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08)
제 109화
* * *
“영감님. 툴칸 애들이랑 많이 친합니까?”
뜬금없는 내 질문에 영감님이 보기 드물게 멍한 표정을 짓는다.
“툴칸이라……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꺼내는 겐가?”
전에 아베이루가 말했던 대로 이 테슬란 왕국에서 롬멜 총장의 힘은 막강하다.
사람들이 착각하곤 하는데, 오등작 체제의 귀족 사회에서 왕보다 아래지만 다른 귀족들보다 월등히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공작은, 생각 외로 국가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특히 테슬란 왕국의 경우, 건립 되었을 때는 총 네 개의 가문이 존재했고, 시간이 흘러 조금씩 추가되긴 했지만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현재, 단 두 개의 공작 가문만이 남아 있다.
그들의 역할은 쉽게 말하면 ‘기둥’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
공작이라는 기둥은 왕을 보좌하고, 귀족들을 요리한다.
현재 테슬란 왕국에 존재하는 귀족 가문의 수는 총 39개.
그중 무려 30개가 넘는 가문이 롬멜 총장에게 충성한다.
그들 모두가 롬멜 총장이 공작의 자리에 앉아 있을 시절 그의 도움 덕에 가주의 자리에 쉽게 오를 수 있었던 이들이다.
세간에는 친국왕파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국왕에게 충성한다기보다는 롬멜 총장에게 충성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대단한 양반이야.’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롬멜 총장은 말론 공작가의 영향력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절반 이상의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뿐이랴, 그들은 롬멜 총장이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모든 사병을 이끌고 롬멜 총장을 물심양면 도울 정도로 롬멜 총장에게 의지한다.
여태껏 나는 롬멜 총장과 어센블 공작가를 가능하면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다.
아베이루가 말했듯,
현 어센블 공작인 프리드리히 어센블은 롬멜 총장의 첫째 아들이지만 그는 롬멜 총장의 영향력을 따라잡지도 못했고, 흡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어센블 공작가의 힘이란 현재까지도 롬멜 총장의 힘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거기다 롬멜 총장은 아카데미 마탑 지하에서 국왕도 모르는 마법 병단을 육성 중이다.
지금껏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분명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영감님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군사학부의 학부장인 그레이 시어런을 공석인 검술학부의 학부장으로 보직을 변경해 주십시오.”
“……뭐?”
“군사학부의 수석 교관이었던 갈라디너 라파예트를 군사학부 학부장으로 올려주시고요.”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당황 어린 시선.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는 작은 적의.
영감님의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마저 말했다.
“그레이 시어런.”
“예.”
살짝 혀를 핥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치거나 병을 얻게 되어 자리에서 부재할 경우, 어떻게 되지?”
“아카데미 특별법 13조. 총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행할 수 없을 때에는 아카데미 학부장급의 인사가 그 직무를 대리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학부장급이면 감찰단주도 포함되겠네?”
순간 흠칫한 그레이였지만,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그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찰단주의 직위가 특별법상 학부장과 맞먹는 위치이기에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
“만약?”
“아카데미의 모든 학부장이 만장일치로 동의를 한다는 가정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레이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
당연히 공간을 공유하는 영감님도 들었다.
영감님의 눈이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고.
내가 바라보는 영감님의 눈매가 천천히 찌푸려지고.
찌푸려진 눈매 속의 두 눈동자가, 조금씩 이글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슬쩍 웃고 말았다.
나는 팔을 내밀어 탁자에 올리고는, 언젠가처럼 느긋하게 턱을 괬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십니까?”
“……뭐?”
“영감님 위원회에 속해 있는 거, 맞죠?”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게 긍정을 가장한 침묵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내 옆에 있는 그레이도 안다.
분명, 나는 아직 그레이에게 위원회에 속한 귀족들의 명단을 받지 않았다.
내가 그레이에게 들은 건 맨티스 백작가가 위원회에 속해 있다는 거, 그거 하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두 공작가의 영향력은 왕국 내에서 왕과 흡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런 두 공작 가문이 왕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고?
강경파가 불로불사라는 걸 미끼로 내밀어 귀족들을 꼬시고, 실제로 꼬신 상황이라는 걸 모른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
협력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두 공작은 왕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상황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말론 공작은 강경파의 손을 잡아 위원회에 들어갔고, 국왕도 들어갔다.
그런데 어센블 공작가만이 동떨어진 채로 멀리서 관망만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아베이루는 프리드리히 어센블과 롬멜 어센블 중, 최소 한 명은 무조건 포함되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리고 만약 위원회에 누군가 속해 있다면, 그건 필시 롬멜 어센블이 될 거라고 말했었는데, 사실 내 생각도 같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건 같은 거지.
난 프리드리히와 롬멜, 그리고 근위기사 단장인 더글라스, 그놈까지 세 명 다 위원회에 속해 있다고 보거든.
“제가 후천적으로 사람을 보는 눈을 조금 길렀습니다. 자만하는 건 아닌데, 제 눈은 솔직히 꽤나 정확하다고 보거든요.”
“…….”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 마법 병단이라는 걸 창설해서 키우고 있는 걸까. 그것도 몰래.”
영감님은 분명 왕국을 지켰던 사람이다.
몰래 기르던 마법 병단은 신출귀몰하게 움직였으며, 합격 마법진과 온갖 함정 마법진으로 툴칸 제국의 병사들을 참살했고, 신출귀몰한 전략과 도시 전체를 함정으로 만들어서 폭파시키는 말도 안 되는 계책으로 반쪽짜리 초월자들을 빡돌게 만들었다.
그 모든 일의 배후는 눈앞의 롬멜 어센블이었고, 롬멜 어센블은 한편이라고 믿고 있던 블루투스에게 뒤통수를 맞아 사망하며, 롬멜 어센블이 죽는 것과 동시에 테슬란 왕국도 명을 달리했다.
정확히는 끝을 함께한 거지.
그게, 롬멜 에인하르트 어센블이다.
그건 분명 팩트다.
“불로불사나 그런 거에 혹해서 넘어가실 분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그쪽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웃기고, 그런데 마법 병단은 왜 만드셨어요?”
“…….”
“심심해서?”
“…….”
“외로워서?”
영감님이 한숨을 푹 내쉰다.
지금 무슨 장난을 하는 거냐는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데, 사실 장난 맞다.
지금까지는.
“강경파가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고 그걸 막겠다고 마음먹어서?”
입을 열려던 영감님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지고, 그레이 시어런의 표정도 굳어진다.
“왕국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건가…… 명예욕을 바라시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마 이중 첩자…… 뭐 그런 거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다시 물어볼게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십니까?”
이중 첩자.
내가 내린 결론이다.
사실, 모든 의문은 마법 병단에서부터 시작됐다.
왜 영감님은 마법 병단을 기르고 있던 걸까.
너무 뻔한 답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은 언급하자.
간단하다.
애초에 영감님은 툴칸 제국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왜 어센블 공작가의 일이 아닌 ‘개인’의 사병으로 길렀던 걸까.
그것도 간단하다.
“두 아드님이 불로불사에 아주 완벽하게 넘어가서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거죠?”
“…….”
영감님이 침묵한다.
긍정의 침묵.
이어서, 영감님의 굽혀졌던 허리가 펴지고 온화하게 지어져 있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 간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존재감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살면서 보았던 왕은 총 다섯 명이다.
오크들의 왕 블랙맨.
하피들의 왕 레온 빌레아.
엘프들의 왕 바르바라 귀도.
그리고 현 강경파의 수장이자, 황태자이며 미래 대륙을 통일한 툴칸 제국의 황제 이스칸다르 툴칸.
그리고 나름 로드라는 이름을 갖춘 두 마리의 로드 드래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니 5명이 아니라 6명이긴 한데.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영감님의 기세가 최소 수백만 오크를 다스리는 대족장 블랙맨의 기세와 흡사하다는 거다.
“너는, 대체 누구냐?”
영감님은 고작해야 6서클 마나 유저에 불과했지만 그런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이 살면서 쌓아가는 업.
그것은 명예가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살생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업을 쌓다 보면 격을 갖추게 된다는 거다.
격을 갖춘 이들은, 기세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르고, 남을 압도할 수 있는 위압감을 뿜어낸다.
눈앞의 영감님은 지금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름 격을 갖춘 인물.
그런 영감님이 내게 누구냐고 묻는다.
“말하면 믿으실 겁니까?”
“믿고 안 믿고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말없이 실실 웃었다.
그런 내게, 여전히 싸늘한 어조로 영감님이 말한다.
“너에 대해 나름 조사를 했지만 하면 할수록 의문은 더 깊어지더구나. 후작령에 있을 때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열 손가락을 전부 자르고 눈을 파냈다지? 그리고 산속에서 의문 모를 습격을 당했고 그 습격에서 도망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아니야. 지금 정황을 보면 그때 후작가의 병사들을 죽인 것은 너다. 도망? 말도 안 되지. 대체, 너는 누구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눈앞의 영감님은 명색이 전 공작 출신이고 현 왕국의 상황상 가장 영향력이 큰 귀족이다.
내 뒤를 파내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고작해야 한 달 반밖에 안 되는 기간이었다. 그 방학 기간 중에 사람이 변한다……. 물론 가능하겠지. 어린 아이들은 백지에 불과하기에 어느 색에 물드느냐에 따라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너처럼 급격한 변화는 말이 되지 않아.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면 모를까.”
“그래서요?”
“……잭 발란티에라는 아이는, 죽은 것이냐?”
“글쎄요.”
“혹시.”
혹시?
“……드래곤이냐?”
하하-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설마요. 전 인간입니다.”
“…….”
“그리고 저는 잭입니다. 발란티에라는 이름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하거든요. 그러니 앞으로는 그냥 잭이라고 불러 주시죠.”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