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egendary youngest son of the marquis RAW - Chapter (126)
제 127화
이건 당연한 일이다.
개인이 국가에 맞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비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지겹도록 이야기했듯 나와 스승님에게는 예외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모른다.
초월자라 불리는 이들이 얼마나 괴물인지.
그리고 그 괴물들마저 두려움에 떨고 고개를 조아리던 그 시대의 정점들은 또 얼마나 더 괴물인지.
그들이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하나만 언급해도 된다.
네크로맨서.
이 세상에 쓰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흑마법의 그 극의까지 깨우친 네크로맨서가 진심으로 전쟁에 임한다면.
그건 전쟁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그냥 학살.
대학살이다.
그보다 일단 우리 그레이 학부장님의 걱정을 좀 덜어 줘야 할 듯싶다.
이 양반 이거, 반란을 꿈꾸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한 사람치고는 간땡이가 좀 콩알만 하네.
여하튼.
“그 정도는 예상했지.”
“……예?”
“당연히 예상한 범주 안에 있는 일인데 뭘 그리 걱정해?”
“그렇습니까?”
조금 긴가민가한 표정의 그레이 학부장이었지만 워낙 내가 보여 준 모습들이 충격적이어서 그런 걸까.
쉽게 납득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냥 방해하면 전부 죽일 거거든.
내가 아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시체는 말이 없다.
여담으로 흑마법사 버전도 있는데.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런데.”
“예. 말씀하십시오.”
“안 궁금해?”
“……예?”
“방금 내가 우리 스승님과 대화 나누는 거 다 들었잖아. 궁금해질 만도 한데, 별로 안 그래 보여서.”
건국자 등등.
말 그대로 내가 스승님과 대화하는 것을 그레이 학부장은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색도 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그 모습이 조금 특이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레이 학부장이 말했다.
“제가 모시겠다고 한 것은 공자님이지, 공자님의 스승님은 아닙니다. 제가 알아야 할 일이라면 공자님께서 따로 제게 말씀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제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셨다는 건, 그냥 이 정도만 알고 있어라…… 이런 뜻, 아니십니까?”
휘유.
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아베이루도 그렇고, 그레이 학부장도 그렇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묘하게 닮은 구석도 있고.
“나중에 자리 한번 만들게.”
“자리, 말씀이십니까?”
“어, 따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여러모로 유익한 자리가 될 거야. 그보다…….”
끼이익-
말을 잇지 못했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으니까.
나이는 약 50대 중반.
남자답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송충이 눈썹과 갸름한 얼굴.
묘하긴 한데 그게 또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듯한 외모.
체격만 보면 무슨 용병 같은 모습인데, 깊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마치, 무슨 책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느낌이 참 묘하다.
롬멜 총장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 같다고 해야 하나?
쉽게 말하면, 범상치가 않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그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가식도 없고 전부 진심으로 보인다.
꽤 특이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옆에 있는 그레이 학부장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눈을 크게 뜨며, 정말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본다.
그레이 학부장이 말했다.
“……롤랜드…… 린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레이 전 총사령관.”
롤랜드가 작게 웃는다.
그건 위압을 주려는 것도, 무언가 노리는 것도 아닌, 그냥 친우를 만났을 때 지을 법한 웃음이었다.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륙전장의 장주가 이 자리에 나오시다니요.”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지요. 그보다 총장님께서는 잘 계신지요?”
“……예, 잘 계십니다. 그런데, 혹시 사업차 방문하신 겁니까?”
“사업이라…… 비슷합니다. 사실 상인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편안한 분위기다.
아니, 그런데 누가 보면 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 줄 알겠어.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려 둘의 대화를 막았다.
이어서, 두 남자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옮겨진다.
일단 그레이에게 물었다.
“안면이 있었나 봐?”
“예. 테슬란 왕국군 총사령관으로 있었을 때,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금액이 워낙 커서 그런가, 확실한 책임자가 왔네. 일단 앉아.”
말을 낮췄지만 롤랜드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내 맞은편에 앉았을 뿐.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겠지? 4천억, 어떻게 할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무섭게, 머리로 생각했다.
롤랜드 린치.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실제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내게 4천억이라는 돈을 건네줘야 하는 상황.
그는 과연 무슨 대답을 할까.
협박을 할까, 아니면 회유를 할까.
대륙전장이 돈이 많긴 해도 4천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아마, 최대한 끌어온다 해도 한 1000억 골드?
그 정도가 한계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어지는 롤랜드의 대답이 가관이다.
“드리겠습니다.”
“……응?”
오버액션 같은 그런 게 아니라.
난 정말로 놀랐다.
그냥 준다고?
4천억 골드를?
어떻게?
아니지.
어떻게라는 질문은 그렇다 쳐도, 이렇게 순순히 준다고?
“진짜?”
“예.”
“정말로?”
“예.”
“미쳤어?”
“……예?”
옆에 있던 그레이 학부장이 눈을 크게 뜨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롤랜드 린치도 눈을 크게 뜬다.
“아니, 이렇게 순순히 주면 어떻게 해.”
“……?”
순순히 준다고 말하는데도 묘한 태도를 보이는 나를 롤랜드 린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또한, 그의 눈에는 깊은 호기심도 담겨 있었다.
거참,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아니, 뭔가 밀고 당기기도 하고, 흥정도 하고, 몇 명 습격도 하고 칼질도 몇 번 해야 이야기가 진행되지. 이렇게 순순히 준다고 하면 너무 싱겁잖아.”
[하하하.]옆에 있던 스승님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특이한 분이시군요. 소문대로.”
소문대로라…….
“인상 깊게 들으셨나 봐? 그다지 좋은 소문은 아닐 텐데.”
“글쎄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자, 그럼 좀 세세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어떻게 줄 건데? 자그마치 4천억이라는 돈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4천억 골드를 당장 융통할 수는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를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4천억 골드는 국가를 수십 년 넘게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다.
그냥, 말도 안 되는 돈인 거지.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한다면 ‘분할 상환’ 형식으로 드려야겠지요. 이건 돈을 따신 공자님께서도 충분히 감안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억지를 부릴 생각이 없다.
순순히 준다잖아.
그럼 받아야지.
“그래서?”
“간단합니다. 저희 대륙전장은 1년 동안 약 34억 골드를 벌어들입니다.”
“단순 매출로만?”
“그렇습니다.”
돈이 많을 수밖에 없겠구나.
“밑의 애들 보너스도 주고 그러면 실질적으로 남는 건?”
“약 28억 골드입니다.”
1년에 28억.
사실 대륙에 상단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단체가 몇 개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규모 단체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도 대륙전장에 발을 걸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대륙전장은 이 대륙의 ‘유일한’ 상인 단체라고 볼 수 있는 거지.
계속 거대하다는 말을 내가 괜히 쓴 게 아니다.
확실히.
“많이 버네.”
“4천억보다는 아니지요.”
피식-
“분할 상환이라고 했지? 자세하게 말해 봐.”
롤랜드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개인적으로 모아 둔 돈도 있고, 상단의 비축금도 있습니다. 그걸 한 번에 끌어온다면 약 1천억 골드가 됩니다.”
“그래서?”
“일단 1천억 골드를 지급해 드리고, 남은 3천억 골드는 매년 20억씩 상환하겠습니다.”
어디 보자.
매년 20억, 3천억이면 최소 150년.
하아.
이 양반이 장난하나.
“내가 150년 넘게 살 것 같아?”
“중간에 돌아가셔도 가까운 친인척분에게 돈이 지급될 겁니다. 그중 1순위는 잭 발란티에 님이 지목하신 분이고 2순위는 친자식입니다.”
순순히 준다고 한 이유가 있었네.
“시간을 벌겠다? 시간을 벌고 조용히 뒤에서 암살하겠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롤랜드는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전장은 신의를 지킵니다.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무조건 지키며, 돈을 빌렸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돈을 갚는. 대륙전장은 그런 조직입니다.”
“재미있는 조직이네.”
“또한, 그런 신념을 반드시 지키는 조직이었기에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륙 제일 상단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0년이 길다고 느껴지신다면, 70년, 혹은 60년 정도로 줄일 수도 있습니다.”
“돈을 구할 방법이 있다?”
“상단의 삼분지 일 정도를 정리하고, 대륙전장에 빚을 진 이들의 수표를 모조리 회수하면, 아슬아슬하지만 가능합니다.”
가능이야 하겠지.
“대륙전장은 휘청일 거고.”
롤랜드가 쓰게 웃었다.
“어쩌겠습니까. 대륙전장이 그런 조직인 것을.”
빚을 졌으면 반드시 갚는다.
더러운 일에 손을 담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 끼어들지 않는.
대륙전장은 확실히 돌연변이 같은 집단이었다.
내 옆에 서 있는 그레이 학부장처럼 말이다.
롤랜드 린치가 어떤 남자인지 감은 잡았다.
사실 대륙전장이 상당히 공정한 단체라는 소문을 들은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실제로 이용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왜냐면.
내가 있던 미래에 대륙전장은 없었거든.
돈도 많고, 나름 정보력도 뛰어난 그런 조직이 중립을 선언한다…….
대륙을 통일한 툴칸 제국이 그런 조직을 용납할 리 없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주고 싶지 않지?”
“……예?”
“솔직히 4천억, 주고 싶지 않잖아.”
롤랜드의 표정이 굳어진다.
“150년? 말이 150년이지, 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확신해? 그게 60년이라도 달라지진 않지.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까.”
아마 눈앞의 이 양반도 모를 거다.
툴칸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후, 대륙전장의 주요 요직에 앉은 이들 전부 목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그 범주에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린치라는 이름을 쓰는 모든 이들의 씨가 마르고, 요직에 앉은 이들의 가족들까지.
그들 모두가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게 미래에 벌어질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할게. 미래는 아무도 몰라. 다만…….”
“다만?”
“조금 좋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현재라는 시점에서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할 수는 있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롤랜드 린치.”
“…….”
“나랑 일 하나만 같이하자.”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디스카운트해 줄게.”
“…….”
“아주, 파격적으로.”
진작에 언급했어야 하는 건데,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것 같다.