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05)
제 106화
* * *
현재 시간 08시 57분.
아카데미에 도착한 나는 전에 영감님이 연설을 하던 그 공터에 와 있었다.
나 외의 사람이라고 하면, 내 어깨에 앉아 있는 스승님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휑한 공터.
나는 단상 위로 올라간 뒤,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길이 약 30cm의 긴 원통형 막대를 툭툭 두드렸다.
-삐이이익.
소리가 맞물리는 괴상한 소리가 아카데미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 아티펙트의 이름은 마이크Mike.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정규 교육이 09시부터 시작되니, 조금 아슬아슬한 상황.
“아아- 잘 들리십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렇게, 조절했거든.
“아카데미 감찰단주 잭입니다. 최근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학생분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시는 거 잘 압니다. 그래도 한 번은 털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니, 불만이 있으시면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아카데미에서 꺼지시면 됩니다.”
빈 공터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나도 조금은 화가 났을 텐데.
“아침부터 마이크를 잡고 이게 뭔 뜬금없는 개소리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오전에 예정되어 있던 아카데미의 모든 정규 수업은 취소됐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가시고, 모든 교관들은 교무관으로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10분 드리겠습니다.”
괜히 시간 끌 필요가 없다.
검술학부와 마법학부를 정리할 때는 약간 보여 주기식의 성격도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카데미의 일에 한정해서 내 손과 발이 되어 줄 이들이 무려 18명이다.
휘두를 칼이 18개가 생겼는데, 굳이 시간 끌 필요는 없지.
이렇게 한 번에 모아 놓고 잡아죽이는 게 깔끔하다.
일종의 판을 마련해 준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오늘 오전에 예정되어 있던 모든 아카데미의 정규 수업은 취소됐습니다. 학생들은 자습을 하든지, 기숙사로 가서 모자란 숙면을 취하시든지 알아서 하시고, 교관님들은 지금 하시는 일 전부 집어치우고 교무관으로 집합하십시오. 제가 직접 찾아가게 만들지 마시고. 이상입니다.”
마이크를 툭 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전에도 느꼈지만.]응?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 *
증폭된 잭의 목소리는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이의 귀에 들어갔다.
검술학부 1학년들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뭐야?”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대체…….”
14살이지만 그래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안다.
잭의 입장에서야 평범한 이들일 뿐,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일단 나름의 인재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갑작스럽게 취소된 수업.
학생들도 혼란스러웠고 이론 수업을 준비하던 교관들도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오늘 오전에 예정되어 있던 모든 아카데미의 정규 수업은 취소됐습니다. 학생들은 자습을 하든지, 기숙사로 가서 모자란 숙면을 취하시든지 알아서 하시고, 교관님들은 지금 하시는 일 전부 집어치우고 교무관으로 집합하십시오. 제가 직접 찾아가게 만들지 마시고. 이상입니다.]교관들에게 있어서 잭의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미친놈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지니고 있는 힘이 너무 크다.
괴물.
악마.
심지어 아카데미를 도망치려고 해도, 귀신같이 잡아 와 팔다리를 자른다.
괴물이라는 단어도 모자라고, 악마라는 단어는 오히려 순화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규정할 수 없는 인간.
아카데미에서 잭의 위치는 이미 최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이론 수업을 준비하던 교관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모두 기숙사로 복귀하도록.”
교관은 그 말만 남긴 채 교실을 벗어났고, 교실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나섰다.
“뭐해? 전부 기숙사로 복귀해.”
금발 머리에 다른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은 여학생.
그녀의 이름은 샬롯이었다.
“…….”
“……어……어.”
체구가 작은 샬롯이지만 1학년들 중 샬롯만큼 재능이 있는 이도 없다.
요 며칠, 아카데미에서 학살이 벌어지던 때, 평민들은 샬롯을 중심으로 뭉쳤고, 귀족들 중 절반 이상은 샬롯에게 붙었다.
잭의 말대로 샬롯은 골목대장 노릇을 하게 된 것.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현재 아카데미의 분위기상, 교육은 거의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했고, 아이들의 정신은 전부 다른 데로 쏠려 있었으니까.
그들을 바라보며 샬롯이 말했다.
“오늘 끝날 거야.”
“응?”
“오늘 전부 끝날 거라고.”
“뭐가?”
“모든 게.”
샬롯은 잭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가 하는 일에는 전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일을 어떻게 도울지를 생각한다.
피안화를 겪은 이후부터였을까.
샬롯은 스스로가 조금은 똑똑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샬롯은 똑똑해졌다.
지능의 상승, 감각의 상승.
신체의 한계 자체가 성장했고, 그릇은 넓어졌다.
샬롯은 잭의 의도를 안다.
잭은 아카데미가 정상화되기를 원한다.
그건 확실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무려 열명이 넘는 교수진들이 잭을 찾아왔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 돌아갔다.
샬롯은 눈치챈 것이다.
그들이 잭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굳이 학생들을 기숙사로 보내는 것은 앞으로 벌어질 ‘학살’을 지켜보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고, 교관들을 교무관으로 집합시키는 것은 한꺼번에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잭의 의도를 이해한 것은 샬롯뿐만이 아니었다.
검술학부 4학년 타노스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기숙사로 복귀해.”
샬롯도 변했고, 타노스도 변했다.
맞고만 살던 타노스는 이제 없다.
지금까지 타노스가 환상 마법진에 들어갔던 횟수는 총 558번.
아무리 실제로 죽는 게 아니어도 평범한 사람이 500번 이상 그 마법진 안에 들어갔으면 정신이 나가도 진작에 나갔을 거다.
잭과 발렌타인이 어중이떠중이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서 드러난다.
타노스는 성장했다.
전사.
나약한 아카데미 학생 타노스는 마법진 안에서 죽었고, 남은 건 생사의 기로에서 정신과 신체를 단련하는 전사만이 남았다.
그런 타노스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휘어잡는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타노스의 말을 들으며 그 말대로 행동했다.
가문의 뒷배를 여전히 믿고 있는 몇몇 이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잔챙이가 넘보기에 타노스는 너무 컸다.
무려 오백 번이 넘도록 죽음의 기로에 서서 생사를 가르는 단련을 한 타노스를, 단순히 뒷배만 믿고 깝치는 귀족 자제가 넘본다?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은 기숙사로 향했고,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 샬롯과 타노스는 식당으로 향했다.
* * *
휘적휘적 걸었다.
아까의 그 공터에서 교무관까지의 거리는 길어야 10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뒤에서 조금만 더 메이킹해야 되나.’
지금 상황에서 조금 뜬금없는 고민일 수도 있는데, 나는 아베이루한테 툴칸 제국의 드래곤 실험실이 폭파됐다는 그 사실에다가 양념만 조금 더 쳐서 퍼트리라고 명령했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잠잠하다.
아베이루가 내 명령대로 했다면, 아마 각국의 왕들을 비롯해 위원회의 핵심 인물들은 나름의 조사단을 파견했을 것이다.
목적은 당연히 사실 확인을 위해서.
그런데, 지나치게 느리다.
‘양념을 더 쳐야 되나.’
조급해하는 건 아닌데, 상황이 지나치게 잠잠해서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건 차후에 알아보기로 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교무관에 도착한 내 눈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교무관 앞에 집합해 있는 약 50여명의 교수진이 시야에 담긴다.
검술학부, 마법학부, 군사학부, 행정학부.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군사학부와 행정학부였다.
그중 두려움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는 교관들이 보인다.
아까 별장으로 왔던 이들이 아니라, 모르는 놈들인데, 그들의 얼굴이 매우 어두운 걸 보니, 자기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나 보다.
아, 내가 오늘 뒤지는구나.
그런 거.
저벅-
슬쩍 인기척을 내자,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구릿빛 피부의 한 남자.
그레이 시어런.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질문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냥 듣지 않고 선수를 쳤다.
“뭐 하고 있어?”
“……예?”
“모아 놨잖아. 정리할 놈 정리해야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그레이 학부장의 눈동자가 살짝 빛났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변한다.
결의에 가득 찬 표정.
그레이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채앵-!
채앵-!!
검을 뽑아 드는 소리와.
후우웅-!!!
후웅-!!
마나를 뿜어내는 소리가 이어진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몇몇 교관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한 몇몇 교관들.
모두가 다양한 표정을 짓던 그 순간.
서걱-!
“끄악-!!”
서걱-!!
서거걱-!!
“으악-!!”
콰직-!
콰지직-!
검이 휘둘러지고, 둔기가 허공을 찢으며, 주먹이 살과 맞부딪친다.
이어서 피가 튀기고, 살이 갈리고, 목이 날아간다.
눈치 빠른 몇몇.
그러니까, 죽여야 하는 교관들이 몸을 돌리더니 마나를 끌어올리며 자리를 박찼다.
도망을 치려는 모양샌데,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처럼 상황을 지켜보던 그레이 학부장이 가볍게 손짓한다.
이어서.
콰앙-!!
돌쇠와 마당쇠가 자리를 박차며 뛰쳐나갔다.
도망친 교관의 수는 총 5명.
콰직-!!
콰지직-!!
그중 두 명의 교관이 머리가 짓눌린 채로 땅에 처박혔으며.
서걱-!
콰직-!!
또다시 두 명이 죽었다.
남은 것은 한 명.
얼마나 급했는지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 위로 솟구친 상태였는데, 그 모습을 두 데스 나이트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 돌쇠가 쥐고 있던 검을 투창처럼 쥐고는 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녀석의 몸으로 몰리는 마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허공에 흩날리는 ‘살색 가루’.
우리 돌쇠가 팔을 휘두른다.
쌔애액-!
콰직-!
“끄엑-”
농담이 아니고 저 세 가지 소리가 거의 동시에 났다.
털썩-
허공에 떨어지는 목 한 개와 목이 잘린 몸통 한 개.
정확히 15초였다.
24명의 교관이 죽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혼란과 패닉, 그리고 침묵에 잠긴 상황에서, 그레이 학부장이 말했다.
“거래……라고 하셨었지요.”
별장에서 나오기 전, 나는 분명 거래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그 의미를 그레이 학부장은 깨달았나 보다.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는 게, 꽤나 부담스러울 정도다.
“길을 보여 주신 겁니까?”
슬쩍 웃었다.
군인이라 그런가.
“하루는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그들’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실 겁니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