹을 첩자식들 때문이었다.
그놈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구걸할 일도 없었을 터였다.
‘불안해. 권이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나도 뭔가 수를 써야 한다고.’
후계 구도에서 밀린다는 것은, 그 세력도 함께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제갈탄이 가주가 된다면 현소향, 그 악독한 계집이 자신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의 아들을 가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천히 집안에서 권력을 쌓아가는 게 중요했다.
‘소가주 자리는 아니더라도, 일단 가능한 권력들은 대부분 손에 넣어야 해.’
그녀는 잔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났다.
무림맹으로부터 제갈빈을 초청하기 위해 보낸 마차가 온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